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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9년 12월
평점 :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이른바 지적욕구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인간본성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인간상위 욕구라는 가정에 근거하지 않아도 된다. 실천적 삶의 지혜확보 차원의 단순한 동기에서도 얼마든지 지식은 갈망되어 질 수 있는 것이다.
특정분야에 치중하는 소위 전공영역이든 사고의 윤택함을 위한 교양이든간에 공부의 시작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역사'라 할 수 있다. 역사공부에서 학습자 주관의 개입은 무척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역사 전체를 조망한 다는 것은 엄청난 과욕이라 할 수 있다. 학습자는 최소한 자신에게 필요한 역사를 발췌하는 안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다만 너무나 당연한 관심사를 갖는 것은 선택 의지가 발휘되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과학도가 과학사에 중점을 두는 것은 취사가 아니다.
주경철 교수님의 서양사 관련 저서들은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을 역사에 두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측면에서 큰 교훈을 갖는다. 지혜와 지식을 초월한 역사의 진면목을 발견하도록 흥미로운 아이템들을 제안하기도 한다.
"문학으로 역사을 읽고, 역사로 문학을 읽는" 형태의 연구 결과물은 인문학에 조예가 있는 경우라면 시도해 볼 수 있을 만한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필자의 과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이런 의도가 전면에 등장된 책은 못 본것 같다. 그러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한 가지는 분야를 넘는 기획 자체가 예민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그러한 문제점들은 발견할 수 없었다.
두 장만 소회를 밝혀본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에서 소개되는 아레오파고스 판결장면에 관심이 끌린다. 서양법제 전통적 기원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형사절차에서 중요 당사자로 부각되는 있는 '피해자'는 당시에도 배역이 없었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온다. 사법 피해자의 권리문제에 대한 근원적 논의는 결국 역사에서는 찾기 어렵다고 해야 할 것인가. 물론 '인권'으로 접근은 얼마든지 가능할 수는 있다.
단테신곡강의(이마미치 도모노부, 이영미 역, 안티쿠스, 2008)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남아있어 "연옥 편"이 반가웠다. 신곡강의에 중세 연옥 탐험가들의 일화가 소개돼 있다. 그들이 주로 탐사하던 장소는 북극과 남극 지방이었다. 신곡에서 연옥은 밤이 없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백야현상이 일어나는 극지방 근처에 연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연옥은 없었다. 연옥을 탄생시킨 것과 그것을 찾아 나선 것이 모두 인간을 통해 이루어 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