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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하우스 플라워 - 온실의 꽃과 아홉 가지 화초의 비밀
마고 버윈 지음, 이정아 옮김 / 살림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항상 살아 움직이는 동물보다는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식물이 좋았다. 귀엽게 꼬리치며 나를 반기는 애완 동물이 눈 앞에 어른거리기도 했지만, 나만 기다리며 얌전히 꽃을 피워놓은 식물들이 눈 앞에 들어올때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애완 동물들은 내가 싫으면 가출(?)을 감행할 수도 있지만 식물은 그렇게하지 못한다. 그저 그 자리에 묵묵이 뿌리를 내리고 자신의 사명을 다할 뿐이다. 척박한 곳이든, 비옥한 곳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이용하여 수분하고 꽃을 피워내고 열매를 내어놓는 그들의 모습은 경이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난 오늘도 내 식물들에게 다정히 인사한다. "안녕~"
릴라는 토박이 뉴요커로 모두들 부러워하는 화려한 광고쟁이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화려하지 못하다. 결국 남편과 이혼했고 광고라는 세계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진물나니 말이다. 그러다가 '그' 빨래방을 발견한다. 아르망이 주인으로 있는 신기한 빨래방.
삭막한 기계가 돌아가는 회색빛 방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바닥에는 푹식한 이끼들이 깔려있고 가게 여기저기에 처음보는 신기한 식물들이 가득하다. 뉴욕에 이런 곳이 있다는게 신기할 정도로. 그리고 그런 신기한 가게보다 더 신기한 주인인 아르망이 있다. 그녀는 마치 릴라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그녀의 마음을 잘 알아차린다. 그렇게 릴라는 아르망과 그의 빨래방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예전부터 사람들은 9라는 숫자를 완벽하고 절대적인 숫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르망은 9라는 숫자와 함께 아홉가지 화초에 대해 이야기한다. 권력, 모험, 지식, 사랑, 섹스, 마법, 재물, 불멸, 자유를 상징하는 아홉가지 화초를 보기 위해 릴라는 '나비단풍'의 뿌리를 내려보라는 숙제를 받아들고는 온갖 노력끝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곧 아홉가지 화초를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릴라의 경솔함으로 인해 그 화초는 허무하게 도둑맞게 된다. 이제 릴라는 한 가지 선택만 해야한다. 잃어버린 아홉가지 화초를 찾으러 멀리 유카탄 반도 밀림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결국 자연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숨쉬기 힘들어지면 나무가 가득한 숲으로 떠나고, 삶이 퍽퍽하다 느껴지면 식물원을 찾아 예쁘게 피운 장미를 찾아보기도 한다. 아홉가지 욕망의 화초는 결국, 멀리 유카탄 밀림에만 있는 찾기 힘든 존재가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찾기 힘들수록 멀리 떠나야 한다는 생각과 편견만 버린다면 당장이라도 집 앞 화단에서 키 큰 은방울 꽃이나 무시무시한 맨드레이크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런지.
내년에 줄리아 로버츠 주연으로 아홉가지 화초가 영화화 된다고 한다. 상상에서만 그려보던 나의 아홉가지 식물들이 스크린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그려보는것도 꽤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