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 삶의 속도를 선택한 사람들
김남희.쓰지 신이치 지음, 전새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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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픈 대로 살고픈 대로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도보여행가 김남희, 슬로우라이프 창시자 쓰지 신이치 공동 집필

남들과 다른 삶의 속도와 방향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소수자'들이 있다.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자신의 정신적 지주 쓰지 신이치 교수와 함께 부탄, 한국, 일본을 오가며 만났다.

 

소수자는 부탄국민, 자연농법 농사꾼, 귀농인, 생명평화 실천운동가, 정신장애인, 조폭에서 공정무역가가 되거나, 문제아에서 일본말 치료사가 된 이 등이다.

 

이들의 삶을 통해 책은 이렇게 묻는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자유의지'란 가능한가? 심지어 옷 입는 것조차도 진정 당신의 자유의지인가? 당신의 삶은 과연 주체적인가?"

 

그리고 이렇게 조언한다.

"우리는 늘 누군가가 직업을 주기를 기대해왔죠. 정부가, 회사가.. 그건 노예가 되고 도구가 되는 것이고 세뇌당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되고 싶은 존재가 되세요. (치열한) 삶을 통해 찾아내세요.” – 사티시 쿠마르

 

무엇으로부터 노예가 되고 세뇌당하고 사는 걸까. 나만의 삶의 속도와 행복의 방향은 어때야 할까. 이들이 만난 소수자의 삶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부탄의 아이들

 

충분하다 멈출 수 있는, 소비하지 않을 자유 / 부탄
국민행복지수 1위 부탄의 헌법에는 GNH(국민총행복)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명시되어있다. 기본전략에는 자연환경의 보전, 문화적 독창성 유지, 공평하고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좋은 정치에 대한 내용과 적어도 국토의 60% 숲이어야 한다는 조항들이 있다. 부탄 사람들은 깨끗한 물과 공기, 병들지 않는 대지 같은 자연환경을 행복의 기본조건으로 믿는다.

우리는 어떠한가.

니체와 하인즈의 말을 들어보자

“자기 자신을 박탈당했고, 매일 사용되어 닳아지는 것이 되도록 교육받았으며 그것을 의무로 받아들이는 삶을 살게 되었다” - 니체

 

 

“텔레비전만 있으면 인종이나 문화나 자라온 배경과는 전혀 상관없이 언젠가는 모두가 비슷한 것들을 원하고 필요로 하게 된다. TV란 불필요한 욕망을 생산하고 확대시키는 장치다”

- 미국 식품기업 하인즈

우리의 소비는 텔레비전이 만들어낸 욕망의 결과일 뿐, 덕분에 많이 이들이 모두 비슷한 것들을 바라는 욕망을 갖게 되었다.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는 물건 목록을 작성해 보자. 행복이란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진정으로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 / 훗카이도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 자체에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긍정교’의 순진한 신도가 되어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간다.”

훗카이도의 베델의 집은 장애인이 중심이 되어 서로 돕고 의지하는 약함에 기대어 살아가는 곳으로 이익나지 않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나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런 인정과 인내로 살아가는 곳이다.

 

삶의 장소를 바꾸면 삶의 방식 바꾸는 일 쉬워질지도 / 강원도

여가를 누리는 방식에서도 우리는 돈으로 구매하는 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게 아닐까. 도시에서의 삶은 스스로의 안목과 재주를 실험하기보다 시장에서 나온 물건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삶이 되기 쉽다. 우리가 찾아야할 취미활동은 돈이 개입되지 않고 놀이하는 법, 구매보다 생산하는 문화 아닐까. 놀이는 돈을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상품 아니다. 우리 사회는 노동과 놀이가 분리되어 있다. 극단적으로 노동의 댓가로 놀이를 하면서도 소비하며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

 

먹을 음식, 스스로 생산한다는 것, 인간을 자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일 / 나라

유기농업은 화학비료, 농약 사용하지 않는 농법으로 자연농업과는 차이가 있다. 자연농법 잡초도 뽑지 않는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인간의 적이란 없다고, 즉 잡초도 벌레도 적이 아니라고 여긴다.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 농법인 셈. 식물을 기르거나 정원을 가꾸는 일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길이며, 인간을 자연질서에 깊이 뿌리박은 보조적인 존재로 보는 세계관을 실제로 구현한 삶이다.

