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무거운 생각이 그토록 오랫동안 그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그 생각 속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인 것이다. - P61

"인생은 고약한 함정 이지요. 한 인간의 사색이 무르익어 완숙한 단계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출구 없는 함정에 빠졌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우연성에 의해 무로부터 세상으로 불려나온 거예요······ 왜죠? 그는 자기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알고 싶어하지만, 그것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 말해준다 하더라도 헛소리들일 뿐입니다. 그는 문을 두드리지만, 그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죽음이 찾아오지요. 이 역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합니다. 감옥에서 공통의 불행으로 엮인 인간들이 함께 지내며 위안을 느끼듯이, 인생에서는 분석과 이론을 즐기는 인간들이 함께 모여 고담준론을 자유롭게 나누며 시간을 보내지요. 그러다보면 그것이 함정이라는 것도 잊게 되겠죠. 그런 의미에서 지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쾌락입니다." - P78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죽음에는 오로지 이득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먹거나 마시지 않아도 되고, 세금을 안 내도 되며, 사람들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 무덤에 누워서 일 년도 아니고 백 년, 천 년을 지낼 테니, 그걸 다 계산하면 엄청난 이득이 되지 않겠는가. 사람은 살아 있으면 손해고, 죽으면 이득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더라도 모욕적이고 뼈아픈 진리다. 이 세상의 이치란 왜 이리도 괴상한 것일까? 인간에게 단 한 번 주어진 삶이 이토록 아무 쓸모 없이 흘러가버리니 말이다. - P159

저는 떠올려봤어요. 실상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만족하고 행복해하며 살고 있는지! 이들의 세력은 참으로 압도적입니다! 우리 삶을 한번 보세요. 강자들의 몰염치와 나태, 약자들의 무지몽매, 주변의 끔찍한 궁핍, 비좁은 환경, 타락, 폭음, 위선, 거짓······ 그런 와중에도 집안이나 거리는 조용하고 평온합니다. 이 도시에 사는 오만 명의 사람 중 그 누구도 비명을 지르거나 큰 소리로 분노를 토하는 사람은 없지요. 시장에 가면 식료품을 사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들은 낮에는 먹고, 밤에는 잠자고, 제각기 헛소리를 지껄이다가, 결혼을 하고, 나이를 먹고, 그러다가 죽은 이웃을 싣고 숙연한 얼굴로 묘지에 갑니다. 우리에게는 고통받는 이들이 보이거나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지요. 그런데 이 세상의 끔찍한 일들은 무대 뒤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거든요. 모두 조용하고 평온한 가운데서 오직 통계 숫자만이 소리 없는 항변을 합니다. - P200

어쩌면 바로 이 영속성 속에, 우리 모두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 완전한 무관심 속에, 인간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약속이, 지상의 생명들의 끊임없는 운동과 끊임없는 완성에 대한 약속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여명 속에서 너무도 아름다워 보이는 젋은 여인과 나란히 앉아, 바다와 산과 구름과 광활한 하늘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풍경들에 매혹되고 마음이 평온해진 구로프는 이렇게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본질적으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 이다. 존재의 고귀한 목적과 자신의 인간적 가치를 망각한 채 우리가 생각하고 행하는 것들을 제외한다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 - P259

좀더 지내다보면 해결책을 찾게 될 것도 같았다. 그때는 새롭고 멋진 삶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끝은 아직 저멀리 있고,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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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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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을 걸을 때마다 사람은 자신이 찾던 것 이상을 얻는다. 우주로 들어가는 가장 명확한 방법은 야생의 숲을 통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아무 연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차례로 등장한다. 나무와 함께 자라고, 나무를 연구하고, 삶의 한가운데서 나무를 만나고, 각각의 삶에 나무는 늘 가까이 있다. 줄기처럼 따로 뻗어가던 그들의 삶은 어느 순간 서로 맞닿기도 한다. 태어나고, 자라고, 가장 넓게 뻗어나가기도 하고, 베이기도 하고, 어딘가에서 또 싹을 틔우기도 하는 나무의 시간을 따라가면 인간의 짧은 생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자꾸 서두르지만, 나무는 기다린다. 계절이 돌아오기를, 비가 내리기를, 시간이 자기 몫만큼 흐르기를.

