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성과 작품성 둘 중 하나도 놓치지않고 사회의 문제점을 환기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미야베 미유키라는 이름이 아직도 영향력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R.P.G.>. 처음 <화차>를 접했을 때는 현실에 대한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감성적으로 연고를 발라줄 줄 아는 그 능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남았었다. 하지만 내가 미미여사를 접한 시기가 오래지않다보니 시대적 갭이 있어서 연락책이나 생활상등의 묘사를 접할 때마다 이질감을 느꼈었는데 <R.P.G.>는 시기적으로 공감을 충만하게 했다. 시기는 다르지만 비슷한 속도로 사회적발전을 이룬 일본이기에 늘 우리보다 몇년 앞선 사회문제들이 이슈화하여 관심받았는데 <R.P.G.>에서 다뤄진 가족간 소통의 부재는 지금 한국가정 내의 상황과도 통하는 부분이기에 더 짠하더라. 이미 사춘기는 지나버렸지만 사춘기였던 당시의 나와 부모님과의 소통오류, 이제 성인이 된 입장에서 미래의 자식과의 소통에 대한 염려 등이 떠올랐고 가족의 소중함과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살벌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아기자기한 느낌이 들 정도로 부드러움이나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는게 미야베 미유키 작품의 특징 중 하나다. <R.P.G.>마지막에 등장하는 '나비'라는 시구는 소통의 실패로 인해 생긴 박탈감과 문제는 해결됐을 지라도 문제의 동기에 대한 환기가 주는 심리적 삭막함을 정서적으로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다. 어떤 캐릭터에 빙의 된다 해도 치유받는 기분을 느끼게 할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친근함을 선사하여 미미여사라는 애칭에 걸맞는 모성이 느껴지는 작품들 덕에 한번 미야베 미유키를 접하면 방대한 그녀의 작품들을 독파하게 된다. 종종 등장인물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곳곳에 녹아있어 비중이 작은 출연진 하나라도 소홀히 지나치기가 미안할 정도로 섬세한 손길이 닿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추리를 통해 문제를 보여주는데 정통 추리소설이기 보다는 사회문제에 초점을 두고있어 범인을 알아가는 재미보다 사건에 대한 인과관계, 또 그 사건해결에 대한 과정에 독서의 묘미가 있다. <R.P.G.>역시 애초에 범인에 대한 짐작은 이뤄졌지만 범인의 동기를 어떻게 표현해줄지에 대한 기대가 커서 읽어가는 내내 범인에 대한 궁금증보다 예상되는 범인의 언행에 주목하게 되어 사건의 범인이자 시대적 피해자의 심리적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평범한 일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을 묘사하는 미미여사이지만 <R.P.G>에서는 세대의 갭과 그로 인해 올 수 있는 소통에 대한 묘사로 인터넷이라는 요소를 선택하면서 독특한 방식의 상황극을 보여줬다. 심리치료에 종종 사용되는 역할극에서 발상을 시작했을까? 작가가 보여주고자하는 구성원간의 이상적인 역할과 바램들의 불일치가 가져오는 사회적 부작용들이 역할극이 가지는 심리치료의 효과를 인간의 혁신적인 창조물이자 사회문제의 동기가 되는 '온라인'과의 접목으로 시너지효과를 발생시켜 작품의 완성도를 더 높였다. 표지디자인은 북로드에서 직접 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무대 위에 진공처럼 느껴지는 무채색 박스 안의 종이인형이 연상되는 가족놀이를 보여주고 있다니 작품의 내용과 작가의 목소리를 잘 캐치하여 반영하는 센스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