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생각들 - 유가에서 실학, 사회주의까지 지식의 거장들은 세계를 어떻게 설계했을까?
황광우 지음 / 비아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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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 블로거님 서재에서 '지식의 역사'라는 신간역서의 소개글을 읽었다.  기존 독서목록 중 유사한 의도로 집필된 책이 있었던 것 같아 책장을 좀 훓어 보았다. 사회사상사(김대환, 서울: 법문사, 1991)가 우선 눈에 띄였다. 그런데 찾는 것을 발견했을때의 반가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좀더 두리번 거려봤다. 이내 발견의 성취감이 느껴지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위대한 생각들"  바로 이 책이었다. 웬만하면 책은 구입해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실공간의 서재 책들은 대부분 온이든 오프이든 구매라는 거래절차를 거친 것들이다. 그런데 이책은 이와 무관한 매우 희귀한 경로를 통해 내게 도달했다. 선물받은 것이다. 특별히 선물을 받을 만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선물이었다. 

전달받을 때가 마침 한가한 무렵이라 하루 이틀 새 읽고 오늘 발견한 그 정도에 꽂아 두었다.  반 년전 일이다. 저자가 "철학 콘서트" 등 대중 철학서로 유명하신 황광우님 이시라는 것도 오늘 알았다. 구입하는 경우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구매를 클릭하는 단계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저자를 확인하지 않는 경우는 절대 없기 때문이다.

지식의 역사가 곧 생각들의 역사 아닐까. 이책의 장점은 10개 챕터에 서양과 동양을 5장씩으로 균형을 맞췄다는 점이다. 한국의 생각도 실학과 동학으로 두 장이나 할애되어 있다. 사상사의 책들로는 이례적인 배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사상사에 초보격인 분들에게 비교적 용이한 접근로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책의 특징으로 들 수 있다. 

다만 책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하고 규모있는 사상적 흐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것 같다. 리뷰의 제목에서 밝힌 것처럼 편린들로 읽혀지기 십상일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으로 말하자면  다른 주장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장별 내용을 유기적으로 포착해 내기위해서는 상당한 내공이 요구된다.

요즘에 이러한 유형의 사상사 책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쉬워 보인다고 그것이 진정 쉬운게 아니라는 점이다.  제목만 보면 한권으로 뭔가 달성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읽어도 초보요 안 읽어도 초보가 되는 상황이 발생될 우려가 있다.

사상사라는 덩어리에 집착하기 보다는 낱개들을 특정하여 접해 나가는 전법이 더욱 효과적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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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의 철학 - 자유의 토대로서의 개인주의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3
이진우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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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란 다양한 구성물의 결합체이다. 각각의 구성요소들은 시대상황과 일정한 사유체계에 의해 형성된 인위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제도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총합적인 결과물보다는 각각의 구성물과 그를 이루는 부속품들을 파악하려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분석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프라이버시’라는 구성요소로부터 비롯되는 민주주의는 어떠한 것일까. 저자는 프라이버시에 대해 깊은 애정을 표명한다. 시민들이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점을 우려하기도 한다. 방범용 카메라에 대해 자유의 속박을 인식하면서도 치안질서를 위한 ‘감내’의 미덕을 발휘한다. 감시의 허용이 현대 시민의 숙명이라고 스스로에게 양해를 구하는 태도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인의 특권에 대한 계약적 양도는 민주주의의 본질인 프라이버시를 침식시킬 수 도 있다. 첫째, 프라이버시가 사멸을 맞게 될 수 있다. 둘째, 민주주의적 개인주의에 대해 오해를 강요받게 될 수 있다.  

  개인과 집단의 양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균등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문화적 차원에서 정착시키기 위해 개인의 권리에 대한 더욱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프라이버시권의 강화노력은 이를 이루는 첩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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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 미국 수정헌법 1조의 역사
앤서니 루이스 지음, 박지웅.이지은 옮김 / 간장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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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타산지석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타인의 행위가 비록 모범적이지 않다고 할지라도 자아 연마에는 활용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본 서는 미국 사회에서 수정헌법 1조의 해석을 요청했던 사건들과 그에 대한 대법원 판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각각의 사례들이 한국사회에서 원론적 자유를 논의하는데 필요한 여러 질감의 타산지석들로 읽혀졌다. 거칠고 못난 현무암같은 것들도 있고 옥돌처럼 유용하고 예쁜 모양의 것들도 있었다.

