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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도 되는 영어 공부법 - 저자만 되는 완벽한(?) 학습법은 가라
우공이산외국어연구소 지음 / 우공이산 / 2018년 10월
평점 :

토익은 기술이 아니라고 하는데 정말 맞는 얘기같다.
기술적인 면으로는 한계에 부딪힌다.
직독직해나 직청직해도 하고 있는데 그것도 한계에 부딪혔다.
어원 따지는 것도 그만하라고 하고 영어공부법이 많이 업그레이드된 책같다.
그래서 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동네에 외국인들이 점점 많이 산다.
하지만 이 책은 외국인에게 영어를 하는 수단으로 만들려고 말을 시키지 말라고 한다.
엄마랑 나는 외국인을 보면 항상 말을 시켰는데 하지 말라는 얘기네,,,,,
독해와 듣기는 번역체가 아니라 마음체다라고 한다.
듣기를 빨리 많이 잘하고 싶어서 듣기에 대한 부분을 얼른 폈다.
He's a good swimmer.
걔는 수영을 잘해.
good가 형용사니까 해석도 걔는 훌륭한 영자야아니면 걔는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야라고 해석을 해야 한다고 어떤 사람이 저자에게 얘기를 했다.
원어민은 이 문장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야 모르지,,,,
원어민은 good를 구분해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뜨거운 물에 설탕을 타면 바로 녹아버린다.
품사가 어떻든 그냥 두뇌에 녹아내려 버린다.
읽기와 듣기의 실제 행위는 보이는 순서대로, 들려오는 순서대로 쭉 진행된다.
읽기라면 왼쪽에서 시작해 오른쪽으로 순독순해가 되는 것이다.
읽기와 듣기는 글이나 말을 내 머리에 녹여 내는 행위이다.
글이 읽기와 듣기를 통해서 나의 머릿속에 저장이 되는 것이다.
걔는 수영을 잘해라고 넣든 걔는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야라고 넣든 그냥 녹여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어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문장을 독해하라고 하면 한국어 어순에 맞게 잘 정돈을 한다.
걔는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이야라고 한다.
영어소설을 한국어 읽듯이 잘 읽을 수 있냐고 저자가 사람들에게 물으면 고개를 숙여 버린다.
독해나 듣기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모를 수 밖에 없는게 그것의 실체를 제대로 들은 적도 없고 제대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나 책도 없었다.
모르는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정의와 실체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는말이다.
읽기는 번역이 아니다.
읽기나 듣기는 읽는 순간, 듣는 순간 전달되어 오는 개념을 순차적으로 두뇌에 녹여 버리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것을 한국어 어순에 맞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이해했으면 그걸로 끝이다.
더 이상의 추가 과정이 필요없다.
추가 과정이란 한국어나 어순이나 문법 규칙에 맞게 정리 정돈을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의 읽기와 듣기는 이해가 되었다면 그것으로 행위의 종료이다.
걔는 수영을 잘해든 걔는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야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한국어 규칙에 맞게 정돈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읽기와 듣기의 행위는 번역적 관심을 가지기 이전에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저자가 교육방송을 보는데 백인강사가 점프해석을 하고 있었다.
한국교실도 점프 해석, 역순 해석을 하니까 영어 읽기는 어딘가 한국어 읽기와는 다른 느낌으로 저절로 박힌 것이다.
독해는 글을 읽어 이해하는 것이다.
읽었으면 바로 이해됐으면 읽기는 그것으로 된 것이다.
읽기는 번역체가 아니라 마음체인 것이다.
마음안에서 다 끝난 것이다.
학교 수업도 바껴야 한다.
강의를 최대한 줄이고 각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어휘력 확보부터 해줘야 한다.
수학은 분석력이 중요하고 영어는 적응력이 중요하다.
자전거를 배우듯 몸으로 터득하는 것이 필수이다.
교육청에서 원하는 영어는 잘 독해하고 아케데믹하게 해서 다른 데 적용하는 방향이고 일반 사람이 원하는 영어는 말을 자유롭게 하고 한국 밖에 나가서 원어민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독해에 포인트를 주고 하는데 독해를 잘하려고 해도 어느 시점을 넘어가면 스피킹도 해야 독해에 도움도 되고 영작을 해야 독해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토익은 기술이다, 기술이 아니다라는 말이 많다.
저자는 기술이 아니라고 하는 입장이다.
영어는 항상 각광을 받고 두뇌를 줄 세울 방법이 영어만 한 게 없다.
영어도 어려우니 변별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한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모든 사회는 두뇌의 수준을 능력이라 이름 붙여 줄 세우기를 한다.
