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 되면서.. 아무리 바빠도 영화는 보고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공지영 원작 <도가니>와 김려령 원작 <완득이>이다.
시사회로 본 영화 <도가니>는 충격 그 자체였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진실에 대해 알게 된다면... 하는 바램이 일었다.
하지만 충격적인 장면들과 외면하고 싶은 진실들, 분노를 표현하기 힘든 게으름 등을
이유로 리뷰를 쓸 수 없었다.
<도가니>를 보는 내내 "동생 아벨이 죽을 때에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는
성경의 한 귀절이 떠올랐다.
과연 사람들이 이토록 불편한 영화를 볼까? 라는 나의 예상을 깨고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미흡했던 법적인 조치들이 다시 취해지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 들린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영화 <완득이>는 여러가지 면에서 영화 <도가니>와 다르다. 밝고 환하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따뜻한 감동을 옮겨 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읽은, 같은 작가가 쓴 동화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처럼
잔잔하고 여운이 길게 남는다.
저자의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 따뜻하리라 여겨진다.
이 가을에 영화 <완득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 놓을 것 같다.

<완득이>는 문제아 도완득(유아인)과 욕쟁이 똥주 선생(김윤석)이 주변 인물들과
씨줄, 날줄로 엮어 만들어내는 한 편의 그림같은 이야기이다.
완득이의 집은 가난하다.
곱추 아버지에 피가 섞이지 않은, 지적 장애를 가진 삼촌...
그리고 엄마... 엄마는 어릴 때 나가 얼굴도 알지 못한다.
캬바레에서 탭댄스를 추던 아버지는 캬바레가 문을 닫자 전국으로 5일장을 돌며 행상을
하고 있다. 가출하고 싶어도 자신의 가출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
담임 똥주는 수시로 반아이들에게 자신의 감추고 싶은 가족사를 하나씩 드러내고
배급품인 햇반을 받아가라는 말로 자존심마저 상하게 한다.
똥주 선생은 건너편 옥탑방에 살면서 시도 때도 없이 완득이를 불러 학교에서 수급받은
햇반을 갈취하는가 하면 사사건건 간섭하는데...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내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김구 선생은 '백범', 안창호는 '도산'이라는 호가 있듯이 완득이도 "얌마"라는 호가 있다.
언제 어느 때건 가리지 않고 똥주는 "얌마 도완득", "얌마 도완득"하고 부른다.
완득이는 담임 똥주가 없어지는 것이 소원이다.
"하느님, 제발 담임 똥주를 죽여 주세요."
똥주 선생 때문에 심란한 마음이 일 때마다 완득이는 교회에 나가 기도한다.
영화는 군데군데 웃음코드를 숨겨 놓는다.
완득이가 교회에서 똥주를 죽여 달라고 기도할 때마다 외국인 근로자 핫산이 나오면서
"자매님, 나오셨어요?" 라고 말한다.
똥주 선생은 꽤나 분주하다.
낮에 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지만 그외의 시간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받아야 할
정당한 권리를 위해 일한다.

칠판에 커다랗고 두껍게 '자습'이라고 쓰고 잠을 자는 똥주 선생.
똥주 선생은 자율학습이란... 철저하게 학생들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와 학부모가 들으면 놀라 자빠질 말이지만 고등학교 2학년인 자기 반의 아이들의
갈 학교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 마음껏 놀아야 한다고 충고하는 교육 지상주의
대한민국에서 몇 안되는 극히 예외적인 선생님이다.

빗지 않은 듯한 머리와 구겨진 옷을 입고, 교무실 책상에서 컵라면을 먹고 남은 국물을
들이키고, 욕을 입에 달고 다니고, 단정치 못한 선생의 모습은 딱 그러하리라
생각되는 배역을 천연덕스럽게 잘 연기해내는 김윤석은 천상 배우이다.
막말을 하고 거칠지만 제자들을 사랑하고 소외계층인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가득하다.

기억에도 없는 엄마가 느닷없이 살고 있단다. 게다가 필리핀 엄마라니..
완득이는 당황스럽다.
몰랐어도 좋을 사실을 알려주는 똥주가 원망스럽다.
하느님이 너무도 바빠 똥주를 데려가지 않으신걸까??

세상을 향한 이유없는 분노가 완득이를 싸움꾸러기에 말썽쟁이로 만들었지만
이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싸움이 아닌 격투기로 세상에 존재를 드러내겠다고 결심하는 완득이..

집에 들어온 똥주를 도둑으로 알고 킥복싱 기술을 멋지게 발휘,
한 방을 날렸고 쓰러지는 똥주..
"아아... 아직은 아닙니다. 기도를 들어주지 마세요 똥주를 데려가심 안됩니다. 하느님.."
"뭐라고?? 네 놈의 기도가 무엇인지 알겠구나."

<완득이>는 배역과 하나인 듯 자연스럽게 녹아든 유아인과 김윤석 이외에도
여러 조연들의 연기가 훌륭한 영화이다.
완득이와 필리핀 엄마와의 따뜻한 만남, 엄마와 아빠와의 재회... 완득이는 엄마가 만드는
짜지 않은(엄마의 음식은 윽.. 생각만 해도 짜다) 음식을 먹고 엄마가 빨아주는 옷을 입고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말등(꼴등)인 완득이와 일등인 윤아가 서로 친해지고
똥주도 무협지를 쓰는 처녀와 사랑에 빠진다.
(비결은? 완득이의 편지에 있다. 모든 것에 상대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영화는 행복한 결말을 보여 준다.
아마도 완득이는 폭풍과도 같은 사춘기를 끝내고 마음이 따뜻한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자신도 그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고 내밀 것이다.
깊은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그 곤궁함을 알아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혼란한 시절 똥주가 자신에게 그랬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