현대과학은 사물의 세계만 보고 생명의 본질, 관계를 못 보는 폐해가 있다. 갈아엎으면 에너지 소비 많아지고 지구 온도 높이니까 안된다는 게 아니라, 갚아엎지 않은 논밭이어야 생명이 대물림 된다는 관점이 필요하다.

 

아마추어의 힘 뺀 자세 / 제주

무언가를 할 때면 프로처럼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필요 이상의 부담감을 지니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취미생활을 즐길 때도 장비나 복장도 프로처럼 갖춰야 품이 난다고 믿고. 하지만 아마추어로 산다는 것, 그건 실수해도 괜찮고, 수준이 좀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닐까. 내가 재미있으면 되는 게 아닐까. 아마추어의 힘 뺀 자세야말로 우리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아닐까.

소수의 전문가에게 의지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아마추어가 활약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나는 믿는다. 가수 아닌 사람이 밴드 만들어 노래하고 목수 아닌 이가 망치 두드려 만들고, 농부 아닌 이가 농작물 키우는 게 자연스러운, 그런 세상.

어제, 초등 6학년의 자살 소식을 접했다. 하루에 40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 걸까. 사회 4대악 척결을 내세우기 전에 그 원인이 된 우리 삶의 가치와 방향을 반추해 보는 것이 먼저 아닌가.

한 개인의 온전한 행복없이,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은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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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쓰는가 - 글로 먹고사는 13인의 글쓰기 노하우
김영진 외 지음 / 씨네21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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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이들의 골병의 서사<나는 어떻게 쓰는가>
- 글로 먹고사는 13인의 글쓰기(영화평론가, 기자, 시인, 변호사, 카피라이터, 동화작가. 철학자, 미술평론가, 시나리오 작가, 목사.. 등)

 

 

“써. 써. 쓰다. 쓰라고 하니까 쓰다. 속이 쓰다. 써야 한다. 살기 위해 쓴다. 마음의 둑이 터져 쓴다. 관계 파탄 날까봐 쓴다. 마감 언제야? 안 쓰면 좋겠네. 안 된다. 쓸 바엔 잘 쓰자... 부끄럽다. 글은 무기다. 칼이다. 몽둥이다. 소총이다. 탱크다. 대륙 간 탄도미사일이다. 상대를 제압한다. 자신을 지킨다. 정보 투하한다. 심장을 뛰게 한다. 눈물을 쏟게 한다...스무 해도 넘었다.(글 쓴 지) 신문사 밥 아깝다. 여전히 두렵다. 소소한 글이 무섭다. 글쓰기가 젤로 싫다. 엄살떤다. 징징댄다.... 한 마디, 두 마디, 실마리가 되길..“- 고경태 기자의 서문

 

<유혹하는 에디터> 고경태 기자 답다. 언어를 갖고 논 압도적인 서문이다. 역시 글쟁이군. 그들의 골병으로 호사를 누렸구나. 자신에게 글이란 무엇인지 시작해서 왜 쓰냐? 우주의 언어라서~ 주문생산형이라서~ 등등. 어떻게?라는 본문에 이르러서는 쓰라니 부끄부끄 자신의 자식들을 내보이며.. 엄살, 겸손, 드문드문 자신감도 내비치며, 늑장을 부리기도 하다가. 어떻게 쓰나? 사전을 들고 살았다는 시인, 0.5초 단위로 끊어 묘사한다는 기자, 시사주간지를 귀감으로 삼는다는 비평가 등등. 자신에게 글은 뭔지, 글쓰기 이유부터 방법, 새로운 글쟁이들을 만나고 글쟁이들의 직업군을 체험해 보는 덤의 시간도 있다. 부제에서 '노하우'를 뺐다. 약아빠진 노하우가 아니다. 글쟁이들의 치열한 삶에 가깝다. 실제 각 분야 13인 각자가 썼다. 해서 글의 편차가 많다. 그런데 뜻밖에 결과를 안긴다. 쉽게 쓰는 게 어떤 건지, 왜 현학과 멋이 아니라 공감과 기본단위 끊어치기인지 알 수 있다. 그들의 골병의 서사로 누군가는 세상과 글에 대한 '안목'이 생긴다.

 

기자가 몰입한 만큼 독자 공감/안수찬 기자

13인 중, 가장 인상적인 글쟁이다.

