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샌댈교수가 애틀랜틱먼슬리, 뉴버블릭, 뉴욕타임즈 등 미국의 대중 간행물에 투고했던  글들을 묶어낸 것이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공공생활과 도덕조명"을 집필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현실사회에 노정된 민감한 문제들의 상당수가 공공생활과 도덕 사이에 부조화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공생활과 도덕은 상호의존적 관계를 이룬다. 건전한 공공생활에 도덕은 필수적 전제 요건이다. 그런데 엄정한 도덕이 갖춰졌더라도 공공생활이 미흡하다면 동양적 수행문화의 확산만을 이룰 뿐 건전한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공생활의 번영과 그것에 비례되는 도덕의 성장은 현대 사회에게 주어져 있는 거시적 과제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도덕붕괴를 위협하는 두 가지 요소로서 '경제우위 헤게모니'와 '법률의 도덕지배화'를 지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고뇌에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 기본적으로 매우 큰 괴리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1910), 우드로 윌슨(1912), 프랭클린 루스벨트(1936) 시대에는 "경제적 불평등 앞에서 정치적 평등의 무의미(p.143)" 가능성을 우려했지만 오늘날에는 대기업의 경영난이 국가에 미치는 부정적 파장에 주된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의 정치지배화의 부정적 단면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대칭적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도 경제 지향적 태도로 인해 야기되어온 많은 문제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데 많은 성찰이 요구된다. 

   법률의 도덕지배화에 대한 저자의 우려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소개되었던 테마들과 중첩되었다. 소수집단 우대정책에 대한 법률과 도덕의 대립적 해석 가능성, 칸트 혹은 클린턴의 사례 등이 그러하였다. 물론 피해자와 관련된 저자의 주장은 현대 피해자학에 새로운 논쟁을 촉발 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사법개혁추진위워회 등에서 형사절차에서 피해자 지위향상에 대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샌댈은 인과응보 논리를 근거로 피해자의 개인적 의견이 피고의 형량을 증가시키는데 작용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법의식과 법감정도 중요한 것이지만 도덕감정을 염두할 필요성의 제기는 법률제정 절차의 시작을 도덕성 검토로 정해야 한다는 요구와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국가는 도덕적 판단에 대해 객관성을 지켜야 할 것이다. 샌델교수는 '도덕'이야말로 공동선의 구축을 위한 핵심 테제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극히 평이한 주장이지만 한국사회에 넓은 호응을 일으킨 대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일상에 착오적 행태들을 논거로 활용하는 탁월함이 독자들에게 도덕에 대한 재인식을  유도하게 만든 것이다. 이 책들에서 주장내용들을 통해 최소한 공동선의 확산을 위해 그에  반하는 것들에 대한 국가적 관심 투여가 필요하다는 객관적 입장을 갖을 수 있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 여론 중에서 민주주의의 후퇴와 관련된 맥락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어느 정부이든 모든 국민들로부터 일관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는 비합리적이다. 국정비판은 매우 자연스러운 민주주의적 의견제시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국민의 부정적 국정평가 의견은 피드백의 원천자료에 포함시키는 것은 바람직한 정부의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점에 대한 심각한 취약성이 여러 국면들에서 포착되어 왔다.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샌델교수의 책들을 읽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제라도 정부에 대한 비판적 의견들을 정책환류의 매커니즘에 포함시켜 나가기를 희망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01-03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3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국 근대사 산책 1권 - 개화기편, 천주교 박해에서 갑신정변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허기를 느껴 식사할 때 밥맛은 그 이상이다. 궁금한 것을 찾아볼때 습득되는 정보의 저장성은 막연한 경우보다  훨씬 뛰어나다. 욕구선행은 인간능력을 초과시키는 조건변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욕구는 때때로 호기심 정도로 치환해 볼 수 있다. 

