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디자인 Design Culture Book 1
유인경.박선주 지음 / 지콜론북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어떤 면에서 진정한 위로는 말없는 것들의 위로다. 다만, 그것은 발견할 줄 아는 자의 몫이다.

작은 미소뿐 아니라, 삶의 긍정적 에너지 ‘위로’까지 전해주는 사물들이 있다. 그것들은 ‘디자인‘이라는 이름을 갖지만, 유용성과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다. 때론 자연의 모습으로 때로는 유머감각으로 때론 메시지의 형태로 생활 속에 빈번히 등장해 관찰자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디자인을 통해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본성과 창작자의 착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책 <위로의 디자인>이다. 책은 의자, 텐트, 이불의 상업제품부터 예술가의 퍼포먼스, 공공프로젝트, 건축물 등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을 망라한다.

 

자연을 닮은 디자인
“이 세상에서 지금껏 이루어진 다자인 중 가장 경이로운 것은 바로 이 세계, 자연일 것이다.”

바람과 빛의 향연을 눈으로 본다면 바로 이런 디자인일 것이다. 어둠 속에서 전기전도성 재질로 된 종이로 만든 조명 <브라스크 Bourrasque>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거나 증폭시키려고자 했던 마음, 아름다움을 전하고픈 창작자의 착한 마음이다.

무지개와 별을 구현해낸 <스타필드>는 비디오 프로젝트, 키넥트, 소프트웨어, 그네를 통해 어린시절 별을 바라보던 풍경들을 만들어낸다. 유용한 하루를 산 어느날, 그네를 타며 밤하늘을 유영하는 시간이 도시인들에게 필요하다.


초록에 대한 인간의 그리움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였다는 것을 반증한다. 북유럽에 많이 도입된 그린루프(식물로 조성된 건물 지붕)는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어 바이킹과 중세 시절에 가장 흔한 양식이었으나 산업화와 함께 사라졌다 현대에 다시 복원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디자인은 무엇보다 자연이 주는 실제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느끼고자 했던 인간의 애정이다.

 

낭만적 농담
‘삶이란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진지하게 말할 대상이 아니다’ - 오스카 와일드
‘인류에게 참으로 효과적인 무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웃음이다’ - 마크 트웨인

복잡한 세상에 수많은 걱정거리를 가뿐히 넘길 수 있게 하는 힘, 웃음을 간직한 디자인들이 있다. 책으로 된 이불 <베드타임 스토리>는 잠자기 전 엄마가 읽어주던 책을 떠올리게 한다. 링거형태를 가진 하드 드라이브(안티바이러스 기능을 가진 하드 드라이브), 묘지 형태의 USB 등은 외관과 기능의 부조화에서 호기심을 발생시켜 일상의 생활을 환기시킨다. 책을 세워놓은 듯한 텐트, 양을 그려놓은 텐트 사물의 은유화는 그 사물이 지니는 기능과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도 발생한다.


낙엽을 끌어모으는 나뭇잎 끌개는 낙엽이 쓰레기라는 고정관념에서 나뭇잎 끌개(나무모양을 한)를 통한 재탄생으로 환기시킨다.

 


함께라는 행복
상호 교류적 성격을 띤 공공예술 프로젝트도 있다. <비포 아이 다이 Before I Die _____>는 미국 뉴올리언즈 한 폐가 벽에 그려놓은 질문 하나였고 이웃들은 여기에 대한 문장을 완성해 나갔다. 삶의 연약함을 일깨우고 더불어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목소리를 가질 기회 뿐만아니라, 타인과 공유할 기회까지 줬다.

죽음을 통해 삶을 새롭게 돌아보게 하는 디자인도 있다. 유품인 옷을 재활용품으로 내놓으면서 전 주인의 이름과 삶을 생각해 달라는 태그를 붙인 아이디어는 누군가의 삶과 그 삶이 깃들 물건에 대한 소중함을 전한다.


상상하는 능력은 어쩌면 인간이 말할 수 있는 능력보다 더욱 가치있는 일일지 모른다.

맨해튼의 움직이는 정원으로 불리는 <가든 인 트래싯 Garden in Transit> 프로젝트는 뉴욕의 택시에 꽃을 그림으로써 도로를 정원으로 만들었다. 맨해튼의 풍경을 바꾸는 작업인데 2만3천명의 병원환자들이 참여했다. 물리적, 정신적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이 창조작업에 참여함으로써 창조자도 힐링받는 효과를 누렸다. 참여를 통한 사회 변화의 한 예가 일상을 창조하고 혁신할 수 있는 기회를 타인에게 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어진다.

<타피 루즈Tapis Rouge>는 2011년 프랑스 작은 마을 조자끄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다. 마을 전체에 초록색 잔디 카펫을 깔았다. 420미터의 잔디는 사람과 예술, 자연과 마을 사이의 연결 고리, 산책로가 되어 일상의 공간과 사람의 공간을 재발견하게 한다. 다니지 않던 곳을 구석구석 걸으며 발견하는 낯선 즐거움. 그 속도와 규모에서만 주어지는 요행과 발견이 초록길을 통해 이어진다.

 

사적인 영감

아이슬란드에 지어질 예정인 송신철탑<랜드 오브 자이언트>는 거대한 사람의 몸체가 전선과 전선을 이고 늘어서게 된다. 때론 앉고 때로 구부리고 때론 역기를 들어올리듯 늘어선 송신철탑 전선들의 거대한 인간들은 거대한 산맥의 자연과 더불어 인간의 위대함을 대비시키는 위트가 돋보이는 작품이 될 것이다.


집은 세 번째 피부라고 말했던 훈바르트 바서는 집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여겨 창문이 눈과 같다고 획일화된 창문을 거부하고 춤추게 만들었다. 뉴미디어 아트 그룹 에브리웨어는 테클롤로지가 인간적이지 않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특히 <회고록>은 오래된 전자제품들을 긍정적이고 사랑스런 눈길로 다시 바라보는 작품이다.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브라운관 텔레비전, 영상분석과 얼굴인식 등의 기술을 통해 사람이 카메라는 응시하면 사람의 얼굴을 찍어 브라운관 속에 플라로이드 사진을 떨어지게 하는 방식이다. 추억이 저장되는 과정을 보이게 해 찰나의 영원을 상기시킨다.

 

디자인을 너머

디자이너 마르고 뤼앙의 유골함은 ‘유의미한 애도’에 새로운 생각을 더해준다. 생분해성 코르크 재료와 세라믹으로 제작된 유골함에 유골을 담고 단지 안에 작은 묘목을 심어 부담없이 기르다가 나무가 더 크면 정원이나 공원에 옮겨 심도록 한다. 생분해성 재료는 흙으로 돌아가고 윗부분 세라믹만 남아 묘비처럼 고인을 기념하게 된다.

매일 지나가는 골목 어딘가에 핀 꽃이 당신의 하루를 바꾸고 동네 풍경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거라고 믿음으로 번져가는 <게릴라 가드닝 프로젝트>는 작은 수고, 작은 책임감, 작은 선의를 통해 우리가 삶을 디자인해 바꿀 수 있다는 강한 메지시를 전한다.

관찰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위로를 주는 디자인, 영감과 웃음을 주는 디자인, 소통을 이끌어내는 디자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책을 덮고 나면 어느덧 놀라운 세상과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따뜻하고 재미있는 시선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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