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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란 쏙 성경, 성경 쏙 이슬람
박요한 지음 / 코람데오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믿고자하는 확신, 추구해야 할 덕목에 대한 인간의 순수한 열망은 누구에게나 잠재해있기에 분쟁이 없는 지역을 찾아보기란 힘들겠지만 이슬람만큼 상대적 위협을 느낄 정도로 심각한 분쟁이 벌어지는 곳은 흔치않다.
눈에 보인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고 귀에 닿는다고 다 들리는 것이 아니라 보고싶고 듣고싶은 것만 취하는 탓에 나의 관심에 맞춰 협소한 정보로 이뤄진 상식선에서는 이슬람이 하느님을 믿는 종교라는걸 알았을 땐 꽤나 큰 놀라움이었다.
게다가 코란과 성경이 그 근간을 같이한다는 소리에 '그렇다면 어째서?'라는 의문이 마구 솟았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근원은 같으면서도 그 말씀에 대한 입장 차이가 엄청난 분쟁을 야기시킨다는게 늘 의아했다.
그렇기에 코란이 궁금하긴 했지만 아직 성경도 전체 일독을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헐거운 크리스찬인 내가 코란을 접할 정도로 지적추구욕이 크지 않았기에 모른채 지냈지만 <꾸란 쏙 성경, 성경 쏙 이슬람>을 통해 이슬람뿐만 아니라 기독교에도 한층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물론 한국어로 번역 된 코란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게 정말 큰 이유가 되겠지만 있었다고해도 역시 나의 성실성이 받쳐주지 못했을 것 같다.
그동안 코란과 성경을 비교하려는 시도의 책을 구하기도 힘들었는데 박요한목사님 덕에 생각지도 못했던 갈증이 해소됐다.
어떤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고있는지 그 자세가 코란과 성경을 비교하는 구성에서도 느낄 수 있었지만 그 전에 도착한 책 안에 손수 자필사인을 해 주신 것을 보고 감사함을느껴 힘들게 집필하신만큼 독자로서 성실하게 읽도록 다짐을하게하는 박요한 목사님.
난 비록 성당을 다니지만 역시 개척교회의 정신을 가진 목사님들에 대한 존경심을 금할 수 없는데 박요한 목사님 역시 본인의 지식을 나누고 그 믿음을 다같이 공고히하자는 의지가 느껴지더라.
성경도 기본적인 내용만 숙지한 나에게 <꾸란 쏙 성경,성경 쏙 이스람>은 차고 넘치게 지적욕망을 채워줬다.
사적이지만 내게 세례를 준 신부님 본명과 같아 더 친근함을 느껴 개인과외 받는다는 기분이었다.
알면 물음표가 느낌표가 되고 속이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호기심은 증폭되고 의문부호는 더욱 늘어났다.
진리에 다가서기란 참 어렵다.
어렵다고 해야 하나 결국 주관적인 답을 찾아 헤매는건 아닌가 늘 혼란 스러울 뿐이다.
하느님을 믿지만 그 믿는 방식에 따라 종파가 갈리며 서로의 줄기가 진리라며 참 박터지게도 싸운다.
나도 하느님을 믿고 내가 믿는 방식만이 옳다라고 맹신할 수 없어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실 빼고는 타 종교에 그리 배척적이진 않지만 이런 생각만으로도 교회내에서 거리낌없이 받아들여지기 힘들기에 말 수가 적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숨기려고하지도 않아 신앙을 고취시켜줄 의무를 느끼는 어른들의 얘기가 이어지기 시작하는게 괴롭다.
그들의 말씀 모두 옳다.
다만 그 말씀을 하는 의도가 내가 하느님을 믿는데 주저한다는 오해에서 기인하는게 답답하다.
내 말은 카톨릭을 제외한 다른 종교도 맞다는게 아니라 어떤 방식이든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실이 중요하고 구약에 대한 해석으로 분쟁한다는 것은 하느님 말씀에 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하는거였는데 말이다.
아무리 말을 해도 나의 의도가 전해지기 힘들어 어떨 때는 차라리 그들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척을 해야함이 현명하다는걸 느끼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말수로 생각을 표현한다.
신실하지 못하다고 비난받아도 나 자신의 진심을 겉모습만 그럴 듯 하게 포장하는 것 보다 낫다.
적어도 타인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면서 내 믿음까지 위협하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끝나지않을 분쟁일텐데 서로에 대해 공부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 될 것같지 않다.
사람은 무엇때문에 하느님을 믿는가?
그저 그분의 절대적인 존재를 알고 우리가 나아가길 바라시는 행동으로 기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주님은 우리보고 진리에 대한 이견으로 싸우라고하신게 아니잖은가.
사랑으로 진리를 실천하길 바라실 것이다.
읽을 수 있다고 그 말이 의미를 갖는건 아니다.
진심으로 이해했을 때 그 말을 온전히 품을 수 있다.
간단한 말이 제일 어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