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공존 - 숭배에서 학살까지, 역사를 움직인 여덟 동물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김정은 옮김 / 반니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인간과 동물의 우정이나 종속관계는 이미 다양한 매체로 소개되고 있다. 그래서 <위대한 공존>에서도 동물애호가의 호소적인 목소리를 예상했었는데, 인간과 동물이 가지는 상관관계를 역사적으로 다루고 있어 꽤 신선하면서도 정보가 풍부했다. 일반적인 출판물이나 영상들은 인간 우위의 시각이 지배적인 반면 <위대한 공존>의 경우는 인간과 동물을 개체로서 바라본다.

 

인간이 동물을 지배한 것인가 동물이 인간과의 관계를 활용한 것인가는 사람으로서는 판단하기 힘들다. 동물의 입장이야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고, 같은 인간의 입장이라 해도 동물을 대하는 자세가 일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 이상 동물을 이야기 할 때 윤리나 도덕을 따지는 것도 부르짖는 쪽에서만 큰 의미를 두고 있어 이제는 새로운 시선으로 그 관계를 조명할 필요가 있기에 그 부분은 전문가의 소견이 더 절실해 보인다는 저자의 판단은 현명하다. 그는 오로지 본인의 연구에 집중하여 동물들이 가지는 인간과의 역사적인 관계에만 집중한다.

 

동물을 이야기 할 때 보통 둘 중의 하나다.

우정이거나 도살이거나. 개인적으로 이런 이분적인 관계를 늘 의아해 했었다. 큰집이 시골이라 어린 시절에는 곧잘 시골로 놀러가곤 했었는데 대문 앞에는 언제나 커다란 개가 2마리 이상 있었다. 그 목적은 방범 하나 뿐이었을까? 아니다.

그 개는 평소에는 하나의 가족 구성원으로 사랑받으며 친척오빠들의 놀이친구였다. 또 늘 사람과 같은 식사 시간에 식사를 했으며, 밤에는 방범의 역할도 했고, 때가 되면(?) 여름에는 쳔렵을 위해 쓰였다. 고대처럼 숭고한 의식을 치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하고 음식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 주어 고맙다는 마음으로 먹었다고 했다. (나는 분명 안 먹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고기라고 거짓말로 별의 별 고기를 다 먹인 어른들의 소행으로 미루어 보아 먹었을 수도 있다.)

 

동물애호가라면 당연히 자기가 기른 개를 어떻게 먹냐고 하겠지만 시골에선 이런 게 다반사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농경사회의 생활 중 한 부분일 뿐이다. 나는 오히려 동물 애호가랍시고 남을 비난하는 사람이 더 이해가 안 간다. 어차피 인간의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에 대해서만 윤리적인 허용을 하는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최고의 선을 행하기는 힘들다. 우리가 개를 사랑한다고 다른 동물이 식용으로 쓰이는 게 당연한 건 아니다. 내가 채식을 하는 이유는 모든 동물을 먹으면 안 된다는 개념이 아니다. 어차피 고기의 식감이 기분 나쁜 내게는 오히려 채식을 선택함으로서 좋은 핑계구실이 생겼다고 할 수도 있다. 고기가 좋은 사람이라면 먹어야지. 다만 뭐든 과하면 좋지 않을 뿐이다. 또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을 먹는 타인을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나 역시 모자란 것투성인데 말이다. 단지 내가 바라는 바를 위해 할 수 있는 정도를 할 뿐인 행동이 채식이었을 뿐이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말을 하자면 꼭 나오는 부분이 식품윤리를 벗어날 수 없기에 나도 모르게 잡설이 길어졌다. <위대한 공존>에서는 이런 고리타분한 부분은 없으니 걱정마시길. 이 책은 오로지 역사를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살짝 비껴나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서 바라보았을 뿐이다. 시대에 따른 동물의 지위나 인간과의 관계를 나타냈기 때문에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일수록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역사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흥미롭게 받아들일 것 이다.

 

고리타분한 교훈도 없고 단지 펙트만 있다.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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