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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자란다 - 아라이 연작 소설
아라이 지음, 양춘희 외 옮김 / 아우라 / 2009년 9월
평점 :
중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나라, 전 세계의 수행자들이 한번쯤 찾는 영혼의 땅,
티베트는 힘들때면 떠올리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달라이 라마' 와 몇 권의 책을 보며 티베트에 가고 싶은 생각이 커져만 갔는데
이 책을 만났다.
저자는 라마승, 마부, 절름발이, 도시 야간 경비원 등등 많은 이들을 등장시켜
티베트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다.
그가 자랄 때부터 보고 느꼈던 자연산천에 대한 묘사는 섬세하면서도 그림을
그리듯이 생생하게 써 내려간다.
덕분에 읽는 내내, 어릴 때 뛰어 놀던 시골의 논과 밭, 산과 들이 말할 수 없이
그리워졌다.
책의 곳곳에 홰나무꽃 향기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홰나무는 콩과 식물로 중국에서는 음식의 재료로도 쓰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홰나무꽃]에서 도시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면서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셰라반이
홰나무꽃으로 찐빵을 만들고, 홰나무 아래에 사다리를 대고 마음껏 희고 향기로운
꽃을 딴다. 이 장면은 정말 아름답다.
저자는 어린 시절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때는 여름의 끝자락이라 고원에는 이미 가을 색이 완연했다. 계곡 근처의 버드나무
가지 끝이 누렇게 물들고 있었다. 버드나무 숲을 지날 때 열매 맺은 봉선화 씨앗이
다리를 스치며 탁 하고 터지자,가느다란 꽃씨가 힘차게 사방으로 날려 갔다.
대를 잇기 위해 봄에 무리를 떠났던 종달새와 비둘기들은 윤회의 무거운 부담을 던 듯,
다시 무리를 지어 가볍게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 50-51쪽
아름다운 티베트의 자연이 그림으로 그린 듯 여기저기서 튀어 나온다.
번역상의 차이인지, 문화적인 차이인지, 이해력의 결핍 탓인지 되풀이해서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소설의 내용이 맑고 깨끗하다.
"법정스님'이나 정채봉' 작가의 글을 보는 것 같았다.
티베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은 요란하지 않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를 낳는 바보 엄마,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곰에게 정면으로 대든 바보 소년을 다룬 '소년은 자란다'.
트랙터에 밀려 역사의 무대에서 퇴출된 마부의 죽음을 다룬 '마지막 마부'.
다리를 다친 어린 노루를 치료하고 어미노루에게 보내는 '어떤 사냥'.
고향과 홰나무꽃을 좋아하는 야간 경비원의 이야기를 담은 '홰나무꽃'.
저자는 티베트가 세속의 근심과 힘겨움이 없고, 현실에 대한 고민 없이 경건하게
종교적 구도만 수행하는 곳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글을 통해 또 다른 티베트, 즉 티베트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와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수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을 다 보고 나니 마음이 말개지는 느낌이다.
"빗물이 하늘빛을 받아 빛나면서 빗물에 젖은 나뭇잎도 빛났다.
우리가 묵고 있는 오두막 옆 진흙땅에서 하룻밤 사이에 버섯이 자라났다. ~~1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