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 - 라이벌 난장사
남무성 그림.각색, 황희연 글 / 오픈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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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화에 신세지다 <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
- 부제 : 라이벌 난장사

남무성, 황희연/오픈하우스

 

영화 좀 본다는 사람, 영화역사는 젬병
내 얘기다. 영화를 한창 볼 때는 1주일에 한 편씩은 본 것 같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만. 여전히 내 취미는 영화 즐기기와 곱씹기이다. 시간과 비용 대비 눈귀를 충족시키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으로 영화에 비길 것은 아무래도 없다.


나의 영화 즐기기는, 좀 늦게 시작됐다. 게다가 대체로 상업영화에 치중돼 있다. 그래서 늘 깊이 있는 영화 이야기에 있어 주눅 들곤 했다. (내심 모 그리 중요한가라며 변명하며) 그런 내게 120년의 영화 역사, 한 권의 책으로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 게다가 만화! 좋은 기회다.

 

영화, ‘만화’에 신세지다
<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는 영화칼럼니스트 황희연씨가 쓰고 재즈평론가 남무성씨가 그렸다. 남무성씨는 꼬마 때부터 옆집 그녀의 손에 이끌려 영화관을 다녔던 씨네마 키드라고.


‘역사’란 이름이 붙었지만, 연대기별로 나열하지 않았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사건과 영화사를 구분지을 만큼 특징적인 영화감독이나 장르로 라이벌과 비교하여 풀어나간다. 영화사에 길이 남은 감독과 작품, 장르에 대한 당대 해석과 이후 해석을 통해 역사를 관통한 힘을 지녔다. 감독의 신변잡기적 이야기는 주목도를 높였고 ‘고뤠~’ 와 같은 유행어와 비판받는 감독의 변명어린 독백 등은 깨알같은 재미를 더했다.


치열했던 영화 역사 속 현장을 통해, 영화적 지식 뿐만 아니라, 역사 속 살아남은 영화의 힘은 무엇인지 생각할 계기도 되었다. 작가 황희연씨의 말처럼 일반인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영화문화 상식’ 책이 된 셈이다.

 

종합예술을 넘어 과학산업의 총체, 영화
좋은 스토리만으로 영화는 성공하지 않았다. 작품성이 아니더라도 영화에 대한 특별한 시선과 애정을 가진 감독의 열정과 천부적 재능이 있어야 했고 누군가의 편집과정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기도 했으며, 국제적 시대상과 영화의 산업방식(배급), 기술의 진보 등의 여러 가지 요인이 잘 맞아야 했다.

 

게다가 요즘엔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관객’이 힘을 보태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영화를 여러 시선을 통해 즐기고 평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영화문화산업 발전에 시너지를 얻고 있는 셈이다.

 

목차만 봐도 굵직한 영화사 흐름을 읽을 수 있고 ‘감독’과 영화산업에 대해 시선이 확장된 점이 무엇보다 유익했다.

 

주요목차 중, 기억남는 내용을 정리해 봤다.

 

1.영화의 상영 : 뤼미에르 형제 VS 조르주 멜리에스
- 생일을 알고 있는 유일한 예술 ‘영화’
- 영화 최초 상영은 1895.12.28. 뤼미에르 형제
- 영화 상영은 프랑스 파리 지하 인디언 살롱에서 1프랑의 입장료를 받고 상영
- 실은 9개월 앞서 막스 스클라다노프스키(독일)가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상영했지만(상영시간도 긴), 상업적 감각 떨어져, 기록되지 않음
- 최초 영화 상영기는 에디슨이 발명. 처음에는 1인 상영기
- 1897년 극장 불 125명 사망. 뤼미에르 내리막길 걸어
- 뤼미에르 풍경 영사기 담고, 마술사 출신 멜리에스 마술적 트릭 구사. 이에 훗날 판타지 영화 시초로 불리게 됨

 

2.영화패권 쟁탈 : 유럽 vs 미국
- 영화 유럽에서 태어났지만 산업으로 발전한 건 미국(역시 기회의 땅인가)
- 유럽 정치싸움하는 동안 미국은 전쟁하는 나라에 무기 팔고 유럽 선진 문화 도입. 1차 세계대전 후 미국 급부상
- 영화 파급력은 배급방식에 있다. 상영기 갖고 다니다가 상설극장을 만들기 시작
- 최초 상설 극장은 미국 니켈로디언(니켈(입장료 5센트 니켈로 만듬))

