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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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같은 서민은 '강남'이라는 말만 들어도 기가 죽는다. 강남 8학군 아이들이 받는 고액 과외에 기가 죽었고, 다 커서는 지나가다 접하는 강남의 화려한 모습에 기가 죽었다. 어쩌다 번호판 5땡(지금은 모두 통일됐지만) 차를 만나면 알아서 비켜가는, 기가 죽다 못해 비굴하기까지한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강남'이라는 꿈은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희망 아닐까. 선망의 대상이든, 비난의 대상이든지 말이다.

누구든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그렇기에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비난의 감정도, 혹은 동정의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말 그대로 소설이기 때문에 허상이라고 생각하면 끝나버릴 일이지만, 아무런 감정도 생겨나지 않았으면서도 결국 등장인물들에게 진한 무언가를 느꼈다. 이것 역시 내가 강남에 대해 품고있는 무엇인가가 아닐까.

일찌감치 강남에 대한 가치를 알아보고 덤벼든 사람들이 등장한다. 시골출신으로 고급요정을 거쳐 룸살롱 마담으로 한몫잡은 박선녀. 일제 강점기에 빠른 눈치 하나로 나라와 이웃과 자신까지 팔아먹으며 성공가도를 달린 박진. 일찌감치 땅투기에 대해 정보를 접하고 이리저리 땅을 갖고 장난친 심남수. 주먹으로 세상 모든것을 얻을 수 있다며 천하를 호령하던 홍양태. 광주대단지 폭동 속에서 꿋꿋이 자라온 백화점 점원 임정아까지 우리 주위에서 보고 듣고 알아왔던 여러 군상이 등장하고 사라진다.

그들은 모두다 마음 속에 한가지씩 품고 있었는데, 물질에 대한 강한 욕망이였다. 살아남아야 한다던가, 무엇인가 더 갖고 싶다라는 단순한 욕심을 뛰어넘은 욕망-그것이 그들을 하나로 집결하게 하는 단단한 구심점 역활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강남을 중심으로 '부'를 손에 넣게 된다. 천벌받아 마땅하겠다고 읊조리면서도 결국, 강한 욕망이 부를 가져다준 것이다.

하지만 '욕망'이란 것이 어찌 붙들려만 있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다른 먹이감을 향해 내달리려는 것이 아닐런지. 그래서 그들은 한낱 꿈속에 파묻혀버리게 된다. 어이없이 허물어진 백화점 안에 깔린 박선녀처럼, 혹은 간신히 백화점에서 탈출해서 무너져버린 백화점을 바라보기만했던 박진 회장처럼 욕망이 도망쳐버린 그곳은 허무한 공기만 남아있을 뿐이다.

씁쓸한 현실속에서도 간신히 희망 한조각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나와 같은 임정아 때문이 아닐까. "사모님이 다 해줄 수 있단 말씀 다신 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임정아는 소위 없는 사람들의 당찬 희망이다. 그리고 꿈을 잃어버린 부모들의 희망이고 자신의 손으로 당당하게 나만의 강남을 만들겠다는 젊은이들의 희망이다. 결국 그녀는 무너진 백화점 속에서 구출했고, 그 대목을 읽는 순간 나는 내 희망 또한 구출되는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욕망이라는 불안한 지지대 위에 놓여진 강남은 백화점처럼 언젠가 무너질 수 있다. 더 이상 나는 강남을 바라보며 기죽지 않고 내 맘속에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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