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 신호를 차단하고 깊이 몰입하라
정주영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난 서울대나 카이스트 다니는 사람이 하버드대 못 갔다고 한탄 아닌 한탄 하는 걸 몇 번 들었다.
난 하버드에만 가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하버드안에 또 뛰어난 종족이 따로 있나보다.
내 주변에 서울대나 엘리트들이 많은데 정말 깨는 얘기들을 많이하고 우리가 그냥 속으로 생각하거나 마음속으로는 생각하지만 절대로 밖으로 꺼내지 말아야 할 얘기들을 많이 한다.
그리고 40대가 넘어가면 서울대출신들이 몰락하는 것을 친척들을 통해서 많이 봤다.
난 어릴 때는 머리만 좋으면 장땡이라고 생각하고 실력, 지적능력, 최고, 1등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다.
계속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을 하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혼자 사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서 사는 것이다.
내가 아파서 병원을 다닐 때 의사들도 아픈 환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얘기를 많이 하는 것을 봤다.
아파도 이겨내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해야 하는데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감정없이 하는 것을 겪으면 정말 상처를 받는다.
의사한테 당신도 나처럼 아플 수 있다고 하니까 자기는 절대로 아플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럼 당신 가족이 아플 수도 있다고 하니까 자기가족도 절대로 아플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런 전문직을 가지고 있으면 환자들의 심리적인 아픔이나 육체의 고통에 전혀 무감각하니까 그런 얘기를 하는 것 같다.
난 전문직을 가지면 사람들의 얘기를 잘 들어 주고 소통과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한때 너무 아플 때 자기는 감기도 안 걸릴 정도로 건강하다고 장담을 하던 언니도 몇 달이 지나서는 혈액암으로 2달도 안돼서 죽는 걸 봤다.
이 세상에서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나 실패가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가지고 지식적인 세상이 아닌 감성적인 세상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성공을 해도 자기만 독점을 하고 즐기는 인재는 진정한 인재가 아닌 것 같다.
나도 항상 성공하고 싶고 최고가 되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 만은 않았다.
이 책은 1등의 신호를 알려 준다.
어떤 조건들도 다 필요없고 1등 신호만 알면 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고 듣는 사람이 있었다.
영국의 리버풀의 한 남자 아이가 있었는데 4살 때부터 구구단이 아니라 2의 거듭 제곱을 암송하는 것을 그 아이의 엄마는 신가하게 봤다.
11살이 되자 아이는 장래 희망이 세계적인 수학자였고 교실 뒷자리에서 엎드려 자도 대학은 마음대로 골라 갈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캠브리지 대학을 선택했고 딱 거기까지 신동의 재능을 발휘했다.
세계적인 대학에는 인재들이 많이 몰린다.
그 아이, 콘웨이는 캠브리지에서 게임으로 밤을 새는 날이 더 많았다.
얼마 안가 콘웨이의 타고난 재능은 캠브리지 대학생들의 노력에 쉽게 추월당했다.
그래도 콘웨이는 정신을 차리지 않고 자신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릴 때 기대를 모으는 신동 중의 상당수는 주변의 과도한 기대로 스스로 무너져내리거나 콘웨이처럼 사람들의 인정해주는 달콤한 맛에 위해서 더 올라가지 않는 실수를 저지른다.
콘웨이는 캠브리지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려고 하니까 이력서에 쓸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캠브리지대와 사회가 기대했던 미래의 세계적인 수학자는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길을 가다가 콘웨이는 교수와 마주쳤다.
교수는 그에게 취직했냐고 물었고 취직을 못했다고 하니까 교수는 학교에 취직을 하라고 했다.
콘웨이는 이력서에 쓸게 없다고 하니까 안타까움을 느낀 교수가 대신 이력서를 써줬다.
그래서 콘웨이는 조교수의 자리를 얻었다.
와,,,,,그래도 취직이 돼서 다행이다.
콘웨이는 일자리를 얻고 나서는 더 안정적으로 게임을 하며 시간과 열정을 낭비했다.
이 사람 왜 그럴까,,,,
그런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삶의 균형감각이나 가치를 정립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천재인데말이다.
그의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그랬을테지,,,,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데 놀고 있는 그런 마음일까,,,
게임을 통해 현실 도피하는 즐거움을 얻으면서도 그는 내심 자신의 타고난 수학적인 재능이 사라지는 건 아닌지 걱정을 했다.
콘웨이는 스스로 부정적인 내면의 신호에 갇혔다.
그가 진행하던 수학 분야 프로젝트들은 모두 풀리지 않았고 자식을 위해서 생계형 강의를 했다.
그렇게 별 것 아닌 콘웨이는 그제서야 낮아지는 겸손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배웠다.
