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키스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임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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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La delicatesse'이다.

델리카 delicat(형용사) 또는 델리카테스 delicatesse(여성명사)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이 책을 제대로 알 수 없을지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입 속으로 '델리카...델리카...'하며 우물우물 외곤 했는데, 델리카라는 단어가 사랑을 시작하는 마법의 주문 같아 마음에 들었다. 아마 그래서 나탈리 역시 사랑의 시작점마다 '델리카한데~'라고 속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책의 시작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 짓게 만드는 커플로 시작한다. 나탈리와 프랑수아는 마치 영화처럼 만나, 드라마 같은 결혼에 성공했고  단 한 번의 불화도 없이 행복한 삶을 이어간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에 빠져있을때 사건이 일어난다. 나탈리가 독서에 빠져있던 어느 날 오후 책을 다 읽기도 전에 프랑수아는 사고로 목숨을 잃고, 그녀는 다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 속에 빠져버리게 된다.

 

살아있는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모든 게 정지된 상태 - 아마 그게 나탈리의 상태였을 거다. 모두들 조심스럽게 그녀를 대하고 보살펴주지만 그것 역시 그녀의 마음에 어떤 것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프랑수아와 만들어갔던 '델리카'한 상태가 무너져버렸고 그녀는 다시는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할 거라고 절망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나탈리는 자신의 어떤 주체할 수 없는 상태 때문에 부하직원 마르퀴스에게 갑작스런(?) '키스'를 하게 되고 그 때문에 둘은 설명할 수 없는 '델리카'한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모든 게 정지해버린 여자 나탈리, 그리고 사랑에 상처받고 소심한 성격 탓에 어떤 이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한 마르퀴스 - 그들은 갑작스런 '키스' 때문에  델리카한 현재 상태로 넘어오게 되고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마음을 내보인다.

 

자칫 잘못하면 어두울 수 있는 내용을 작가는 재치 있고 유머스럽게 풀어나간다. 요즘 흔히 말하는 '깨알재미'를 추구하는 듯 소설 중간 중간에 나탈리가 듣고 있는 노래 가사라던 지, 소설 내용이라던 지, 혹은 그들이 먹었던 요리 조리법을 넣어 독자들을 '델리카'한 상태로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입 속으로 '델리카~델리카~'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는 '어떻게 사랑이 시작됐는지'에 관한 것이다. 100커플이면 100가지 사랑 이야기가 존재한다. 사랑의 시작은 모두 다르며, 그렇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시작은 특별하고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이리라. 물론 여러 경험을 쌓은 지금 키스할 때 귀에서 종소리가 들린다는 유치한 이야기는 믿지 않지만, 나탈리와 마르퀴스의 사랑을 지켜보며 어쩌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키스를 하게 되면 정말 종소리가 감미롭게 들리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처럼 다비드 포앙키노스는 책을 읽는 독자를 '델리카'하게 만든다. 이것 역시 이 책을 읽는 깨알재미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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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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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나 마음속에 ''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섬은 외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오직 나만 갈 수 있는 곳 -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자신만 알 것이다. 나는 그 섬을 '욕망'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그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면 배우지 못한 사람 같고 심지어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의 섬에 꽁꽁 묻어두고 애써 드러내려 하지 않는 것이리라. 하지만 '욕망해도 괜찮아'의 저자는 오히려 솔직하게 내 안의 욕망을 인정하자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솔선수범(?)하며 자신 안에 깊이 묻어두었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보였다.

 

책을 여러권 내서 이름이 좀 알려진 줄 알았지만, 어느 모임에서 '듣보잡' 취급 받았던 것, 남들에게 늘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정신승리'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것, 규범 안에 살면서도 규범에 자유로웠던 형을 바라보는 시선 등이 꼭 남이 서술한 것처럼, 철저히 자신의 바깥쪽에서 바라보고 분석해놓았다. 이렇게 철저히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기' 수준이 되려면 얼마나 나를 내려놓아야할지 아직도 아득할 뿐이다.