병충해가 나무 깊숙이 파고들 듯, 고난도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예상도 못 한 극단적인 상황을 맞닥뜨린 가족 이야기에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싶다가도, 현실과 또 뭐가 다른지 똑 부러지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인생에 열 계단이 있다면 고작 한두 계단 올랐거나 말았을 내가, 어떠한 선택 하나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 삶을 통째로 뒤흔들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몇 해 전 그날이 잠깐 떠오르는 이야기도 있었다. 1948년 상하이의 한 부자의 이야기인데, 무역회사를 하는 후이족 무슬림 사업가 마 쇼잉은 공산세력이 곧 들어올 것을 염려해 아들에게 미국으로 떠나라고 한다. 비밀 금고에 간직해 둔 세 개의 옥반지도 아들에게 건넨다. 각각 과거와 현재, 미래를 뜻하는 나무가 세공된 반지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신과 마 가문이 격변 속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때 아들은 그 반지와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우리 아빠도 첫 출근을 앞둔 내게 옥반지 같은 건 없었지만, 짧고 굵은 이야기 몇 마디를 건넨 적이 있다. “그놈이 가면 더 한 놈이 온다.” 지금 생각하니 좀 웃기다. 마 쇼잉이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상황과 내 첫 출근은 전혀 다른 일이었는데, 현실적인(?) 그때의 말 한마디가 왜 갑자기 생각나던지. 사람에게 남는 게 꼭 대단한 것만은 아닌가 보다.

저문다는 것. 한 사람이 평생 살아온 시간이 점점 뒤로 물러나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조금씩 줄어드는 인간의 생애를 나무의 시간과 나란히 놓으니, 시간 자체가 왠지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지금 흘러가는 시간 하나하나가 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는 건 무언가를 잃고 난 뒤에서야 생기는 것 같다. 슬픔에 잠식되지 말라며 놓고 간 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간은 지나간 것을 잊게 만들고, 곁에 있던 것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나날의 연속에도 무언가는 천천히 쌓이고 있다는 것을 위안 삼아본다. 봄이면 어떨까, 여름은 또 어떻고, 가을엔 좀 다를까, 금방 또 겨울이군. 계절마다 속속들이 들어차 있던 대단치도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구나 싶지만, 그건 또 그런대로 나름의 역할을 해줄 때가 있다.

이어간다는 것. 한 사람의 생이 저물어도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억으로 남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삶에 닿기도 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무는? 나무는 더 긴 시간 속에서 이어짐을 보여주고 있다. 한 그루가 사라져도 숲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는 또 무언가가 자라고 있을 테니까. 그런 나무를 베어내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한 숲에서 맞선다. 나무를 베는 데는 법도 있고 이유도 있다. 그래서 베는 사람은 할 일을 하는 것이고, 막는 사람은 법 밖에 서게 된다. 이상하다. 법이 허락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한 걸까.

무엇을 소유할 수 있고 누가 소유를 할 수 있을까? 무엇이 권리를 부여하고 왜 전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그걸 가져야 할까? (p. 351)

나무를 연구하는 박사 패트리샤 웨스터퍼드는 “나무가 서로에게 말을 한다.”고 알려준다. 나무들이 뿌리와 균류를 통해 연결되어 서로 신호를 주고받고, 필요한 물질을 나누기도 한다며 숲을 하나의 연결된 사회처럼 바라본다. 언제나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녀를 보고, 사람들은 나무가 지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여자라며 조롱하듯 수군거렸다. 내가 자연으로부터 얻은 치유, 모든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나’와 ‘나무’ 사이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느낀 숲의 보살핌에, 어느 것 하나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이룬 것 같고, 또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그 개운함을 나는 과연 무엇으로부터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숲이 우거진 공간에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시원하게 부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잎들에게서 얻는 생의 약동감을. 지나가다 보이는 들꽃 이름 하나도 알지 못하는 내가, 그 알지 못하는 이름을 하나하나 알려주는 엄마의 음성을 들으면서도 ‘아, 그렇구나’라는 힘도 안 드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던, 그런 나에게도 무언가를 쥐여주는 자연의 관대함을.