글은 자아 노출이다. 글쓰기 자아와 타자가 섞이고 스미는 일이다. 글쓰기 초입에는 자아 대신 타자에 주목하라. 주어-목적어-서술어를 기본단위로 단문으로 끊어치기가 만병통치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줘라. 독자를 그 상황에 밀어넣어라. 상대방의 말과 함께 눈빛, 표정, 행동, 시공간을 함께 적으면 보여주는 기사 쓸 수 있다. 디테일 취재를 위해서는 더듬이가 많아야 한다. 현장 리포기사 쓸 때 특히 ‘작은 사물’ 탐색해야 한다. 기자가 몰입했던 순간, 전략적 디테일의 대상이 있다. 순간을 쪼개어 펼칠 때, 무수한 울림을 각인 시킨다.(박지성 2010년 월드컵 골장면 0.5초 단위 끊어서 살핌) 정보가 아닌 성격을 전달, 사람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면 지루가 기사가 된다. 글 가운데 가장 높은 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 형용어구 남발해선 안된다. 끝까지 담담하게 써라. 끝으로 프레임, 통찰의 힘, 즉,사건, 사고, 인물의 본성을 꿰뚫어보는 능력 필요하다. 독자가 바라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공감이다. 기자가 몰입한 만큼 독자들 공감한다.

역시, 그래서 내가 그의 글에 가장 "공감"했구나.

 

법관의 천형 판결문 쓰기/정인진 변호사
글쓰기 통해 권력을 행사한다. 선고 어려울 땐 관용의 길을 택한다. 판결문 공문서, 판결문 원본에 법관 개인도장 찍게 돼 있다. 글의 두 기둥이 진실과 논리라면 판결은 때로 논리로 포장된 진실이기도 하고 때로 논리 없는 진실이기도 하다. 상식과 확률의 법칙에 의거하며, 부사와 형용사 사용이 늘 절제돼 있다.

새로운 직업의 세계와 더불어 판결문이 왜 그렇게 어렵게 쓰이는지 어렴풋이 이해하는 계기가 됐고 예외적인 몇몇 감동문에 혹하기도 했다. 역시,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최곤데... 그렇게 쓰며 부장판사 아닌 경우.. 불려갈수도.. 해서 판결문 대부분이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직.. 아니 어려운 듯. 판결문 쓰는 시간은 정말 곤혹스런 시간일듯.

 

쓰는 것 이전의 발상이 카피의 99%/손수진 카피라이터
광고, 상업주의 화려한 자식이다. 사람 이해하고 통찰하여 ‘인사이트’ 발휘해야 한다. 이에 세대와 성별, 취향을 가리지 말고 되도록 많은 사람들 접하고 이야기 들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조석의 <마음의 소리>라든가 서나래의 <낢이 사는 이야기> 인사이트 보고다. 두 명의 ‘갑’(소비자, 광고주)을 모시고 있는 ‘을’의 신세가 카피라이터다. 카피 혼자쓰는 것이 아니다. 회의 회의 거듭해서 정교화하는 과정 거쳐, 내 것이란 생각 놓아야 한다. 간혹 윤리적 기준과 부딪히는 경우 일어난다. 속인 자는 없으나 속은 사람은 나오는 교묘한 카피 나오기도 한다.

 

세상을 향한 연민에서 비롯된 글쓰기/동화작가 김중미(괭이부리마을 아이들)
가난한 동네에서 문학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모둠일기 쓰며 가장 감동적이고 훌륭한 글은 삶과 진심이 담긴 글이라는 걸 배웠다. 글보다 앞선 것이 삶이라 창작에는 역지사지의 마음 있어야 한다. 문학은 약한 이의 편에 서는 것이다. 해서 문학을 통해 현실을 바로 보게 하는 것이 먼저다.

 

영화껍질 벗기기/영화평론가 김영진
주문생산형 글쓰기다. 실마리만 잡으면 떠오르는 대로 쓴다. 말로 잘 잡히지 않는 이미지의 물질성에 대해 지면이 허락하는 선에서 열심히 묘사한다. 겉멋에 취해 자판 두들기며 막 튀어나온 수사적인 문장 부스러기 덕지덕지 붙이기 않기에 힘쓴다. 멋 부리지 않고 간명하게 글쓰기가 답이다. 김영진 평론가의 실례들이 많이 담겨있는 것이 장점이다. 다만 영화를 봐야만 이해가 쉽다. <친절한 금자씨>의 비평이 돋보인다.