 

오히려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은 저자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내 안에 있는 섬을 솔직하게 바라본 용기가 생겼다. 내 안에 있는 섬에는 온갖 쓰레기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는 들어가 보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욕망해도 괜찮아~~'라고 말하며 사회 모든 규범에 대해 솔직하게 까(?)놓고 말하는 저자에게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내 자신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는 기분이랄까.

 

<태어날 때부터 동행해온 욕망을 바이러스처럼 살살 달래면서 살면 별 문제가 없는데, 이걸 없애겠다고 싸우고 불화하다보면 ‘멘탈붕괴’가 오는 거죠. 면역체계가 바이러스를 잡는다고 건강한 몸을 쓰러뜨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몸이 아프면 보호하기 위해 어떤 신호든 보내온다. 열이 난다던지, 갑자기 어지럽다던지 하는 전조증상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병원에 가고 아픈 부분을 치료하게 된다. 그렇다면 내안의 욕망이 보내오는 증세에도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이상신호를 보내는데 억지로 무시하고 섬 안으로 밀어내버린다면 결국 적절히 치유하지 욕망이 결국 섬 밖으로 흘러나와 나를 해치는 무시무시한 병으로 커져버릴테니 말이다.

 

<이 책을 손에 잡은 분들은 보나마나 평소에도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일 겁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 중에는 모범생이 많고 아무래도 '색'보다는 '계'쪽에 가까운 성향을 갖게 되지요. 자기가 바른 생활을 하는 만큼 남에게 돌을 던지기도 쉽습니다. 대신에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 다른 세계를 접하고 경계선을 넓히기도 쉽죠. 서둘러 돌을 던지기보다는 경계선을 넓히는 쪽이 자기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훨씬 좋습니다.>

책 마지막 부분에서 어찌나 찔리던지. 책을 많이 읽는 습관을 은연중 자랑하던 나는 그만큼 남에게 더욱더 엄격한 '계'의 잣대를 대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아도,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더욱 크게 비난하고 힐난했던 것이다. 

 

몸이 아프고 나면 더 성숙했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더욱더 내 자신을 돌아봐야지...라는 은밀한 다짐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내 안의 욕망을 조심스레 인정하고 꺼내보면 어떨까. 그러면 내가 이루고자 했던 목표보다 훨씬 더 멋진!!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조심스럽게 욕망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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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 세계문학의 숲 17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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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을 즈음, 우연히 새로 오픈하게 된 백화점 두 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한 곳은 몇 년 전부터 늘 교통체증을 불러일으키며 거대하게 공사하던 곳이었는데 유명한 걸 그룹을 앞세워 대대적인 홍보를 하더니 엄청난 규모로 백화점을 탄생시켰다. 또 다른 한 곳은, 내 친구가 사는 동네였는데 그 곳 역시 전국에서 두 번째라는 큰 규모로 오픈한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거대한 백화점 이였다. 두 곳의 비슷한 점은...새 건물 냄새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저 크다는 것 외에 두 백화점은, 내게 어떤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에밀 졸라가 그리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역시 날이 갈수록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다. 처음에는 여성들의 기성복과 천 종류가 전부였다가 잡화, 가구, 란제리등 팔 수 있고 돈이 되는 모든 물품을 백화점에 들이기 시작한다. 백화점의 주인인 옥타브 무레는 열정적인 젊은이로 여인들을 떠받드는 척하며 오히려 그녀들을 돈으로 사려고 한다. 여성들을 깔보는 그의 관점을 잘못된 것이라고 부정 해봐도, 무레가 여성의 본능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거대한 백화점에 시골에서 올라온 드니즈는 감탄부터 연발한다. 처음에는 화려한 그 곳과 맞지 않는 그녀였다. 삶과 가난에 찌든 그녀는 어떻게든 하루하루 살아가야했고 그 때문에 동료들의 심각한 따돌림에 직면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심성이 올곧고 바른 사람에게는 역경 뒤에 바른 길이 나타나듯이 드니즈 역시 그러했다. 백화점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은 그녀였지만, 무레의 눈에 들게 되어 다시 백화점에서 일하게 되며 그녀만의 가치를 나타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얼핏 보면 이 책은 남녀의 로맨스를 다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읽는 내내 나를 괴롭혔던 것은 그 옛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을 묘사한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거대한 상권이 형성되고 주변의 소규모 업체들은 줄줄이 쓰러지게 된다. 의욕만 가득한 소상인은 거대상권에 도전했다가 더 비참하게 몰락하게 된다. 숨죽이고 거대한 그 것을 괴물 보듯 바라보다 결국 눈물만 흘리는 우리네 현실이 매일 텔레비전을 장식하지 않던가.

