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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안네 - 60년 만에 발견한 안네 프랑크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
베르테 메이에르 지음, 문신원 옮김 / 이덴슬리벨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한 인물의 인생을 통해 보는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에 대한 정신적 외상에 대해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듯한 사람의 내면에 그리도 깊은 우물이 존재하고 있었을까 의아할 정도로 그 기억은 생생하고도 음습하여 타인의 인생이라고 인지하지만 읽는 내내 외롭고도 고통스러웠고 관계에 대해 겁이 났다.
어떤 경우든 상대적인 법칙이 적용하기 때문인지 어제까지만 해도 고통스럽던 내 현실도 오늘은 그저 따끔한 정도로 여겨지는 걸 보면 내가 받은 상처를 남에게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알지 못해서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위험에 대해서도 미리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그런 생각은 하고 있지만 늘 상대의 입장에 대해 확실히 모르면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 하는 마음이 인간인지라 무뎌지기 마련인데 이렇게 <굿바이 안네>를 읽게 되면 다시금 타인들의 상처를 건들이지 않고 동화될 수 있도록 신경을 쓰게 되니 나도 참 무신경한 사람이다.
독자의 사색을 위해 컨셉을 잡아 작정하고 집필한 소설보다 더 감정을 뒤흔든다.
아무래도 사실에 기초했다는 사실을 알고 보기에 더 공감하는 정도도 큰 것일 테고 사건에 대한 현상에 집중하기 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며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그대로 폭 빠지게 됐기 때문이다.
박탈감이 심하고 잊고 싶은 상처를 간직한 사람치고는 실제로 교육도 잘 받았고 스스로도 자신에 대한 컨트롤이 뛰어난 편이라 사회적인 입지를 굳히는데 무리 없이 나아갔지만 최선을 다한 인생인 만큼 약한 자신을 온전히 분리한 덕분인지 그 괴리감이 커서 더 정신적인 고통을 크게 느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시간은 그 어떤 고통도 희석시키기에 괴롭고 힘든 경험을 잊기 위해 우리는 현재와 미래에 매달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시간도 희미하게 풍화시키기 힘든 기억을 짊어진 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들의 고통에 대해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가끔은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상황이 있다.
전시국가에서 산다고는 하지만 전쟁이 무엇인지 몸으로 알기보다 개념으로 파악하는 세대이기에 한국전쟁의 생존자들이나 더 나아가 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전후 어떤 마음으로 사회에 장애를 느끼며 살았을지 생각도 못 해봤다.
그저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삶에 대해 감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들은 우여곡절 속에서 생존에 성공했지만 그 후 사회에 섞여 살아가는 과정에서 일반사람들과 평범하게 섞이기엔 정신적 외상이 너무 컸기에 종종 심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만 같은 삶을 살아가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물론 사람마다 기억의 정도와 고통에 대해 극복하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보통의 인생에서는 한번도 겪기 힘든 지옥 같은 경험을 문신처럼 지울 수 없어 평생의 응어리로 짊어지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단지 피부에 새기는 정도가 아닌 피부를 뚫고 들어와 뼛속까지 침투 한 그 경험은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잔잔한 수면에 파문이 일 듯 당시를 연상시키는 매개체를 보거나 들을 경우 다시금 떠올라 생생하게 요동친다.
언제쯤이면 지워지려나 하는 희망은 헛되다 싶을 정도로 아직도 당시에 대한 회고가 목이 메이는 순간이 오는 걸 보니 그들에 대한 이해를 위해 책을 읽는다 해도 머리로는 알지언정 진심으로 그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인터뷰하기에 괴로운 기억까지 짜내며 풀어내어 숨막히는 표현이 가득할 것 같았지만 그보다 한 여성의 인생을 보는 듯 평범한 일상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일반적인 사랑, 우정, 질투, 불만, 희망 같은 감정들을 보면 소녀의 일기를 보는 듯 부담 없이 읽어나가게 된다.
다만 그런 일반적인 일상과 대비되는 아픔이 수면에 떠오를 때면 그 극명한 대비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는데 전쟁이란 그 무엇을 위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공고히 하게 한다.
가끔 조직적이든 개인적이든 사상을 위한 투쟁을 언급하며 불가피한 희생은 당연한 것, 혹은 영웅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자의라면 몰라도 타의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과연 얼마나 고려하고 그런 발언을 하나 궁금하다.
분쟁의 피해자는 항상 힘 없고 관계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보통의 평범한 우리들이기에 더욱 더 <굿바이, 안네>가 주는 메시지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아이들에게보다 어른들에게 더 많이 읽혀졌으면 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