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잠으로의 여행 - 잠에 대한 놀라운 지식 프로젝트
캣 더프 지음, 서자영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울 딸램이 밤에 푹~~그리고 좀 빨리 자기를 바라는 맘으로... 왜 이 딸램은 아들램이랑 달리 잠들때까지 엄청 오래 걸리고(엄마가 재우다가 지쳐서 잠이 안들 수 가 없다. >.<) 자다가 두어번은 깨고, 어떤 날은 간지럽다고 짜증을 짜증을...어떤날은 이유도 모르겠는데 자다 난데없이 짜증을(보통 덥거나, 쉬마렵거나이기는 함).... 아들램은 한번 잠들면 아침까지 쭉 자는 편인지라 첨에 딸램이랑 자다가 엄마가 수면부족으로 쓰러질 판국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 잘 자는 날도 있었다. (그래... 매일 그랬음 내가 죽었지...--;;) 그런 날들의 반복 속에서 궁금했다. 이 아이에게 잠은 어떤 것이라서 이렇게 다른가... 친정엄마 말씀으론 낮에 많이 운 날엔 밤에 자다가도 그렇다고(난 잘 모르겠던데...^^::) 그리고 잠들기전 활동 (쭉쭉 주물러주기와 자장가 불러주기)를 잘 하면 빠른시간에 빨리 편하게 잘 재울 수 있단 걸 발견. 그리고 내가 옆에 같이 자고 있음 계속 잘 자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뭐 다 확률적으로 높지만 항시 100% 맞음은 아니고~~^^: 어째든 잠자는 패턴을 점점 엄마와 비슷하게 맞추어 가고는 있지만 아직 난 잠을 푹 못잔 기분이 더러더러 있다.


어쨌든 이런 계기로 읽게된 책이었는데 아이의 잠에 대해, 잠자는 것 그러니까 나의 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잠이 왜 당연한게 아니고, 비용을 지불해야하는가에 대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작가는 이미 이전부터 수면에 대해 일반적(?)이지 않는 생각들을 했고, 색다른 경험하기도 했으며, 그로 인해 관심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관심이 있었던거는 같다. 그리고 자는게 당연한건데 그걸 더 잘 자기위해 각종 약물(수면제 또는 반대로 깨기위한 각성제), 각종 잠자는 도구(수면안대, 수면양말, 수면 등, 침대, 이불, 베개 등등)들이 개발되고 팔려나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 왜 잠이 수단이 되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이 책을 위한 방대한 양의 조사와 서술을 이어나가게 만든 것이다.

난 예전에 프로이드의 꿈의 해몽을 읽은적이 있는데(아...도대체 몇 년 전 이야기야? 20년이 다 되어가는...--;;) 무튼 그때 난 꿈풀이, 꿈해몽같은걸 기대하고 접근했다가 어렵다 어렵다 모르겠다하고 읽다가 포기를 했는지 다 읽었는지조차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게되었다. 혹 행복한 잠여행이라는 이 책도 그런 내용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을까하여 미리 아니라는 걸 말해주려고...물론 알다시피 꿈이 우리의 무의식 세계와 의식 세계의 중간 다리 역할 정도를 하는 것 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꿈은 극히 제한된 시간 그러니까 잠깨기 불과 얼마전의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동안 우주에도 다녀오고, 사막도 가고, 초특급 스펙터클한 액션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꿈을 통해 객관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할 주관적인 경험을 하며 깨어 있는 삶에 대한 내성을 만든다. 또한 깨어있는 동안 배웠던 지식과 그에 따라오는 감정을 자는 동안 곱씹으며 나의 것으로 마든다. 그래서 잠은 좋은 것이고, 가끔은 나쁜것이고, 또한 이상한 것이다' 이게 저자의 잠에 대한, 꿈에 대한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저자는 앞으로 수면의 미래에 대해서 '시대가, 역사적 상황이, 잠을 조절하려고하는 환상에 갖쳐있다'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이에 발맞추어 제약회사들은 약을 만들고, 수면에 관한 연구들이 생겨나고(수면은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인 건상을 회복시켜주어 깨어서의 생활을 지속시켜 준다) 있지만 우리 스스로 잠자는 상황에 대한 변화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하며, 환경이나 작업,가족 무화를 수면의 회복 기능이 발휘되도록 해야한다고 말한다.

이런 결론적인 방향보다 난 앞부분의 아이와 잠에 관한 이야기가 무척 인상에 깊었는데

- 근간대성발길질

나는 남편이 잠들기 직전에 약간 발작같이 몸을 움직이는걸 발견하고는 무척 놀랬던 기억이 있다. 근데 그건 원래 당연한 원시 반사였다는 것과 딸램이도 이런 현상을 보이곤 하는데 (무척 민감할 사항이었는데....남편에게 본 적이 있어서..ㅋㅋ) 난 유전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원시 반사였구나...ㅋ 그리고 이게 바로 잠이 일반적 그러니까 의식적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을 알려주는 특별한 전환기적 상태를 말하는게 아닌가 싶다.

