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로 돌아갈까? - 두 여성작가가 나눈 7년의 우정
게일 캘드웰 지음, 이승민 옮김 / 정은문고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바라건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잠시라도 내 기쁨을 안아주시기를

아니라면 당신의 눈물로 내가 울게 하시기를

 

-에드나 밀레이-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학창시절 피정 때 참여한 유서써보기 프로그램 정도가 거의 다.. 그때 나름 주어진 시간동안 꽤나 심각하게 생각했던 거 같은데 지금은 너무 가물가물한 기억이다.

 

두 여성작가가 나눈 7년의 우정이라고 해서 그들의 밝고 즐거운 우정에 대한 탐색에 초점이 맞추어진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보니 이건 죽음에 맞닿은 누군가를 보내는 일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맞을 듯하다. 내가 본디 어둡고, 무섭고 이런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영화도 그러하고 책도 그러하고 어두운 면을 다루는 이야기를 챙겨서 보지는 않는 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점이리라 생각해서 본 것이었는데 중반을 넘어서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들의 모습에 대한 묘사가 너무 가슴 절절 남아서 마음이 묵직해졌다. 물론 한명이 암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알았다. 그렇지만 암에 대한 진단과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 그리고 죽음 이후에 미치는 영향 등이 뒷부분에 훨씬 크게 조명된다.

 

p.33

기질과 능력으로 보아 내가 느리게 걷는 사람이라면, 캐롤라인은 단거리 달리기 선수라 할 만큼 빠르고 동작이 민첩했고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급하게 서두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일단 내 평소 걸음을 확인하자 그녀는 속도를 늦추어 줄곧 내게 맞춰 걸었다.

p. 59 우리는 이런 역학관계를 차츰 존중하게 되었다. 캐롤라인은 모범생으로 나는 반항아로,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워 각자의 지평을 넓혔다.

p.97 "몰랐어요? 우리는 그런 결함을 사랑하는 거예요.“

 

걸음을 확인하고, 속도를 늦추어 맞춰 걷는 것, 그것이 우정의 시작이 아닐까? 우정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같이 나아가는게 우정의 완성, 인간관계의 완성이라고 본다. 나와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비슷한 성향, 비슷한 관심을 가지고 때로는 소울메이트라고 생각될 정도의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모두 같아서 완벽하다기보다는 서로 존중할 부분을 존중하고, 다른 부분에 대해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 만남이 더 빛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우정에 비해 더 집착에게되는 사랑의 관계에서 결함을 인정하는 것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답다.

 

p.41

나는 그날의 대화로 마음이 후련해진 한편으로 상처입기 쉬운 내 모습에 불안해졌다. 마치 캐롤라인과 내가 서로에게 무심할 수 없는 관계로 새로이 진입한 느낌이었고, 둘 다 발을 빼기엔 늦은 것 같았다. 울 둘이 함께인 그곳에서는 무엇 하나도 사소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반쯤 웃고 있었지만, 내 눈시울은 뜨거웠다. “왜 그래?”걱정스럽게 묻는 그녀에게 내가 대답했다. “나는 자기가 필요해.”

 

여기까지 보면...이게 레즈비언의 이야기인가 막 헷갈렸다. 중요하지 않는 건데도 자꾸 거기에 신경이 쓰이는 나는 뭐지? ^^::

 

p. 48

나는 상담치료사를 찾아갔다. 부드러운 말시에 마음이 넓고 특유의 빈정거림이 있는 그 사람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고 곧 신뢰하게 되었다. 이 브루클린 출신의 유태인 치료사는 보들레르와 토니 모리슨을 곧잘 읊어주고, 내 농담에 껄껄대며 웃었다. 하지만 내가 잘난 척 고통을 감추려들 때는 웃지 않았다. 흐느끼며 나는 감정이 너무 격하고 도가 지나친 사람인 것 같다고 털어놓으니, 그는 이런 대답으로 내 울음을 그치게 했다. “만약 누군가 나더러 게일 당신에게서 지키고 싶은 오직 한 가지를 묻는다면, 나는 당신의 그 지나침을 꼽을 겁니다. ”

 

