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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처럼 술술 읽히는 철학 입문
가게야마 가츠히데 지음, 김선숙 옮김 / 성안당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처럼 술술 읽힌다고 읽었다.
이 책은 정말 물어 보고 싶은 문제들을 최고의 지적인 철학자들이 질문과 대답을 해준다.
철학이론을 바탕으로 말이다.
평상시에 들어 보거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모든 서양철학자들이 전부 다 있다.
철학자들은 추상적인 문제들만 골똘히 생각한다.
거기다가 철학이론들을 적용한다.
알쓸신잡을 보면 유시민이 맹자를 읽으니까 항소이유서를 쓸 수 있었다고 했다.
드루킹과 유시민이 사진을 같이 찍은 걸 보니까 부러워했던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
존 스튜어트 밀은 원래는 바보였는데 고전철학을 몇 년 동안 정독을 하고나서 천재가 되었다고 했다.
법학적성시험을 준비하는데 그 시험을 위한 추천도서들에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 전부 다 있다.
제시문에도 나오는 사람들이다.
법학적성시험은 언어이해, 추리논증, 논술을 보는데 철학은 꼭 봐야 하는 분야이다.
서울대에도 권장도서100권 해제집이 있기는 하지만 요약수준이고 이 책처럼 종합적으로 적용이 잘 되어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처칠, 뉴튼, 에디슨은 어릴 때 모자라다, 둔재라는 얘기를 들었던 사람들인데 존 스튜어트밀과 마찬가지로 고전철학을 일정 시간 정해 놓고 읽은 후에 천재로 돌변했다고 하는데 정말 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으면 니힐리즘이나 처음 들어 보는 얘기들이 많으니까 사람들이 모르는 얘기를 아니까 점점 천재가 돼어 가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철학이나 고전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는데도 머릿속에는 별로 남아 있는게 없다.
철학책은 읽으면 머릿속에 지우개나 수증기처럼 날아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니체같은 철학자가 철학에 대한 잡학지식을 알려 주니까 머릿속에 잘 남는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 소크라테스가 동성애자라서 잘생긴 남자애들과 얘기를 많이 하고 싶어서 발견해 낸 것이라는 것,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35살에 라틴어를 배워서 인문학에 처음 발을 내딛뎠다.
그 당시 수명이 30살이었는데말이다.
그래서 그는 인류에 엄청난 이바지를 했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주고 철학은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이성이 있다는 사실과 깊은 사유를 하게 해준다.
그 철학이 인류가 발전하고 사고작용을 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한 책을 읽기는 읽었는데 플라톤, 국가론, 애덤스미스, 보이지 않는 손, 뭐 이런 단편적인 것 밖에는 생각이 안난다.
그래도 철학책을 읽어서 처음에는 완전히 외계어같았는데 그래도 지금은 조금 익숙해지는 언어가 보이기는 하다.
근대 철학의 시조인 데카르트가 인간은 모든 것을 의심하는 사유주체로 설정한다고 유한자인 인간은 타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타자와의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소통의 문제를 고민한 철학자는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인데 라이프니츠는 과학자중에도 같은 이름이 있어서 헷갈렸다.
스피노자는 인간이란 삶의 주체를 아펙투스와 코나투스를 가진 존재라고 했다.
라이프니츠는 필연적 진리와 우연적 진리를 얘기하면서 인간은 소통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
옛날같으면 너무 어려워서 읽다가 포기했을 텐데 철학책을 조금 읽어서 익숙한 이름때문에 포기를 안 하고 끝까지 읽을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과 결정해야 하는 문제들이 많은데 철학적인 사고력을 바탕으로 결정하면 리스크가 조금은 줄어 들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역시나 일본사람이다.
철학저서들의 저자를 보면 대부분 일본사람들이 많다.
이유는 뭔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재해가 많으니까 가지고 있는 물질적인 것들은 언제 날아갈지 모르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사상이나 사유만 남아서 그쪽으로 탐구를 많이 하는 건지 그냥 추측을 해본다.
케에르케고르는 극단적이면서도 자신이 살아가기 위한 주체적 진리를 탐구했다.
하지만 니체의 실존주의는 좀 다르다.
니체하면 신은 죽었다라고 한 말밖에 생각이 안난다.
하나님은 두 눈 부릅뜨고 살아 계신데 왜 죽었다고 하는거냐에서 그 전에는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의 이성이 발달해서 그렇다는 얘기를 책에서 읽은 것 같은데말이다,,,,,
니체는 스스로 인생을 긍정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을 주장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지 않나,,,,
마치 니체는 부정당해도 당연할 정도로 가치가 없는 인생을 걸어 온 듯한 말투이다.
