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 세계문학의 숲 17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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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을 즈음, 우연히 새로 오픈하게 된 백화점 두 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한 곳은 몇 년 전부터 늘 교통체증을 불러일으키며 거대하게 공사하던 곳이었는데 유명한 걸 그룹을 앞세워 대대적인 홍보를 하더니 엄청난 규모로 백화점을 탄생시켰다. 또 다른 한 곳은, 내 친구가 사는 동네였는데 그 곳 역시 전국에서 두 번째라는 큰 규모로 오픈한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거대한 백화점 이였다. 두 곳의 비슷한 점은...새 건물 냄새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저 크다는 것 외에 두 백화점은, 내게 어떤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에밀 졸라가 그리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역시 날이 갈수록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다. 처음에는 여성들의 기성복과 천 종류가 전부였다가 잡화, 가구, 란제리등 팔 수 있고 돈이 되는 모든 물품을 백화점에 들이기 시작한다. 백화점의 주인인 옥타브 무레는 열정적인 젊은이로 여인들을 떠받드는 척하며 오히려 그녀들을 돈으로 사려고 한다. 여성들을 깔보는 그의 관점을 잘못된 것이라고 부정 해봐도, 무레가 여성의 본능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거대한 백화점에 시골에서 올라온 드니즈는 감탄부터 연발한다. 처음에는 화려한 그 곳과 맞지 않는 그녀였다. 삶과 가난에 찌든 그녀는 어떻게든 하루하루 살아가야했고 그 때문에 동료들의 심각한 따돌림에 직면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심성이 올곧고 바른 사람에게는 역경 뒤에 바른 길이 나타나듯이 드니즈 역시 그러했다. 백화점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은 그녀였지만, 무레의 눈에 들게 되어 다시 백화점에서 일하게 되며 그녀만의 가치를 나타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얼핏 보면 이 책은 남녀의 로맨스를 다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읽는 내내 나를 괴롭혔던 것은 그 옛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을 묘사한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거대한 상권이 형성되고 주변의 소규모 업체들은 줄줄이 쓰러지게 된다. 의욕만 가득한 소상인은 거대상권에 도전했다가 더 비참하게 몰락하게 된다. 숨죽이고 거대한 그 것을 괴물 보듯 바라보다 결국 눈물만 흘리는 우리네 현실이 매일 텔레비전을 장식하지 않던가.

 

또한 백화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백화점에서 행복을 사려고 매일 줄을 서는 여인네들 역시 지금과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돈을 벌기 위해 같이 일하는 동료를 동료로 보지 않고 밟고 일어서려 한다던가, 혹은 자신의 수입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싸니까 사야해....'라는 안일한 논리로 무조건 사들이는 여인들 모두 '행복'보다는 '파멸'이라는 구렁텅이 속으로 터럭터럭 걸어가고 있을게 아닐지.

 

나 역시 평범한 여성인지라, 화려하게 장식된 옷과 보석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오죽하면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특별 전시관을 상상하면서 혼자 미소 지었을까. 하지만 화려한 옷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보곤 깜짝 놀라곤 한다. 화려하게 전시된 상품을 사면 당신은 행복해질 거예요, 라고 백화점의 모든 물건이 내게 말하는 듯 하지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거라면 왜 모두들 진작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아마 에밀 졸라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한 줄기 빛은 '드니즈'가 아니었을까. 빗발치는 시기심과 험난한 험담 속에서도 자신을 올곧이 지키고 꼿꼿이 살아온 그녀는 사장인 무레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진정 내보일 수 있는 한 사람이었다. 사랑과 일 모두 얻어낸 그녀는 여인을 깔보던 사장 무레를 순화시켜 그와 행복한 미래를 그려나갈 것이다.

 

나는 지금도 백화점의 비싼 옷은 사지 못한다. 그래도 불행하진 않다. 예쁜 옷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은 그런 것이 아닐까. 손에 닿을 듯 하지만 자꾸 빠져나가는 물질이 아닌, 소소한 일상에서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사랑이 바로 진정한 행복일거라고 책을 덮으며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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