아직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문화 상담. 그런데 문득 비용을 들인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게 현대인들의 삶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서글퍼졌다. 현대인에는 나도 포함되는데 난 상담치료사 대신 울 엄마가 여동생을 낳아주셨다. 감사할일...이래서 내 전화요금이 만날 오바된다.^^::

 

p.53-55

나는 이 애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했다. 제 목숨을 내게 의지하는 존재에 대한 본능적이고 깊은, 필시 모성을 닮은 감정이었다... 중략... 독립심이 강한 설매개를 훈련시키려면 확실한 의사소통이 필요했다. 위협하는 방식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고, 뒤섞인 신호를 주거나 빈정거리거나 우유부단한 태도도 통하지 않았다. 개들이 갈망하고 부응하는 것은 직접적인 지시와 인정과 칭찬, 다시 말해 곧은 화살 같은 마음의 언어였다.

p.113

반항하는 딸에게 윽박지르는 것 말고 아버지가 달리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겠니?“ 나는 대답했다. ”그냥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아버지가 그냥 너는 내 소중한 딸이다. 그래서 네가 스스로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은 내가 용납할 수 없다, 라고 말씀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개에 대한 게일의 감정이었지만 꼭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과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처음 내게 왔을 때 이 의지하는 감정 때문에 때로는 아주 무거운 무게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걸 게일은 개에 대해서 느꼈지만 아마 모성의 대리체험으로는 충분할 것 같다. 끝에 클레멘타인이 다른 개들에게 공격당해서 상처입고 집으로 돌아온 것을 캐롤라인이 돌봐 주어서 라고까지 생각한걸 보면 말이다. , 아이와의 관계 속에서 의사소통방법은 매우 중요한데 위협, 뒤섞인 신호, 빈정거리기, 우유부단한 태도는 아이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때로는 아이가 바르지 않는 길로 가는데 일조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부모의 태도는 중요하지만 현명하게 행동하기가 쉽지않다. 게일이 아버지에게 바란 것처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면 되는데 우리들은 안돼! 틀렸어! 옳지 않아! 그 길이 아니야!라고하여 생채기를 낸다.

 

p. 171

투병초기의 가슴을 후비는 그 다정한 기억은 이후 몇 주를 견디는 힘이 되었다.

p. 176

의학적 현실과 감정적 현실이 충돌할 때 허조그는 대화상대가 돼주었다. 이틀이 멀다 하고 꼬박꼬박 전화해 내가 잘 견디고 있는지 살펴준 사람도 그였다.

p. 178-180

핵심은 시간을 얼마나 버느냐지. 캐롤라인이 말했다. 우리는 둘 다 울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나는 그녀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고 그녀를 어떻게 돌봐야하는지도 자신이 없었다. 그저 화학치료에 맞춰 병원에 태워가고, 별 도움 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그녀의 신호에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탈모가 진행되면서 그녀의 평정이 무너졌다. “바보 같이 보인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내가 집중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야. 나머지는 너무 엄청난 문제들이라.” 수년간 그녀의 긴 머리를 손질해준 남자 미용사가 주말에 집으로 찾아와 그녀의 머리를 짧게 깎았다. 그는 장미 한 다발을 들고 왔고 머리를 잘라준 값을 극구 사양했다...중략...나로서는 이런 상황이 안도가 되고 가르침이 되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누구도 낯선 이들의 감정에 불편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도 죽음에 직면한 자들의 은밀한 문화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들,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선 벌거숭이가 된 심장처럼 더 이상 숨길 게 없었다.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은 아닌데 왜 나는 이라는 주제는 무척이나 더 힘들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인 듯하다. 내가 딱히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나쁘게 살지 않았는데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 말이다. 그래서 부정하과 화를 내고 인정하지만 몹시 우울해지는 그런 시간들을 겪게 되는 것 같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죽음의 문턱만 넘어설 수 있다면 이라고 생각했었음에 불구하고 이후 어딘가 불편하게 살아야하는 시간들이 오면 왜 나에게...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환자뿐만아니라 그 환자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이 시간은 참 힘들다. 어떤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계속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환자도 지인도 그런 상황을 극복한다는 게 답이 아니라 인정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 것 같다.