- 최면 공포증 & 수면 공포증

잠들기 두려워하는 수면 장애를 일컬는 전문적 용어. 아이들이 밤에 무서워요, 괴물이 나올거 같아요 뭐 그런거 말하면서 잠 안온다하고, 불켜달래고, 자장가 불러달래고, 주물러 달래고 등등 그런 활동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걸 좀 짚어보자면 예전 원시시대 밤은 공포의 대상 자다가 물려갈 수 있는 상황이므로 육안으로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것, 내 의식이 사라지는 그 잠든 순간동안 내가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원시시대부터 내려오는 유전자에 담겨있는 자연스러운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잠이 들려면 믿음이 필요한데 이 믿음은 엄마가 내가 잠들어도 옆에 있겠지 라는 아이의 믿음정도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자장가를 듣고싶어하고(이때 자장가는 가사라기보다 - 예전부터 전해오는 자장가는 매우 잔인한 내용이나, 무서운 내용도 있다고 함. 그래서 가사보다는 단순 반복적인 멜로디가 잠이 오게 만든다는 것) 토닥토닥 나와 신체적 접촉을 해 주는 엄마를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저녁 식사 후에 씻고, 잠옷을 갈아입고, 잠자리 동화를 듣고 자장가를 부른 후 동물인형을 앉고 입맞춤을 하며 전등을 끄는 일련의 과정이 아이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전달한다는 것. 나도 밤에 깜깜할떄 자는거 무서워하는데...당연한거라고 하니 급 안심이..그리고 아이에게 좀 더 안정된 느낌을 주도록 해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 공동수면

전통 사회 관습으로 남아있는 것으로 예전에는 다 한테 어울려 잔, 심지어 더 더 예전엔 가축까지 한 지붕아래에서 같이 잤다. 동물들은 침입자로부터 보호해주고 온기를 만들어주었으며, 아기는 부모와 함께 잠을 잤고, 거의 모든 사람이 침대를 다른 사람과 함께 사용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공동수면관습은 서구보다는 우리나라같은 데 더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런 공동수면이 이루어지지 않는 서구 사회에서 더 많은 아이들이 애착물건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다섯명당 한명도 안됨. 우리집은 한명도 없음. ㅋㅋ) 공동수면과는 반대되는 형태가 서구사회의 아이를 분리해서 재우는 것인데 이것이 실제로는 산업화 과정에서 낮에 일하느라 지친 부모들이 밤에 푹 자기위한 방안으로 독립이라는 미명으로 아이와 부모의 밤에 잠자리 분리를 하였다는게 진실. 이러면 우리처럼 애를 데리고 자는게 더 맞지 않나?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불완전한존재로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고 있고, 밤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신체적 접촉을 원하는데 그걸 현대 사회는 발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을 뿐이지 옛날에는 모두 다 같이 함께 잤다는게 진실이니 말이다. 심지어 침대에서 6명도 같이 잤다는...뭐 그건 한방에 여섯명 같이 잔 우리나라 상황이랑 다르지 않는듯. 우린 좌식생활을 했고, 서양은 입식생활을해서라는 그런 차이가 아닌가 말이다.

- 퍼버방식

생후 6개워 또는 그보다 조금 더 큰 아기를 재울 때, 침대에 눕히고 일정한 방법으로 달랜 다음, 아기 스스로 잠들 수 있을 떄까지 점차 시간을 늘리며 아기만 둔 채 떠나라고 주장함. 내가 이 방식 써보려다가 순둥이 울 아들램이 밤낮이 바뀌어서 몇주간 고생했던것을 생각하면....--;; 이 퍼버 방식은 며칠밤만 실시하면 아기가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잔다고 주장하니 나같은 직장 다니느라 잠이 부족해서 밤에 축 자기 원하는 부모들은 당연히 환영할 수 밖에...그러나................아이가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막 울다가 멈추는게 스스로 진정하기에 성공했다기보다는 절망했다는 표시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절망이라니...........난 너무 충격적이었다.

