왜 나는 진정한 친구 하나 없는 걸까
조은강 지음 / 메이트북스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얘기이다.

친구도 제대로 없고 가족도 신앙이나 정치성향이 안 맞으니까 안 친하다.

세상에서  나 혼자이다.

책만 내 친구이다. 

저자에게 첫 사회생활이었던 초등학교 시절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1학년 미술 시간이었는데 저자는 언니가 쓰던 작은 크레파스를 가져왔다.

이 장면은 꼭 우리 엄마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것 같다.

 우리 엄마도 딸다섯중에 넷째라서  새것 한번 가져 본적이 없다는 말을 했다.

 저자가 기억하기로는 크레파스가 12색 아니면 많아 봐야 20색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의 짝궁인 아람이는 36색 아니면 50색쯤 되는 커다란 3단 크레파스를 꺼내 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걸 보며 저자는 아람이에게 저 색깔 좀 빌려줄래?” 혹은 크레파스 좀 같이 써도 돼?” 같은 말을 건네고 싶었다.

몇몇 색을 빌려 쓴다면 저자의 그림이 훨씬 예뻐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말이 죽어도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아이와 저자는 아직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은 소곤거리며 서로의 것을 나누어 쓰는데. 저자는 그 애의 크레파스를 흘끔흘끔 보기만 할 뿐이었다.

​저자는 확실히 관계 맺기에 젬병이었다.

반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돌다가 선생님이 외치는 숫자에 맞게 모이는 게임을 하면 언제나 저자는 혼자 남았다.

그래서 그때의 저자처럼 학창시절 친구가 없었다는 이들의 말을 들으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들도 저자처럼 왜 난 친구가 하나도 없는 거지 하는 의문을 잠재우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좀 나아질까, 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관계 맺기의 어려움은 계속된다.

이젠 동성 친구뿐만 아니라 이성 친구, 나아가 애인, 인생의 동반자까지 선택해야 하는 과제가 닥쳐온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 다가오는 사람은 어떻게 대할 것인지 마땅한 대처법을 알지 못한다.

점점 사람 만나기가 두렵고 가벼운 우울 증세까지 느껴진다.

크레파스를 빌리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아이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 사는 한 이 궁지에서 빠져나갈 수 없음을, 세상은 그야말로 관계의 연속이다.

그러다가 문득 30년은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아빠의 서재에도 언제나 인간관계에 관한 책들이 가득했음을 기억 해냈다.

아빠는 퇴근 후 그런 책들을 꺼내어 열심히 읽곤 했다.

그렇구나, 평생 배워야 하는 것이구나,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니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그러다가 관계의 기본이자 힌트 같은 영화를 만났다.

 영화바그다드 카페, 이 영화에는 미인도 대단한 배우도 나오지 않는다.

외모도 성격도 모두가 조금씩 부족하다.

영화의 배경조차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사막이다.

카페주인 브렌다는 특히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여인이다.

그럼에도 우연히 여행자 야스민은 아무렇지 않게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녀들은 자신들의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면서 서서히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간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느냐고? 그걸 미리 고민하는 자체가 문제였다.

어릴 때 저자가​ 아림이의 크레파스를 탐냈던 순간은 오히려 저자와 아림이가 친해질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혼자여도 괜찮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혼밥, 혼영, 혼공, 혼행이 요즈음 참 흔하다.

카페나 식당, 극장과 여행지 어디에서나 혼자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저자에겐 오래전부터 익숙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뜻밖의 광경이다.

현대인은 혼자인 것을 더 이상 외로워해서는 안 되고, 혼자서도 강한 척해야만 세련된 개인으로 인정받는 모양이다.

그러나 괜찮은 표정으로 괜찮다고 하는 말이 사실은 괜찮지 않을 수 있다.

 일주일 까지는 괜찮았는데 8일째 혼자 먹는 것이 속상할 수도 있다.

미소로 열 마디 말을 한다.

저자는 그냥 웃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입꼬리를 올리고 안 올리고의 차이는 케네디와 닉슨의 얼굴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요즈음 입꼬리 올리는 성형 수술을 하나보다.

입꼬리가 올라간 사람은 얼굴이 부드러워 보인다고나 할까,

분명히 울고 있는데 입꼬리는 웃고 있는 괴이한 표정을 종종 TV속에서 본다.

케네디의 웃는 모습은 정말 환하다.

입꼬리도 정확히 올라가 있다.

그런데 닉슨은 웃는 얼굴이 확실히 애매하다.

 입은 좌우로 벌리기만 했다.

둘다 1960년 대선에서 맞붙었고 케네디는 승리한다.

 단순히 웃는 모습의 차이가 승부를 결정지었다고 볼 수 없지만 지금 보아도 케네디의 웃는 얼굴이 훨씬 매력적임을 부인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스마일 파워라고 부른다.

