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픔을 가진 비정한 킬러의 이미지를 보여 주는 클라이드는 <게이머>,<300>의 제라드 버틀러가,
정의와 성공 사이에서 갈등하는 검사 닉은 <킹덤>,<레이>의 연기파 배우 제이미 폭스가 맡는다.
두 배우의 절제된 연기가 영화의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영화 '모범시민'은 <이탈리안 잡>의 게리 그레이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액션 스릴러이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악당들은 가장인 클라이드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살해한다.
잔혹한 범인 다비는 '운명은 고분고분 받아 들여라." 웃으면서 잔인하기 짝이 없는 범죄를
저지른다. ~~ 꿈에 나올까 두렵다. 악은 정말 소화하기 힘들다.

클라이드는 법이 두 악당들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려주기를 원하지만 담당 검사인 닉은
승소율을 높여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출세지향적인 검사이다.
법의 정의와 자신의 성공 사이에서 고뇌하기도 하지만 닉은 결국 다비와 협상하고 다비는
10년 형을 받는 것에 그친다.
법이 원래 그렇다는 말로 클라이드의 간절함을 뒤로한 닉.
후일 그의 보좌관인 새라의 말처럼 10년후라도 그같은 결론을 내렸을지는 미지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이어서 자식이 부모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실제로 체험하지 못하고
막연했을 것이므로...
범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의 고통이 보상받지 못하는 사법 제도상의 허점은
클라이드를 분노와 좌절 상태에 빠지게 한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법으로도 범인들을 처벌할 수
없을 때 그 아버지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건 이후 10년의 세월 동안 클라이드를 지탱하는 것은 분노였을 것이다.
범인들과 부당한 법, 그리고 사회에 대한 처절한 응징을 목표로 하루 하루를 버텼을 것이다.
다비를 잔인하게 살해한 후 클라이드는 순순히 유죄를 인정하고 감옥에 갇힌다.
그 이후, 그가 예고하는 살인사건과 폭파사건이 일어나고 도시는 혼란상태에 빠진다.


가족을 잃게 된 평범한 가장이 범인을 향해 복수한다는 내용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단골 소재이다.
그러나 복수의 대상은 악당들에게 그치지 않고 주변인물들 - 검사 닉, 다비의 변호사.
당시 사건의 판사, 닉 주변의 인물들, 시장 등등 - 까지 확산한다.
불합리한 법에 대한, 법이 지켜주지 못한 정의를 표시하는 클라이드의 울부짖음인 것이다.
(그래도 억울한 죽음이 너무 많다.)
시장은 도시 전체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닉은 검사장으로 승진하게 된다.



클라이드는 독방에 수감되지만 그가 예고한 사건들이 계속 벌어지고,
닉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범죄를 막으려는데...

삶의 의미가 전혀 없어졌을 때에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죽음 아니면 신에 대한 원망과 분노, 그리고 저주...
그 다음에, 그 다음에는 범인들을 용서해야 하는가. 신의 이름으로? 어떻게 ?
(우리 사회에서 범죄와 악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삶은 무엇으로
보상되어야 하는가. 그들의 아픔이 너무 크다.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예방을 철저히
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그래도 맨날 터지는 것이 사건들이므로.)
인간의 내면은 유리처럼 깨지고 부서지기 쉽다. 아니, 삶 자체가 그러한지도 모른다.
그 아픔과 분노, 상처와 고통, 절망을 어떻게 버티겠는가.
"이러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아내와 딸이 좋아하겠느냐" 는 닉의 말에
"아내와 딸은 죽었기에 아무 것도 모른다." 는 그의 말과 표정은 너무나 슬프다.
영화가 슬픈 이유는 자신의 손에 아무리 피를 묻혀도 죽은 아내와 딸이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복수를 꿈꾸는 순간 이미 자신의 영혼마저 산산히 부서졌기 때문이다.
죽음은 그에게 구원이었을 것이다. 딸이 준 DADDY 라고 기록된 팔찌...
죽음 직전, 아름다운 꽃처럼 피어 오르던 불꽃의 모습이 내 눈의 착시는 아니었을 것이다.
스스로 아무 것도 모르게 되는 죽음은 구원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극의 긴장감은 범죄의 비밀이 닉에 의해 풀리면서 현저히 느슨해지지만 영화는
무지 슬프다.
법은 멀다. 그러나 정의를 수호한다고 손에 피를 묻혀서는 안된다.
터지는 심장을 부여 잡고서라도...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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