유아기의 수면 조건이 우리의 행복감과 관련되며 어른이 되어서까지 이어진다. 잠잘때 불안하고 힘든아이가 커서도 우울함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제일 관심이 있었던 부분이 아까도 말했지만 딸아이의 잠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아이가 좀 더 편하게 자고, 질좋은 수면을 가질 수 있도록 좀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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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도 연애처럼
김지윤 지음 / 김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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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직장생활을 연애처럼하면 난...... 천생연분을 만날때까지 주구장창 마이웨이를 걷고 있어야할지 모르겠다. 물론 난 왕년에 한 인기를 하였으나 솔직히 말해서 밀당도 잘 못했고, 더욱이 연애하는 재주를 타고난건 절대 아닌지라... 다만 그땐 지금보다 좀 더 봐줄만했고 나름 귀여운 매력이 이성에게 어필하지 않았을까하는 ㅋㅋ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쩔~ 저를 직접뵌 분은 드무니까... 진짜인걸로 ㅋㅋ

무튼 내가 이 책을 보게된건 이제와서 연애를 좀 잘해보겠단건 아니고 말그대로 직장생활을 좀 더 편하게 해보자는데 의의가 있었다. 난 이 회사로 이직을 하고 초기에 상당히 곤욕을 치뤘는데 이렇게 적응이 힘든 곳은 사실 처음이었다. 많이 모나지 않은 편이고 두리뭉실하지만 아닌건 절대 아닌 이노무 성격과 한가지는 알 수 없는 텃새. 그건 아마도 서로가 서로를 너무 몰라서였던건 아닐까?^^;;

사실 첫장을 읽으면서부터 난 왜 이제야 이책을 만났는가 그런 아쉬움이 살짝 들 정도. 바로 얼마전 겪은 그런일에 대한 해답이 바로 여기 있었으니까 말이다. 사건인즉슨 회의시간에 누군가가 컵을 탕비실에다 늘 먹고 그냥두고 간다는걸 알게되었다. 그래서 난 별생각없니 "범인 색출을 한번 해볼까?" 뭐 대락 이런 표현을 썼는데 그 범인이었단 당사자가 발끈하면서 씻을때 같이 씻으라고 둔게 뭐가 그리 큰 문제냐 범인이라니, 색출이라니 그런 단어를 쓴 것은 너무도 불쾌하다 그렇게 안 봤는데 참 이상한 사람이군 등등 나는 저 말 한마디하고 이런 말도 안되는 얘기를 고스란히 들어야했다. 그러나 더 문제는 그 사람은 나름 우리과의 실세이며, 한번 삐지면 뒤끝 작렬인 그런 사람인 것. 아~~~~~~ 똥낀놈이 성낸다가 바로 이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약자인 나는 뭔가 해결책을 간구해야했다. 불편하게 마주 지나침이 몇 번. 내 사무실에 콕 쳐 박혀있다 퇴근해서 남편과 얘기를 했더니 남편은 아주 쉽게 "그냥 커피 한잔 사 주고 어제는 당신인지 모르고 한 얘기였고, 더욱이 마음상하게 할 뜻은 아니었는데 너무 곡하게 여지기 마시라~" 라고 말하라는 거였다. 말이 쉽지. 궁시렁궁시렁 나랑 눈도 안 마주치는 그 사람한테 어떻게.... 소심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내가 어.떻.게...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불편한 마주침이 더 불편했던 관계로 신랑말대로 커피 한잔 사 들고( 그 사람이 잘 해서 내가 사과하는게 아니고, 그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라고 신랑이 말 했음) 쭈삣쭈삣... "커피한잔 드세요. 어제는 제가 일부러 그런건 아니고 우연히 그 상황에 말을 하다보니..." 그런데 그때까지 쌩~ 찬바람만 날리고 있던 그 사람의 눈에 웃음이 비치는게 보였다. 나 별마디 안했는데? 오~~ 효과 짱! 이렇게 생각했던 나의 경험이 잘 정리되어 나오고 있었는데 이걸 바로
부정적 기류의 공론화라고 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기류든 감정이든 그것은 공론화하고 입 밖으로 낼 때에만 긍정적으로 선회할 수 있다. 부정과 긍정의 감정이 한 곳을 통해 흐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문득 책을 읽다 든 생각은 나는 여자고 나름 사회생활을 많이 했지만 남자들에 비해 이런 대화방법이나 소통방법에 대해 무지하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이렇게 책을 읽고 배우게되는--;;;) 신랑에게 종종 조언을 구하면 아주 상쾌하게 해결되는 경험을 하는데 신랑이 처세에 능한편일 수도 있겠지만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 좀 더 이런 방법들을 어렸을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 다른 일례로 회의시간에 미친듯(? - 좀 격한 표현이지만) 싸우던 사람들이(주로 남자)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한 분위기속에서 시시콜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걸 보면 왠지 이상했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회의는 회의이고 업무은 업문 친분은 친분인데 그걸 잘 구분하지 못하는게 문제. 어쨌든 나는 이제 이 책을 통해서 내가 그토록 갖고싶어했던 센스를 좀 더 장착할 수 있을 거 같다. 학원이라도 쫓아가서 배우고 싶었던 그 센스를 말이다


너무 감동적이므로 사진 한장 남기고~ 이야기를 이어가야겠다.

