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계 -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동서고금의 통합적 접근
켄 윌버 지음, 김철수 옮김 / 정신세계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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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다 교수님도 잘 아시겠지만, 미국에서는 궁극의 차원까지 심리학 안에 다 담아보려고 나섰던 이가 켄 윌버ken Wile잖아요 일단 심리 치료나 상담 등 일반 심리학으로 건강한 에고를 만들고, 이후에 그보다 높은 차원의 요가 명상, 힌두 아드바이타Advaita, 선불교, 티베트 족첸Dzogchen 수련 등에서 다루는 초월적 추구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통합 이론을 전개했지요

 

성해영 윌버 이전에 인간 무의식의 종교적 차원이 인간 삶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던 칼 융C.G.Jung 역시 학계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현대 학문은 합리성이나 과학의 개념에 입각해 객관성이나 보편성을 강조하는 추세라, 영적이거나 종교적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제도나 학문 영역 밖으로 밀어냅니다. 가치중립적 객관성이라는 학문적 모토가 제일 먼저 거부하는 것이 종교성과 영성 같은 것이지요. 그러니 인간 심리의 초월적 차원을 강조하는 켄 윌버는 당연히 대학에서 환영받기 어렵습니다.

 

< 다시 이어지다: 궁극의 욕망을 찾아서>(한바다, 성해영, 김영사)

 