 

번역의 천국과 지옥 / 성귀수 번역가

새벽 한시에서 세시까지 간격이 다른 대여섯개의 눈금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보다 훨씬 넓고, 깊다. 철자들이 죄다 적의를 품고 일어나 난공불락의 방진을 형성해 문맥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단다. 번역의 어려움이 확 다가오는 표현이다. 번역은 직관의 영역이다. 이에 체계적 방식으로 '학습'되기 어렵다. 완벽한 번역이란 존재하지 않아 끝없이 갱신될 수 있다. 시간과 텍스트라는 제약 속에 가시넝쿨을 걷기도 한다. 시간의 제약 앞에서 "내면의 텍스트"를 단념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려면 스스로 기획번역하는 방법도 있다. 창조적 해석을 위해서는 텍스트에 완전히 동화된 상태여야 하는데, 예를 들어 저자와 직접 통화하거나 텍스트 배경이 되는 공간을 손수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때론 텍스트 독자성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건 번역가의 교감. 등장인물 심리 상태 똑같이 조장해 본다. 모차르트 책 읽을 땐 종일 모차르트만 듣는다던지. 반 고흐 그림 도배된 작업실에 쳐박혀 있는다든지 '메소드 번역'을 하는 것. 생명력 재창조에 주안점이 둔 번역. 진정한 의미 '다시 쓰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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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 - 라이벌 난장사
남무성 그림.각색, 황희연 글 / 오픈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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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화에 신세지다 <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
- 부제 : 라이벌 난장사

남무성, 황희연/오픈하우스

 

영화 좀 본다는 사람, 영화역사는 젬병
내 얘기다. 영화를 한창 볼 때는 1주일에 한 편씩은 본 것 같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만. 여전히 내 취미는 영화 즐기기와 곱씹기이다. 시간과 비용 대비 눈귀를 충족시키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으로 영화에 비길 것은 아무래도 없다.


나의 영화 즐기기는, 좀 늦게 시작됐다. 게다가 대체로 상업영화에 치중돼 있다. 그래서 늘 깊이 있는 영화 이야기에 있어 주눅 들곤 했다. (내심 모 그리 중요한가라며 변명하며) 그런 내게 120년의 영화 역사, 한 권의 책으로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 게다가 만화! 좋은 기회다.

 

영화, ‘만화’에 신세지다
<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는 영화칼럼니스트 황희연씨가 쓰고 재즈평론가 남무성씨가 그렸다. 남무성씨는 꼬마 때부터 옆집 그녀의 손에 이끌려 영화관을 다녔던 씨네마 키드라고.


‘역사’란 이름이 붙었지만, 연대기별로 나열하지 않았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사건과 영화사를 구분지을 만큼 특징적인 영화감독이나 장르로 라이벌과 비교하여 풀어나간다. 영화사에 길이 남은 감독과 작품, 장르에 대한 당대 해석과 이후 해석을 통해 역사를 관통한 힘을 지녔다. 감독의 신변잡기적 이야기는 주목도를 높였고 ‘고뤠~’ 와 같은 유행어와 비판받는 감독의 변명어린 독백 등은 깨알같은 재미를 더했다.


치열했던 영화 역사 속 현장을 통해, 영화적 지식 뿐만 아니라, 역사 속 살아남은 영화의 힘은 무엇인지 생각할 계기도 되었다. 작가 황희연씨의 말처럼 일반인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영화문화 상식’ 책이 된 셈이다.

 

종합예술을 넘어 과학산업의 총체, 영화
좋은 스토리만으로 영화는 성공하지 않았다. 작품성이 아니더라도 영화에 대한 특별한 시선과 애정을 가진 감독의 열정과 천부적 재능이 있어야 했고 누군가의 편집과정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기도 했으며, 국제적 시대상과 영화의 산업방식(배급), 기술의 진보 등의 여러 가지 요인이 잘 맞아야 했다.

 

게다가 요즘엔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관객’이 힘을 보태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영화를 여러 시선을 통해 즐기고 평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영화문화산업 발전에 시너지를 얻고 있는 셈이다.

 

목차만 봐도 굵직한 영화사 흐름을 읽을 수 있고 ‘감독’과 영화산업에 대해 시선이 확장된 점이 무엇보다 유익했다.

 

주요목차 중, 기억남는 내용을 정리해 봤다.