니체는 그가 산 19세기의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어떤 것이 완성돼 가고 있다는 것에 위기감을 가졌다.
그것은 니힐리즘이다.
니힐리즘은 허무주의이다.
니힐리즘은 일체의 가치부정에 연결되는 입장이다.
니힐리즘의 싹은 그리스도교라고 한다.
설마,,,,,
그리스도교를 만든 것이 유대인이다.
독일이 학살한,,,,
유대인은 과거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유대인은 여러 나라로부터 몇 백년이나 민족 전체가 지배를 받았고 마지막에는 나라마저 없어져 버린다.
그리스도교에는 약자를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대들의 것이로다를 보면 가치가 전도되었다고 한다.
이런 가치전도가 일어난 이유는 장기 때돌림에 자신들을 낮게 평가하는 유대인들이 우리는 무가치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글이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행한 없는 가치의 날조다.
또 하나는 그들의 평가 기준의 밑바닥에 원한(르상티망)이 있기 때문이다.
강한 로마인은 유대인을 괴롭히기 때문에 악이다.
그러니까 로마인과 반대로 약한 유대인은 선이다라고 생각한다.
오른 쪽 뺨을 때리거든 왼쪽 뺨도 내밀어라라는 말은 폭력을 휘두르는 너희는 극악무도한 악인이다.
기꺼이 맞아주는 우리는 가장 선한 사람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어떤 선의도 까칠한 부정적인 면을 느낄 수가 있다.
이건 솔직한 선의가 아니라 비뚤어진 적의다.
이런 부정적인 사고인줄도 모르고 몇백 년이나 세뇌돼온 탓에 유럽은 니힐리즘에 젖었다.
유럽은 그리스도의 발전과 함께 니힐리즘을 심화시켜 나간다.
바울의 원죄설도 들 수 있는데 원죄의 개념은 인류 최초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등장한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는다.
그래서 낙원에서 추방되었다.
지금까지는 로마인은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나쁘다라고 생각이 바뀐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면 지금까지 유대인이 받아들일 수없엇던 자기의 가치부정이 교리로 받아 들일 수 있게 된다.
칼뱅주의는 하나님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직업이라는 금욕적인 자세는 세속적인 즐거움의 가치를 부정하고 예정설은 구원의 가치와 삶의 가치를 부정한다.
칼뱅은 그래도 근면하게 일하면 실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노력하다보면 구원받게 될거야라는 확신만은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교가 신에 대한 신앙이고 과학은 진리에 대한 신앙이다.
양쪽 다 일신교적 성격이다.
이것은 위험하다.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라는 것은 그 하나의 가치가 사라지면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종교가 여러 개인가보다.
삼촌이 동경대학에 선교사로 갔는데 전도하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이런 마인드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하나라서 더 가치가 있고 믿는 거 아닌가,,,,
여러 개이면 가치가 없어서 믿을 필요성을 못 느낄 것 같다.

19세기 유럽에 니힐리즘을 확산시키고 잘 키워온 그리스교가 스스로의 가치를 부정한다.
지난날의 반짝이는 빛을 잃어 비리고 순수한 신앙도 없고 정치적 도구도 잃어 버렸다.
그리스도교의 자살이라 해야 할 사태를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스트레스를 받는다.
철학자가 와서 그리스교를 비판하면 난 반론도 못 할 것 같다.
존스튜어트 밀은 너무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에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책이 다시 대두되는게 왜 그런지 또 궁금하다.
존 스튜어트 밀의 아버지 제임스 밀은 유명한 철학자이자 벤담의 친구로 공리주의 신봉자이다.
벤담은 자신의 미라를 사람들이 보고 본받으라고 했는데 소름끼친다.
아들 밀에게 집에서 공리주의를 중심으로 한 영재교육을 시켰다.
밀은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밀의 지식은 하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아버지의 강의와 아버지가 지정해준 책으로 배웠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벤담의 공리주의를 중심으로 강의했다.
밀이 3세쯤에 그리스어를 가르치고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배우게 했다.
고전을 배워서 천재가 됐다는 얘기도 너무 많이 들었다.
10세 때부터 경제학을 가르치고 13세 때는 아버지의 친구이며 경제학자 리카도의 경제학 및 과세 이론을 읽게 했다.
헉~~~~~리카도,,,,,,경제학의 고전을,,,,,,
주변의 수준이 공부를 하기에는 최상이다.
공부를 잘하거나 창의성은 환경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밀은 보통 환경이 아니다.
배운 내용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지? 어떤 점에 의문이 생기지?
등 자신의 의견을 말하게 했다.
밀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철학용어를 사용하면 용서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따지고 밀이 얼마나 무지하고 경솔한 말을 했는지 자각과 반성을 하게 했다.
