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는 <침대>를 통해 개인의 삶을, 성장을, 사람과의 관계를(특히 가족애를묵직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한다.

안개가 가득하기 때문인지 영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뿌옇고 묵직하게 느끼는 편인데 그런 선입견 때문인지 작품의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어둡고 우울하다는 인상이 더 강하게 부각되어 다가왔다.

그래서 오히려 이 작품이 영국에서 태어났기에 그 매력을 잘 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염세주의적인 분위기의 소설에서 주로 등장하는 사회부적응자들을 많이 봐 왔지만 <침대>의 저자는 주인공을 통해 사회에서 버림받기 보다는 강한 자기애와 탐구심으로 인한 좌절의 과정 등을 보여주는 편이다.  

 

스스로 문을 닫아 걸었지만 그를 불쌍히 여기거나 하는 건 우리의 입장일 뿐이고 실제로 내가 그 보다 행복한지, 내 삶에 만족하고 나 스스로에 대해 귀를 잘 기울이고 있는지 자신이 없다.

어떻게 사는 것이 성공한 삶일까성공하면 행복할까?

나의 삶은 나에게 의미 있게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삶의 질은 높아졌지만 우리가 꾸준히 자문할 수록 답을 찾기 힘들어 빙빙 돌아가는 느낌이다.

좋은 얘기를 듣거나 도움이 될 만한 글귀를 읽어도 시간이 지나면 그 농도가 희미해지고, 또 다른 가르침으로 뒤로 밀려 잊혀진다.

 

화자는 내용을 들려주면서 자신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기로 작정을 한 것 같다.

이름조차 모르고 그저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긴 했지만 특별한 캐릭터인 '형'보다는 화자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더라. 그건 내가 특별하기보다는 그런 사람을 바라보는 입장이기 때문일까?

이유야 어쨌든 이 가정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나에겐 엄마도, 아빠도, 형도 아닌(심지어 루도) 화자였다.

누구나 안타까운 부분이야 있지만 스스로에조차 자신을 중심으로 세우지 못하는 인생이라니 얼마나 처연한가 말이다.

 

오늘 <침대>가 나의 가슴과 정신을 작지 않게 흔들었지만 또 일상에 젖어 잊어버릴 것 같아 몇 가지 구절을 적어 놓았다.

욕심 같아서는 다 적고 싶을 정도로 작가의 표현력이 놀랍지만 다 적는다면 결국 안 적는 것과 다름이 없는 관계로(라기 보다는 독서의 흐름에 방해를 받는 건 싫으니까) 정말 몇 구절만 적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기도 하고.

요즘 한창 영미산문을 공부하는 중이라 원서를 읽고 싶기도 하지만 원서를 구하기는 힘들겠지.

물론 내 어휘력이 얄팍해서 지금의 감동을 그대로 느끼긴커녕 반감되겠지만 작가의 문자를 그대로 전해 보고 싶다.

원래 언론, 출판계에 몸 담았기 때문인지 시사하고자 하는 바를 소설임에도 명확하게 전달하는 한편 흐름을 이끌어가는 과정도 억지스럽지 않고 결코 재촉하지도 않으며 생생하다.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묘사력은 시각적, 후각적, 청각적 감각을 깨울 정도로 섬세하다.

 

나도 가족도 누구라도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사진이 있다.

가장 오래오래 남아 자는 순간에도 내 주머니를 떠나지 않는 사진.

싫다고 피하거나 그 사진의 무게에 눌려 평생을 속박의 삶 속에 지내고 싶지 않다.

물론 마음은 그렇지만 대부분은 열심히 방공호를 파고 스스로 그 안에 들어가 갑갑함 속에 안정을 찾는다.

나도 나 스스로를 가둬 놓고선 다른 이의 그런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하면서.

마치 뭔가 깨달음을 주려는 양 조언을 하면서.

살아가는 어느 시점이라도 깨달음? 혹은 감동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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