  시동을 걸어놨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에너지만 낭비하게 된다. 종종 근대사에 대한 호기심을 경험해 왔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고 다른 호기심으로 대체되거나 기껏해야 단권으로 해결해 보려 하였다. 박노자와 허동현을 짧게 읽어보는게 가장 구체적인 근대사 욕구충족 자세였다. 시동을 걸었을때 강한 목표의식을 훌륭히 활용했다고 할 수 만은 없을 것 같다.

  강준만 교수는 성실한 연구자의 표상이 되는 것 같다. 탁월한 '글쓰기'실력에는 욕심이 일어난다. 그런데 10권짜리 근대사 책을 기획했다는 것은 미쳐 알지 못하였다.  

  그 첫 권을 집에서 틈나는 대로 읽어나갔다. 비 전공자라는 지적 가능성을 완벽하게 대비하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한국 근대사 사건과 그와 연계되 현대사회를 연결시키는 편집방식이 특출하다. 전권을 읽어나가기로 결정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양이란 무엇인가 : 동경대 교양학부의 독서론 강의 - 삶과 철학 1 아로리총서 6
동경대 교양학부 지음, 노기영 외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을 완벽하게 평가해 보겠다는 발상은 애초부터 무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실의 평가는 특정 영역에 한정될 수 밖에 없다. 필기시험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암기능력이 전부이다.  암기능력만 측정한 필기점수가 인간능력을 대표한다.  

  '인간' 평가를 시도하는 경우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체력, 적성, 인성에 대한 수치부여를 시도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교양'도 여기에 해당한다. 인간의 기본적 질문들에 대한 고뇌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데 기여하는 태도가 된다.  

  "교양이란 무엇인가?"에서는 교양의 영역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교양이 무엇인지 구체화 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양함양은 불가하다.  

  책에서는 교양의 영역을 언어권, 전공 단위로 제시하는데 결국 책 소개로 귀결되고 있다. 읽어 본것도 있지만 제목 조차 생소한 것들이 더욱 많았다. 전공이 교양을 바탕으로 하는 본격적인 지적활동이라 할 수 있다. 교양을 위한 도서목록들을 보면서 전공공부를 할 만한 기본적 자세를 갖추고나 있는 것인지 심히 조심스럽기만 하다. 차차 읽어 나가는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개그 콘서트 - 철학, 개그처럼 즐겨라!
토머스 캐스카트 & 대니얼 클라인 지음, 김우열 옮김 / 럭스미디어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필수적인 철학사유에 ‘목적론’이 포함되는 예는 드물다. 철학의 유용성은 최소한 현실세계를 풍요롭게 하는가의 문제를 중심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목적론이 이런 것과 전혀 무관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신비주의 차원에서 ‘불순한 철학’으로 악용되어 온 경향성은 경계될 필요가 있다. 오늘날도 종교 스펙크럼 내에서 ‘목적’은 전가의 보도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나 맹종 강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이용되는 경향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목적론의 부정적 활용 가능성에서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것을 애용해왔다.  목적론적 사유가 신중한 사태파악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일체의 외부조건과의 접촉에서 일정한 목적론적 인식의 전제는 적어도 ‘존중’을 만들어 내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경험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본 서의 핵심 테제가 ‘목적’인 것으로 오해될 수 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본 책은 서양철학사의 대강을 유모어와 연관지어 요약해두고 있다.
그런데 서두를 목적에 관한 사견으로 개시한 것은 독서를 하면서 이 책의 목적에 궁금증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애용하는 목적론을 이 책에도 투영해 본 것이다.

  철학서라 생각했으니 구매하여 읽은 것이었지만 독서가 거듭될수록 철학보다 ‘유모어 목적서’인가에 대해 오해될 소지들이 발견되었다. 물론 객쩍은 유모어가 대충 나열된 허섭한 책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타인에게 권해 줄 만한 것인가를 점검하는 독서습성 때문에 기인된 일종의 우려가 들었던 것이다.  독서 후기를 포함하여 책 전반을 평해본다.