  일부 대학에 ‘미국학과’가 개설된 것에 의아해 한 적이 있었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 이후 식민지개척, 독립전쟁, 남북전쟁, 양차대전과 대공항, 팍스아메리카나 등 몇 가지로 간추려지는 역사에 대해 독립학문의 지위를 부여한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얼마지 않아 이러한 사고가 극도로 편협한 것이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미국은 독립적인 관점으로 연구할 가치가 충분한 전방위적 멜팅팟인 것이다.

독서 중 여럿의 장면들이 교차되며 떠올랐다. 그것들 중 가장 강렬했던 이미지는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 인양되어 크레인에 매달려 있는 천암함의 붉은 절단면이었다. 당시 상황에서 ‘언론의 태도’를 본 서로 투영해 봤다.

1971년 6월 뉴욕타임스는 베트남 전쟁관련 국방부 비밀자료를 게재하면서 뉴욕타임스 대 미합중국(New York Times v. United States)사건이 쟁점화 되었다. 독서목록 중 이에 대한 내용이 소개돼 있던 책으로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등이 있다. 다니엘 앨스버그의 투철한 언론인 자세와 메카시즘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 내용들을 진지하게 읽었었다.

  뉴욕타임즈와 미합중국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펜타곤 페이퍼의 출판’을 허용하는 것이었다. 이 판결에서 블랙대법관은 “오직 자유롭고 규제되지 않는 언론만이 정부의 기만을 효과적으로 폭로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언론에 대한 간섭이 정부의 자유로운 부정행위의 여건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저자는 9·11 이후 미국 언론의 순종적 행태를 지적하였다. 당시 공포 분위기와 비애국적 오해를 벗어나기 위한 소극적 언론태도를 회의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언론의 나약한 태도와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감옥의 고문간에 상관성을 부여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에서 언론의 자유가 문제되었을 때 핵심쟁점은 ‘국방비밀’과 ‘팩트’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언론이 군사기밀을 무위화 시킨다는 우려와 언론통제라는 두 개의 가치에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천안함은 사회적 불신의 대명사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한 의심을 공개적으로 하는 경우 고발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언론의 비판이 비판되는 현상도 확산되었다. 확실한 것은 한국 언론의 태도에 ‘용감성’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 시 뉴욕타임즈의 용감한 언론정신과 9·11테러 당시 언론의 순종성으로 인해 가려진 악행들은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직접적으로 인식하도록 도왔다. 

성에 관한 표현의 자유도 다루고 있다. 20세기 초에 잠깐이었겠지만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Lady Chatterley's Lover)’에 대해서도 음란성이 인정되었다는 것은 약간 의외였다.
브래넌 대법관은 “현 공동체의 기준을 적용하는 평균적인 인간이 보기에 그 내용의 지배적인 주제가 온통 호색적인 흥미에 호소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여부”(p. 196)를 음란검열의 기준으로 삼았다. 비교적 명확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더글러스와 블랙 대법관은 수정헌법 1조의 절대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음란물 검열에 반대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이 더욱 미국적이기는 하다. 검열기준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검열의 기준이 ‘노출수위’로 정해지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저자는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인 루터트 머독(Rupert Murdoch)의 선(Sun)에서 상반신을 노출한 모델의 사진게재를 예시하였다.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보편적으로 보다 납득가능 한 구체적 기준이 마련되기를 바래본다.

  이외에도 혐오의사 표현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이 촉발되었다. 한국사회의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설정되어야 할 상황에 봉착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언론의 자유를 전제로 하겠지만 다문화, 탈북자 등으로 형성된 소수자적 집단이 혐오적으로 해석되고 표현되는 풍토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리뷰를 책에 대한 전반적 소회와 편집에 대한 건의로 마무리해본다. 미국은 법률과 판례로 작동되는 국가이다.  이 책은 미국의 역사에 등장했던 다양한 법제와 판례들을 소개함으로써 미국사의 이해를 돕는다. 미국역사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는 분들은 일반 현대사 책과 함께 일독하는 것을 권한다. 다만 소개되는 판례들이 종적 시간진행을 따르지 않는 다는 점과 직역체 번역은 약간 아쉬웠다. 그리고 너무 소소한 것 일지라도 책에 대한 바램을 밝히려는 마음으로 적어보기로 한다. 책에서 판례의 직접인용은 흐릿하게 인쇄해 두었는데 약간 불편했다. 굵은 글씨체로 하거나 일반체와 같은 짙음으로 하되 박스처리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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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 이 사람을 보라 - 학문과 지식은 세계를 어떻게 바꾸는가?
김덕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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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을 포함한 사회과학의 세부학문 분야에서 베버의 주관은 초월적으로 수용되어왔다. 이러한 점에서 그를 특정하는 ‘사회학의 창시자’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편협한 것이 될 수도 있겠다. 사회과학의 분수령에 그가 있는 것이다.
본 서는 막스 베버에 대한 인물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베버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과 당대의 상황에 대하여 부연이 세심하다. 베버만을 알고자 했다면 이러한 배려가 오히려 불편할 수 있을 정도이다. 만일 막스 시대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거나 아니면 호기심이라도 있는 경우라면 많은 정보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책의 특색이 여기에 있다.