나무가 그래봤자 나무일 뿐인데, 나무에서 나올 만한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지나쳐 버렸었다. 사실 예전 같으면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거다. 이 또한 상실 이후에 생긴 변화 중 하나일 듯싶다. 마음에 잔물결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에 매료될 줄도, 나무에 아무 의미도 두지 않던 내가 자연에 빚을 졌다고 말하게 될 줄도, 이 책을 읽게 될 줄도 몰랐다. 베트남전에서 반얀나무 한 그루 덕에 목숨을 건진 한 남자는 그 이후, 벌거벗은 땅에 나무를 심고 숲을 지키는 사람이 된다. 뇌 손상을 입은 남편을 병간호하던 한 여성은, 삶이 강제로 느려지고 나서야 뒤뜰에 심어 둔 나무들을 남편과 함께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알면 알수록 그녀의 가슴에 놀라움 덩어리가 자리하고, 그 무렵 책에서 이런 문장을 만난다. “개간된 땅에 숲을 되돌아오게 만드는 가장 훌륭하고 쉬운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는 나무를 심으며 손을 보탰고, 누군가는 손을 거두며 자연에게 자리를 내주는 법을 배웠다.

덩굴이 벽을 한 뼘씩 타고 오르는 것처럼 책장이 더디게 넘어갈 때마다, “숲을 산책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것은 특정 종이 당신을 매수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나무들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닿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들이 듣기에는 너무 낮은 주파수로 말을 한다”는 단순한 말 안에 담긴 확신이 생각을 건드렸다. 앞으로 자연과 나무가 또 내게 어떤 의미가 될지는 모르겠다. “개개의 나무들의 생화학적 행동은 이들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볼 때에만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는 패트리샤의 말을 떠올리며, 또다시 숲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러, 나무에게 매수당하러 가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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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6-09-29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물고 이어가는 것.
곰돌이 님의 리뷰는 정말 아름답군요.

곰돌이 2026-09-29 13:21   좋아요 0 | URL
누군가 내게 남기고 간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채는 순간이 있곤 하잖아요.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들, 고마우면서도 또 한편으론 그 자체가 참 가혹한 것 같다 싶은 복합적인 감정의 결을 느끼게 만든 것이 나무라서, 생각도 더 깊었던 것 같아요.

다락방 2026-09-29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믿고 읽는 곰돌이 님의 리뷰입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저는 이 책을 가지고 있으며, 또 다행스럽게도 저는 나무와 숲을 사랑합니다. 게다가, 저는 인간은 어쩔 수없이, 필연적으로 비인간과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도 이 책을 읽어보겠습니다.

곰돌이 2026-09-29 13:23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은 이미 자연과 나무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분이니, 리처드 파워스가 이 책을 사람들이 읽고 나무를 위해 뭐라도 하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쓰고 있구나 하는 걸 더 많이 발견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에서 좋아했던 부분이 하나 떠올랐어요.

“뮤어의 근사한 말이 있죠. ‘난 그저 산책을 나갔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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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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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무 의미도 두지 않던 내가 자연에 빚을 졌다고 말하게 될 줄도 이 책을 읽게 될 줄도 몰랐다. 누군가는 나무를 심으며 손을 보탰고 누군가는 손을 거두며 자연에 자리를 내주었다. 아홉 명의 삶에 닿기까지 오래 걸리는 책이지만, 더딘 시간 속에서 단순한 말에 담긴 확신이 생각을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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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한 자리 차지하고는 있지만, 내내 읽을 기회를 놓쳐 ‘머무는 중’으로만 있던 세계문학 단편선 몇 권을 뽑아 들었다. 이 덩치들에게 숨통도 틔워줄 겸. 올해 안에 몇 권이라도 완독해 봐야지, 혼자 다짐을 실컷 하다가 이게 또 다짐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지만, 다짐씩이나 필요하다. 몇 편 읽고 덮어도 좋고, 다른 책으로 넘어갔다 돌아와도 좋고, 이 책들과 조금 느슨하게 지내볼 생각이다.


