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얏상 스토리콜렉터 9
하라 코이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도시의 은혜를 입으며 살아가는데 감사할 줄 알고 부당한 대우에 비굴해하지 말라는 노숙자의 긍지를 내세우며 은연 중에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면 '긍지를 갖고 살라'는 얏상의 호통이 시작부터 끝까지 메아리 친다

비현실적 캐릭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시장 속 이야기들을 쫓아가다 보면 비록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물임이 분명한데도 마치 바로 옆에서 호통 한방 날려 줄 것만 같은, 아니 꼭 그 호통을 듣고만 싶은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휴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요즘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콩나물 시루같이 빽빽한 인간관계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현실이기에 얏상의 캐릭터를 절실히 필요로 하게 된다.

도심의 복잡한 인간관계를 들여다보면 넘치는 사연과 기구한 팔자에 남의 이야기라도 한숨을 쉬게 되는데 재료와 요리의 궁합을 탁월하게 중매해주 듯 시장 속 사람들의 사연을 중개해주는 얏상의 모습을 보노라면 기존에 갖고 있는 노숙자라는 개념은 아예 잊게 된다.

 

말이 노숙자지 얏상이 보여주는 긍지와 철학, 지혜 등에 걸맞은 솜씨와 경험 등은 츠키지를 건강하게 살아 움직이게 하는 대부로서 시장에 자선사업을 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본인은 도시로부터 은혜를 입는 다지만 중개인 역할을 매일같이 성실히 해 나가면서 돈 한푼 안받고 오로지 기본적인 식생활만을 신세지는 정도로 만족하는 얏상을 보면 매사를 자본주의적으로 사고하는 현대가 놓치게 된 것이 무엇인지 문득 깨닫게 된다.

 

경영이나 경제에 대해 무서울 정도로 공부하고 도입하여 성장을 이룬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해하고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행복해하기는커녕 우리에 갇혀서 그 우리를 울타리 삼아 벗어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며 간신히 들어찬 자신을 다행스러워하는 모습에 안쓰러웠던 나날들이 떠오른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목적을 가지고 원하는 바가 뚜렷한 것도 아니고 일이란 정말 좋아서 하는 것이라기 보다 '정말로 못해먹겠다'싶은 일이 아니면 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일 보다 생활의 유지 정도로 살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지만 마케팅의 핵심인 고객을 대하는 자세에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에서 충분히 즐거워야 상대에게도 온전히 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인데 수동적인 시스템에 사고하는데 익숙해서는 그저 형식에 그치지 않기에 고객도 사원도 충분히 만족하는데 한계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이렇게 인간냄새를 물씬 맡으며 가슴 훈훈해진 지금도 자본주의적 사고를 하는 내게 진저리가 쳐지지만 자본주의가 인간냄새를 없앤 것이 아니라 그를 도입한 우리가 욕심이 과했기에 탈이 났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사실 자신의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데 자본주의 체제만큼 환상적인 시스템이 또 어디 있겠냔 말이다.

하지만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은 본인과 가족의 안위와 행복을 위한 것에서 시작했더라도 단지 수단이었던 돈이 목적이 되어버리니 결국 노예 같은 인생을 살아버리고 만다.

장인으로서의 재주와 뚝심만 가지고 우직하게 살다가 그 자본주의체제에 기생하는 업자들의 배신으로 큰 좌절을 겪게 되어 결국 아버지의 안타까운 결말을 목도한 얏상에겐 유복한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보지 않을 정도로 무소유의 의미를 깨닫고 몸으로 실천한다.

본인 스스로도 순간의 어리석음에 벼랑 끝에 섰었지만 곧 '도망치지 않은 아버지'상을 보여준 스승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태도를 배운 건지도 모르겠다.

 

나를 비롯한 지인들을 둘러봐도 본인의 삶의 충실하거나 젊은 치기에 과한 욕심으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보려다가 기어코 넘지 못해 좌절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럴 때 마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타고난 열정적 성격 때문인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도 계속해서 루저의 뼈아픈 경험을 겪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누가 좌절을 사서 하고 싶겠냐 마는 목표를 위해 돌진하다 보면 예상 외의 곳에서 벽을 만나거나 내동댕이 쳐지는 기분에 죽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는 경험이 없는 청춘은 거의 없다.

 

타고날 때부터 금수저 입에 물고 나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 인생이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애초에 가질 수 없다면 바라지도 않기로 한 지금 나와 비슷한 환경일지라도 실패를 모르는 사람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는데 경험을 거듭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번도 벼랑 끝에 선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죽도록 노력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넘어지면 아프고 다시 일어서기가 고통스럽지만 대신 앉아만 있다가 걸을 수 있고, 또 뛸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쭉 기어 다닌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러길 바래서 그렇게 사는 거라면 할 말 없지만 적어도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면 실패한 경험이 없음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

얏상도 아마 대놓고 뒤통수를 후려치며 '긍지'를 갖고 살라고 호통을 칠 것이다.

 

전작에서도 느꼈지만 하라 고이치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평범한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독특한 캐릭터를 설정하여 무서운 흡인력을 보여주어 읽다 보면 어느새 후기를 읽는 바람에 '벌써 끝났나...'하는 허탈함과 함께 주인공들의 허구성을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워낙 캐릭터 설정을 맛깔 나게 하는 작가인데 <달려라 얏상>에서 얏상과 러브라인을 구축하는 '오머니'의 설정이 한국음식의 감칠맛을 적절히 표현해주어서 내심 흐뭇하고 뿌듯했다.

한국음식의 감칠맛이라는 것이 번역을 매끄럽게 잘 한 덕분인지 일본어로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음식을 오래 먹어 온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그 표현을 나타낼 수 있다니 작가가 그저 요리를 소설 소재로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음식에 대한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예상을 해본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겹치거나 고루한 설정이 없이 적재적소에서 그 개성을 발휘하고 있어 읽는 동안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하다.

마음이 따뜻해짐과 동시에 매일을 살아가는데 과연 오늘의 나는 어땠는지 한번 돌아본 적 없었던 순간을 반성하게 된다.

작심삼일이라도 좋지 않은가?

오늘 하루라도 반성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달려라 얏상>과 같은 휴머니즘 가득한 긍지를 일깨우는 책이 종종 나오는 한 세상이 흉흉한 일로만 얼룩지는 일은 조금씩 줄어들 거다.

 

 

"해당서평은 북로드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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