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음, 하나님 설계의 비밀 ㅣ 하나님 설계의 비밀
티머시 R. 제닝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9년 5월
평점 :

하나님이 마음의 기제를 어떻게 만드셨는지 심히 궁금하다.
우리는 인간의 법에는 용감히 맞설 수 있으나 자연법에는 저항할 수 없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법을 인간의 시행법으로 대체한 결과, 고금의 수많은 사람이 정신적 고통과 심리적 압박과 영적 혹사를 당해 왔다.
건강 문제를 분노한 신의 형벌로 보는 엉뚱한 결론때문이다.
예수 당시의 유대인 종교 지도층은 나병을 하나님의 저주와 형벌로 보고 나환자를 비난했다.
1346년에서 13533년까지 7년 간 흑사병이라 는 선페스트에 7천 5백만~2억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은 대다수 학자가 벼룩을 통해 전염되는 흑사병균이란 박테리아를 그 몹쓸 병의 원인으로 보지만 당시의 대중은 종교 지도층의 말대로 이를 분노한 신의 형벌이라 믿었다.
지금도 저자는 하나님이 왜 자신이나 사랑하는 이에게 암이나 조현병이나 기타 난치병을 주시는지 모르겠다는 환자를 수시로 접한다.
하나님의 법은 자연법이다.
건강 법칙도 그 부류에 속한다.
1987년 여름 저자가 당한 일은 순전히 건강 법칙을 어긴 탓이었다.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면 해로운 결과가 따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법을 자연법으로 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아이들은 삶이 설계된 이치와 건강의 원리를 모른다.
그래서 대개 장성할 때까지 부모가 규칙을 정해주어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잘 장성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젖먹이 단계에 머무는 게 더 좋다는 이들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숙하게 발육하고 장성하도록 부르신다.
그러려면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연단해야 한다.
비판적 논리력을 기르려면 심사숙고하여 선택해야 한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은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며 사람마다 제 나름의 결정 방식이 있다.
그런데 일관되게 남보다 좋은 결정을 내리는 이들을 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대안을 평가해 결론에 이르는 방식 중에도 더 건강하고 성숙한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이해하는 능력인 도덕 발달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로런스 콜버그박사는 6단계를 규정한 선구적 연구로 인정받았다.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은 통찰로 그의 이론을 수정 보완하여 거기에 일곱째 단계를 추가하고 성경의 사례를 제시해 왔다.
옳고 그름을 이해하는 능력의 7가지 발달 단계를 성경의 증거와 연계하여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단계는 상벌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를 가르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는 자기에게 돌아올 상이나 벌이냐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이 기능 단계가 정상이며 학습의 출발점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성인이 이 단계에서 살아간다면 뭔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이는 노예의 사고방식이다.
생각하지도 말고 알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만 해서 채찍을 면해야 한다.
인간을 가스실에 넣은 나치 군대가 이 단계였다.
나치 군대는 지시대로 하는 게 그들에게는 옳은 일이었다.
불응하면 벌을 받기 때문이다.
지시대로 하는 게 그들에게는 옳은 일이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고대 이스라엘도 이 단계였다.
벌을 면하려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했다.
1단계에서는 통치자가 적에게 권력과 복수를 과시해 자신의 통치권을 세운다.
벌로 위협하고 상으로 희망을 주는 게 그의 통치 수단이다.
벌하지 않는 자비는 1단계 사고방식에서 도덕성이 아니라 나약하다는 증거로 통한다.
이 단계의 사람들은 자비의 하나님을 유약한 신으로 본다.
신이라면 마땅히 권력을 행사하며 적을 괴롭히고 죽여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각자의 눈높이에서 만나 주신다.
그래서 고대 이스라엘과 이집트 민족을 대하실 때 그분은 자신의 통치 자격을 보이시고자 우선 이집트 신들을 벌하셨고 막강하고 장엄한 기적으로 이집트 신들이 아예 신이 아님을 입증하셨다.
주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1단계의 결정은 지극히 원시적이라서 아예 뇌가 필요 없다.
사고는 완전히 배제된다.
동물과 식물과 세균도 고퉁의 자극을 피하고 보상의 자극쪽으로 자란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는 이 기능 단계가 합당하지 못한다.
사실 우리를 이성 없는 짐승으로 전락시켜 1단계에서 움직이게 하려는 게 사탄의 목표다.

2단계는 교환 가치는 2단계의 도덕은 답례식의 옳고 그름이다.
내 쪽에서 뭔가를 해주면 합당한 합의된 대가를 돌려받는다.
서로 등을 긁어 주는 거래의 사고방식이다.
정상적 발달 단계에서 아이는 대개 자기 뜻을 관철할 힘이 없으므로 금세 거래하는 법을 배운다.
이는 어린아이가 거쳐가는 건강하고 긍정적인성장 과정이다.
그러나 성인에게는 여전히 미성숙한 기능 단계다.
고대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그 상태였다.
율법이 처음 낭독되었을 때 그들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사고방식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라고 출애굽기에서 얘기했다.
2단계에서 복수는 도덕적 의무다.
인과응보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악을 행하는 사람은 똑같은 양의 고통과 고생을 돌려받아야 한다.
고통과 고생을 돌려주지 않으면 부도덕한 처사로 통한다.
지금도 이 단계에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
옳고 그름을 이해하는 이 단계는 기복 신앙에도 나타난다.
올바른 의식을 행하고 올바른 교회에 다니고 30일간 매일 올바른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이 거래 조건대로 건강와 재물과 성공을 주신다는 식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순전히 사업상의 거래다.
대로 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지만 재대로 하지 못하면 복이 없다.
