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황소
션 케니프 지음, 최재천.이선아 옮김 / 살림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왜 채식을 시작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답을 주기 지친 나는 선택이 아닌 필요에 의해 시작했다고 말 하기 시작했다그러다 문득 채식을 했던 동기와 사회적인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내 의지를 관철시킬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싶더라.

하지만 채식을 시작하던 시기에 고무되어 엄청난 량의 책을 읽었던 당시보다 설득력 떨어지는 논거로 인해 전처럼 이해시키기 위해 말 꺼내는 것이 쉽지 않다.

다시 내 채식생활을 활성화시키고 주변인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영상을 보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 보지만 역시 제대로 습득하기 위해서는 책이 최고다.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편이 아닌지라 요새 뭘 볼까 고민하던 차였다.

그 와중에 백마디 말 보다 강한 한 권의 소설이 나왔다.

제인 구달이 극찬했다 하니 관심이 가고 표지에 요새 완전 호감형 캐릭터인 이효리씨의 모습에 서탐발동!

잡설이 길었으니 책 소개를 기대하고 들어왔을 사람들에게 미안하니 이제 좀 책 얘기를 해 봐야겠다.

 

 

"이것은 황소에 관한 이야기다.

 혹은 아닐 수도 있다."

 

시작에 있어 황소에 관한 이야기임을 짐작하게 하면서 아닐 수도 있다며 '왜 일까' 한번 생각하게 한다.

단순하게 황소에 대한 시선만 쫓아갈 수도 있지만 저자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채식을 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 혹은 적어도 내가 먹는 음식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 우회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거기에 하나 더 붙이자면 인간으로서의 삶을 투영시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지금 길을 선택하는 데 망설이고 있으며 조직과 체계에 대한 납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크게 공감할 만한 책일 것이다.

생각하는 황소 에트르를 통한 우화로서 사회소설이라 할 만한 토대와 구성을 갖추고 있다.

 

'에트르'란 이름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것일까?

농장을 통틀어 생각하고 말 할 줄 아는 가축이 없는 가운 데 홀로 이름을 지녔다는 것은 결국 누가 지어줬다기 보다는 스스로의 존재를 자각하고 가치를 부여했던 것 같다.

농장의 사람들 중에서도 에트르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진 사람은 없었고 그가 사랑한 소년 자크조차 무관심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붙여줬을 리도 없다.

존재에 대한 증명 없이 살기엔 아까운 존재 에트르.

충분히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을 정도로 에트르는 사고하고 판단 할 줄 안다.

생각하고 말 할 줄 알기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도 누구나 통찰력이 있는 것은 아닌 만큼 에트르의 사고력이 신퉁방퉁하다.

 

그는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만 결국 예기치 못했던 상황과 직면하거나 판단착오로 인한 안타까운 결과를 겪는다.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 움직였지만 지나고 나면 뭐가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자괴감을 느낀다.

에트르의 잘못이 아니다.

황소 에트르는 상상하지 못한 상황에 맞서 최선의 대안을 찾아냈고 어려운 때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과에 상관없이 행위 자체가 대단하다.

문제는 사람이다.

 

우리가 편하자고 길들이기 시작한지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야생에선 적응할 수 없어 인간의 울타리를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소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게 불가능한 현실이다.

지금 사육되는 모든 가축에게 자유를 주자는 메시지가 아니라 필요이상의 육식을 제한했으면 한다.

또 사육에 있어서도 공장식 사육방식의 개선이 필요하고, 사료보다는 여물위주의 섭취, 인도적인 도살방식의 도입이 절실하다.

어차피 식품용으로 키워지는 데 어떻게 키워지든 무슨 상관이냐는 질문은 이미 시작부터 잘못됐다는 것을 질문자 스스로 잘 알 것이다.

우리는 뭐 영생을 위해 태어난 것인가?

