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생활잡지 한 페이지에 리플을 다는 코너가 있었다. 이달의 리플 주제는
"내일 세상이 망한다면 오늘 당신이 꼭 하고싶은 일은." 이었다. 꽃 피는 춘삼월에 이 무슨
우울한 주제인가 싶어 지나치다가 봐야될 다음 글은 눈으로만 좇으면서 어느새 "나는 그럼
내일 세상이 망한다면 무얼 하지." 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새라니!
그중 공감되는 몇가지 리플을 올려본다.
1. 내일 세상이 망한다면 5년전 사고로 죽은 남자친구 무덤에 가서 조금만 기다리면 만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2. 지금 제 뱃속에 있는 울 아가, 32주하고 2일 됐답니다. 아가에게 예쁜 이름 지어주고, 아직 사지 못한 아가용품 사러 갈래요. 내일 세상이 망한다면 태어나지도 못할 아가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아요.
3. 세상이 망하지 않는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난 이제 겨우 스물다섯살 이라구! 하고 싶은게 너무 많은데 벌써 죽고 싶지 않아!
4. 내일 세상이 망한다면 5년 다이어트 때문에 못 먹었던 음식들을 마음껏 먹을 거예요! 적금 들었던 돈 몽땅 찾아서 그동안 먹고 싶었던 케이크, 도넛츠, 스테이크, 삼겹살, 떡볶이 등등 전부 먹어버릴 거예요!
5. 일단, 당뇨를 앓고 계시는 어머니께 맛난 음식 해드리고, 좋은 옷 입혀드리고 , 그간 못했던 이야기 도란도란 나누고 싶네요. 그리고는 어머니 옆에서 잠들고 싶어요. 그러면 세상이 망하는 두려움과 공포도 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6. 아들과 함께 고향을 방문하고 싶다. 내가 태어나서 자랐고 다녔던 학교를 함께 돌아다녀보고 싶다. 아들이 장애아(자폐증)라 그간 남들 앞에서 함께 다니는 것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게 너무 미안하다.
7. 작년 6월에 돌아가신 엄마한테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줘서 고맙고 열심히 살다가 이제 엄마곁으로 돌아간다고 말씀드린뒤 차분하게 하루를 보낼것 같습니다.
읽다보니 가슴이 찡해졌다. 세상이 망한다는 가정은 하고 싶지 않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보면서 남아있는 오늘과 살아갈 내일에 충실할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지 싶다.
누군가를 대할때 오늘이 그 사람을 볼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면 최선의 마음으로 그 사람을 대할수 있고 내게 남아있는 날이 오늘뿐이라 생각한다면 앞으로의 일상은 그저 매일 오는 일상이 아닌 소중한 날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찰 수행 프로그램중에는 "유언" 을 써보는 시간도 있다고 한다. 해본 사람들은 유언이라기 보다는 단지 한장의 편지를 쓴다는 기분으로 썼다지만 쓰는 순간부터 자기 삶에 대한 무한한 책임과 앞으로 오는 시간을 단 1분 1초라도 허비하면 안되겠다는 절박함마저 느꼈다고 한다. 이렇듯, 일상이 지루해지거나 혹은 너무 힘들때 극한 가정이지만 "만약 세상이...." "만약 내게 남은 시간이..."란 주제를 가지고 생각을 해보는 것도 힘든 오늘을 이겨내기 위한 훌륭한 치료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쓰다보니 옆길로 샌듯한 기분도 들지만 여하튼 세상이 망한다면 나는!
- 타임 캡슐을 만들어 나와 관계된 것들, 이를테면 사진, 신분증, 일기장, 옷, 신발, 소지품 등등을 넣어서 땅속에다 묻어둘 것이다. 망하는 정도가 폭발해버리는 수준이라면 그것조차 찾을수 없을테지만...좀 유치한 발상인가...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