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 삶의 속도를 선택한 사람들
김남희.쓰지 신이치 지음, 전새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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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픈 대로 살고픈 대로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도보여행가 김남희, 슬로우라이프 창시자 쓰지 신이치 공동 집필

남들과 다른 삶의 속도와 방향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소수자'들이 있다.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자신의 정신적 지주 쓰지 신이치 교수와 함께 부탄, 한국, 일본을 오가며 만났다.

 

소수자는 부탄국민, 자연농법 농사꾼, 귀농인, 생명평화 실천운동가, 정신장애인, 조폭에서 공정무역가가 되거나, 문제아에서 일본말 치료사가 된 이 등이다.

 

이들의 삶을 통해 책은 이렇게 묻는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자유의지'란 가능한가? 심지어 옷 입는 것조차도 진정 당신의 자유의지인가? 당신의 삶은 과연 주체적인가?"

 

그리고 이렇게 조언한다.

"우리는 늘 누군가가 직업을 주기를 기대해왔죠. 정부가, 회사가.. 그건 노예가 되고 도구가 되는 것이고 세뇌당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되고 싶은 존재가 되세요. (치열한) 삶을 통해 찾아내세요.” – 사티시 쿠마르

 

무엇으로부터 노예가 되고 세뇌당하고 사는 걸까. 나만의 삶의 속도와 행복의 방향은 어때야 할까. 이들이 만난 소수자의 삶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부탄의 아이들

 

충분하다 멈출 수 있는, 소비하지 않을 자유 / 부탄
국민행복지수 1위 부탄의 헌법에는 GNH(국민총행복)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명시되어있다. 기본전략에는 자연환경의 보전, 문화적 독창성 유지, 공평하고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좋은 정치에 대한 내용과 적어도 국토의 60% 숲이어야 한다는 조항들이 있다. 부탄 사람들은 깨끗한 물과 공기, 병들지 않는 대지 같은 자연환경을 행복의 기본조건으로 믿는다.

우리는 어떠한가.

니체와 하인즈의 말을 들어보자

“자기 자신을 박탈당했고, 매일 사용되어 닳아지는 것이 되도록 교육받았으며 그것을 의무로 받아들이는 삶을 살게 되었다” - 니체

 

 

“텔레비전만 있으면 인종이나 문화나 자라온 배경과는 전혀 상관없이 언젠가는 모두가 비슷한 것들을 원하고 필요로 하게 된다. TV란 불필요한 욕망을 생산하고 확대시키는 장치다”

- 미국 식품기업 하인즈

우리의 소비는 텔레비전이 만들어낸 욕망의 결과일 뿐, 덕분에 많이 이들이 모두 비슷한 것들을 바라는 욕망을 갖게 되었다.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는 물건 목록을 작성해 보자. 행복이란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진정으로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 / 훗카이도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 자체에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긍정교’의 순진한 신도가 되어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간다.”

훗카이도의 베델의 집은 장애인이 중심이 되어 서로 돕고 의지하는 약함에 기대어 살아가는 곳으로 이익나지 않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나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런 인정과 인내로 살아가는 곳이다.

 

삶의 장소를 바꾸면 삶의 방식 바꾸는 일 쉬워질지도 / 강원도

여가를 누리는 방식에서도 우리는 돈으로 구매하는 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게 아닐까. 도시에서의 삶은 스스로의 안목과 재주를 실험하기보다 시장에서 나온 물건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삶이 되기 쉽다. 우리가 찾아야할 취미활동은 돈이 개입되지 않고 놀이하는 법, 구매보다 생산하는 문화 아닐까. 놀이는 돈을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상품 아니다. 우리 사회는 노동과 놀이가 분리되어 있다. 극단적으로 노동의 댓가로 놀이를 하면서도 소비하며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

 

먹을 음식, 스스로 생산한다는 것, 인간을 자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일 / 나라

유기농업은 화학비료, 농약 사용하지 않는 농법으로 자연농업과는 차이가 있다. 자연농법 잡초도 뽑지 않는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인간의 적이란 없다고, 즉 잡초도 벌레도 적이 아니라고 여긴다.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 농법인 셈. 식물을 기르거나 정원을 가꾸는 일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길이며, 인간을 자연질서에 깊이 뿌리박은 보조적인 존재로 보는 세계관을 실제로 구현한 삶이다.

현대과학은 사물의 세계만 보고 생명의 본질, 관계를 못 보는 폐해가 있다. 갈아엎으면 에너지 소비 많아지고 지구 온도 높이니까 안된다는 게 아니라, 갚아엎지 않은 논밭이어야 생명이 대물림 된다는 관점이 필요하다.

 

아마추어의 힘 뺀 자세 / 제주

무언가를 할 때면 프로처럼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필요 이상의 부담감을 지니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취미생활을 즐길 때도 장비나 복장도 프로처럼 갖춰야 품이 난다고 믿고. 하지만 아마추어로 산다는 것, 그건 실수해도 괜찮고, 수준이 좀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닐까. 내가 재미있으면 되는 게 아닐까. 아마추어의 힘 뺀 자세야말로 우리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아닐까.

소수의 전문가에게 의지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아마추어가 활약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나는 믿는다. 가수 아닌 사람이 밴드 만들어 노래하고 목수 아닌 이가 망치 두드려 만들고, 농부 아닌 이가 농작물 키우는 게 자연스러운, 그런 세상.

어제, 초등 6학년의 자살 소식을 접했다. 하루에 40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 걸까. 사회 4대악 척결을 내세우기 전에 그 원인이 된 우리 삶의 가치와 방향을 반추해 보는 것이 먼저 아닌가.

한 개인의 온전한 행복없이,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은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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