머리 좋아야 살아남는다는 얘기이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저자는 영어 문제도 한국어 문제도 모두 한국어 문제지를 푸는 방식으로 한다.
그게 올바르고 자연스로운 방법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어 문제지는 이상한 방식으로 풀고 있다.
그게 바로 토익은 기술이다라는 것이다.
저자는 모든 내용을 잘 이해하고 푼다.
국어 시험 문제를 풀 때와 같다.
그래서 잠깐 딴 생각을 하지 않는 한 만점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처럼 들리고 읽히면 다 맞힐 수 있다.
기출 문제를 풀어 보고 응시하면 되는 정도이다.
지문 독해는 키워드를 찾아 줄거리를 유추하는 그런 행위가 아니다.
그런 방법은 진부한 것이다.
문법은 말하는 규칙이다.
여러 말들을 펼쳐 놓고 그 규칙성을 학자들이 정리한 것이다.
말이 되면 시험 문제는 어색해 보이는 것을 찾으면 그게 답이다.
왜 너만 과자( )먹는거야.
과자부분이 틀렸다.
왜? 이상하니까,,,,,
학원에서 배우는 문제풀이 방식은 과자가 목적어인데 앞 부분은 주격조사이다.
일단 제외다.
목적어 과자의 종성, 받침이 없다.
없으면 들이 아니라 를을 써야 한다.
그게 문법 이론이다.
답을 맞히기는 했다.
이렇게 푸는 사람은 진짜 영어를 배울 수 없다.
그냥 문제 풀이 로봇일 뿐이다.
문제제의 구성을 보면 전부 비슷비슷하다.
이 단어 아니? 어휘력을 묻는 것, 이거 듣거나 읽고 이해할 수 있니?
독해력을 묻는 것, 틀린 어법이 뭔지 아니? 문법 이론을 묻는 것,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열쇠가 있다.
출발점인 어휘력이다.
단어를 많이 또 제대로 아는 것이다.
진짜 회화를 할 때도 그렇고 요령과 찍기로 문제를 풀 때마저도 단어를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번역기가 있어도 영어가 경쟁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번역기의 등장은 현행의 시대착오적 영어 교육의 불필요성을 드러낸다.
말이 되는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다.
토익은 기술이다는 말은 영어를 하지 못해도 문제는 풀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짜 실력을 가려내는 변별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만간 진짜 실력을 가려내는 방향으로 준비가 될거라고 한다.
2~3분만 면접라면 영어 실력을 알 수 있다.
외워서 오는 자기소개 같은 것을 시킬 일은 없다.
영어가 되는 사람은 상대가 영어를 할 수 있는지 아닌지 순식간에 가려낸다.
기계적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리스닝과 스피킹중에 무엇이 더 어려울까,,,,
리스닝은 인풋, 이해이고 스피킹은 아웃풋, 표현이다.
보통은 스피킹이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고급 수준일 때는 스피킹이 더 어렵다.
읽을 수 있는 사람과 쓰기까지 가능한 사람의 숫자를 조사하면 전자가 80%쯤 된다면 후자는 10%도 안 될 수 있다.
철자를 다 알지 않아도 평소에 촌천살인이라는 말을 들었고 첫 글자와 끝 글자 정도를 알면 읽을 수는 있다.
그러나 쓰는 것은 정확히 알아야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아웃풋이 더 고난도이다.
초급 수준의 영어를 사용할 때는 인풋이 더 어렵다.
읽기와 듣기가 더 어렵다.
이 두 가지는 글 쓴 자, 말하는 자, 그러니까 상대가 그 난이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원어민이 마음먹고 지적 어휘력을 뽐낸다고 할 때 전문용어까지 써가면서 말하면 듣는 입장에서 힘들다.
스피킹은 결정권이 모두 자신에게 있다.
쉬운 말을 쓰든 어려운 말을 쓰든, 혹은 틀리든 말든 자기 마음이다.
원어민과의 스피킹은 상대 원어민이 걱정할 일이지 자신이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이 틀리면 상대가 다시 말해 줄래?
라고 물으면 된다.
아니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알아들으려 애쓴다.
자신이 알이듣기 위해서라도 원어민은 더 쉬운 말로 대화에 응한다.
스피킹도 리스닝도 결국 실력의 문제다.
실력은 계속 쌓으면 된다.
영어탈피를 끝내면 리스닝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스피킹도 술술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스피킹 권한은 자신에게 있다.
차분하게 말하면 된다.
그러다보면 속도는 자연히 붙는다.
정확도도 속도와 같이 붙는 것이다.
이 책은 영어에 대한 궁금증을 많이 해결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