나한테는 켄 윌버가 약간 근본 없다거나 비주류 느낌인데 아마 위의 글을 먼저 읽어서인지 모르겠다. 아마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나 했는데 영성이나 명상, 심리치료 쪽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얇은 분량으로도 각종 정신치료 기법과 논리를 담아내는 입문서이자 종합선물세트같은 책이다. ‘경계가 인간문명의 본질이고 그것이 갈등과 투쟁, 소외와 불안을 가져온다는 주장도 꽤 설득력이 있다. 내담자의 상태에 따라 융심리학부터 각종 정신치료 기법을 일별하는 모델을 제시하는데 간단하고 꽤 그럴듯하다. 예전에 바가와드 기타 강의 중에 제자의 자격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위빠사나 명상같은 해탈을 추구하는 것도 어느정도 자아가 구축된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자아가 구축되지 않은 사람은 해탈을 추구하기 전에 먼저 해탈할 자아부터 구축해야 한다는 식이다. 저자의 모델로 이런 맥락인데 각 자아의 수준에 따라 거기에 걸맞는 정신치료 기법, 논리, 등을 제시한다. 아마 저자는 각종 정신치료 관련한 책들을 엄청나게 읽었을 것 같다. 그래서, 그것들을 일별한 후 각종 기법들의 원리들을 추출하고, 비교하고 고찰해서 하나의 정신치료 요법 지도를 만들어 낸 것 같다. 간결한 전개와 쉬운 문장으로 각종 정신치료 기법의 맥을 짚어 주는 미덕이 있다. 영성 쪽 관심있는 사람은 시사점과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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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왜 진실인가 - 진화심리학으로 보는 불교의 명상과 깨달음
로버트 라이트 지음, 이재석.김철호 옮김 / 마음친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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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셔머가 <천국의 발명>(아르테)에서 에크하르트 톨레를 농담거리로 삼는 걸 보면 그는 평생 명상 수련회 같은 곳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 같다. 불쌍하다. 같은 스켑틱이면서 진화심리학자인 저자는 명상 수련회에 참석해서 삶의 질과 방향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진화심리학의 전제는 이렇다. 자연선택은 유전자 전파를 위하여 인간이 미망을 가지도록 설계했다. 그 미망은 불교식 표현으로 갈애. 인간은 쾌락을 과대평가하고 쳇바퀴 돌 듯 더 많은 쾌락을 요구한다. 고약한 것은 그 과정에서 고려 사항이 유전자 전파 성공 여부이지 개체인 인간의 행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진화심리학 서적에서 흔히 예시되는 정크푸드 사례나 긍정 오류처럼 맹목적 설계인 자연설계는 현대와 같이 변화된 환경에서 오작동하며 인간에게 고통을 주기 일쑤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을 통해 이런 통찰을 얻었지만 삶의 고통은 그대로였다고 한다. 저자가 명상 수련회에 참가한 이유다. 아마 위빠사나 계열의 명상수련회에 참석한 것 같은데 저자가 어떤 체험을 했는지는 직접 읽어보시길. 비슷한 스켑틱이 쓴 명상체험기 <가만히 앉아 있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팀 파크스, 백년 후)를 떠올리게 되는데 신비 체험이후 저자가 개종하지 않고 여전히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켑틱 특유의 지적이면서 삐딱한 유머를 구사한다는 것도 닮았다. 덕분에 이 책도 <가만히..>처럼 매트릭스의 네오를 언급하는 첫 페이지부터 일사천리로 책장이 넘어가는 쾌락독서가 가능하다. 작가인 팀 파크스와는 달리 진화심리학자인 저자는 불교의 무아나 공 같은 교리와 자신의 명상체험을 진화심리학, 심리학, 뇌과학 등의 언어로 맛깔나게 설명한다. 불교의 권위자가 아니라서 저자의 불교 해석이 100% 맞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저자의 불교 내공도 만만찮고, 명상가나 불교학자와 지속적인 의견 교환을 통해 가설의 객관성을 담보한다. 재미있는 것은 무아를 설명하는 과정이 니체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고정된 란 존재하지 않으며 힘들의 투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책에 묘사된 모듈 이론은 특정한 반응 회로가 뇌 속에 서로 경합하고 있으며 투쟁에서 승리한 모듈이 의식으로 떠오르는 것이라는 이론이다. 