랭스턴 휴스 <내가 연주하는 블루스 외 40편>

「떳떳한 코라」에는 멜턴이라는 아담한 마을에서 40년을 살아온 코라가 나온다. 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사람. 그녀를 사람들은 흑인, 검둥이라고 부른다. 스튜더반 집안의 잡부로 일하며 개처럼 취급받아도 코라는 견딘다. 나가봤자 더 가난한 백인 집에서 학대받을 게 뻔하니까. 망할 아버지는 주정뱅이에다가 딸린 자식은 또 왜 그리 많은지, 그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부담감에 코라는 아이였을 때부터 놀 시간조차 없이 지내왔다. “예, 마님.”을 입에 달고 순종하며 지내는 코라가 백인 노동자 조와 짧은 사랑을 나누고 임신하지만, 그가 떠나고 혼자 낳아 키운 아이마저 백일해에 걸려 품에서 떠나보냈을 때서야 신에게 악다구니를 해 본다. 그래서 주인마님의 딸 제시를 속으로 제 딸처럼 여기며 사랑으로 보살폈는데, 제시마저 그 집안의 위선과 거짓에 둘러싸인 채 죽게 된다. 그동안 참고, 보고, 알고 있었던 것들이 장례식장에서 더는 눌러지지 않는다. 오래도록 꾹꾹 눌러두었던 말들이 결국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아가씨, 내가 잠깐 할 말이 있어요.”

이 단편선에 담긴 이야기들은 인종차별을 이야기하면서도 누군가를 줄곧 짓눌리는 사람으로만 두지 않고, 그렇다고 반대편 사람들을 악역으로 세우지도 않으면서도 사람을 좀 불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경매에 부친 소년」에서는 예술과 음악을 사랑하며 살아가던 백인 부부가 집에서 일하던 흑인 여성이 죽은 뒤, 그녀의 사촌인 흑인 소년을 집에 들이게 된다. 잘해준다. 친절하다. 그런데 그 친절 앞에 서 있으면 이상하게 한 발 물러서고 싶어진다. 선의라고 하기엔 어딘가 미심쩍고, 악의라고 하기엔 또 너무 멀쩡하다. 그래서인지 이 부부에게는 늘 이상한 이물감이 남는다. 흑인 예술에 관심이 많은 부부는 영감을 얻기라도 한 듯 아이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곡을 쓴다. 이렇게만 말하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어 보이지만, 노예를 그려보고 싶었다며 그림의 제목마저 ‘경매 부쳐진 소년’이라고 붙이질 않나, 속옷을 벗어달라고 하질 않나. 이들이 아이에게 보인 애착과 관심이 너무나 기괴하다. 여기서 만만치 않은 인물이 하녀 매티다. 다루기 힘들어졌다며 주인부부가 내보낼 생각을 하자 그녀가 받아친다.

“우리도 당신들 백인들의 멍청한 짓거리에 염증이 나던 참이에요!”

부부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만큼 맹랑한 말. 매티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말. 차별, 억압 등 익숙한 이야기를 가져와, 익숙한 사람을 만들어내지 않는 거, 당연한 스토리 안 만드는 거, 이게 매력이다.



허먼 멜빌 <선원, 빌리 버드 외 6편>

작년에 이 책에 실린 「꼬끼오! 혹은 고귀한 수탉 베네벤타노의 노래」를 읽다가 허먼 멜빌이 보통 입담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뒤늦게서야 알아버리고는, 선뜻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모비 딕>을 샀건만 언제 읽게 될지는 모르겠다. 일단 맨 처음에 실린 「바틀비」를 읽어봤다.

화자는 변호사다. 자신의 법률 사무소에서 문서를 베껴 쓰는 필경사 몇 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건물이며 직원이며 자기 성격까지 한참을 설명한다. 자신을 꽤 좋은 고용주라고 생각하는 이 변호사의 관찰력이 빛나는 온갖 설명과 변명을 잘만 듣고 있다가도 내심 속으로는 ‘아니 그래서 바틀비는 언제 나오는 건데’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 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일반적이지 않은 듯 보이면서도 그렇다고 주변에 없다고 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변호사는 그런 사람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해석하고, 혼자 이해하고, 또 납득이 안 돼서 머리를 굴리고, 속은 속대로 타는데 겉으로는 평화를 유지하느라 하루 에너지를 다 쓰는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집에 가면 씻지도 못하고 쓰러져서, “으으……” 영혼 빠져나가는 앓는 소리 내면서 잠들진 않을지ㅋㅋㅋ 이 와중에 드디어!!! 바틀비가 등장한다. 조용해 뵈는 바틀비가 새로 들어와 변호사는 너무나 만족스럽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참으로 예상 못 한 일이 벌어진다. 피식 대다가 의아스럽고 답답하다가 착잡해지고 씁쓸함까지 맛보게 된다.