 

사람을 비롯 모든 사물은 생성되는 순간 낡아가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어차피 죽는다고 다들 손 놓고 손에 잡히는 것이나 먹고 아무데서나 자진 않는다.

유한한 인생을 인식하면서도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며 눈 감는 그 순간까지 욕구를 잃지 않는다. 바로 그 유한성이 삶에 대한 의지를 더 확고히 해 주기도 하고 말이다.

우리의 인생에 대한 자세는 이렇게 건강하고 활기찬데 다른 개체라고 무시하고 짓밟을 순 없다.

 

적어도 가축들이 살아가는 동안만이라도 인도적인 방식으로 사육되길 바랄 뿐이다.

내가 축사를 운영하지 않는 입장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일이고 다만 바랄 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강경함이 깎이고 깎여 다소 온건한 체제를 추구하게 되어 지금에 와선 환경적, 사회적으로 윤리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이 강제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 육식을 즐기기 위해 시작 된 공장식 가축사육과 비인도적인 도살이 아무렇게 않게 이뤄지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지만 대책을 세우고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적인 영향력이 없는 나로서는 채식을 하면서 개인적인 실천을 시작했는데 온라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보다 덜 외롭고 든든하게 유지하고 있다.

일단은 나를 비롯한 채식인들이 채식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사람들이 알고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게 지속하고 있다.

몇몇 유명 연예인들이 직업의 성격상 성향을 확고히 한다는 게 힘들 텐데도 앞장서서 나서는 걸 보면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감화 받는 것을 볼 때마다 그 영향력에 놀라며 감사하게 된다.

 

이효리씨의 채식선언 이후 그녀의 팬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유기견에 관심을 가지면서 동물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 늘어난 것은 좋지만 확고한 그녀의 발언에 시시비비를 가리며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돌팔매질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최근에는 이하늬씨가 고기 먹는 영상이 돌면서 대역죄를 진 사람인 양 비난하며 댓글을 올려대는 사람이나 일부러 더 선정적인 사진과 글로 기사화시키는 기자들을 보면 '눈먼 자들의 도시'에 살고 있는 답답함이 밀려오면서 당사자가 얼마나 힘들어할지 걱정이 된다.

더 이상 왈가왈부 것은 싫지만 그녀는 단지 직업에 의해 액션을 취했을 뿐인데 그 프로의식을 칭찬해주진 못할망정 안주를 위해 씹어댈 뿐인 행태야 말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생각한다

 

이상하게 채식을 하면서 심성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는데 사회적으로 설득을 시키는 입장에 처할 때마다 억울한 마음과 답답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전투적인 태도가 되는 때가 생긴다.

하지만 내가 이상한 거니까 채식인에 대해 실망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비건 채식을 하며 사고하고 행동하고 있으니 그 분들을 통해 채식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내가 채식을 시작한 시점에 비해서는 채식과 채식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아마 불리한 상황에도 무릎 쓰고 나서주는 공신력 있는 사람들과 예전에 비해 점점 성숙해지는 윤리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는 덕분인 것 같다.

나도 그렇고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육식주의자들을 비난하진 않는다.

소수자들의 단체이다 보니 사회적으로 홀로 의지를 관철하기 어려워 주변에선 투쟁으로 비칠지는 모르겠으나 근본 취지는 '화합' '공생'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냥 '왜 채식이 필요한지'알리고 싶고 함께할 수 있다면 행복할 뿐이다.

 

<꿈꾸는 황소>를 통해 식품 관련하여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은 불쾌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식탁에 대한 사회적인 윤리문제에 대해 아는 것도 지각 있는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진실은 불편하기에 피하고 싶을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직면하여 한 발짝 성숙해야 한다.

미숙하고도 미숙한 나이기에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고쳐야 할 것도 많아 타인에게 뭘 권한다는 게 부끄러운 처지이지만 지각은 하기에 함께하자 권한다.

아직도 채식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환경 혹은 식품윤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그저 쉽게 생각을 유도할 수 있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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