우리가 다이어트를 할 것인가, 초콜렛을 먹을 것인가를 의지를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두 가지 모듈 중 힘이 센 것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고 우리는 사후에 의지를 발휘한 척하는 것이다. (“오전에 고생했잖아, 오후에 일 많이 하려면 지금 먹어야지.”) ‘의식적 동기가 아니라 동기를 의식하는 것이다. ‘영화를 연출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라는 비유를 드는데 우파니샤드 세계관이라 약간 소름이다. 그리고 이런 모델은 니체의 주장과 싱크로 100%. 니체 공부할 때 이해가 안 됐는데 이 모델을 적용하면 이해가 간다. 마이클 싱어(상처받지 않은 영혼,라이팅 하우스)나 고엔카(고엔카의 위빠사나 명상,김영사) 라면 모듈 이론을 삼스카라라고 불렀을 것이다. 뇌과학 책에 흔히 등장하는 가자니가의 분리뇌 실험은 무아를 설명하는 또 다른 근거다. 저자는 의식적 자아를 일종의 홍보대행사로 본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타인과 협력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가상의 일관된 자아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이 묘사하는 인간의 뇌는 생존이라는 목적 아래 느낌으로 부호화된 자동화된 반응 회로 묶음이다. 마음챙김 명상은 이러한 자동화된 반응 회로를 약화시켜 왜곡된 편향을 줄이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발휘할 가능성을 준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무아 체험을 내면적 무아체험과 외면적 무아 체험으로 나누는데 내면적 무아체험(나는 존재하지 않는다)이 외면적 무아체험(모든 것은 하나다. 혹은 아트만이다.)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갈애는 대상과 나와의 거리라는 점에서 외부의 대상과 나와의 거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범아일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내가 알기론 이게 힌두교와 불교의 오랜 대립(아트만이 있다 vs 없다)으로 알고 있는데 이걸 해석해 내는 저자가 왠지 대단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불교를 세속적 불교형이상학적 불교로 나눈다. 세속적 불교는 불교철학이나 불교 심리학같은 분야이고 형이상학적 불교는 카르마나 윤회, 환생을 다룬다. 저자는 당연히 세속적 불교 쪽인데 공 역시 매트릭스 세계 같은 극단적 관점보다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인 평가자이다. 인간은 어떤 사물을 느낌으로 평가하고 의미를 부여한 다음에야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이 특정한 의미는 다른 의미 데이터베이스의 집합에서 나온다.( 이건 어째 라캉의 상징계느낌이다. 불교의 공이란 실재계의 다른 표현인가?) 문제는 실상과는 다른 이러한 본질주의가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유대인은 원래 그래같은거.. 요즘엔 반대인가?) 저자가 마음의 평화만 찾자고 명상을 하는게 아니다. 진화심리학으로 볼 때 자연선택이 인간에게 심어놓은 이기심과 미망은 인간을 결국 지구 최상위 포식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 미망과 이기심은 역설적으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불교는 현대 심리학이 나오기 이천년 전에 이미 인간이 처한 곤경을 놀랍도록 직접적이고 포괄적으로 다루며, 문제를 명료하게 진단하고 그에 대한 처방을 내놓는다. 저자는 단세포생물에서 진화한 인류가 위기극복을 위해서 이제는 상위인지혁명로 공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치밀한 학술서는 아니고 진화심리학과 불교를 깔끔하게 링크한 스케치에 가깝지만 저자의 명상체험이 곁들여지며 설득력을 가진다. 우리나라 같은 상황이라면 제목에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는데 이 책에서 형이상학적 불교는 언급되지 않는다. (되려 불교 신자가 불쾌할 가능성이 있다.) 저자는 자신을 불교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열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혹은 열반이 진짜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한걸음씩 더 나은 삶을 향해 명상과 수행을 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것을 보면 재가신자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마이클 싱어나 고엔카의 저서, 고엔카 센터 같은 위빠사나 코스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는 과학적 주석이다.