센스지수를 올리는 방법은 먼저 눈치를 보라는거다. 그리고 앞서 눈치빠른 사람들을 그대로 따라해보는 거다. 센스라는 건 타인에 대한 민감성을 가져야 발달할 수 있는 기능이므로 분위기를 살피고 항상 한 박자 늦게 말해야 한다. 한 마디 늦게 말해서 앞뒤 못 가리는 선방날리기는 금물. 인간관계의 흐름을 타 보는 것. 음.. 적으면서도 상당히 어려운 것임을 직감하고 있지만 혹독한 소통 훈련으로만 얻어낼 수 있는게 센스이므로 좀 더 주변에대한 관심을 가지고 민감성을 키워야겠다.

나같이 오래(?) 직장생활을 한 사람도,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도, 연애중인 사람에게도, 아니 실은 모든 사람에게 좀 더 매끄러운 인간관계를 선사할 기초를 아주 쉽고 이해 쏙쏙 되도록 적어둔 책 '직장생활도 연애처럼'


윗 글은 김영사에서 무료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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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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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누가 이렇게 말한다면 보통은 말이다....다 코끼리부터 생각하게 된다.

그게 우리 뇌, 인지가 하게되는 일인데 우리가 하지 말하는 것을 생각 할 때도 그 것을 생각하지 않고는 안되는 것. 이걸 '프레임'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데 여기서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을 말한다. 어렵다고? 한마디로 정리해보자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 프레임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 책을 이야기할 수 가 없다. 예전에도 프레임에 관한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거기서 프레임을 잘 짜야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지고, 자아성취도 할 수 있다 뭐 그렇게 결론이 났던 자기개발서였는데 그 때 보던 프레임과 이 프레임이 같은 것임에는 분명한데 이 책을 통해 생각하게 된 프레임은 이 전보다 훨씬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그러니까 이 책에서 프레임을 논한 것은 단순히 한 인간, 개인에게 초점을 둔게 아니라 사회를 말하고, 개인들의 프레임을 교묘히 조정하던 보수세력들로 부터 계속적으로 지배 당하고 있는 우리 '이중개념주의'자들에 대한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산층 계층, 그러니까 보수적 시각에 길들어져 있으면서 진보 세력에 대해서도 받아들이고 있는, 삶 속에서 서로 다른 영역에서 상이하고 모순된 도덕 체계에 따라 행동한다는 게 이중개념주의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서로 억제하거나 서로 다른 쟁점에서 다른 관심사와 결부되어 작동하게 되는걸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정치를 대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앞쪽에는 주로 보수주의자들이 어떻게 어떤 용어들을 이용하여 이 이중개념주의자들을 자기편으로 이끌고 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가령 보수주의자들이 하는 가장 큰 원칙은 잘 먹고 잘 살자인데 여기서 그 대상은 개인, 나 자신에게 국한된다. 따라서 사회공공정책은 그들이 생각하는 의견에 반하는 활동인 것. 그래서 그것을 프레임을 통해서 교묘하게 무지한(또는 의식하지 못하는) 계층들의 생각을 조정한다. 이는 의식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마치 스폰지에 물이 스며들듯 어느새가 되어있는 무의식적인 사고까지 포함하는 무서운 활동이다. 이를 위해서 보수조직들은 아주 오랫동안 언어(용어)를 선별하고, 메세지 훈련도 하고, 그들 안에서 더 힘을 실을 수 있도록 교육하고 밀어주고 활용한다. 치밀하게...그에 반해 진보세력들은 지금의 현실적인, 사회 전체의, 눈 앞에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있다가보니 자꾸 보수 세력에게 밀리는 것. 그 일례로 부시의 국정연설에 대한 낱말의 덫에 대한 설명을 해 준다. 별것 아닌거 같은 낱말이 얼마나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읽다가 정말 놀랐다. 가령 '우리가 미국을 방어하기 위해서 부모 동의서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에 나오는 부모 동의서는 상당하게 큰 의미를 지니는데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여기에 내포된 의미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이미 성인이며, UN 국제기구는 어린아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어른이 아이에게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고, 어른이 알아서 하겠다는게 이치에 맞다는 말이된다는 것. 그 외에도 제임스 돕슨의 과감히 훈육하라에 나오는 엄격한 아버지 상과 정부활동이 같은 맥락에 두는 점을 짚는다. 엄격한 아버지는 아이가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되 의존적으로 키워서는 절대 안된다고 하는데 역시 사회복지 프로그래은 비도덕적인, 사람을 의존적으로 만드는 부정적인 활동이 되어 정부 예산을 삭감하게 하게 하는데 여기에서 사회복지 대상자를 도덕적 절제를 하지 못한 실패한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도덕적 역량이 높아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상을 주어야하기 때문에 이윤창출을 하고 있는 기업에게 더 많은 조세 혜택을 주는 것이다. 사견이지만 난 미국의회에대해 나도 모르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이 많았는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런 보수프레임에 물들어 있었던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나마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미국의회가 이런데 우리 정부는 어떠한가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 사람들이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동일시하고픈 대상에게 투표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 이익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의 정체성에 투표한다는 말입니다..중략..사람들이 언제나 단순히 자기 이익에 따라서 투표한다는 가정은 심각한 오해입니다. '

