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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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해 꽤 개방적이라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책의 첫 장을 읽자마자 얼굴이 붉어졌다. 누군가 옆에 있는것도 아니였는데 책을 자연스럽게 반으로 접으면서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조심스레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바르가스 요사는 첫 장부터 이상한 방식으로 나를 책 속에 초대했다. 추악하고 탐욕스럽지만, 자꾸만 옅보게 되는 관음증 환자처럼 말이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그리고 책의 첫 장을 읽으면서부터 마지막 결론을 알 수 있게 된다. 재혼한 남편과 새엄마 그리고 천사같이 순진한 아이는 보이지 않는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며 서로를 탐색해 나간다. 새엄마 루크레시아는 의붓아들인 알폰소가 문제를 일으킬까봐 걱정하지만, 곧 기우임을 깨닫는다. 의붓아들은 자신을 너무나 좋아했다. 좋아하는걸 넘어서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자신에게 품고 있다는걸 알기 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작가는 새엄마가 의붓아들로 인하여 타락해가는 단순한 포르노그래피를 그려내지 않는다. 작가 자신도 "인생은 단지 성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인생을 오로지 성으로만 다루는 작품은 너무 인위적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가장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성을 접근해가는 작가의 방식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역사와 신화, 그리고 그림을 접목시켜 주인공들의 심리 변화를 그려가고 있는 것이다. 

'목욕 후의 디아나'를 통해 새엄마를 훔쳐보는 알폰소의 심리를 엿볼 수 있었으며 '아모르와 오르간 연주자와 함께 있는 베누스'를 통해서는 자그마하고 귀여운 큐피드가 사실은 정욕에 눈 먼 악마였다는 것-하지만 달콤하고 내칠 수 없는 귀여운 천사-을 이야기해준다. '수태고지'는 새엄마 루크레시아의 심리상태의 절정을 나타내는데 성교없이 임신한 마리아를 통해 의붓아들에 대해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을 품고 있는 새엄마의 감출 수 없는 심리상태를 표출한다. 그야말로 그림 속에 주인공들이 녹아들어간 셈이다.

천사같이 귀여워 보이는 큐피드는 사실 악마일 것이다. 달콤한 말로 유혹하여 사랑이란 덫으로 이끄니까 말이다. 알폰소 역시 천사의 탈을 쓴 악마였다. 그 달콤한 꼬마는 타고난 천진함과 순진무구함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결국 그는 그 모든 것에서 승리한 것이다. '새엄마 찬양'이라는 제목과 역설적으로 알폰소는 새엄마를 나락에 떨어뜨렸다. 어쩌면 그것이 작가가 말하는 '성'에 대한 결론 아닐까. 성은 빠지면 빠질수록 달콤하고 찬양할 수 있는 존재지만, 그 이면에는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 큐피드가 숨어 있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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