2단계의 발달에 필요한 정신적 의식은 최소한에 그친다.
원숭이와 돌고래와 개가 이 단계에서 움직여 재주를 부리고 먹이를 얻는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어린아이에게는 괜찮지만 하나님의 향상대로 창조된 장성한 인간에게는 합당하지 못하다.
3단계 사회적 동조 이 단계에서 옳고 그름은 공동체의 합의로 결정된다.
남들도 다 그런다는 아이의 말이 좋은 예다.
주변에서 찬성하면 옳다고 인정된다.
개인의 복수는 허용되지 않는다.
용서도 좋지만 집단의 징계가 정의로 통한다.
집단의 징계가 없으면 사회 질서가 무너진다.
왕을 요구하던 고대 이스라엘이 이 단계였다.
다른 나라도 다 왕이 있으니 그게 옳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들도 왕을 원했다.
또 합의된 규범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그들이 단체로 벌하던 데서도 같은 예를 볼 수 있다.
근래에도 소속 종교나 계급을 벗어나 결혼하는 딸을 가족들이 돌로 쳐 죽이는 사례가 뉴스에 보도되곤 하는데 이는 이 기능 단계가 오늘날에도 건재하다는 증거다.
3단계의 결정에도 사고나 논리가 요구되지 않는다.
고차원의 대뇌피질 활동이 별로 개입되지 않는다.
많은 군생 동물이 그런 식으로 기능한다.
벼랑으로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무리가 때 지어 그쪽으로 가면 그게 옳은 길이다.
우리나 집단이나 유행하는 문화를 따라 살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딸다운 인간을 빚어질 수는 없다.
4단계 법과 질서 4단계에서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성문법, 공정한 판사, 규정된 형벌에 있다.
개인은 선출직이나 임명직 실권자에게 판단을 이양한다.
선한 일에 적절한 보수나 보상이 따르고 규정 위반에 합당한 벌이 가해지면 그게 곧 정의다.
권위 있는 인물에게 의문이 제기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사람은 대통령, 판사, 목사, 교황이니 옳을 수밖에 없다.
초등학생이 이 단계에서 움직인다.
아이들에게는 규칙이 안전하고 당연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서로 규칙 위반을 참지 못해 공정함을 요구하다 보니 고자질이 난무하는데 여기서 공존함이란 대개 모종의 처벌이다.
이 단계의 사고방식은 흑백논리라서 사람들이 여러 단계나 파벌로 갈라진다.
파벌마다 몇 가지 핵심 규칙이 있어, 그 규칙에 동의하지 않는 남들을 비하하고 비난한다.
예수 당시 옛 이스라엘이 이 단계였다.
바리새인들은 우리에게 율법이 있다.라고 외치며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예수를 돌로 치려고 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분리주의라서 자기네 규칙과 의식을 지키지 않는 이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성문법, 법정, 검사, 판사, 배심원, 형 집행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대 세계도 다분히 이 단계다.
권위는 제도화된 법에서 일탈하는 이들을 처벌하는 강압적 공권력에 있다.
경찰과 법 집행자는 대중을 감시하고 법 위반을 수색해 법대로 처벌해야 할 의무가 있다.
5단계는 타인을 향한 사랑은 도덕은 의를 결정짓는 요인이 남에게 가장 유익한 행동임을 안다.
규칙과 무관하게 인간 고유의 가치가 있음을 안다.
불의란 객관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이다.
5단계에서 옳음의 기준은 규칙 목록이 아니라 실제로 타인에게 유익하고 이로운 행동이다.
개인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지닌 자유로운 도덕적 행위자이며 자기 모습 그대로 존중된다.
흑인차별법이 존재한다 해도 5단계 기능에서는 흑인이 가치를 인정받고 대등하게 취급된다.
어떤 행동이 타인에게 가장 유익한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서 그에 따라 옳음이 결정된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어떤 상황에서는 아이를 끌어안고 입 맞추며 칭찬해 주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그만하라고 소리쳐 명령할 수도 있다.
말을 듣지 않으며 징계하겠다고 경고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치유하며 잘되게 해 주는 동기는 사랑이지만 주어진 순간에 그 사랑이 어떤 행동으로 나타날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예수가 나환자를 만지시고 여자에게 말을 거시고 세리와 어울리시고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고 성존의 돈 상을 엎으신 행위도 이 기능 단계의 예다.
그런 사랑의 행위는 유대인 지도층의 율법에 어긋났다.
비유 속의 선한 마리아인은 개인 재산을 들여 타인을 돕느라 사회 관습과 종교법을 무시했다.
또 다른 이야기 속의 탕자는 집을 떠나 우산을 탕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제자리로 다시 받아들여졌다.
6단계 순리에 따르는 삶은 삶이 설계 원리나 자연법대로 작용하도록 짜여 있음을 알고 지혜롭게 거기에 조화되는 생활을 선택한다.
어떤 특정한 행동을 취하는 이유는 그래야 한다는 규칙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실제로 통함을 알기 때문이다.
성숙한 개인은 정부가 대마초 같은 약물을 합법화할 수는 있어도 법으로 이를 건강에 좋게 만들 수는 없다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사고가 6단계인 사람은 합법이라 해도 굳이 그런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건강 법칙에 어긋나 몸과 뇌를 해친다.
7단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은 하나님과 남을 사랑하고 그분이 설계하신 삶의 순리를 이해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지혜롭게 그 목적에 협력하여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다.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더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라고 했다.
이 책은 전문적이라서 그런지 읽으면 읽을수록 내 자신이 지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하나님이 전부 설계하셨다는 걸 믿는데 마음의 작용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신대로 인식만 하면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