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편에 서서 민주화를 외치지만 엘리트 인생코스를 걷고 그들이 누리는 사상에 반하는 생활적 풍족을 비꼬는 표현으로 각 나라마다 들어 찬 진보주의의 엘리트적 모순을 꼬집고 있다. 사실 그 전에도 이런말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노무현정권때부터 유독 짝퉁우파, 강남좌파라는 말이 자주 들렸다. 정치적이념이 변질될 위험에 늘 긴장상태를 줄 수 있는 당파적 논쟁은 어느정도 필요하지만 영역넓히기에 급급한 탓에 각 당파가 가지는 정치적 이념에 대한 성향을 알아보기 힘들다. 칼로 무 자르듯이 나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뭉뚱그려보더라도 과연 우파와 좌파가 제대로 대립하고는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우파라고 칭하는 당은 좌파가 아니라는 이유로 우파라고 할 수 있는가? 좌파는 그들이 제창하는 정치적이념을 탁상이 아닌 생활로 보여줘야하는 것 아닌가? 시민들은 우파에게 분노하고 좌파에게 불신의 감정을 토한다. 정치적 참여도가 높아진 지금 시민들의 자발적 시위가 자칫 정치적으로 이용될 위험이 있음에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건 바로 우리 이야기를 지어가는 과정이기에 바쁘고 힘들더라도 눈떠서 보고, 귀를 열어 듣고, 생각하여 말해야하는 것이다. 촛불시위가 한창일 2008년에 가까운 지인과 함께 참석하여 얼마나 많은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얘기했는지 모른다. 그 지인은 우리가 행사하는 이런 시위에 당위성을 부여하며 참석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겨야한다고 했지만 정말 정치적으로의 보상이 간절한 계층은 이런 시위에 참가하는 시간조차 내기 힘들다. 과연 강남좌파만을 탓할 일이 아니란 것이다. 나 역시 시민의 일원으로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요구 할 만큼 시민의 도덕적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가? 부끄럽지만 답은 '아니오'였다. 사람이기에 추구하는 사상을 온전히 생활까지 유지하는 강남좌파가 많지 않다는데 국민으로서 흥분할 수 밖에 없지만 꼭 정치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반인들 중에 본인의 이념과 대립되는 상황에 부딪힐 때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선택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정치인에게 권력에 따른 책임을 요구하는 우리도 권리에 앞서 의무를 다하는 고차원적인 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 강준만교수는 <강남 좌파>에서 좌파에도 여러 성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영향력있는 인물들에 대한 소개로 흥미를 제공하고 이해를 돕고 있다. 정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면 본인의 입장에 반하는 쪽으로 편향된 집필이라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일반독자인 나로서는 강경하고 온건함의 차이를 보여주며 편향적인 시선을 최대한 배제하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이념과 그에 따른 생활적 실천도 바라는 것은 그들이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저 부유층일 뿐이라면 이념과 생활의 모순에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지만 국민에게 한표를 부탁하며 본인의 이상을 펼치는 만큼 진정성없어서는 안된다. 경제적인 풍족을 넘어 윤리적 자기만족까지 채우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회복지와 환원에 뜻이 있다면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지금까지의 편리를 벗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진보주의성향이 진심에서 우러나온다면 그 행동자체가 용기도 필요없이 자연스럽게 이뤄질텐데) 국민들은 민주화가 이룩되면서 많은 '쇼'들을 거치며 처음엔 신선해했지만 이제 너무 눈에 빤한 쇼에는 질렸다. 단 몇명이라도 진정성을 가진 진보주의를 만날 수 있길 바래본다. 비록 '쇼'에 불과할지언정 그들이 제시하는 비전에 희망을 걸어보고싶은 시기다. 이왕 할꺼면 눈에 빤히 보이는 쇼가 아니라 너무 완벽해서 주체가 동화될 정도의 정치'쇼'를 펼쳐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