아, 행복은 빛을 불러들이고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즐거운 곳이라고 여기는 반면, 불행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잠복해 있어서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지. 병적이고 어리석은 머리가 빚어낸 망상임이 분명한 이런 서글픈 상상은 바틀비의 기벽과 관련된 좀 더 특별한 다른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는 뭔가 이상한 것들을 발견할 것 같은 예감에 휩싸였다. 무정한 낯선 이들 사이에서 하늘거리는 수의에 싸여 누워 있는 바틀비의 창백한 모습이 떠올랐다. (p. 35)



윌리엄 트레버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맨 처음에 실린 「욜의 추억」은 시작부터 묘했다. 호텔 테라스에서 깜빡 잠든 미스 티처가 눈을 떠보니, 산책을 나간 친구 미스 그림쇼가 앉을 자리에 낯선 남자가 와 앉아도 괜찮겠느냐고 묻는다. 미스 티처는 차마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퀼런이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대뜸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미스 티처는 그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준다. 나였다면 진돗개 하나 발령과 동시에 이 사람이 계속 앉아 있으면 어쩌지, 해코지하면 어쩌지, 나중에 따라오면 어떡하지, 아마 온갖 걱정과 추측부터 하느라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못했을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내 앞에 앉아 있게 되는 이 상황 자체를 이렇게 오래 두고 보지도 않았을 거다.

처음에는 ‘도대체 이건 무슨 상황이지?’ 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왜?’를 따지고 있을 틈조차 주지 않으니 말이다. 퀼런이 욜에서 보낸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려줄수록,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이 상황을 조금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됐다. 미스 티처가 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왜 낯선 남자의 사정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는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등등, 이 모든 걸 판단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다른 한 사람이 그것을 들어준다는 일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만큼. 이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미스 그림쇼의 등장으로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다. 여기서 흥미롭게 들여다본 것은, 미스 티처가 퀼런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은 아주 사적인 마음과 그 마음을 옆에서 너무 아무렇지 않게 끊어버리는 미스 그림쇼에게서 느끼는 미묘한 불편함이었다.

“우리는 추억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윗옷 어깨에 비듬이 내려앉은 지저분한 낯선 남자의 존재만으로도 짜증이 나 있는 미스 그림쇼에게 아무렇지 않게 껄껄대며 말하는 퀼런. 마치 ‘당신이 하는 말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사실인지조차 알 수 없군’ 하는 표정으로 어쩔 수 없이 가벼운 대답 정도만 해주는 미스 그림쇼. 그런데 그 ‘가벼운 판단’이 미스 티처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것처럼 보였다. 아직 이야기를 다 듣지도 않았는데 누군가의 아픔을 이미 자기가 아는 도식 안에 넣어버리는 모습에 실망한 것 같기도 했다. 이쪽도 저쪽도 이해는 갔다. 언제나 타인의 마음을 깊이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비난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막상 내가 아끼는 사람이 타인의 아픔을 가볍게 바라보는 모습을 마주하면 어쩔 수 없이 실망하게 되는 그 감정. 희한하게도 별 감흥 없이 읽어내려 간 줄 알았는데, ‘나란 사람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충분히 흘러갈 시간을 주었던가’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든다. 사람의 이야기를 오래 듣는다는 건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전처럼 낯선 사람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들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함께.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도 있지만, 이런 상황을 내가 맞닥뜨릴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한 묘한 어긋남이 「탁자」에서 이어진다. 지극히 계산적인 유대인 가구 중개업자 제프스는 탁자를 사고파는 일을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추측하고, 그들의 삶을 짜맞추며 거의 확신까지 한다. 상상은 자유. 게다가 돈도 안 들고. 그런데 짐작을 사실처럼 굳혀버리는 일에서 완벽히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사는 게 바빠 남의 일에 관심도 없고 신경 쓸 필요성을 모르겠다며 무심한 얼굴로 마음속으로 중얼거릴진 몰라도, 조각조각 쪼개서 들여다보면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참 관심이 많다. 문제는 자기 안에서만 완결된 해석을 붙들고 내 짐작은 틀림이 없다고 자부하면서 그 생각을 어느 순간 사실처럼 믿어버린다는 것. 이런 심리를 드러내고 끝이 나버린다면 아, 뭐야 싶을 텐데, 제프스에게서 느껴지는 건 뜻밖에도 그의 고독과 결핍이었다.