 

p. 185

급히 택시를 타러 가다가 받은 상태를 길에 떨어뜨렸다. 상패 귀퉁이가 깨졌다. 나는 상패를 그냥 바닥에 내버려 두고 갈 뻔했다. 무서운 찰나의 순간이었다. 마치 자잘한 삶의 징표들이 무언가 어두운 진실의 역류에 휩쓸려 사라지는 느낌이었다...중략...그녀가 괴로운 울부짖음을 토해냈다. 내 귀에 그 소리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었다. 하나는 나를 알아보는 단순한 소리고, 다른 하나는 내가 나타난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 먼 거리를 내가 다시 되돌아왔다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깨닫고 내는 소리였다.

p.187

앉아-기다려가 무엇을 뜻하는지, 얼마나 정직하고 중요한지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한일도 그것이었다. 앉기 그리고 기다리기

p.188-191

고통이란 막막하고 무력한 세계임을 나도 안다. 의식이 또렷한 멀쩡한 이들은 정말로 이해하지도, 어찌 손을 쓰지도 못한 채 그저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다. 고통은 삶의 마지막 판도를 바꿔놓고 검은 죽음의 외피를 희게 탈색시킨다. 시간 밖의 침침한 통로처럼 온몸의 기운을 짜내고 윽박질러 결국 죽음의 문을 열게 할 만큼 고통은 위력적이다...중략...그 꼼꼼한 자상함에 가슴이 먹먹했다...중략... 다 끝났다는 모렐리의 전화를 받고 나는 부엌에서 통곡하는 짐승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임종의 세세한 순간들은 가슴이 미어지도록 슬프다. 숨을 쉬고 기다리고 다시 숨을 쉬고 기다림의 연속이다.

 

...이보다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에 대한 표현이 잘 되어 있는 게 있을까?

 

p.197

비탄을 가르치는 수업은 언제나 단기 집중 강좌로 진행된다. 캐롤라인이 죽기 전까지 나는 딴 세상 사람이었다. 직선으로 다다를 것이라는 순진한 일차원적 기대가 지배하는 세상에 속해, 비탄이란 단순히 가슴 아픈 슬픔과 그리움의 영역이고 서서히 희미해질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정의에는 여러 가지가 누락되어 있었다. 상실이 신체에 가하는 타격, 일시적인 착란, 직설적이진 않지만 지독히도 강렬한 일련의 감정들까지

p. 208

아이디어 초안과 내러티브 맵은 작가의 블록쌓기라 할 수 있다. 하루는 그 자료 뭉치에서 내가 혼자 끼적인 메모를 하나 발견했다. “그녀를 죽게 두라.” 그 이야기를 할 차례임을 스스로 상기하려고 황색 괘선지 맨 위에 이 한 줄을 적어두었다. 다음 날 그걸 보는데 턱 하니 숨이 막혔다. 순간적으로 다른 누군가가 내게 내리는 명령처럼 생각되었다. 그녀를 죽게 두라. 애도의 이동경로를 정의할 수 있다면 이 세 단어가 아닐까. 여기에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

p. 226

이런 일이 생기면 너도 당장 총을 들고 싶지, 안 그러냐?” 유난히 마음이 동요하던 어느 날, 어머니가 전화로 물었다.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떨렸다. “맞아요. 정말 그래요.” “잘 들어라, 애야.” 어머니는 마치 결심이 굳은 어린아이를 달래는 말투였다. “그건 안 될 일이다.”

 

케롤라인을 보내고 클레멘타인을 보내는 과정 속에서 게일은 삶의 성숙의 단계를 거쳐 올라간다. 태어남과 죽음이 삶과 공존하는데 그걸 자주 잊어버리고 생의 출발에만 다들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하지만...죽음의 과정을 통해서(내가 아니라 내 주변의)그 과정을 겪음으로 떠나보낸다는 것, 마음을 준다는 것, 그것을 통해서 인간은 삶의 성숙이라는 열매를 얻게 되는 거 같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어본 것 같다. 실제 겪은 일은 쓴 것이니 에세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어느 영역에 속해 있 던 간에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소울메이트와의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과 삶의 이야기..그리고 죽음이야기가 너무 지나치지도 너무 단조롭지도 않게 감정을 잘 전달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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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3-07-10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스러운 서평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