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쉬게 하라 - 나를 괴롭히는 집착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정은지 옮김 / 토네이도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머리 속에서 생각이 떠날 줄을 모른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겠지만 유독 생각이 많아 정신이 어지러웠던 어린 시절로 인해 사춘기가 훌쩍 넘은 나이까지도 방황했다.

나는 안정을 찾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도 아니었고 도전을 원하는 듯싶지만 겁쟁이다.

사실 노력에 비해 요행을 바라기도 한다.

그런 탓에 머리는 몸 보다 더욱 바쁘게 움직이며 살아왔다.

 

아무리 고성능의 차라도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달릴 수는 없다.

연료를 채우기 위해 멈추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엔진이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된다.

또한 도로사정이 본인이 원하는 만큼 충분한 속도를 낼 수도 없고 가끔 시간이 없는 상황에 교통이 정체되거나 신호에 너무 많이 걸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호위반을 한다거나 역 주행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가끔은 세차도 해주고 어디 고장 난 곳은 없나 점검도 받으며 속도만 내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유지보수 해 준다.

기계에 불과할 뿐이지만 거의 가족과 같은 정도의 애정을 갖고 관리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사람은 과연 스스로를 얼마나 유지보수 해 주고 있을까?

신체적인 문제야 진단 결과 등에 따라 해결 할 수 있을 테지만(이 마저 도 녹록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정신적인 부분까지 돌보는 이는 많지 않다. 대게 자신의 정신력을 꽤 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사람만큼 약한 존재가 또 어디 있는지를 간과하는 것 같다.

의도적이라기 보다는 언제 멈출 줄도 모르고 어떻게 돌봐줄지를 몰라서 그런 편이라고 생각한다.

운전은 보통 정해진 룰에 따라 위반 없이 잘 하면 된다지만 삶이란 신호등도 없다.

상황이 다양하고 변수도 많아 그 누구 하나의 선례만을 모델 삼아 살아가기엔 벅차고 임기응변이 뛰어나야 할뿐더러 경험이 쌓인다 해서 결코 정신적 안정감 만족감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더 어렵다.

대체 자신의 지금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행복한지 불행한지 지금 원하는 것은 스스로가 원해서 인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형태인 것인지를 말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인데 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면 대체 무슨 의미로 살아야 할까?

그럴 때 명쾌한 답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평소에 스스로에게 답을 구하려는 연습이 없던 터라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원치 않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방황하게 된다.

 

평소에 스스로의 상황을 점검해 줄줄 아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 지혜롭다 할 수 있겠다.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 위기의 상황에서도 제대로 눈 뜨고 걸을 수 있는 사람.

익숙지 않은 생활방식이긴 하지만 <생각을 쉬게 하라>의 도움을 빌어서라도 작게 시작해보면 좋겠다.

똑같은 책이라고 모두에게 같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조금이나 효과는 남긴다.

독서보다 좋은 힐링은 없다고 자부한다.

 

시험을 생각보다 잘 못 본 탓에 울적했지만 그저 좋아진 공부를 질길 수 있게 시작한 계기가 되었으니 만족하면 된다.

얼마나 행복한 시작이었는지를 잊고 또 점수에 연연하는 못된 버릇이 고개를 들어 행복할 수 있는데도 울적한 부분에 치우쳐 생각했던 스스로를 반성해 본다.

잠시 지적인 움직임을 쉬게 하고 지혜로움을 채워 넣게 한 시간이었다.

저마다 온갖 정보들로부터 혹사당하는 심신을 가혹하게 몰아갈 줄은 알아도 쉬어주는 법을 모르며 사는데 아무리 넉넉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 해도 마음이 텅 비어 있다면 그 무슨 의미가 있을까?

쉬어주는 것도 미래에 대한 준비다.

일상의 생각으로부터 잠시 한 발짝 물러서 본다면 평소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생각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된다.

잠깐의 독서로 그 정도면 넘치지 않을까?

 

"해당서평은 토네이도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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