제프스는 눈을 감은 채 마음속으로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넓은 빅토리아풍 집에 홀로 서 있는 자기 모습을 보았다. 그의 집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러 달이 흐르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구는 단 한 점도 없었다. 그는 팔고 또다시 샀다. 그는 카펫을 깔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가 온전히 제 것으로 소유한 거라고는 예전에 누군가가 아무런 가치 없는 물건이라고 일러 준, 오래된 라디오 하나밖에 없었다. (「탁자」, p. 46)

조금 더 황당하고 조금 더 긴장하며 읽게 만든 「펜트하우스」는 런던의 한 건물에서 개 한 마리와 함께 사는 중년의 독신 여성 윈턴의 이야기다. 그녀가 사는 건물의 꼭대기층에는 돈 많은 런카 부부가 살고 있다. 그 집에서 일하는 비안카가 식료품점에서 만난 윈턴에게 펜트하우스 구경을 부추기고, 윈턴은 본의 아니게 자신의 개와 함께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게 된다. 수줍음이 많아 15년을 외롭게 지낸 윈턴이 먼저 다가와준 비안카의 손길을 저버릴 수가 없었나 보다. 마침 수도를 고치러 와 있던 관리인 모건까지 합세해 칵테일을 마시는 세 사람. 그런데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던 모건이 꽃병을 깨트리고, 카펫 한가운데가 큼직하게 젖어버리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뭔가 이럴 줄 알았어 싶은 일이 기어코 벌어지니 속이 탄다. 어휴. 게다가 오늘은 런카 부부의 펜트하우스를 잡지에 싣기로 한 사람들이 오기로 한 날. 당황스러운 윈턴 앞에서 모건과 비안카는 깔깔대고, 모건은 윈턴이 데려온 개가 꽃병을 깨트렸다고 하자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 그 뒤로도 짜증 나고 어이없는 상황이 이어지는데 나랑 윈턴만 쫄려 죽게 생겼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비안카와, 관리인으로 지내며 여러 세입자의 못 볼 꼴을 다 봐온 탓에 분노와 억한 심정으로 가득한 모건. 이런 두 사람을 보며 윈턴은 나이도 훨씬 많고, “어차피 잃을 게 없는 사람”(p. 71)인 자신이 이 상황을 정리해야겠다고 느끼기라도 한 건지, 온갖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상한다. 곧이어 펜트하우스 주인 부부와 잡지사 사람들이 도착하고, 서로를 이해시키고 오해를 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는다. 윈턴이 이 집에 발을 들일때 부터 왜인지 그냥 제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천만 번 했던 내 속도 점점 끓어올랐다.

재미? 글쎄. 집중하느라 손톱을 잘근거리며 읽게 만드는 그런 재미는 아마 이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없을지도 모른다. 아직 이 한 권도 다 읽지 않은 터라 대단히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느낌상 그렇다. 그런데 왜 자꾸만 그 한 장면, 그 잠깐 느껴진 분위기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무심히 뽑아내는 한마디와 그 순간의 감정 속에서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마음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 굳이 재미를 찾지 않게 만드는 이유가 되어주는 것 같다. 「펜트하우스」의 윈턴만 해도 내내 외롭게 지내다가 타인의 손길에 15년 만에 용기를 냈다. 처음으로 남들처럼 평범하고 소소한 즐거움에 어렵게 한 발 내딛어 본 날, 그야말로 개떡같은 일에 휘말린 거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그럼 그렇지. 살던 대로 살지, 내가 무슨.’ 이런 자괴감에 다시 몸을 움츠리진 않을까. 그런데 또 누가 알아. 사람이라면 아주 진절머리가 나서 ‘아, 됐다. 나 혼자서 잘 먹고 잘 살 거야!’ 할지도 모르지.