  일단, 이 책은 ‘서양철학사’를 선행하고 읽어야 하는 중급 철학서로 분류되는 것이 옳겠다. 책 표지 일러스트가 연출해주는 가벼움과 본문에서 느낀 무거움은 이른바 '표리부동'했다고 할만 하겠다.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국가별로 웃음의 코드에는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의 유모어가 한국에서도 같은 수준으로 통용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직역과 완역을 벗어나 기왕 웃기려 한 것이었다면 과감하게 한국화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번역자의 노력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셋째, 도서출간을 기획하는데 경우라면 편집상 참고할 가치가 있다. 예컨대, 전공분야의 이론들을 설명하면서 연관된 유머들을 수집하고 소개하는 방식이다. 분야에 따라서는 참신한 책이 될 수 있을 것 이다.
  넷째, 웃기위해 고민할 때 더 큰 재미를 경험하는 경우도 있지만 계속적으로 반복되면 웃는 일 자체를 포기하고 싶을 수 도 있을 것이다. 다만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다를 수 있다. 좀 더 솔직한 책 소개가 필요하다는 사견을 에둘러 본다.

  최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향상되고 있다. 인문학 활성화는 사회 건전성을 직접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매우 긍정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대중적 인문학서의 다채로운 보급이 반가운 이유다. 이 책도 그러한 관점에서 우선적 가치를 부여해 보고자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이른바 지적욕구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인간본성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인간상위 욕구라는 가정에 근거하지 않아도 된다. 실천적 삶의 지혜확보 차원의 단순한 동기에서도 얼마든지 지식은 갈망되어 질 수 있는 것이다. 

  특정분야에 치중하는 소위 전공영역이든 사고의 윤택함을 위한 교양이든간에 공부의 시작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역사'라 할 수 있다. 역사공부에서 학습자 주관의 개입은 무척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역사 전체를 조망한 다는 것은 엄청난 과욕이라 할 수 있다. 학습자는 최소한 자신에게 필요한 역사를 발췌하는 안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다만  너무나 당연한 관심사를 갖는 것은 선택 의지가 발휘되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과학도가 과학사에 중점을 두는 것은 취사가 아니다.

  주경철 교수님의 서양사 관련 저서들은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을 역사에 두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측면에서 큰 교훈을 갖는다. 지혜와 지식을 초월한 역사의 진면목을 발견하도록 흥미로운 아이템들을 제안하기도 한다. 

  "문학으로 역사을 읽고, 역사로 문학을 읽는" 형태의 연구 결과물은 인문학에 조예가 있는 경우라면 시도해 볼 수 있을 만한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필자의 과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이런 의도가 전면에 등장된 책은 못 본것 같다. 그러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한 가지는 분야를 넘는 기획 자체가 예민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그러한 문제점들은 발견할 수 없었다.  

 두 장만 소회를 밝혀본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에서 소개되는 아레오파고스 판결장면에 관심이 끌린다. 서양법제 전통적 기원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형사절차에서 중요 당사자로 부각되는 있는 '피해자'는 당시에도 배역이 없었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온다. 사법 피해자의 권리문제에 대한 근원적 논의는 결국 역사에서는 찾기 어렵다고 해야 할 것인가. 물론 '인권'으로 접근은 얼마든지 가능할 수는 있다. 

  단테신곡강의(이마미치 도모노부, 이영미 역, 안티쿠스, 2008)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남아있어  "연옥 편"이 반가웠다. 신곡강의에 중세 연옥 탐험가들의 일화가 소개돼 있다. 그들이 주로 탐사하던 장소는 북극과 남극 지방이었다. 신곡에서 연옥은 밤이 없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백야현상이 일어나는 극지방 근처에  연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연옥은 없었다. 연옥을 탄생시킨 것과 그것을 찾아 나선 것이 모두 인간을 통해 이루어 졌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