베버의 본격적인 연구활동은 ‘경제분야’를 통해 개시되었다. 구체적인 주제는 엘베 강 지역 노동자에 관한 연구였다. 연구의 가설은 “원주민 농부의 도시 이주지역에는 슬라브계의 저렴한 노동력이 충원된다” 또는 “… 기타 지역의 국민이 이주해온다” 정도로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경제학을 표방했지만 내면적인 변수들의 가치는 멀티적이다. 초발 학자 시절부터 학제적인 연구감각이 돋보인다. 사실 도시 이주지역에 대한 유입 노동자의 인과성 고찰은 현재로서도 용이한 연구라 할 수 없다. 더구나 당시 인구조사에 대한 실증연구 수행의 곤란성을 고려하면 연구수행 자체가 경이롭다.

사회학은 사회적 행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과학이다(p.160). 우리는 금발의 여자와 갈색머리 여자의 미모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p. 154). 베버는 "사실과 평가의 결합에서 오는 가치판단"(p.154)을 마치 이질적인 두 영역의 강제적 결탁으로 의심해 보았던 것 같다. 이런 식의 냉정은 사회과학의 영역축소를 일으키는 통찰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경험과학은 주관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밝히는 것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는 파격적인 우려는 오늘날 실증연구 분야의 학풍에 시시하는 바가 적지 않다.
베버는 행위하는 집합체는 인격이 없다는 점에서 개인을 옹호했다. 경험주의 산물을 국가에서 활용하는 방식의 거부는 당시의 정치적인 일련의 사태들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방법설정’으로서 비판하려는 시도였던 것으로 추측해 본다.

‘비판’은 연구자의 기본적 시각이다. 다만 무조건 비판, 본질 외적 비판, 이기적 비판 등과 같은 왜곡된 비판은 에너지 낭비에 다름 아니다. 비판은 건전할 때만 가치를 갖는다.
베버의 비판은 배려있는 비판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예컨대, 짐멜의 사회학적 상호작용과 유추적 방법론을 부정하면서도 학문적 독창성을 인정하여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수 초빙시점을 피해서 비판했다.
또한 베버 자신과 상반되는 사회주의 관점의 미헬스와의 교분을 통해 학문의 절충을 시도한다. 자신과 정치적 학문적으로 다른 입장에 있던 노이라트와 톨러를 위해 법정에서 증언한다. 한때 비판했던 정치연구자 람프레이트를 수용하기도 한다. 비판했던 분야를 허용하는 것은 허용했던 것을 비판하는 것보다 더욱 불편할 수 있다.
베버의 절충은 물타기, 회색지대, 편리한 이론전개 와는 차별된다. 학문적 완전성에 가까이 가려는 절충이었던 것 같다. 차이를 인정하는 대학자의 말랑거림을 본받고 싶다. 당시 학계의 평가를 물리치고 니체와 마르크스를 인정하는 것도 베버식 절충이었다고 하겠다.

베버는 성도덕과 에로스 운동, 에로틱한 삶의 지향성을 긍정한다. 윤리적 이상주의만이 인간의 존재와 삶 그리고 행위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존중의 차원에서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의 부인 마리안네 베버도 위대함이 있다. 물론 베버의 유작 발간과 베버 연구유산의 확산에 기여한 바는 너무도 지당한 훌륭함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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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복영광사 지음, 이동철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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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에 대한 설화가 몇 가지 있다.  

그중 제일 유명한 것은 그의 부인이 사망하자 주검 앞에서 쟁반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는 장자의 어떤 사유작용에 근거한 행동이었을까.  

책에서는 이에 대한 답을 '실존주의' 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인간은 당사자가 아닌 상황일 경우에만 이성적 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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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pirin 2022-10-28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서치하다가 외람되지만 부탁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제가 복영광사의 장자 책을 너무 구하고 싶은데 구할 수가 없어서요 저는 전북 전주에 거주중이고 실례지만 책을 받아서 제본을 하고 돌려드리면 안될까요??ㅠ 소정의 사례는 하겠습니다 연락부탁드립니다 010-6789-4783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