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청춘, 문득 떠남 - 홍대에서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모로코까지 한량 음악가 티어라이너의 무중력 방랑기
티어라이너 글.사진 / 더난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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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다.

요즘 들어 삶에 권태가 왔는지 부쩍 쉬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치민다.

그렇다고 모든걸 훌훌 털고 훌쩍 날아버리기엔 배포가 너무 작아 추진도 못하는 나에겐 『느린 청춘, 문득 떠남』은 대리만족인 책이었다새해가 시작된 후 새로운 다짐들로 다시 태어난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여름까지 강하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익숙치 않은 생활방식의 개선으로 어색함과 부적응으로 인한 피곤함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노력에 비해 성과는 수월찮았다는 것도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이유가 되었을 정도.

이제 어떻게 나가야겠다는 길이 보이기 시작하자 좀 해이해졌다.

그러면서 시험하나를 망치는 바람에 패닉이 온 후 딱히 손을 놔버릴 배짱도 없는 주제에 그냥 저냥 한량이 되어 시간을 보내버려 보이는 것만큼 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못 했다.

 

『느린 청춘, 문득 떠남』을 읽으니 떠나고픈 욕구는 더 강해졌지만 일단 시험이 있는 12월 초까지는 참아야 한다는 이성이 충동을 잠시 눌러준다. 그래도 누군가 나를 대신해 자유를 만끽해줘서 너무 좋다.

사실 나는 게을러서 여행에 대한 욕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귀찮은 사람이다.

떠나고 싶다는 건 기분전환을 하고 싶다는 거지 집에서 1km쯤 떨어지면 일단 정신적으로 매우 피로를 느끼는 그런 사람.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싶다면 이민을 가지 여행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책이란 얼마나 좋은지!

게으르고 겁 많아서 멀리 떠나지도 못하며 발만 동동 구르는 나에겐 알맞은 휴식처가 되어 주었다.

원체 눈만 뜨면 생각하는 게 일인 나에게 공감할 만한 사색들이 눈에 띄어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갈 때는 대체 짐을 얼마나 꾸려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한살이라도 젊을 때 여행을 간다면 머리로 계산하기 보다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이것저것 챙겨갈 텐데……

나 또한 저자처럼 짐스러워 두고 온 물건에 대해 현지에서 아쉬워할 것 같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자는 장소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만 특별히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게 친절한 숙소 주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길에서 사기를 치는 여학생까지 그저 친근하게만 느껴지더라.

마치 소설에 필연적 요소들로 내재하는 인물들인 것처럼 말이다.

혼자 여행한 사람답지 않게 외로움도 딱히 모르겠고 오히려 혼자이기에 불편함 없이 다닌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여행을 하는 걸까?

산다는 건 항상 공동체 안에서의 행위를 자아낸다.

어떻게 해도 우리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혼자만의 온전한 시간을 길게 가지기란 불가능 하다.

삶에의 권태란 바로 그 공유에서 벗어날 수 없음에 대한 답답함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행이란 저자와 같이 홀로 떠남을 겁낼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혼자 떠나야 그 의미를 온전히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평생 나 혼자만의 시간을 한달 이상 영위해본 적이 없는데 여행이라면 가능하겠다.

 

『느린 청춘, 문득 떠남』을 보며 느낀 여행에 대한 나의 정의란 이미 형성된 사회적인 나라는 꿉꿉한 옷을 잠시 벗고 침전해 들어가는 시간이다.

하얀 거품 내며 보글보글 세탁이 되는 동안 잠시 자유롭게 알몸으로 다른 공간을 둘러보고 온다.

사람들을 피해 또 다른 사람들 사이로 가는 것이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사람이라는 것 자체는 같지만 그들을 대하는 나는 똑 같은 나가 아니다.

내가 나도 겪어보지 못했던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또한 새로운 타인을 경험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지.

앞서도 적었지만 여행에 대한 욕심은커녕 피로만 느끼는 나이지만 생각을 할 수 있고 오랜 시간 동안 입어온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나를 세탁하기에는 여행만큼 좋은 건 없는 것 같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사진과 글이 어우러져 하나의 음조를 이루는 것만 같다.

여기저기 그 지역에 대한 상세한 정보 같은 걸 바란다면 그다지 실용적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색적인 문화와 수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책이다.

한편의 사진집이거나 수필이거나 작가의 목소리와 어우러지는 화음을 느껴보시길.

 

 

"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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