 

1.영화의 상영 : 뤼미에르 형제 VS 조르주 멜리에스
- 생일을 알고 있는 유일한 예술 ‘영화’
- 영화 최초 상영은 1895.12.28. 뤼미에르 형제
- 영화 상영은 프랑스 파리 지하 인디언 살롱에서 1프랑의 입장료를 받고 상영
- 실은 9개월 앞서 막스 스클라다노프스키(독일)가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상영했지만(상영시간도 긴), 상업적 감각 떨어져, 기록되지 않음
- 최초 영화 상영기는 에디슨이 발명. 처음에는 1인 상영기
- 1897년 극장 불 125명 사망. 뤼미에르 내리막길 걸어
- 뤼미에르 풍경 영사기 담고, 마술사 출신 멜리에스 마술적 트릭 구사. 이에 훗날 판타지 영화 시초로 불리게 됨

 

2.영화패권 쟁탈 : 유럽 vs 미국
- 영화 유럽에서 태어났지만 산업으로 발전한 건 미국(역시 기회의 땅인가)
- 유럽 정치싸움하는 동안 미국은 전쟁하는 나라에 무기 팔고 유럽 선진 문화 도입. 1차 세계대전 후 미국 급부상
- 영화 파급력은 배급방식에 있다. 상영기 갖고 다니다가 상설극장을 만들기 시작
- 최초 상설 극장은 미국 니켈로디언(니켈(입장료 5센트 니켈로 만듬))

 

3.코미디 왕 : 찰리 채플린 VS 버스터 키튼
- 무성영화 천재 배우들
- 찰리 채플린은 매카시즘(1950년 미국 전역 공산주의를 색출)에 휘말려 ‘공산당’으로 내몰림

- 가을이면 어김없이 영화를 떠나던 버스터 키튼은 자율적 창작 권한과 엄청난 기계광으로 스펙터클하고 화려한 기술을 많이 구사.
- 그러나, 키튼은 유성영화등장(1927년)으로 중저음 목소리의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내리막. 1951년 채플린의 영화 <라임라이트>에 등장. 재기

 

5. 거장의 이름 : 히치콕과 알프레드 히치콕과 오손 웰스
- 어떤 조사방식에서든 상위권 놓치지 않는 두 영화 <시민케인>(1941,오손웰스)과 <현기증>(1959,히치콕)
- 히치콕 강박 관념은 부모의 엄격한 교육철학에서 비롯. 매일 고해성사하고 어린시절에도 잘못하면 아빠가 감옥에 넣었다고 함
- 히치콕은 타고난 공상가 화가지망생
- 히치콕 때문에 맥거핀과 카메오라는 용어 탄생. 맥거핀(아무것도 아닌 것 수시로 화면에 비춰 중요한 물건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기법)과 카메오(영화 속에 중요한 인물 잠깐 스치듯 등장하는 것, 카메오 출연을 즐김)
- 목소리가 아주 좋았던 웰스는 유명한 라디오 DJ기도 했다고. 화성인 지구 침공했다고 장난 방송하면서 내리막 걸어
- 웰스 유언 “저는 영화라는,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깊이 사랑한 것 같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꼭 다른 것을 하고 싶습니다”

 

6. SF감독 : 조지루카스 VS 스티븐 스필버그
- 조지 루카스가 우주 ‘전쟁’을 상상했다면 스필버그는 우주와의 ‘교류’를 상상
- 상상이 가능했던 건 영화기술의 진보가 있었기 때문
- 영화 과학적 혁신 없이 진보 이루기 어려운 예술
- 우주에 대한 이들의 열정으로 SF(Science Fiction)영화 시대 개막
- 스필버그 <죠스> 세계 4억 달러 이상 수익(존 윌리엄스 주제곡 한몫)
- <죠스>는 흥행 갱신,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로 기술 갱신
- 조지 루카스 특수 촬영 효과 개발 전문업체 ILM 설립, 할리우드 기술 혁신에 앞장
- <인디아나 존스>는 루카스와 스필버그 힘 모아 만든 것. 여기 해리슨 포드 가세
- 스필버그는 작가로의 명예에 대한 콤플렉스 가져 작가주의에 집착 <쉰들러 리스트> , <라이언 일병구하기> 제작,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감독상 거머쥠

- 루카스 상과 거리 멀었지만 아쉬움 없어. 단, 연출 꺼려해.. 스타워즈 1편만 직접 감독. 나머지 후배감독들에게 맡겨...