이것이 얼마전에 있었던 보궐선거결과에서 지금처럼 시끄러운데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4곳 중 3곳을 당선되었는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이 아닐까? 그들이 선택이 그냥 단순히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일치하는 것을 선택했다는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럼 이런 정체성은 어떻게 결정되나? 책을 읽으며 나는 중간층에 속할 가능성이 높고, 아직 명확한 이델로기 없이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그리고 보궐선거구의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고 그들의 무의식적 언어와 정체선이 이런 결과를 나은 것이리라.

'진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것은 진보가 믿는 흔한 속설이다. '

미국의 이라크전쟁에 대해 사담과 알카에다 사이에 믿을 만한 연결고리도 없고, 대량 살상 무기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무고한 이라크 민간인들이 미국이 떨어뜨린 폭탄으로 죽고 다치게 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있으면서도 미국 정부가 이라크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 합법적인 전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프레임을 잘 못 구성하고 있는 진보주의 자들(민주당)의 효과적 반격의 실패때문이라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다. 우리 뇌는 프레임에 부합되지 않으면 심지어 적절하고 그것이 맞다 하더라도 기존의 프레임이 유지되고 사실이 무시된다. 이것이 인간의 뇌의 놀라운 프레임 활동인 것이다. 한번 자리잡으면 변하기 어려운 그 것 말이다.

나는 정치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므로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이 즈음에서 접고 내 개인적인 이야기로 생각을 펼쳐나가 보았다. 내가 다른 곳에 비해 현직장에서 유독 힘들었던 이유들이 이 프레임의 문제였나 싶었기 때문이다. 생각 속의 내가 그들의 프레임으로 판단되었기때문에 나 자체로 (이게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내 있는 그대로로 판단되어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더 왜곡되고, 곡하게 되거나 하는 상황이 나를 힘들게 했던거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시간이 약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이런 프레임의 성격에 대해 어렴풋히 이해하고 있었던건 아닐까? 그때는 아니라고 내가 말하는게 그게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고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했는데 프레임의 변화(가령 요즘 더 얼굴이 밝아져 보인다, 편안해보인다 하는 말들) 는 나에 대한 다른 곳에서의 평가들이나(말로 이루어지는 가령 성실하더라던가 밝은 사람이라던가 등등) 상황들이 프레임의 변화로 이끌어가게된거 같다. 이와 더불에 나는 좀 더 전략적인 언어 구사를 해야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프레임 변화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 시간이 약이거늘하고 지냈던 시간들이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생각한다면 앞으로 좀 더 전략적으로 나에 대해 생각을 이끌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아직 구체적인 뭐가가 있는건 아니지만.......

이렇게 어려운(?) 내용을 어쩜 이렇게 이해가 쏙쏙 잘되게 써 놨는지 인지과학을 연구하는 학자 답다는 생각과 나는 이 책을 읽고나서 어떻게 프레임이 움직이게 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덧, 왜~ 잘 쓰려고 맘 먹고 맘 먹었는데 글이 더 꼬이는 걸까? 아~~~진짜 강추하는 책인데...나의 이 짧은 글발이 그저 아쉬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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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고객 - 고객도 모르는 고객의 구매심리를 꿰뚫어보는 법칙
김경필 지음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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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과 마주한 결정적인 이유는............내가 과연 이대로 여기에 있어도 괜찮은가?하는 물은때문이었다. 나는 지금의 직업 특성상 오는 고객(?)만 받는다. 내가 적극적으로 나의 값어치를 알아주세요, 또는 나는 이정도의 값어치를 합니다. 어서오세요~ 두 팔벌려 안내하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는 다는 거. 그저 오면 오는가보다, 가면 가는가보다 그렇게 지내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세상일이란게 어떻게 될지 모르고 요즘같이 고용이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는 나로써는 스스로 찾아오는 고객을 통한 나의 입지 선점이 필요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동안 오는 고객만 받은 수동적 주체로 살아온 내가 어떻게 적극적 주체가되어 고객이 올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고객은 나란 존재를 알기나 알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고객은 나를 판단할때 내가 속해있는 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거기에 조금 더 관심이 있는 고객이라면 내가 갖고 있는 자격증의 급수 정도를 더 알아보지 않을까한다. 그러나 고객의 니드가 뭔지 사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모든 고객이 내가 속해있는 회사를 배경으로 선택하지 않고, 모든 고객이 나의 자격증 급수에 대해 알고있는 건 또 아니니까 말이다. 그냥 막연하게 인연, 또는 운대가 맞아서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물론 고객들의 대부분이 나와의 업무에서 만족을 보인다는 건 내가 좀 내세울만한 뿌듯한 무언가는 될 수 있겠지만 거기에 그칠 뿐 그 고객때문에 소개받고 왔어요라던가 입소문이 낫더라구요는 잘 못들어본거 같다. (쓰고보니 무척 안타깝군..)