 

또한 백화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백화점에서 행복을 사려고 매일 줄을 서는 여인네들 역시 지금과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돈을 벌기 위해 같이 일하는 동료를 동료로 보지 않고 밟고 일어서려 한다던가, 혹은 자신의 수입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싸니까 사야해....'라는 안일한 논리로 무조건 사들이는 여인들 모두 '행복'보다는 '파멸'이라는 구렁텅이 속으로 터럭터럭 걸어가고 있을게 아닐지.

 

나 역시 평범한 여성인지라, 화려하게 장식된 옷과 보석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오죽하면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특별 전시관을 상상하면서 혼자 미소 지었을까. 하지만 화려한 옷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보곤 깜짝 놀라곤 한다. 화려하게 전시된 상품을 사면 당신은 행복해질 거예요, 라고 백화점의 모든 물건이 내게 말하는 듯 하지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거라면 왜 모두들 진작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아마 에밀 졸라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한 줄기 빛은 '드니즈'가 아니었을까. 빗발치는 시기심과 험난한 험담 속에서도 자신을 올곧이 지키고 꼿꼿이 살아온 그녀는 사장인 무레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진정 내보일 수 있는 한 사람이었다. 사랑과 일 모두 얻어낸 그녀는 여인을 깔보던 사장 무레를 순화시켜 그와 행복한 미래를 그려나갈 것이다.

 

나는 지금도 백화점의 비싼 옷은 사지 못한다. 그래도 불행하진 않다. 예쁜 옷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은 그런 것이 아닐까. 손에 닿을 듯 하지만 자꾸 빠져나가는 물질이 아닌, 소소한 일상에서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사랑이 바로 진정한 행복일거라고 책을 덮으며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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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어디에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1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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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조사 사무소를 연 청년이 있다. 고야 조이치로. 25세의 젊은 청년은 도쿄에서 은행원으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피부병'이라는 예기치 못한 큰 산을 만나 병치레하다, 결국 고향 마을로 내려오게 된다. 병은 나았지만 뭔가 시작하기엔 몸도, 마음도 모두 지친 상태이다. 사회훈련의 일환으로 사랑하는 애완견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겸 개를 찾는 조사 사무소를 연다. 하지만 세상일은 마음 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 사무소를 연 첫 날, 개가 아닌 사람을 찾는 의뢰가 들어온다. 그것도 아주 젊은 여자를 찾는 의뢰 말이다.

 

기본적으로 개를 찾는 일을 하는 사무소지만, 간절한 노인의 부탁에 결국 조사를 승낙한 고야. 그리고 그 날 마치 짠 듯이 학교 후배였던 한페가 찾아온다. 막무가내로 조수로 써달라는 한페까지 합세하여 그럴듯한 조사 사무소 '고야 S&R'가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사라진 젊은 여자를 찾는 일은 고야가, 고문서의 유래를 알아내는 일은 한페가 맡기로 하고 각자 조사 업무에 들어가게 된다. 그 둘의 일은 나누어져 있었지만 책을 읽는 독자들은 둘의 일이 결국 한 가지 결론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채게 된다. 그러면서, 도쿄에서 사라진 젊은 여자는 도대체 왜 모습을 감춘 것인지 그리고 고문서의 유래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 하나둘씩 밝혀지게 된다.