- 이러한 루카스 연출 거부증 스필버그와 우정 유지(스필버그 상상력 지원해주는 자문 역할)

 

7. 새로운 영화 사단
- 할리우드의 왕, 제임스 캐머런 <타이타닉>, <아바타>, 그는 물리학을 전공했다.
- 뉴질랜드의 왕, 피터 잭슨 <반지의 제왕>, <킹콩>, <호빗>
- 월드 디즈니 애니메이션 부서에서 일했던 팀버튼은 동화적 감각 익혀 애니메이션 특이한 방식으로 해체. B급정서로 웃기는 재주가진 코엔 형제 등

 

처음 20명이었던 친목모임이었던 아카데미가 지금의 자리를 잡게 되기까지와 헐리우드, 유명 영화학교 헐리우드 밖 거장감독 그리고 아시아 삼국의 최근 영화를 주도하는 감독들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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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 도법 스님의 삶의 혁명
도법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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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스님의 삶의 혁명 <지금, 당장>

매순간 순간이 완성된 상태라는 깨달음, 관계론적 실상을 통찰하라

 

작년부터 서점가에 유난히 스님들 책이 눈에 많이 띈다. ‘힐링’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스님들의 철학이나 수행법이 특별히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김난도 교수가 <2013년 트렌드>에서 말한 ‘날선 사람들의 도시’에 맞는 처방인 걸까.

 

법정스님의 ‘무소유’에서 법륜스님의 ‘생활속 실천불교’, 혜민스님의 ‘멈춤의 철학’까지.. 현대인들을 위한 스님들의 다양한 처방이 내려지고 있는 가운데 책제목에서부터 어조가 다른 스님의 책이 있다.

 

도법스님의 <지금, 당장>이다.

 

도법스님은 지리산 실상사 회주이자,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동을 펼치며 쌍용차사태, 제주해군기지 등 사회적 문제 현장에 늘 함께한 사회운동가다.

 

2004년부터 5년의 탁발순례를 통해 3만리를 걷고 8만명을 만나는 ‘걷는 순례’를 통해 생명평화운동을 담론화했고 성찰의 길, ‘지리산숲길’을 창안한 분이다.

 

이런 도법스님이 <지금, 당장> 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사실 스님과 몇 번의 인연이 있었지만, 서문을 보고 들었다 놨던 책이다. 연하고 부드러운 것들에 길들여진 입맛에 푸성귀의 쓴맛과 거친 느낌이 드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이랄까. 그러나, 다시 집어든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알차고 명확했다. 무엇보다 도법스님 삶의 철학을 알 수 있었던 책이다.

 

여러 이야기가 있겠지만 현대인들의 문제와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재구성해 봤다.

 

Q. 현대인들, 무엇이 문제인가

 


1. 훗날을 위해 오늘을 희생시키는 사고방식
지금 여기 오늘이 아니라 먼 훗날을 위해 오늘의 삶을 희생시키는 사고방식의 교육이 문제다. 살아있는 진정한 화두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존재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하고 무지하다.

 

2. 조건이 있는 행복을 추구, 확대재생산
자본주의 심각성은 온통 자기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확대시키고 총족시키고 그게 충족되면 행복하게 된다는 착각, 또 그 착각이 확대재생산 된다는 것이다. 조건에 따른 행복은 상황이 변하면 없어지는 것, 그게 과연 참행복인가?

 

3. 혼자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우울해져
극단적으로 불신하고 홀로 모든 걸 준비해야 하는 시대다. 이 과정이 고달프고 너무 비인간화되어있다. 관계의 핵심은 신뢰와 애정이다. 신뢰할 수 있는 관계 회복이 기본이 돼야 오늘과 미래가 희망적이다.

 

4. 문제해결이 아닌 과보호 연장
문제해결을 위해 잘 보호하고 보살피는 쪽이 최선인가. 과보호 연장선은 아닌가. 과보호 연장선에서 치유하고 보살피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제대로 효과내기 어렵다.

 

스님은 이 모든 문제해결을 위해 ‘관계론적 세계관’과 ‘존재가치 중심’의 삶을 제시한다.

 

Q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1 실상을 사실대로 아는 연습 필요

우리는 실상을 실상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지식과 신념으로 살아가는데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에 해답은 에어컨이 아니라, 열매을 맺게 하는 여름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과 같이 실상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생명의 실상, 존재의 실상, 관계로 존재하는 모습에 눈을 뜨고 감수성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연과 함께 현장에서 몸을 쓰는 활동이 중요하다. 온 몸을 쓴다는 것은 건강이나 미용이 아니라, 생명이 온전하게 존재하도록 하는 활동이다. 온 몸을 쓰는 활동을 할 때 생명의 법칙인 관계를 보는 안목과 감성을 갖게 된다.(인간의 유일한 생명활동은 '농사'뿐이다.)