나때문에 막 미어터져나가는 그런 상황을 꿈꾸면서 '야생의 고객'은 도대체 뭔가 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기존의 마케팅은 표준 마케터들에 의해 운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고객들은 야생의 고객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건 야생의 마케터. 단순히 객관적 자료들로만 봤을땐 당연히 저걸 선택해야하는데 왜! 선택이 아닌 외면을 당하는가는 고객의 니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인것이다. 고객은 단순히 객관적 자료에 의해 이성적으로만 선택하지 않는다. 인간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 이성적으로 판단은 하되, 상상력으로 구매 한다고 할까?

고객은 비록 나를 모르고 나의 회사라는 배경을 보고 왔을지라도 최종 치료를 선택하게되는 것은 나와의 평가시간이나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 내 이미지에 어느정도 만족을 했기 때문일것이다. 이건 고객의 니드를 내가 알던 모르던간에 인식하고 있었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충족시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럼 나를 선택하지 않는 고객은 어떻게 해야하지?

월나라 고객이 송나라 상인이 가진 모자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송나라 상이니 가진 모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모자라는 형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뿐이다. 기업은 고객이 기업 자신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낯선 상황에 직면했을 때, 겉으로 보이는 기업의 상품 경쟁력이나 핵심 역량을 포기하면 오히려 살아날 방법이 생길 수 있다. 이것이 지혜로운 상인의 자기 부정이다.

..중략.. 지혜로운 기업가는 고객을 알기 위해 자신을 부정하여 고객과 소통하고, 자신을 알기 위해 고객을 부정하여 기업의 진정한 존재 이유를 깨닫는다.

그렇다. 내 틀에서 나를 너무 가두어서는 안될 것 같다. 필요에 의해서 온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필요를 만드는데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어렵다. 난 어떻게 하면 고객유치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를 바로 떠올릴 수 있게 하려면 뭘 해야하는거지? 강의라도 한번 해야할까? ^^:: 뭐든 나를 좀 알려야하겠는데...

고객에게 묻지 마라. 무엇을 원하는지 고객 자신도 모른다.

우리가 잡스에게 열광하는 것은 어른들에게 재미있는 장난감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라는 그 말이 참 와 닿았다. 나 역시 그 장난감에 열광하고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갖고 있는 컨텐츠가 별로여서 선택되지 않는 경우보다는 느낌, 분위기 같은 생각에 좌지우지 되는 경우가 더 많고, 그 생각역시 무조건적인 차별화를 말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독특한'에 더 비중을 두어야한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지금 당장 내가 갖고 있는 가치에 대한 판매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뭔가 어슬프레 깨달았달까? 르 알라스카 매장처럼 나도 슬쩍 뭐 별 의미없는 듯 무덤덤하게 자격증 좀 걸어두고(아직까진 이게 좀 나를 내세워줄만큼의 값어치는 할 듯) 팸퍼스기저귀처럼 고객이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내가 나를 보는 시선이나 객관적 잣대만 말고 우리가 또는 나를 선택했던 고객이 내게서 찾았던, 내게서 만족했던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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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단어들 - 혼돈과 모순의 향연 그리고 한 잔의 시
최인호 글.사진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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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철학 책도 시집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이름을 얻지 못한, 얻지 못할 어떤 것일 분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아무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것이 아무것으로 인식된다면 기분이 좋을 것이며 아무것으로도 아닌 것으로 홀대받아도 역시 기분이 좋을 것이다.