윌리엄 트레버라는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 때문인지 궁금했었다. 그의 글이. 몇 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느낀 건, 이해가 필요한 여러 상황 속에서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은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는 거다. 인물의 말에 담긴 뉘앙스가 어느 순간 ‘아, 이거’ 하고 확 읽히면서 내가 알던 그 마음을 알아보게 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한 번씩 붙잡히기도 한다. 잔잔하게 이야기가 흘러가다가도 어느 순간 공기를 확 제압해버리는 문장이 툭 등장한다. 그 갑작스러움에 쓸쓸했고 서글펐고, 때로는 간사했고 오만했고 외로웠던 그때의 내 마음들이 자연스럽게 불려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나의 곁이 필요한 때가 있다는 생각도 하면서. 그러던 중 최근에 받아든 헤르만 브로흐의 <현혹>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나에게 속하지 않고 인류에게 속해 있는 무한성, 어제를 지워버리고 내일만을 인정하는 무한성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시시한 일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 일이란 이제는 인식하는 일이 아니고 살기, 함께 살기, 필요할 땐 가끔 도움을 베풀기이다. 나의 내일이 점점 짧아지고 있으니 그렇게라도 해서 어제를 구원하고 싶은 모양이다”


8월이 가고, 9월이 왔다. 지나가고, 새로 왔다.
새로 온 것 중에는 책도 몇 권 있다. 그리고 커피까지. 드립백, 오랜만이다. 알라딘에서 커피를 사는 건 처음이다. 디카페인은 제외하고 싱글 오리진으로만 고르다 보니 종류가 몇 가지밖에 없어, 일단 종류별로 골라봤다. 궁금하니까. 이제 차가운 컵을 쥔 손의 시원함보다 온기를 찾게 되는,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는 계절에 다다르긴 했나 보다.

그래도 아직은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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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9-21 0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윌리엄 트레버 작가 책 저도 가지고 있어 중복되어 반갑네요. 사다놓은지는 한참인데 아직 읽진 못했어요. 한때 현대문학 단편선에 꽂혀 수집?해 보리라 다짐한 적 있었는데 여적 세 권밖에 못 모았어요. 읽지도 않는데 구입만 해서 뭣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ㅋㅋ 근데 곰돌이 님 리뷰 읽다보면 아, 다시 모아야 하는 건가? 또 들썩여지기도 하네요.ㅋㅋㅋ 그나저나 알라딘 커피 많이 구입하셨네요? 드립백인가보죠? 하긴 드립백은 갯수가 적어 금방 다 먹어지긴 합니다. 저렇게 쟁여놔야 한 달은 마실 수 있겠어요. 저는 한여름에도 뜨라떼를 마시는 편인데 아직도 아아를 마시다니…많이 젊으시구나! 생각했습니다.ㅋㅋㅋ 제 주변 젊은이들?은 제가 뜨거운 커피 마시는 걸 보고 안 더우세요? 하며 깜짝 놀라곤 하시길래 아, 내가 엄청 나이를 많이 먹었나보군! 그런 생각을 올해부터 하게 되었거든요.ㅋㅋㅋ 그래서 따뜻한 커피를 마셔도 주변 사람들이 놀라지 않는 계절이 다가와 참 좋네요.^^ 그리고 즐거운 독서의 계절인지, 방해의 계절인지 모를 계절. 가을! 곰돌이 님께는 즐거운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좋은 가을이 되셨음 싶네요.^^

곰돌이 2026-09-21 08:10   좋아요 1 | URL
책장에 언젠가는 읽어야 할 텐데, 라는 마음의 짐이 느껴지는 책들 많으시죠? 저는 세계문학 단편선 몇 권, 안나 카레니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 등이 있는데요. 뭔가 스스로 작정하지 않으면(?) 안 읽힐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시작해보자!! 해서 가장 얇은 것들 위주로 꺼내봤어요. 몇 편씩만 읽어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나무님도 맛있는 커피 호로록 마시면서 윌리엄 트레버 슬쩍 만나보세요. 요즘 날씨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아, 맞다! 잃시찾 읽고 계신 나무님이시다. 그럼 덩치들에게 눈길이 가기란 쉽지가 않을.... 그럼, 더 천천히 더 느긋하게 즐기면 되겠어요. 그런데 굳이 마음을 먹지 않아도 계절의 변화나 혹은 어떤 감정의 기복에 따라 전혀 생각도 안 했는데 알아서 손에 잡히는 책이 있는 것 같아요. 점점 날이 썰렁해져서 그런지 뭔가 바스라지는 낙엽 같은 건조한 이야기도 조금씩 생각나요. 체호프의 단편도 올해 한 번 읽어보려구요. 차곡차곡 뭔가 자꾸 쌓이기만 한다. ㅋㅋ