 

사는 동안 아무 장애물 없이 살아가던 고야가 피부병 때문에 사회 한구석에 패배자처럼 밀려났듯이, 도쿄에서 자취를 감춘 젊은 여성 역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큰 장애물을 만났음을 고야는 직감한다. 그러면서 아무 느낌 없이 사건을 맡았던  처음과 달리 점차 젊은 여성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며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진다.

 

가련한 젊은 여성의 비극적인 이야기인줄 알았던 나는 결말 부분에 등장하는 의외의 반전(?)에 또 한 번 놀라며 책을 덮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던 책에 의외로 온 마음과 정신을 뺏겨버린 느낌이랄까. 오랜만에 몰입할 수 있는 즐거운 책을 만나서 즐거웠다. 한페가 동경하는 트렌치코트, 드라이 마티니, 권총이 어울리는 탐정은 아니지만, 냉철하고 논리적인 고야 같은 탐정도 꽤 흥미로운 소재라고 생각하며 요네자와 호노부의 다른 작품을 기웃거려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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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무덤의 남자
카타리나 마세티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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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미스터리하고, 슬프고, 즐겁고, 신나는 것을 대라면? 사랑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지만 똑같은 사랑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각자의 사연과, 사랑이 있고 평범해 보이는 사랑이더라도 그 안을 파고들면 500페이지 책 두세 권은 거뜬히 쓸 수 있을 만큼 무궁무진한 에피소드가 포진해있으니 말이다.

 

이 책 역시 흔하디흔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결코 흔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데시레와 아직 자신의 짝을 만나지 못한 벤니가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만남 역시 평범하지 않은데, 남편의 무덤을 찾은 데시레와 어머니의 무덤을 찾은 벤니가 길 하나 차이로 바로 옆에 위치하면서 첫 만남을 시작하니 말이다.

 

큐피드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화살을 쏘는지 모르겠으나, 첫 인상이 좋지 않았던 그들은 곧, 거짓말같이 사랑에 빠진다. 나와 전혀 다를 것 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느낌은 어떨까. 데시레와 벤니 각자의 독백을 통해 그들의 사랑을 살짝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달콤하고 아름답기만한것이 사랑은 아니다. 서로 제멋대로인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맞춰가는 노력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종족보존 의무만 아니면 3개월 안에 끝날게 뻔하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러니, 달라도 너무 다른 데시레와 벤니의 사랑 역시 삐걱거릴게 불 보듯 뻔한 게 아닐는지. 데시레는 철저하게 도시여자다. 함께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뮤지컬을 보며 함께 이야기할 남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벤니는 철저하게 시골남자다. 지치고 힘든 소 돌보기를 끝내면 따뜻하고 맛있는 식사라 차려져 있는 가정을 원한다. 한가하게 책을 보는 시간에 축사 고치는 일에 더 공을 들이겠다!!라고 제멋대로 생각하는 남자인 것이다.

 

벤니 : 우리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난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 매일 한 가지씩 견디면서 지내는 법을 배우면 되니까. (p.166)

데시레 : 우리는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낭떠러지 위로 다리를 놓으려는 노력은커녕 서로를 그 끝으로 몰아가고 있었다......난 그가 자신에게도 영혼이란 게 있음을 인정하기를 바랐고, 그는 밤새 내 배 위에서 앞치마가 자라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p.267)

 

데시레는 벤니가 축산업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찾기 원한다. 벤니는 데시레가 도시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자신과 함께 소를 돌보기 원한다. 하지만 둘 다 그런 소망을 입 밖에 내지 않은 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간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면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리라는 덧없는 희망을 안고 말이다.

 

이 책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는지 그리고 있다. 결론은? 서로 이해하고 보듬을 수도 있고, 혹은 그대로 갈라설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데시레가 표현한 데로) 자신안의 난자를 공중제비 돌게 할 만큼 나의 한 부분을 움직일 수 있는 어떤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랑에 들이는 모든 수고가 결코 헛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그런 가슴 설레는 움직인 대신 고만고만한 조건에 맞춰 대충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벤니와 데시레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아무리 건너기 힘든 강이 있더라도, 기어코 다리를 만들어 서로에게 꼭 이어졌으면 하는 응원도 외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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