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시간은 한없이 느려지고, 한 단어와 다음 단어 사이 공간에서 예기치 못한 영원의 시간을 발견했다. 혹은 단어 사이의 공간에 갇힌 채 서서, 그를 놔두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자기 안의 경솔한 소년이 어둠에 묻힌 채 숲속을 헤매느라 쿵쿵 부딪는 동안, 공간에 갇힌 어른 앨은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기묘한 긴장감 속에서 이 작은 소년을 지켜보았다. 공포에 질린 소년이 여기가 어디인지, 이 문장의 숲에 들어섰던 지점이 어디인지 모르면서도 얼떨결에 빈터로, 숲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니드가 기다리고 있을 빈터로 들어서지는 않는지 지켜보는 것이었다. - P23
아버지는 수많은 낯선 이들 사이에 서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환해졌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다 달려들듯이 칩에게 벌컥 다가와 그의 손과 손목을 밧줄이라도 되는 양 꼭 쥐었다. - P28
"요즘 기분은 좀 어떠세요, 아빠?" 칩이 가까스로 물었다. "이보다 더 좋으면 천국이고, 이보다 더 나쁘면 지옥이겠지." - P33
"나는 내가 좋아요. 그게 뭐 어때서요?" 그는 그것이 뭐가 문제인지 말할 수 없었다. 멜리사의 어디가 문제인지 전혀 지적할 수 없었다. 그녀의 자기애 넘치는 부모, 연극적 태도와 자신감, 자본주의에 대한 열렬한 애정, 자기 또래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점. ‘매혹적 내러티브’마지막 수업 때의 느낌이, 그가 모든것에 대해 실수했다는 느낌이 이 세상은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고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며 문제는 그 자신한테 있다는 느낌이 너무도 강렬하게 되살아나는 바람에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야 했다. - P92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진정 상태가 되었다. 몸을 숙이고 한 손을 다른 손으로 잘 받치고는 버터 돛을 단 범선이 뒤집히지 않게 접시에서 높이 들어 올렸다. 그는 입을 벌렸고, 물 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듯한 배를 쫓아가 꿀꺽 삼켰다. 해냈다. 해냈어. - P104
어느 여름날 1막을 다시 읽다가 구제할 길 없이 엉망이라는 사실에 새로이 충격을 받은 그는 바람을 쐬러 서둘러 밖에 나가서는 브로드웨이를 걸어가 배터리 파크시티의 벤치에 앉았다. 허드슨강 바람이 옷깃으로 스며들었고, 쉴 새 없이 윙윙대는 헬기 소리와 트라이베카에 사는 백만장자 어린아이가 고함치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는 가운데 그는 죄책감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팔팔하고 건강한데도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니. 일을 잘하기 위해 푹 자고 건강관리에 신경 쓰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낯선 여자들과 시시덕거리며 마가리타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신나게 휴가 기분을 내지도 못했다. 이렇게 실패하느니 병이 나 죽어가는 편이 훨씬 나을 듯했다. 데니즈의 돈과 줄리아의 선의, 자기 자신의 능력 및 지금껏 배운 것,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경제 호황의 기회만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건강한 육체까지 강가에서 햇볕을 쬐며 헛되이 날리고 잇었고, 이 때문에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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