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세계사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외 지음, 이재만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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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도판과 함께 읽는 옥스퍼드 역사 시리즈'The Oxford Illustrated History 중 세계사 편이다. 엮은이가 얼개를 맞추고 그에 맞추어 각 분야의 저명한 학자들이 참여하여 한 두장씩 쓰는 식으로 구성되었다.

역자 이재만은 다음과 이유로 이 책을 추천한다. "세계사는 과거의 변천에 관한 새로운 연구 성과를 담아내기 위해 일정한 간격으로 새로 쓰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새로운 성과를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 (655p)

그렇다면 단순히 가장 최근에 출판되었단 사실(원저는 2019년에 출판되었다)을 제외하고, 이 책의 무엇이 새로워졌을까? 역사 연구에서 새로움은 새로운 사료의 발견이나 새로운 생각에서 나온다. 이 책의 경우 후자에 더 주목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다시 이재만의 말을 옮겨본다. "과거에는 역사의 주된 내용이 인간의 활동, 특히 문명인의 활동이었다면, 이제는 그 범위가 넓어져 문명 이전 인간은 물론이고 우주, 지구, 환경, 기후, 생명체, 질병 등 비인간 동인들까지 포괄하기에 이르렀다.•••요컨대 현재 알려져 있고 추론할 수 있는 과거의 거의 모든 변천이 역사라는 이름으로 서술할 만한 주제가 된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역사관의 변화를 반영하는 최신 세계사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654p)

비교를 위해 윌리엄 맥닐의 <세계의 역사>(이산)와 비교해보자. 이 책의 제1부는 "고대 문명의 탄생과 성립"을 다룬다. 고대 문명의 발상부터 서술한 것이다. 이는 이전 세대 역사서들의 관행적 서술이었다. 맥닐의 책이 가장 평이한 관점에서 쓰인 세계사 책이지만, 아직 '문명인의 활동'을 역사의 주요 내용으로 삼았다. 반면 <옥스퍼드 세계사>의 제1부는 "빙하의 자식들: 인류의 전 세계적 확산과 문화적 발산의 시작 - 약 20만 년 전부터 1만 2000년 전까지"로 시작하여 역사 서술의 시기와 대상이 맥닐보다 확장되었음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렇게 역사를 문명 그 이전 인류의 초창기까지 끌어올린 것뿐만 아니라 역사 서술의 범위에 생태적 요인까지 포함된 것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각 챕터는 환경사 전문가가 환경 배경을 짚은 다음, 다른 저자들이 해당 기간의 문화, 사상, 예술, 정치 등을 다룬다. 서술의 중심이 문명이 아니게 되어 이 책에서는 서구중심주의나 문명중심주의적 담론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전 지구적 생태, 기후, 환경 변화에 주목함으로써 이 책은 진정한 세계사(global history)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이 책을 읽고 난 후 더 깊은 공부를 할 때 알아야 할 기본 내용들을 잘 요약 정리한 것은 더 첨언할 필요도 없다.

또한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그동안 놓치기 쉬웠던 역사 속 자연과 인간 사이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생각할 수 있다. 할슈타트 태양극소기, 계절풍, 엘니뇨 등 기후계의 변동과 질병은 문명의 흥망을 좌지우지하였다. "인류의 조건은 기후 '최적기'와 위기(청동기 시대의 오랜 기후 최적기 이후 기원전 30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가 번갈아 나타나는 대순환을 경험했다. 앞서 언급한 사회들은 모두 기원전 1200년경 전 지구적 위기로 고통받았을 것이다. 단연 중요한 요인은 비교적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태양 '극대기'와 '극소기'에 따라 변화하는 태양의 에너지 복사량이었다." (213p) 저자들의 이런 관점을 수용한다면, 우리는 역사를 공부할 때 세계사 연표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어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 바로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어느 기후 시대였는지다. 기후는, 더 나아가 자연은 개개인의 생활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외부 요인이다. 특히나 이 부분은, 역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을 겪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줄 것이다.

모든 역사 책이 그렇듯이, 이 책도 언젠가 시간의 흐름을 타 낡은 것이 될 테고, 또 새로운 세계사 책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동안은, 한 권 분량으로 이 책을 대체할 만한 세계사 책은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메리 위스너-행크스의 <케임브리지 콘사이스 세계사 >와 더불어 꼭 읽어볼 만한 세계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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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03-13 18: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추천해 주신 역사책은 넘 좋았습니다.
언제나 믿고 읽습니다. ^^
역사학과 전공하신 거 아니신지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ㅎㅎ

김민우 2022-03-13 18:31   좋아요 3 | URL
예 역사학과 출신입니다 ㅎㅎ 바로 맞추시는군요 ㅋㅋ

북다이제스터 2022-03-13 19:33   좋아요 3 | URL
전 경영학 전공했습니다만 추천해드릴 책이 단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합니다. 부럽기도 하고요. ^^
경영학은 다 사기라고 생각듭니다. ㅠㅠ
하여튼 앞으로도 좋은 책 소개 🙏 많이 부탁드립니다. ^^

김민우 2022-03-13 20:52   좋아요 3 | URL
데카르트는 신학이나 인문학이 아니라 당대에 별로 대접 못 받고 천대받던 과학 같은 학문이 더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데카르트의 정신을 받아들인다면 경영학이나 회계학원론을 공부하는 게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었습니다 ㅋㅋ
이 책도 북다이제스터님께 좋은 독서 경험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ㅎㅎ

얄라알라 2022-03-13 2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민우님께서는 역사를 깊게 공부하시는 구나 추측했지만
이제까지 제 맘대로 북다이제스터님께서는 사회학이나 철학쪽 공부하시는 분이시겠구나....

헛짚었네요^^ 두 분의 서로 응원하시는 훈훈한 대화 읽고 조용히 못 지나갔네요ㅎㅎ

서니데이 2022-04-0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김민우 2022-04-09 08:5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