가혹한 아버지네,,,,
결국 밀은 아버지때문에 세상을 모른 채 윤리관만은 남보다 강한 인간이 되엇다.
평생 인간와 접촉한 적이 없는데도 인간의 선악에는 엄청나게 까다롭게 굴었다.
벤담의 공리주의와 소크라테스의 선하게 산다는 서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질적공리주의를 만들어 낸다.

벤담이 양적 공리주의였다면 밀은 질적공리주의이다.
기본적인 생각이 다르지 않고 쾌락의 증대=신이고 목표점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밀은 쾌락의 질에 집착했다.
그는 육체적 쾌락보다 정신적 쾌락이 위에 있다라고 했다.
벤담은 질보다는 양에 집착했는데 말이다.
민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가 공리주의론이다.
밀은 돼지보다 인간 쪽이 바보보다는 소크라테 쪽이 질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유튜브에 좋아하는 정치평론가는 항상 개돼지보다 못한 국민의 수준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질에 집착을 하면 하면 벤담과는 같은 공리주의가 아닌 것이다.
모든 사람의 쾌락을 같은 가치로 받아들이는 사상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의 윤리관이 철저히 주입된 밀의 입장에서 보면 저질이었다.
인간은 불평등하고 어리석은 자와 소크라테스가 같을 수 없다.
그리스 역시 인간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노예제가 있었던 것이다.
육체와 정신, 이 둘의 쾌락을 경험한 자라면 반드시 정신적인 쾌락을 선택한다고 했다.
인간에게는 존엄이 갖춰 있어 동물과 다른 고상하고 품위있는 자신에게 자부심이 느끼며 인간으로서 어울리는 생활을 하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밀의 사상에는 항상 인간의 소상함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있다.
이건 전적으로 그 아버지의 교육이 폐해이다.
방에 가둬놓은 채 윤리관만 비대화시키니까 이런 몬스터가 나온 것이다.
인간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꿈꾸지 않으면 양심에 반하는 행위로 인해 고통을 느낀다.
이 고통이 제재 기능이 된다.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이 세상에는 많은데말이다.
악의가 있는 인간도 있고 양심의 가책이라곤 눈곱만큼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도 있다.
밀이 집에서 한 교육은 한쪽으로 치우치게 하는 가치관으로 만들었다.
지식을 바깥 세계로부터 차단하고 사람은 원래 훌륭하다고 가르쳐도 그것만으로는 교육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와 체험, 양쪽의 균형이 맞아야 하는 것 같다.

짜잔~~~~~드디어 자유론이다~~~~~~
밀은 벤담과는 다른 형태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다.
벤담처럼 쾌락과 고통의 스위치로 움직이는 등질의 존재인 인간이 모두 똑같이 평등한 사회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사회를 꿈꿨다.
인간에게는 질적 차이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게 되면 중요한 것은 각자의 자유가 된다.
질적 차이가 있는 인간이 모두 행복해지려면 거기에는 최대한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밀의 자유론은 타자위해의 원칙이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뭘해도 자유라는 자유론이다.
무엇을 해도 된다는 것은 그 행위가 본인에게 아무리 어리석은 행동이라도 괜찮다는 것이다.
마약으로 심신이 너덜너덜해도지는 자유도, 위험운전으로 멋대로 벽에 충돌해 죽을 자유도 밀의 자유론에서는 전부 보장되고 존중돼야 할 자유라는 것이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윤리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밀답지 않게 아주 유연한 자유론이다.
밀이라면 사람으로서의 고귀함을 잃지 않는 자유를 외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하지 않는게 나중에 타락이라는 방향으로 간 것인가,,,,
자유란 다양한 가치관을 갖는 각 사람이 서로 방해가 되지 않게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이것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그래도 마약은 좀 아닌 것 같다.
벤담과 밀의 사상은 내용은 크게 다르지만 양쪽 모두 당시 자본가의 이윤추구와 일치됐다.
이 사사이 뒷받침돼 이후 유럽에서는 자본주의 발전에 가속도가 붙었다.
밀의 자유론을 더 깊이 읽어 보고 싶은 감정이 확 든다.
철학하면 따분하고 어렵고 멀리멀리 절대로 가까이 하고 싶은 않은 분야이다.
이 책은 펼치면 철학이 주는 무게감의 부담이 없다.
우선 철학자들의 인물 그림과 연도 정리가 돼있어서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글자도 크고 한 주제의 페이지가 너무 길지 않아서 계속 읽고 넘기고 싶게 만든다.
내용도 우리나라와 조금은 비슷한 문화권의 일본에서 써서 그런지 이해도 더 잘된다.
그림도 있지만 이해가 잘되는 문체라서 재미있게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추천철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