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의 피아니시모
리사 제노바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와 다큐멘터리, 소설 등을 통해서 우리는 적지않게 알츠하이머에 대해 정보를 제공받아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주변에 관련 질환에 대한 연계성이 없어서 그런지 먼나라 이야기인 것만 같고 대중매체의 요소에 지나지않은 비중으로만 다가와서 대비하려는 자세가 없었다.

 

알츠하이머 자체도 무섭고 걱정되지만 그에 대한 막연함에 발병에서야 정신이 번뜩 드는 것은 더 무서운 일이다. 대한민국의 적지않은 수가 알츠하이머로 고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게 대처하는 이유는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그 증상과 발병상태가 달라 스스로가 알츠하이머라는 자각을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 이다.

 

병환이 분명해서 의사가 숙고하여 진단을 내려도 심적 거부감에 인정하려하지 않는데 '긴가민가'하는 정도에서는 공식적으로 통보받으면 인정하는 꼴이 되니 애초에 의심이 드는 정도에서는 병원을 찾지도 않게 된다.

마치 결과를 듣지 않으면 없었던 일로 칠 수 있는 것 처럼.

하지만 다른 모든 병들과 마찬가지로 발병의 시기와 대처에 있어 준비성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당장의 생명을 앗아가는 '암'을 대비하는 우리의 염려와 같이 '알츠하이머'는 영혼을 잠식해가는 무서운 병이기에 개인적으로는 더욱 끔찍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정확히 태어난 순간부터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가 '삶'의 정의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숨 쉬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연장과는 상관 없이  

'죽음'이란 개인의 존엄성과 의지가 흔들리는 순간부터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리사 제노바는 신경학 박사과정 중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머니를 보며 그녀의 전공과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는데, 그래서일까?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는 제목처럼 강렬하진 않지만 너무 자연스럽고 잔잔하게 감수성을 흔든다.

논문과 소설은 또 다른 영역임에도 감수가 잘 된 것인지 그 문체와 구성은 딱딱하지않고 너무도 인간적인 연약함을 가득 담아 보여주고 있다.

 

시점 또한 직접 알츠하이머를 겪으며 고전하는 앨리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주변인물들의 관계도 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엿보인다.

가끔 앨리스의 입장에서 가족들의 말과 행동에 서운함을 느끼고 어처구니 없을 때도 있지만 시점이 앨리스의 시점이 아니라 인물들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인지 알츠하이머를 겪는 환자의 가족들의 입장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이해가 되면서도 어느새 좀 더 배려를 요구하려는 자신을 느끼게 되고, 서운하다가도 그 상황이 가져오는 피해는 비단 당사자만이 아닌 그 가족이기도함에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기에 그렇다.

 

피력하고싶은 주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데 소설만큼 탁월한 매체가 또 어디있을까?

영화나 음악을 통해서도 사람들은 감화를 받지만 개인마다 스스로 편집해가는 그 속도감과 언어가 주는 상상력은 그 효과를 배로 끌어낸다.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역시 소설의 효과를 빌어 알츠하이머에 대한 경각심과 환자 뿐만이 아닌 주변인들의 자세와 슬픔, 그 과정을 견뎌내는데 필요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

 

슬프고 안타깝다.

그럼에도 아름답고 따뜻해 가슴아픈 소설이다.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의 안녕바라며 행복을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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