다로 시작하는 서문을 읽으면서 그래 좀 가볍게 마주해도 되겠구나...다행히다 뭐 이렇게 생각하며 책과 마주했다. 마침 여행갈 일이 있었기에 혹시나하며 챙겨든 책이었는데 정작 여행지에 가서는 읽지 못하고 있다가 다녀와 머리하는 동안 한 권 뚝딱(? - 뭐...설렁탕한그릇 뚝딱 그런 기분이구만..^^:) 하게 된 책이다. 사실 그 어느 누구가 자신의 글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닌이라고 인식해도 된다거나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작가의 그런 소탈함으로 시작한 글은 끝맺음이되는 그 시점까지 여러 생각들을 머리속에서 둥둥 떠다니게 만들었고, 책을 덮고도 그래? 음...하고 생각이 머물게 하였다. 아주 어렵게 문제는 제기하는 그런 글이 아닌데 참 묘한 매력이 있다.

사막을 제대로 품고 싶으면 그냥 사막처럼 열린 방향대로 혹은 별이 유혹하는 곳으로 걷기만 하면 됩니다. 목적지는 오히려 우리를 표류하게 마듭니다. 목적지가 없어야 다시 돌아올 수 있어요.

그래 우리네 사는 인생이 목표한데로, 목적지 있는데로 그냥 저절로 잘만 가게되는건 아니지. 소년의 말은 묘하게 니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말 처럼 내게는 느껴졌다. 어떤때는 몹시 아둥바둥하며, 나름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세웠다 싶었는데 인생이란 녀석은 그것과는 별개의 어떤 변수로 그 방향이 내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나아가게 하기도 하며, 어떤때는 그래..모르겠다. 될데로 되라 싶었는데 의외로 쉽게 그 길을 가게되는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저기를 가야겠다, 저기에 꼭 가야겠다하면 되려 나를 표류하게 만들어 그 순간의 상황 상황들에 대해 잘 판단하여 열린 방향대로, 별이 유혹하는 곳으로 나아가다보면 목적지에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이더란 것.

게스트 하우스 막노동자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더운데 힘들지 않으세요? 쉬었다 하세요." 아저씨는 "할만합니다. 이정도는 괜찮습니다." 라며 잠시 후 내게 되물었다. "당신은 부자인가 봅니다?" 나는 그의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 뜨거운 여름에 당신의 몸이 하는 노동이란 숙소에서 다른 사람의 노동을 관찰하면서 시원한 물을 마시는 것뿐이니까요." 순간 나는 노동자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 자리를 벗어날 수 밖에 없었다.

뭐랄까? 사실...나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의 뭔가 노동의 결과로 어떤 것 재화든 그에 합당하는 어떤 무엇가를 받는 동안에 작가는 여행을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적어도 남이 보기에는 노는 중(?)이지 노동력을 생산하는 중은 아니니 말이다. 머릿속으로 수만가지 생각이 오가고 그렇게 정신의 부산물을 만들어 내고 있을지언정 겉으로 보기에는 쉬.고.있.는 그 모습 말이다. 그런작가가 부럽다가 여행이 작가에게 만들어준 이 결과물을 보고 그래 노동이라는 것이 꼭 몸으로만 해야한다 또는 몸으로만 한다고 볼 수 있던가, 이런 정신적 노동에 대한 가치는 어쩜 더 환산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봤다.

"아저씨 저 나무들의 이름이 뭐예요?" 나는 청소부 아저씨께 대뜸 물었따. "저 나무들의 이름은 모두 달라서 저도 다 모를 지경입니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아저씨를 쳐다보며 되물었다. "아저씨, 저거 모두 같은 나무 아니예요?" 그러자 아저씨는 이렇게 답을 하고 천천히 사라져 갔다. "우리가 보는 나무는 어느 것 하나도 동일한 것은 없습니다. 그냥 인간들이 감각이 무언가에 홀리거나 길들여져서 그렇다고 착각할 뿐이지요."

켁. 그냥 저 말을보는데 목이 메었다. 섣부른 인간의 판단을 만들어내는 우리들의 얕은 지식, 결국 우리는 이런 얕은 지식으로 인해 타자 또는 희미한 주체로 전락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지식의 범위만큼에서만 보는 눈이 있고, 활용하는 능력이 있는 약한 존재일테니 말이다. 물론 내가 직접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위치정도라면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나는 지식을 활용하는 뭐 그런 분류라서....내가 가진 얕은 깊이의 빤히 보이는 그것이 최고인양 마구 나서거나 움직이지 말하야겠다는 그런 반성을 했다.

"나는 나의 추억을 알 수 없지. 아마도 그것은 질문을 하는 자네의 상상 속에 존재할 거야. 나의 추억이란 인과의 고리가 끊어진 파편화된 과저의 시간들이기 떄문에 그것을 현재화하고 재구성하는 것은 자네에게서 시작되는 것이지. 그러니까, 나의 추억은 자네 것이야."