그리고 몇 년 지나서 콘웨이는 수학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던 리치 격자 이론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이 이론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이 문제는 자신이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같은 대학의 존 톰프슨에게 리치의 이론에 보강되어야 될 중요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라고 했지만 톰프슨은 게임기를 가지고 다니던 콘웨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게임기나 만지작거리던 콘웨이가 전 세계 학자들이 갈증을 느끼는 것을 풀겠다고 하니까 주변에서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콘웨이는 자신이 그 문제를 풀거라고 확신에 가득찼고 주변의 모든 비웃음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정말 뭔가를 이루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전 세계 수학자들이 풀지 못하던 리치 격자의 대칭군의 크기에 그는 아무런 주저함 없이 푹 빠져들었다.
자신만의 작업실에서 콘웨이는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수학적 지식들을 넓은 종이 위에 정신없이 풀어댔다.
스스로 가둔 방 안에서 그는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뭐든지 이루려고 하면 집중이 또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콘웨이는 많은 날이 지나고 기적을 이뤄냈다.
콘웨이가 학계 주류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스스로도 한물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던 상황에서 세계적인 수학자들 모두를 놀라게 한 발견을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말 다이돌핀이 나올 것 같다.
콘웨이는 이 발견 이후로 오랫동안 참았던 것처럼 세계적인 연구결과들을 연이어 내놓기 시작하며 학자들의 모든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게 바로 반전인 것 같다.
불과 몇 달전까지는 내놓는 프로젝트마다 풀리지 않고 게임기로 현실을 도피하면서 어렵게 대학 강사 자리 언저리를 맴돌며 자신을 비관하면서 지냈다.
하지만 이런 반전이 어떻게 일어난 걸까,,,,
하나의 아주 작은 긍정적인 신호가 다가왔다.
아주 작은 긍정적인 신호말이다.
그것은 리치 격자였고 콘웨이는 이 신호에 불을 붙일 줄 알았다.
사람들의 비웃음과 내려앉은 현실 속에서 차가운 얼음 같던 부정적인 신호들을 끓어내고 자물쇠를 채워 불을 붙였던 그는 몇 십 년이 지나 세계적인 연구 결과들을 누적시키며 아이작 뉴턴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앨런 튜링과 함께 세계 최고의 학자로 런던 왕립학회에 기록되었다.
콘웨이는 재능을 엄청 타고 나기는 했다.
하지만 천재는 천재라고 불리기 때문에 더 똑똑해진다.
그 신호가 사라지면 스스로의 확신이 사라지고 현실 도피로 게임기를 들게 된다.
천제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주변의 부정적인 신호를 차단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천재의 위치를 찾으면 긍정적인 신호는 계속 선순환해서 자신을 천재로 만든다.
자신이 어떤 것을 잘한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강점이다.
콘웨이는 리치 격자의 대칭군 크기 발견에 대해 1968년 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것은 콘웨이가 이뤄낸 진짜 중요한 수학의 업적들의 첫 시동이 되었다.
그의 자신감은 다시금 거대하게 올라 갔고 그 뒤로 초현실 숫자의 발견 등 그의 세계적 수학자로서의 업적은 갈수록 높아져 갔다.
나도 콘웨이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의 긍정적인 신호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봤다.
일본어, 중국어, 4개국어 가능 변호사,,,
오랜 시간 병마와 싸우느라고 84군데의 병원을 다녔지만 나를 고쳐 줄 수 있는 의사는 딱 한 명이었다.
환자를 돈으로만 보고 의학갑질을 하는 것을 보고 전문가가 되면 약자를 억울하게 만들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공부에 위대한 목적을 가지게 되고 새로운 가치관이 잡힌 신호를 매일 접하더라도 공부할 때의 지루함은 동일하게 겪는다.
위대한 수학자들이 위대한 발견을 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종이에 무엇인가를 적고 구겨서 휴지통에 넣는 일을 했다고 그 과정의 지난함을 얘기하듯이 공부를 안하다가 시작한 학생들의 공통점은 공부가 지루하다는 것이다.
지루하다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같은 상태가 오래되어 따분하고 싫증이 난다는 것이다.
따분하다는 것은 재미가 없고 지루하고 답답하다.
싫증이 난다는 싫은 느낌이나 반응을 말한다.
암튼 지루하다는 것은 부정적인 것의 총집합체이다.
과학, 테크놀로지, 엔지니어링, 수학 기술과 같이 가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은 불행하게도 대부분 따분하고 불쾌하다.
그것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들이 거의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미가 생기는 것은 공부에 대해 자신만의 위대한 목적과 가치관을 만들면 더 많은 투자와 학업적 자기조절능력이 생기고 지루한 수학 풀이 과정도 끝까지 견뎌낼 수 있다.
일부로 인위적으로 학습 시간을 늘리는 장치나 성적 향상을 위해 학생들을 들볶지 않아도 된다.