 

2. 귀한 생명의 가치와 관계중심 세계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지금 여기 내 생명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명이며 생명은 오직 ‘관계’로만 존재한다.

 

분리 독립되어 혼자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존재는 관계에 의해 존재한다.

 

3. 삶의 매 순간 완성된 상태라는 깨달음
특정한 상태만이 완성된 상태라는 생각은 잘못됐다. 실상 매 순간순간이 중요한 시점, 매순간순간이 완성된 상태이다. 아이는 아이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존엄한 존재로서 인정받고 존중받는, 사회적으로 그런 문화가 필요하다.

 

스님이 한 기자와 나눈 대화는 한국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준다.

 

"생명평화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대한민국 체체 인정하느라 아니라..자본주의 인정하느냐 아니랴..의 문제다"

"난 잘 모른다.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내 관심은 오직 삶의 현장의 사람들이 평화롭고 행복하냐는 것이다. 그들이 평화롭고 행복하다면, 어떠한 간판을 건들 무슨 관계인가"

 

우리는 빈번히 본질을 외면한 채 말과 글에 목매고 "관념"을 지키기 위해, 오직 이기기 위해 싸우곤 한다. '관계론적 본질'을 통한 '화쟁'이 필요한 시대다.

 

스님은 4부 즉문즉설에서 무엇보다 각자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삶의 철학과 방식을 확립하라고 조언한다. 그게 불교든, 무슨주의든, 상대적 소외감 박탈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삶의 철학 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함께 해야 할 보편적 이상과 가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관계론적 세계관과 생명중심 삶이 행복에 대한 해답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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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디자인 Design Culture Book 1
유인경.박선주 지음 / 지콜론북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어떤 면에서 진정한 위로는 말없는 것들의 위로다. 다만, 그것은 발견할 줄 아는 자의 몫이다.

작은 미소뿐 아니라, 삶의 긍정적 에너지 ‘위로’까지 전해주는 사물들이 있다. 그것들은 ‘디자인‘이라는 이름을 갖지만, 유용성과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다. 때론 자연의 모습으로 때로는 유머감각으로 때론 메시지의 형태로 생활 속에 빈번히 등장해 관찰자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디자인을 통해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본성과 창작자의 착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책 <위로의 디자인>이다. 책은 의자, 텐트, 이불의 상업제품부터 예술가의 퍼포먼스, 공공프로젝트, 건축물 등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을 망라한다.

 

자연을 닮은 디자인
“이 세상에서 지금껏 이루어진 다자인 중 가장 경이로운 것은 바로 이 세계, 자연일 것이다.”

바람과 빛의 향연을 눈으로 본다면 바로 이런 디자인일 것이다. 어둠 속에서 전기전도성 재질로 된 종이로 만든 조명 <브라스크 Bourrasque>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거나 증폭시키려고자 했던 마음, 아름다움을 전하고픈 창작자의 착한 마음이다.

무지개와 별을 구현해낸 <스타필드>는 비디오 프로젝트, 키넥트, 소프트웨어, 그네를 통해 어린시절 별을 바라보던 풍경들을 만들어낸다. 유용한 하루를 산 어느날, 그네를 타며 밤하늘을 유영하는 시간이 도시인들에게 필요하다.


초록에 대한 인간의 그리움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였다는 것을 반증한다. 북유럽에 많이 도입된 그린루프(식물로 조성된 건물 지붕)는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어 바이킹과 중세 시절에 가장 흔한 양식이었으나 산업화와 함께 사라졌다 현대에 다시 복원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디자인은 무엇보다 자연이 주는 실제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느끼고자 했던 인간의 애정이다.

 

낭만적 농담
‘삶이란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진지하게 말할 대상이 아니다’ - 오스카 와일드
‘인류에게 참으로 효과적인 무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웃음이다’ - 마크 트웨인

복잡한 세상에 수많은 걱정거리를 가뿐히 넘길 수 있게 하는 힘, 웃음을 간직한 디자인들이 있다. 책으로 된 이불 <베드타임 스토리>는 잠자기 전 엄마가 읽어주던 책을 떠올리게 한다. 링거형태를 가진 하드 드라이브(안티바이러스 기능을 가진 하드 드라이브), 묘지 형태의 USB 등은 외관과 기능의 부조화에서 호기심을 발생시켜 일상의 생활을 환기시킨다. 책을 세워놓은 듯한 텐트, 양을 그려놓은 텐트 사물의 은유화는 그 사물이 지니는 기능과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도 발생한다.