멋지게 웃는 얼굴은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만드는 마법이라는 것이다.

스마일 파워 라는 책을 읽은 후에 저자는 웃지 않고 버티었던 저자의 인생을 반성했다.

결국 그 책 속의 저자가 시키는 대로 거울을 보며 연습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뭔가 의욕이 없고 피곤한가? 그렇다면 일단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보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누가 보면 미쳤구나하겠지만 긍정적인 전염성도 있다.

남편이 피곤해할 때 저자는 입꼬리를 한껏 올린 웃는 얼굴을 들이민다.

남에게 요구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웃어본다.

자기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 덩달아 다른 사람들에게도 편안하고 선량한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다.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해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처도 있다.

저자는 처음 홍보대사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저자는 초보나 다름없었다.

그전에 홍보 일을 했었지만 그때는 갑이라고는 언론사 하나였다.

그런데 홍보대행사란 곳은 사방이 갑이었다.

언론사, 잡지사, 클라이언트....특히 클라이언트는 마치 예민한 시어머니 같았다, 외국계 자동차 회사였던 클라이언트 사무실로 들어가 회의를 할 때엔 너무 긴장되어 먹은 것이 올라올 정도였다.

갑이 원래 그런 존재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그들의 개인적인 캐릭터 때문이었을까,

저자​같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들은 사소한 친절도, 배려도 아꼈다.

그 밖에 자잘한 갑질을 겪으면서 문득 자신을 돌아보았다.

모든 사람은 자신보다 갑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음을 열지 않는다.

단지 이해관계를 생각해 앞에서만 잘해줄 뿐이다.

가까이 하기에 버거운 5가지 유형은

습관적으로 나와 반대편에 서는 사람이다.

자기에게만 특별대우를 기대하는 사람이다.

시간개념과 예의를 상실한 사람이다.

부탁할 일이 있을 때만 연락하는 사람이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냥 불편한 사람이다.

상대는 자신에게 최선의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자신은  왠지 심드렁해진다.

반대로 누군가도 저자에게 이런 느낌을 받았을지 모른다.

깊고 고요한 관계가 좋은 것이다.

일대일 만남이 더 좋은 이유는 가끔 길을 가다보면 친구로 보이는 여자들이 우르르 함께 걸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행복해 보였지만 약간의 이질감도 느껴진다.

특히 세명이 만나는 것은 좋지 않다고들 한다.

사소하게는 자리배치, 대화의 빈도, 눈 맞춤의 횟수에 서운함이 싹 틀 수 있다.

사람이 털어놓기 어려운 이야기일수록 털어놓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사람이 한사람을 만나 서로 집중해서 이야기 들어주고 또 자기 이야기를 꺼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 비밀을 남에게 이야기 했다가 소문이 나버리면 어떻게 하나요?”그것은 그 이야기를 할 상대를 고르는 자기 안목에 달렸다.

또 절대로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은 스스로도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작은 모임에서 배우는 것들 보다 가치 있는 대화가 행복한 모임이 될 수도 있다.

저자도 ​모임을 많이 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이런 모임은 표면상의 이유고 깊은 속내에서는 두려움이 더 컸다.

지금은 평온하지만 곧 누군가와 싸우게 될지도 몰라 하는 공포를 느꼈다.

인간과 인간이 모였는데 어떻게 평화롭기만 하겠는가 하는 불신이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의견에 반기만 들어도 날 싫어 하는구나하며 속으로 발끈했다. 소극적인 저항으로 안 나가고 빠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모임에서 모두가 당당히 제 목소리를 냈다.

토론이 끝난 후에는 기적같이 평온해졌다.

친목을 위해 모인 것이 아닌 이상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격렬한 의견 대립이 있을수록 토론에 대한 집중도와 재미가 높아졌다.

한 시간 반 동안 모든 사람의 의견을 골고루 취합, 정리했는데 그러고 나면 참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충촉감이 느껴졌다.

그냥 수다를 떤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충만감이다.

절로 감사의 마음도 일어난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사람 사는 이야기는 계속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저자는 사람 만나는 것은 싫고 집에서 소설책을 많이 읽는다고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여전히 사람에 대해, 인류에 대해 관심과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요즘도 저자는 하루에 책과 영화, 드라마 모두를 접한다.

숨 쉬듯 그 많은 사람들, 그 많은 캐릭터를 만난다.

언젠가는 사람이 지겹다는오만한 소리도 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저자와 다른 사람에게서도 비슷한 점이 발견되고, 저자와 비슷한 사람에게도 또 자신과 다른 점이 발견된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미묘한 변화를 보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기적 같은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서 혼자는 안되고 잘 웃고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