학생들은 누구나 학업 능력을 최고로 높일 수 있고 수면 중 학습을 할 수 있을만큼 자신의 무의식 전체를 강하게 움직일 수 있다.
연구 결과 한 분야에 대한 진실된 이해를 고민한 학생들은 학업적 질문에서 2배 이상의 집중 시간을 보내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버드대학의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모든 과목에서 의미없이 우수한 학생들보다 1개의 과목을 깊게 파헤친 학생들이 2배 이상 발전한다고 했다.
가드너의 주장대로 한 분야에 대해 깊은 이해를 만들고 학문을 향해 자신의 가치관을 찾는 행위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공부에 별다른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고 공부를 할 때 자기중심적 목적이 강한 학생들이 있다.
또 다른 학생은 배움의 목적을 두고 자신의 분야에 진실된 이해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다.
자기중심적 목적은 최초에 더 자신을 밀어붙이는 효과를 만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츰 약화된다.
공부가 굉장히 지루해질 때 자기중심적 동기들은 유의미한 효과를 만들지 못햇다.
아예 공부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학생들보다 문제를 정확하게 푸는 숫자가 많은 편이었지만 한계에 부딪혔다.
학생들은 장거리 마라톤에서 초반에만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금세 힘이 빠져 뒤로 밀려나는 마라토너와 같았다.
유의미하게 배움의 목적으로 두고 자신의 분야에 진실된 이해를 가지는 모습이 보이는 학생들은 끝까지 지루한 공부의 과정을 견뎌냈고 학업 성취도도 끝까지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이 학생들은 장거리 마라톤에서 마지막까지 힘줄이 살아 있는 승리자의 모습이었다.
학생들을 평가할 때 얼마나 학업 성취도가 높은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공부했는지로 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내면의 무엇을 움직이기에 위해 강력한 효과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경찰, 군대 간부 후보생을 예를 들면 그들이 자신을 위해로부터 지키기보다 시민을 위해로부터 지켜나가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잡았을 때 더 능동적으로 극한의 직업 훈련을 견딜 수 있다.
컴퓨터 해커를 보면 개인적 목적으로 해킹해서 돈을 강탈하거나 콘텐츠를 훔치는 것보다 국가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컴퓨터 언어를 배울 때 그 해커는 스스로 더 의미를 가지고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우리는 의미를 가진 존대다.
자신이 나약하지 않고 자기 분야를 통해 이 세상을 보다 의미 있게 바꿀 수 있다는 나 자신을 초월하는 신념과 믿음, 그리고 자신이 걸어가는 발걸음이 모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지 할 때, 우리는 우리를 향한 적대적인 많은 환경 신호 앞에서 단단해질 수 있고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풍요로운 어둠 속에서 더 황홀한 빛으로 만들어진다.
숙연해지는 얘기이다.
사회학자 아론슨은 스탠퍼드대를 가고 싶어 하는 흑인 중학생에게 새로운 신호를 보내는 실험을 했다.
그에게 아시아인처럼 수학을 잘할 수 있다는 신호였다.
랩을 잘하는 학생에게 수학 문제집을 쥐어 주는 신호였다.
그리고 지금은 성적이 낮아도 가능성이 있다고 신호를 아이에게 보내는 것이다.
아론슨은 지능은 새롭게 증가할 수 있다라는 새로운 신호를 중학생에게 전달했던 흑인 학생이 시간이 지날수록 지능이 고정되어 있다고 바라본 집단과 다르게 성적과 학업 집중력이 월등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부드럽지만 정말 강력한 새로운 신호이다.
그런 가능성의 신호는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고 그 가능성의 신호는 아론슨의 주장대로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 보여지며 강화된다.
흑인 하버드 대학생들은 백인 하버드 대학생보다 열등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 또한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하버드 한복판에 당당하게 서 있다.
흑인 하버드 대학생은 백인 하버드대학생들의 열등하다는 신호에 오염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그 존재 자체로도 충분히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
독일 콘스탄츠대학의 교육학자인 캐롤린 슈스터는 신호 차단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을 밝혔다.
150여 명의 여학생들에게 자신은 수학을 못하는 학생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이 신호를 차단하는 법을 가르쳤다.
슈스터는 여학생들에게 수학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분야라는 신호를 차단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했다.
그리고 신호를 재평가해보라고 했다.
자시의 머리가 길고 다른 성별이라는 이유로 수학 자체를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걸까,,,,
왜곡된 사회 신호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자고 했는데 학생들은 놀라운 성적표를 냈다.
슈스터는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외부 신호를 역으로 재평가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신호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매력적인 주제들이 정말 많다.
인생은 연속된 성공만 할 수는 없다.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상황이 될 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이 책은 잘 알려 준다.
작은 긍정적인 신호를 계속 찾고 자신이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는 얘기도 많다.
그 얘기가 재미있고 감동적이어서 공부와 성공을 할 수 있는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낸다.
읽을만하고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