낙엽을 끌어모으는 나뭇잎 끌개는 낙엽이 쓰레기라는 고정관념에서 나뭇잎 끌개(나무모양을 한)를 통한 재탄생으로 환기시킨다.

 


함께라는 행복
상호 교류적 성격을 띤 공공예술 프로젝트도 있다. <비포 아이 다이 Before I Die _____>는 미국 뉴올리언즈 한 폐가 벽에 그려놓은 질문 하나였고 이웃들은 여기에 대한 문장을 완성해 나갔다. 삶의 연약함을 일깨우고 더불어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목소리를 가질 기회 뿐만아니라, 타인과 공유할 기회까지 줬다.

죽음을 통해 삶을 새롭게 돌아보게 하는 디자인도 있다. 유품인 옷을 재활용품으로 내놓으면서 전 주인의 이름과 삶을 생각해 달라는 태그를 붙인 아이디어는 누군가의 삶과 그 삶이 깃들 물건에 대한 소중함을 전한다.


상상하는 능력은 어쩌면 인간이 말할 수 있는 능력보다 더욱 가치있는 일일지 모른다.

맨해튼의 움직이는 정원으로 불리는 <가든 인 트래싯 Garden in Transit> 프로젝트는 뉴욕의 택시에 꽃을 그림으로써 도로를 정원으로 만들었다. 맨해튼의 풍경을 바꾸는 작업인데 2만3천명의 병원환자들이 참여했다. 물리적, 정신적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이 창조작업에 참여함으로써 창조자도 힐링받는 효과를 누렸다. 참여를 통한 사회 변화의 한 예가 일상을 창조하고 혁신할 수 있는 기회를 타인에게 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어진다.

<타피 루즈Tapis Rouge>는 2011년 프랑스 작은 마을 조자끄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다. 마을 전체에 초록색 잔디 카펫을 깔았다. 420미터의 잔디는 사람과 예술, 자연과 마을 사이의 연결 고리, 산책로가 되어 일상의 공간과 사람의 공간을 재발견하게 한다. 다니지 않던 곳을 구석구석 걸으며 발견하는 낯선 즐거움. 그 속도와 규모에서만 주어지는 요행과 발견이 초록길을 통해 이어진다.

 

사적인 영감

아이슬란드에 지어질 예정인 송신철탑<랜드 오브 자이언트>는 거대한 사람의 몸체가 전선과 전선을 이고 늘어서게 된다. 때론 앉고 때로 구부리고 때론 역기를 들어올리듯 늘어선 송신철탑 전선들의 거대한 인간들은 거대한 산맥의 자연과 더불어 인간의 위대함을 대비시키는 위트가 돋보이는 작품이 될 것이다.


집은 세 번째 피부라고 말했던 훈바르트 바서는 집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여겨 창문이 눈과 같다고 획일화된 창문을 거부하고 춤추게 만들었다. 뉴미디어 아트 그룹 에브리웨어는 테클롤로지가 인간적이지 않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특히 <회고록>은 오래된 전자제품들을 긍정적이고 사랑스런 눈길로 다시 바라보는 작품이다.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브라운관 텔레비전, 영상분석과 얼굴인식 등의 기술을 통해 사람이 카메라는 응시하면 사람의 얼굴을 찍어 브라운관 속에 플라로이드 사진을 떨어지게 하는 방식이다. 추억이 저장되는 과정을 보이게 해 찰나의 영원을 상기시킨다.

 

디자인을 너머

디자이너 마르고 뤼앙의 유골함은 ‘유의미한 애도’에 새로운 생각을 더해준다. 생분해성 코르크 재료와 세라믹으로 제작된 유골함에 유골을 담고 단지 안에 작은 묘목을 심어 부담없이 기르다가 나무가 더 크면 정원이나 공원에 옮겨 심도록 한다. 생분해성 재료는 흙으로 돌아가고 윗부분 세라믹만 남아 묘비처럼 고인을 기념하게 된다.

매일 지나가는 골목 어딘가에 핀 꽃이 당신의 하루를 바꾸고 동네 풍경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거라고 믿음으로 번져가는 <게릴라 가드닝 프로젝트>는 작은 수고, 작은 책임감, 작은 선의를 통해 우리가 삶을 디자인해 바꿀 수 있다는 강한 메지시를 전한다.

관찰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위로를 주는 디자인, 영감과 웃음을 주는 디자인, 소통을 이끌어내는 디자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책을 덮고 나면 어느덧 놀라운 세상과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따뜻하고 재미있는 시선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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