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회상록
뀌도 미나 디 쏘스피로 지음, 박선옥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에 시선을 주면서 살아야겠다.

오래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고 길 위에 기어 다니는 개미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살아있는 개미들을 밟을까 봐 노심초사했는데 그뒤로 곤충이나 벌레들을 보며

페로몬과 비슷한 신경전달 물질이 있고  동료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틀림없이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세상, 혹은 왕국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귀하고 존중받아야 할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이름으로 행해졌던 자연의 파괴, 적자생존과 진화의 논리로 죽어가는 것들을

당연시했던 무심함과 무감각까지 반성하게 된다.

<나무회상록> 은 쳐다 보기만 해도 든든하고 살아온 세월을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존경스러운

나무들에게  생명과 호흡, 그리고 사고가 존재할 것이라는 평소의 내 생각을 확고하게 한다.

저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 수 있는 주목, 어린 나무에서 성년을 거쳐 2억 년 전의 세계로

시간여행을 하는 주목을 통해 공룡시대로부터 현재의 모습들까지 인간의 역사와 사랑, 삶, 전쟁,

종교, 자연 생태계에서의 약육강식의 법칙 등을 흥미진진하게 풀어 놓는다.

주목은 자라면서 자연계의 다른 존재들과 상생하며 사는 방법에 대해 배운다.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비트겐슈타인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를

언급하면서 상당 부분의 여지를 남기고 독자 스스로 문제들을 생각하게 한다. 

주목이 들려 주는 이야기들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하여 책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저자의 상상력과 이야기 솜씨는 참으로 대단하다.

황무지로 변한 아일랜드의 실상과 주목들이 자라는 숲을 보며 이와 같은 글을 썼다는 것은 

상상력만 가지고는 불가능할 것 같다. 

아마도 자연과 생명, 그 순환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이 상상력에 힘을 보탰으리라 짐작된다.

존재 깊숙이 스며 들어간 작가의 감정이입의 능력에 놀라울 따름이다.

 



 

엄마의 죽음 이후 주목은 자신의 성장만을 생각하여 엄마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을 자책한다. 

엄마의 고통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자신의 삶이 더이상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

휴면 상태에 들어간 주목의 아픔이 절절하다.

자식을 위해 모든 에너지와 사랑을 다 쏟은 후 죽는 어머니들의 삶이 그러할 것이다.

언제나 희생만 했던... 돌아가신 엄마가 떠올라 마음이 슬펐다...

 

주목이 30 년의 휴면상태에서 깨어나 보니 숲은 떡갈나무들의 게릴라전으로 인해 많은 나무들이

죽어 있었다.

많은 새들과 호의적인 나무들, 쐐기벌레, 딱따구리와 함께 전략을 짜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싸움을 끝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주목의 주변에서 나오는 많은 양의 성장 억제제인데 떡갈나무

뿐만 아니라 다른 나무들의 생명까지 해치게 된다.

결국 떡갈나무와 뿌리버섯균의 공생관계를 깨뜨려 떡갈나무를 멸망시킨다.

후일, 주목은 이 공격에 대하여 떡깔나무와 상생하지 못했던 자신의 방식에 대하여 후회한다.

 

인간의 역사가 바뀌고 천년 째 되는 봄에도 그녀는 숲의 여왕으로 고고하고 외롭게 건재한다.

자신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안타까워하고...

그녀는 인간들의 사랑을 지켜보며 말한다.

"우리가 공유하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젊은 연인들이여, 사랑이 그대들의 눈앞에 다가올 때,

그리하여 그대 마음 설레면, 그때에 사랑하시오. 아무 거리낌 없이." ~~ 184쪽 

 

주목의 활을 받은 헤링본 (로빈 훗)은  후일 멋쟁이가 되어 여인과 사랑도 하고 나무와 꽃, 새

그리고 태양을 사랑한다. 쾌활한 활잡이 헤링본 이야기와 주목의 잎을 먹고 주목의 몸 위에서

살다 간 초록 인간(식물과 인간의 소통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이야기는 한 폭의 동화처럼 아름답다.

 

주목은 원시시대로부터 인류의 역사를 지나 오면서 여러가지 형태의 종교에 대해 말하고 있다.

특히, 예수의 기독교가 인간중심적인 사고로 자연을 배려하지 않고 성서에 의해 잘못

인도되어졌다는 것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종교를 선교하기 위한 각종 전쟁들과 함께...

 



 

저자는 주목의 유언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간곡한 메시지를 전한다.

"경쟁과 자연도태, 싸움과 투쟁이 자연의 이치에 맞는 것으로 위장하지 말라. 모든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고 모든 정자마다 난자를 만나게 된다면 모든 종들은 아름답고 무성하게 번성할 것이다. 

무자비한 자연이 아닌 마냥 친절한 대자연, 정겨운 곳을 생각해 보자. 모든 꽃가루가 꽃을 피우고

태어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태어나 경쟁자도 경쟁도 없고 생명에 관하여는 그 어떤 구속이 없는 곳.

'우리는 왜 태어났는가?' 라고 묻지 않고 '우리는 왜 죽어야 하는가?'라고 묻는 곳.

무한한 풍요가 있고 다툼이 없는 곳.....어쩌면,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그것을 생각한다면, 그러면

우리의 염원이 큰 공명을 얻어 그곳을 실재하도록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 290-294  요약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전체의 내용들을 부록과 각주로 다시 정리해 친절하게 설명한다.

부록을 읽으며 책이 지어진 배경과  책을 쓰기 위한 그의 노고 (12년의 연구, 학자들에게 자문 얻기,

영국과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수많은 답사)를 알 수 있었다. 

정열적인 이 작업들로 말미암아 지구 이쪽에 앉은 내가 나무와 자연, 나아가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한 권의 책을 통해 모르는 세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쳤던 일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니 책을 읽는 즐거움이 참으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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