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이 답이다>는 획기적인 제안을 하는 책은 아니다.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에 앞서 '실행'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좋은 의미도 빛을 보지 못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다시한번 주지시키고있다. 그럼에도 많은 자기계발서 중에서도 추천 할 만한 이유는 저자가 한국인이다보니 우리나라 정서를 잘 반영하여 지금 좋은 취지와 의욕은 가득하지만 정리가 부족하고 열정만 가득한 젊은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꺼라 생각해서다. 보통의 자기계발서는 '결심'할 수 있도록 부추기는 내용 위주로 편찬됐었다면 <실행이 답이다>는 '결심'보다 '실행'에 중점을 두고 서술하고 있다. 이 마저도 독자가 받아들일 때 효과를 낼 수 있겠지만 21세기에 진정으로 필요한 말이 아닌가? 80~90년대의 지나칠 정도의 실행능력이 다소 완화되면서 이젠 너무 축소되어 실행에 대한 약화로 현대인들의 실천력은 많이 퇴화 된 상태이다. 물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니까 늘 실행위주의 삶을 살기는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의지를 가졌으면 실행을해야 마땅하다. 너무나도 고운 삶의 방식에 젖어 의지와 실행의 적절한 조화를 이룬 시점을 지나 이제 더이상 실행력이 의지를 따라주기엔 게을러져 버렸기 때문에 서점에 자기계발서가 그렇게 난무하는 지금도 끊임없이 열정을 부추기는 서적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 좋은 말들 중에 단 하나라도 '실행'해야 한다는 중요한 지침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계발서 코너 앞에서 방황하기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기획회의에서 종종 회자되는 말이다. 특히나 '소통'을 부르짖는 이 때에 스스로의 실천의지 없이 '좋은말'만 내뱉는 상사를 보면 어김없이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변화를 바라면서 좋은 말씀들을 하시지만 정작 본인의 태도에 대한 개선의지는 전혀없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 수직적인 관계의 조직에서 어떤 혁신적인 기적이라도 바라는 느낌이다. 주옥같은 그 말씀들을 잇는 '실행'이 없이는 그 자체로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 변화를 위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이만 읽고 이제 실행에 옮겨야 할 때이다. 나도 <실행이 답이다>의 당연한 내용들을 정리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읽음에도 문득문득 얼마나 찔리고 흠칫했는지 모르겠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훌륭한 구절들을 가슴에 새기지만 얼마나 실천을 했나? 좋은 문장들과 서정적인 문체를 음미하며 소설을 보지만... 정작 글을 쓰고싶은 마음에 비해 얼마나 많이 작문을 했었나? 겁만먹고 두려워서 아직도 배울 때라며 스스로를 속이며 책을 읽는다는건 '아직 준비가 안 되어서'가 아니라 글을 쓰기 두려운 맘에 '글을 안써도 되는'이유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만약 내 의지와 열정을 그대로 실행했던 시기가 없었다면 <실행이 답이다>가 이렇게 뜨끔하게 다가오진 않았을 것이다. 전공에 올인했던 대학4년 내내 결심보다 실행이 앞설 정도로 열심했던 전공과목에 대한 과정과 결과들이 다시금 떠오르면서 저자가 말하는 내용들을 증명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때 당시의 나는 뭐든 할 수 있었고, 뭐든 했다. 하다보니 원하는대로 됐고, 그러다보니 스스로 자기암시에 걸려 이미 성과가 눈앞에 보여 과제를 하면서도 당연히 A+만 머리에 있었기 때문에 "어차피 A+겠지만 그 점수에 합당한 결과가 되어야 다른 학생들이 납득 하겠지." 란 생각으로 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었다. 흡족한 결과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그를 위한 증명을 위해 '미리'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그때의 나는 자기계발서는 곁에 두지도 않았지만 이미 체험으로 충분히 터득하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자기계발서를보며 단지 공감할 뿐일 정도로 말이다. 나 홀로 갑자기 '실행'의 중요성을 깨달아 처음부터 열심히 임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교양으로 듣던 국사관련 교양의 교수님의 한 말씀이 '실행'에 충실한 나를 만들어 주셨다. "'이만하면 적당하다.'가 아니라 '이정도면 더 이상 최고일 수 없다.'의 상태일 때 과제를 제출해라. 그래도 너희가 최고의 점수일지 알 수 없다." 그때 머리를 한방 맞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누구나 최고의 점수를 받고 싶어 과제를 제출하지만 다같이 최고가 될 수는 없다. 그 상황에서 '적당히'라는 안일한 생각은 이미 만족할 만한 결과와는 결별할 수 밖에 없게한다. 결과엔 승복하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서운한 결과가 나와도 적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러움과 후회가 없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나의 한계를 보려면 그만큼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다행히 학생 시절 너무 독하게 임했는지 사람이 결심을 하고 '실행'을 하면 한계점엔 끝이 없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었다. 강의 중에 들은 많고많은 말씀 중에 한말씀이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관점을 바꿔놓을 정도이니 저자를 비롯한 교수님들은 이런 사례를 접할 때 참 많은 책임을 느끼시겠다. 하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말을 듣고도 흘려듣는 학생도 있으니 아름다운 구슬을 잇는 실이 없이는 그 구슬은 단지 아름다울 뿐 목걸이나 귀고리 등 아름다움 이상의 '가치'를 실현해내지 못하는 안타까움만 연출 할 뿐이다. 학생때는 후회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임했었는데 <실행이 답이다>의 중간점검에서 이제 더이상 최선을 다하기 보단 적당한 삶을 살아가는 내 현실을 뼈져리게 느께 됐다. 하지만 저자도 말했든 '한번 해 본 사람'은 지금 못하는 것을 다시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실행하기에 좀 더 수월한 위치에 있다. 올해의 목표인 언어, 건강에 있어 과거의 실행과 결과를 되새기며 '실행'해야지. 사람이 하고자하는 뜻을 품고 설정한 목표대로 전략적인 계획을 잡아 실행한다면 안될 일, 못할 일이 없다. 이 당연한 진리는 누구나 듣거나 느껴서 알고는 있겠지만 느끼지 못해서, 혹은 타성에 젖어서 더이상 '실행'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고르게 기회가 돌아가는 것이 아닌 '행하는 자'에게 전폭적인 지원이 돌아가게되는 것이다. 가끔은 사회가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 도있겠지... 하지만 내가 있는 자리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 했는지 한번 돌아보는게 더 중요할 만큼 '실행'이 많이 부족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많이 공부하고 계획했는데 아직도 만족할만한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가? '실행이 답이다' 뭐든 계획을 세웠다면 실행에 옮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