 

3.코미디 왕 : 찰리 채플린 VS 버스터 키튼
- 무성영화 천재 배우들
- 찰리 채플린은 매카시즘(1950년 미국 전역 공산주의를 색출)에 휘말려 ‘공산당’으로 내몰림

- 가을이면 어김없이 영화를 떠나던 버스터 키튼은 자율적 창작 권한과 엄청난 기계광으로 스펙터클하고 화려한 기술을 많이 구사.
- 그러나, 키튼은 유성영화등장(1927년)으로 중저음 목소리의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내리막. 1951년 채플린의 영화 <라임라이트>에 등장. 재기

 

5. 거장의 이름 : 히치콕과 알프레드 히치콕과 오손 웰스
- 어떤 조사방식에서든 상위권 놓치지 않는 두 영화 <시민케인>(1941,오손웰스)과 <현기증>(1959,히치콕)
- 히치콕 강박 관념은 부모의 엄격한 교육철학에서 비롯. 매일 고해성사하고 어린시절에도 잘못하면 아빠가 감옥에 넣었다고 함
- 히치콕은 타고난 공상가 화가지망생
- 히치콕 때문에 맥거핀과 카메오라는 용어 탄생. 맥거핀(아무것도 아닌 것 수시로 화면에 비춰 중요한 물건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기법)과 카메오(영화 속에 중요한 인물 잠깐 스치듯 등장하는 것, 카메오 출연을 즐김)
- 목소리가 아주 좋았던 웰스는 유명한 라디오 DJ기도 했다고. 화성인 지구 침공했다고 장난 방송하면서 내리막 걸어
- 웰스 유언 “저는 영화라는,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깊이 사랑한 것 같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꼭 다른 것을 하고 싶습니다”

 

6. SF감독 : 조지루카스 VS 스티븐 스필버그
- 조지 루카스가 우주 ‘전쟁’을 상상했다면 스필버그는 우주와의 ‘교류’를 상상
- 상상이 가능했던 건 영화기술의 진보가 있었기 때문
- 영화 과학적 혁신 없이 진보 이루기 어려운 예술
- 우주에 대한 이들의 열정으로 SF(Science Fiction)영화 시대 개막
- 스필버그 <죠스> 세계 4억 달러 이상 수익(존 윌리엄스 주제곡 한몫)
- <죠스>는 흥행 갱신,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로 기술 갱신
- 조지 루카스 특수 촬영 효과 개발 전문업체 ILM 설립, 할리우드 기술 혁신에 앞장
- <인디아나 존스>는 루카스와 스필버그 힘 모아 만든 것. 여기 해리슨 포드 가세
- 스필버그는 작가로의 명예에 대한 콤플렉스 가져 작가주의에 집착 <쉰들러 리스트> , <라이언 일병구하기> 제작,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감독상 거머쥠

- 루카스 상과 거리 멀었지만 아쉬움 없어. 단, 연출 꺼려해.. 스타워즈 1편만 직접 감독. 나머지 후배감독들에게 맡겨...

- 이러한 루카스 연출 거부증 스필버그와 우정 유지(스필버그 상상력 지원해주는 자문 역할)

 

7. 새로운 영화 사단
- 할리우드의 왕, 제임스 캐머런 <타이타닉>, <아바타>, 그는 물리학을 전공했다.
- 뉴질랜드의 왕, 피터 잭슨 <반지의 제왕>, <킹콩>, <호빗>
- 월드 디즈니 애니메이션 부서에서 일했던 팀버튼은 동화적 감각 익혀 애니메이션 특이한 방식으로 해체. B급정서로 웃기는 재주가진 코엔 형제 등

 

처음 20명이었던 친목모임이었던 아카데미가 지금의 자리를 잡게 되기까지와 헐리우드, 유명 영화학교 헐리우드 밖 거장감독 그리고 아시아 삼국의 최근 영화를 주도하는 감독들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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