정말 오랜만에 드립백이었어요. 다 마셔보진 못했는데, 예가체프 G1 게뎁 첼첼레 괜찮더라고요. 부모님도 드리고, 저희 언니 가방에도 몇 개 쳐 넣어주고 ㅋㅋㅋ 그러다 보면 한 달도 못 갈 것 같아요.

아, 월욜이 좋기란 거의 희박한데, 오늘은 나무님 덕분에 평소와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시작을 하게 되네요. 진짜루요. 흑..

다락방 2026-09-21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는 오늘 언급하신 책 중에서 랭스턴 휴스가 관심이 갑니다. 저는 인종차별, 그리고 디아스포라 에 대해 정말 관심이 많거든요. 그런 글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실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도 물론 관심이 있지만, 문학으로도 읽고 싶어요. 덕분에 오늘 알아갑니다.

역시, 곰돌이 님의 서재에 오는 일은 즐겁습니다. 좋은 글과 함께 좋은 책을 알아가니까요. 계속 써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좀 더 자주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루에 반드시 하나씩!! 어때요?

곰돌이 2026-09-21 09:50   좋아요 0 | URL
오늘은 이 곰이, 다락방님과의 공통점을 찾아낸 날이네요. 저 역시 인종차별, 디아스포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어서인지 많이 읽어보려고 하고 있어요. 깊이는 얕지만, 꾸준히 손길이 가요.

이따금 책을 핑계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 것이 전 여전히 ‘내가, 내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또 그때마다 당근을 손수 입에 물려주시기까지 해 주셔서 어찌나 감사한지, 직접적으로 알려드릴까요? 뭔가 범접하기 어려운(?)분들이 많은 이 공간에서 저처럼 보통의 사람들도 무언가를 쓴다는 것에 대한 주저함을 조금씩 덜어내는 계기가 주어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그 날의 하루와 감정을 책임지기도 한단 말이죠!

그런데, 삶과 운명은 다락방님께 땡투까지 해서 구매한 건데, 저 책 갖고는 계시죠? ㅋㅋ

다락방 2026-09-21 10:11   좋아요 0 | URL
당연히!! 갖고 있습니다!! (읽지는 못했지만요. 속닥속닥)

yamoo 2026-09-21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윌리엄 트레버, 허먼 멜빌 현대문학사판 2권에다가 현혹이라니.. 거기다가 제노의 의식까지...4권이 겹치네요!! <삶과 운명>3권도 주문했습니다!ㅎㅎ

곰돌이 2026-09-21 14:08   좋아요 0 | URL
yamoo님과 감히 책 취향이 비슷하다고 생각해 버리겠습니다. ㅋㅋ 최근에 올려주신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도 궁금했던 작품이었는데, 리뷰 올려주셔서 뭔가 해소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지금 언급된 책들 중에서도 몇 권 먼저 읽고 리뷰 써주시면 좋을 텐데요...

rainbass 2026-09-22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돗개 하나를 아는분과 커피한잔 하고 싶습니닷!! 우리 축구얘기도 해봐요. ㅋㅋ

곰돌이 2026-09-22 05:23   좋아요 1 | URL
세상이 숭해서 경계부터 하게 된 곰. 그러나 rainbass님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자, 앉으시죠!
 
르 몽스트르 Le Monstre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박철호 옮김 / 제철소 / 202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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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이든 낯선 상황이든, 두려움이든 욕망이든 인간은 무언가에 잠식되어갔다. 어리석음과 폭력, 무력함을 실은 대사와 관계의 아이러니를 담은 여백. 짤막한 서사와 서늘한 대사가 유독 힘을 발휘하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함축된 의미를 건조하게 던지는 방식에 공명하지 못한 순간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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