추억이란 이름은 뭔가모를 아련함을 가진다. 그런데 막상 이 추억은 따지고보면 내가 만들어낸 허상일 가능성도 있다. 기억이라는 것은 생각보다도 훨씬 단편적이며, 놓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얼마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어떤 장소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는데 한친구는 까맣게 기억하지 못하고 되려 자기가 정말 거기에 갔었냐고 말했다. 친구들이 너가 그때 이리이리 하지 않았느냐, 그때 누구누구와 같이 가지 않았느냐 이런 이야기들을 꺼내어주고 심지어 친구의 남편도 기억을 하더란만 친구는 결국 기억해내지 못했다. 아마도 친구의 추억 한켠으로 남을 정도의 값어치(?)도 되지 않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좀 비약이 심했지만 너무 지나치지만 않다면 추억이란건 내가 내게 남아있을때 좋을 것으로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도둑은 이 골목으로 사라졌는데, 여기 도둑들은 돈만 가지고 지갑은 버리니까, 이 골목 어딘가에 지갑이 버려져 있을 거요. 천천히 찾아보시오. 너무 슬퍼하지 말고, " "할머니 고맙습니다. 지갑만 찾을 수 있다면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 그러자 노파는 웃으면서 말했따. "우리는 늘 필연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타인에 지나지 않는데 하물며 타인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이 분명하오."

우리는 이렇게 단편적인 존재인가? 내가 너에게, 당신이 나에게 꼭 이렇게 관계맺음을 정의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회라는 유기체 안에 속해있는데 말이다. 나외의 모두는 타인이라는건 너무 삭막하다 또는 참 각박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난 무척이나 의존적인 누군가와 함께가 중요한 스타일이라서 노파의 말에 움찔하다가 살짝 반발도 들었다. 그렇지만 조금 방향을 바꾸어 달리 생각하자면 내가 바로서 있지 않으면 타인과의 관계역시 틀어질 수 밖에없다는 말은 아닐까? 은혜갚기는 안되더라도 내가 그런 맘을 갖고 있다면 다음에 다시 어떤 상황에서 좀 다른 모습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니까. 그냥 섣부른 내 기대인가? ^^:

질서가 무서운 것은 모두를 같은 방향으로 향하게 만들고, 같은 속도로 달리게 통제한다는 것이다. 같은 방향은 다른 방향이 존재함을 잊게 만들고 같은 속도는 천천히 달려도 된다는 여유로움을 상실시킨다...중략..질서속에서 평온함을 얻고자 했던 인간들이 오히려 무질서가 만들어내는 우연성의 공포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뜨끔. 난 책꽂이의 책을 꽂을때 되도록이면 같은 회사의 또는 비슷한 분류의 책끼리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렇게 두면 보기에 좋다는게 이유다. 사실 좀 더 생각해봐도 다른 이유는 크게 없더는 것. 그런데 이것은 우리 아이들이 책을 보는 것에 늘상 부딪히게 되는데 아이들은 보고난 책을 원래 있던 자리게 꽂는걸 잘 못한다. --;;; 그리고 보통 자기 눈 높이에 맞는 곳에 두거나, 것도 아님 가로로 그져 빈 공간에 꽂아두기 정도만 한다. 그런 내 눈에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동이고, 내 눈에 몹시 거슬리며, 결국 아이들에게 책망의 소리를 하거나 혼자 씩씩대며 다시 정리를 하게 만든다. 그런데 딱 저상황이다. 그저 내가 보기 좋게라고 생각했던 책꽂이 속의 질서는 그래서 그걸 보면서 평온함을 얻고자한 내 의도와 달리 결국은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나를 더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하지 않는가 말이다. 정리가 되지 않아도 아이들이 책을 보고 찾는 다는 사실에 좀 더 집중하고 초점을 두면 훨씬 즐거워질 수 있는 상황인데 되려 책 보는 아이들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나의 책꽂이 질서다.

어느 구절하나 생각이 머물지 않는 것이 없어서 서평쓰기가 되려 어려운...ㅋㅋ 이 책은 처음 볼때, 또 다시 읽을때, 또 다음번에 읽을때마다 새로운 느낌과 새로운 생각들을 내게 던져주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말처럼 아무것도 아니나 아무엇도 아닌 무언가로 다가온다고나 할까? 그런 면에서 적어도 내게는 참 괜찮은 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덧, 제일 신기한건....마침 작가가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생긴 일인걸까? 아님 작가니까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걸까? 어쩜 각 나라마다, 그 지점지점마다 작가에 생각의 물음을, 생각을 꼬리를 던져주었는지 그저 신기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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