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장식미술 기행
최지혜 지음 / 호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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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상업과의 뚜렷한 경계가 없을 때는 가구나 섬유에 대한 관심을 경시하지 않고 오히려 부추기며 그 가치를 인정했는데 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에 뚜렷한 경계가 그어져버렸다.

덕분에 디자인 계통은 예술적인 가치는 인정받지 못하고 소모적인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실제 우리 삶 속에 녹아있는 생활예술에 대한 진정한 가차에 대한 관심이 안타까운 것은 나뿐만은 아니라는 위안이 되는 <영국 장식 미술 기행>이 출간되어 고마운 마음으로 펼쳐 들었다.

일반인들에게 디자인도 예술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는데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부지런히도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생동감 있게 전하고 있어 홀려서 읽었다.

보기만해도 숨 막힐 듯한 웅장한 가구와 벽 장식들을 실내에서 보게 된다니 직접 보진 못 했어도 사진으로부터 보여지는 그 힘에 압도된다

 

순수미술이 고결한 틀에 모셔져 그 가치를 보존하고 있다면 장식미술은 생활 속에서 작가의 창조정신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벽에서 가구에서 식기에서 단순한 기능 이상의 의미를 발하고 있어 전시 상태 조차 예술이 된다.

따로 그림이나 조각과 같은 장식이 필요 없이 그저 그 공간에 위치 함으로서 예술적인 가치를 지니니 실제 그 공간에 살았던 사람들의 감각은 얼마나 깊이 있었을까?

10년 전에 교수님으로 들었던 얘기 중에 가장 속상하지만 납득할 수 밖에 없었던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따로 예술에 대한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맞는 말이지 뭔가? 그들은 일상에서 넘치게 예술을 접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예술 공부가 된다는 거다. 억지로 힘들여 배울 필요 없이 이미 본능적으로 그에 대한 감각을 익힌다는 사실이 참 부럽더라. 동시에 그러지 못한 일반인들의 일상이 안타까우면서 미술학부의 학생으로서 어떤 일종의 사명감도 느꼈다. 당시는 완전히 의상 쪽으로 기울기 전이긴 했지만 어떤 과를 선택하든 예술적인 창조정신을 부르짖기 전에 소통과 공감을 배제한 예술은 그저 취미일 뿐이니 늘 대중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한편으론 그 공간의 전시가 단순히 가시적인 효과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배경까지 아울러 생각하게 하니 장식 미술이란 단순한 시각적 호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 대한 지식과 이해라는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고차원적인 예술임을 새삼 느낀다.

단지 1권으로 16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행을 한번에 봐서 그 변화의 속도에 새삼 놀랐다.

주로 18세기의 인테리어를 접할 수 있었는데 요즘의 다양한 장르의 디자인들이 있지만 역시 클래식을 뛰어넘기는 힘든 것 같다.

이미 공간예술로는 충분한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하였기 때문에 현대의 우리들이 가시적인 재현은 이룰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시대적인 감수성의 깊이까지는 더할 수 없지 싶다. 이렇게 감상할 수 있다는 데 그저 다행이고 고맙다.

 

유럽인들의 보존능력과 전시능력은 하루 이틀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볼 때마다 놀랜다.

그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발 품을 팔아 느낄 수 있는 작가가 부럽고 그 덕분에 책으로 앉아서 호사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책 속에 길이 있다지만 길만 있는 게 아니라 안정을 위한 방과 여행공간과 안내자들이 있다.

책이 주는 무한한 감동은 아무리 영상이 발달한 시대라 해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 것 같다.

5월에 여행가는 사람들이 많던데 그럴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영국 장식 미술 기행>만으로도 유럽의 한 시대를 돌아본 기분이 들 것이다.

직접 발 품 파는 여행이야말로 인상적이기야 하겠지만 남의 여행으로 뭔가 감명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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