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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까미노 - 산티아고로 가는 아홉 갈래 길
장 이브 그레그와르 지음, 이재형 옮김 / 소동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삭막한 나의 일상에 늘 희망이 되어주는 한 가지 단어가 있는데 바로 '산티아고'다. 언젠가는 등에 간단한 짐을 꾸려 산티아고 순례길에 떠나리라는 작은 소망이 어느샌가 버팀목이 되어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어느 곳이든 차를 타고 이동하면 몇 시간이 안걸리는 '빠름'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느림'이 지배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가슴 속 소중한 쉼터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산티아고로 가는 아홉갈례 길을 소개하는 책을 만났다. '부엔 까미노' 즉, 좋은 여행이 되길 혹은 당신의 앞길에 행운이 함께하길 바란다는 인사가 제목이 이 책은 저자인 장 이브 그레그와르가 15년 동안 자신이 직접 걷고 만난, 르퓌길, 프랑스길, 파리와 투르길, 브르타뉴 순례길, 북쪽 해안길, 베즐레 순례길, 아를 순례길, 은의 길, 피니스트레 곶 순례길의 모습을 멋진 사진과 함께 담아내고 있다.
산티아고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여러가지 길에 대해 몰랐던 나는 산티아고로 향하는 다양한 길과 유적지, 그리고 아름다운 성당과 아담한 산책길에 빠져들며 어느새 순례자가 되어 산티아고로 걷고 있었다.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50일정도 걸리는 멀고 먼 길을 왜 사람들은 그토록 열광하며 걷는 것일까?
"만일 여행의 목적이 타인들과의 만남뿐 아니라 자신과 만나 관계를 더 심화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가장 중요한 건 느림이다."
저자가 어느 책에선가 읽은 이 구절이야 말로 산티아고로 순례를 떠나는 순례자들을 설명하는 게 아닐까 싶다. 빠르게 돌아가며 목표지향인 삶을 살다보면 어느샌가 지치기 마련이다. 그런 빠른 삶에서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천천히 나 자신과 마주하고자 한다면 시간마저 정지한 순례길의 아름다운 정치가 제격 아닐까.
빠른 세상 속에 지쳐 세상 부귀 명예를 모두 버리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선 어떤 중년 남자를 세상 기준에서는 미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 길에서 만난 '느림'은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며, 또한 삶의 또다른 전환점이 될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성인들을 기리기 위해 떠났던 길이, 이제는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한 아름다운 느림의 미학으로 다가온다. 가슴속에 산티아고가 한층 더 가깝게 다가오는 순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