 

ps. 마이클 싱어 저서에 줄창 등장하는 내 머릿속 목소리의 과학적 근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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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혼자 던져졌다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강명순 옮김 / 바다출판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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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우울증에 걸려서 고통스럽다.”라고 주변에 말하면 이해를 받을 것 같다. 그런데 외로워서 고통스럽다.”라고 말하면 수치스러움과 민망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젊을 때는 그래도 연애시장에서 원나잇이든, 연애든 짝을 구할 수 있었다. 주변 친구들과의 우정으로 어떻게든 삶의 빈틈을 메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자의 이런 기대를 깨트린 건 일단 코로나. 자신이 알던 친구들은 전부 자신의 둥지로 돌아가고 저자는 혼자 남았다. 게다가 저자의 나이도 이젠 더 이상 자유롭게 연애시장에서 짝을 구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누군가와 삶을 공유하며 삶을 완성하기에는 남아있는 시간 자체가 많질 않다. 두 가지 주요한 환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노력을 기울이면 어느 정도의 부유함은 누릴 수 있을 거라는 환상. 또 하나는 가정을 이루고 사랑을 받을 거라는 환상이다. 이 두 가지 판타지가 보편적으로 실현가능한 게 아니라는 게 여러 연구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데도 저자는 (아마도 나도) 이 판타지를 내면화하고 고통받는다. 더욱 고약한 것은 언젠가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잔인한 낙관이 희망고문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더 이상 가정을 이룬다는 선택지가 사라지는 순간의 인생의 전환기에 선 사람에게 공감을 얻을 것 같다. ‘홀로사는 삶을 원하던, 원하지 않던 선택하게 된 사람의 여러 감정선과 단상이다. 어쩌면 결국 이루지 못한 삶의 길을 애도하며 작별하고, 눈 앞의 현실을 수용하고 거기서 또 다른 배움을 얻는게 저자의 대안인 것 같다. 그래도 저자는 마지막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존버. <어바웃 보이>에서 혼자 사는 주인공이 남는 시간을 유닛으로 구분해서 이발소 가기에 2유닛, 당구치기에 1유닛하면서 공백을 버티는 장면이 있는데 이 책에도 주인공이 혼자 사는 삶의 균형을 위해서 여러 가지 기예를 발휘한다. (그 중에는 뜨개질도 있다.) 혼자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한 번 참고할 만한 경험담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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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부패한 LA 경찰 영화 장르’가 따로 있지 않을까. 유명세만 듣고 수십년 간 보지않고 묵혀둔 영화 중 하나인 <L.A. 컨피덴셜>을 보고 든 생각이다. 어떤 영화는 수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세련된 느낌을 주는 영화가 있는데 - 예를 들어 왕가위의 영화들 - 아카데미상을 받고 당시 꽤 이름값이 있었던 이 영화는 이제 낡은 느낌이다. 물론 나쁘진 않다. 명배우들이 전성기 모습으로 떼거지로 나온다. 성추문으로 맛가기 전의 케빈 스페이시, 전형적인 백인 히어로 필의 가이 피어스, <글래디에이터>의 투박한 느낌과는 달리 러셀 크로우도 쌩쌩하다. 이들의 연기도 전부 훌륭하지만 뭐랄까, 이들은 롤플레잉 게임의 캐릭터들로 보인다. 마치 감정과 행동라인이 정해진 규칙대로 자동진행되는 것 같은 느낌인 것이다. 그 게임의 규칙은 부풀린 코트 자락, 힘이 들어간 어깨, 담배를 꼬나물고 한판 붙어볼까 하는 스테로이드 뿜뿜하는 남자들의 세계다. 여기서 여자들은 헐리우드 배우를 닮기 위해 성형 수술하고 ‘아방궁’에서 남자들을 기다린다. 당시 영화평처럼 ‘LA는 더 이상 천사들의 도시가 아니다.’ ‘밝고 건전한 도시 이면에 숨겨진 범죄 세계’ 같은  컨셉으로 충격을 주고 싶었겠지만, 요즘 기준으로 보면 흑막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나에게는 오히려 이들의 행동들과 번쩍이는 조명,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파티, 술집과 자동차들,,, 이런 것들이 ‘좋았던 옛날 시절’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남자들은 어깨를 부풀리고, 서로 총질에다 치고받고 주먹질하고, 잔뜩 거들먹거리며 매춘부에게 순정을 바친다. 선과 악도 분명하고 적도 분명하다. 왠지 흥분되고 두근거리는 사건 사고가 있을 것 같은 LA라는 닫힌 세계에서 마음껏 스테로이드를 발산하며 ‘어디, 무슨일이 있나, 한번 붙어볼까(살아볼까)’하는 정서가 느껴지는 것이다. (어째 우울할 때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영화에서 FM 경찰은 한 명도 없다. 어차피 닳은 요즘 관객들은 그런 거 기대하지 않을 거 같은데 전부 조금씩 편법을 쓰던 경찰들이 마지막에 정의감에 불타 힘을 합쳐 거악을 처단한다는 – 이것도 어째 ‘좋았던 옛날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스토리다. 기억에 남는게 러셀 크로우가 현장에서 무방비 사태 범인을 체포하지 않고 죽인 다음 범인이 먼저 총을 쏜 것처럼 조작하는 장면이다. 이거 보니까  알폰소 쿠아론의 <트레이닝 데이>에서 비슷한 장면의 덴젤 워싱턴이 떠올랐다. 이것도 LA 경찰영환데 헐리우드가 있어서 LAPD가 이렇게 인기가 있는 건가?  <스피드>의 잭 트레븐도 LAPD다. 이 영화나 <트레이닝 데이>가 뭐 LAPD의 부패를 고발하는 영화는 아닐 테고, 그래도 <LA 컨피덴셜>의 업데이트판이 <트레이닝 데이>처럼 느껴져서 재밌다. 아니 요즘 한참 시끄러운 박모 검사 사례를 보면 이들 영화에 지혜가 담겨있는 지도 모른다. 진실을 보여주는데 영화 속 얘기로 치부하는 관객이 어리석은 지도. 
 혹시 부패 경찰들을 보며 마음이 상했다면 <엔드 오브 왓치>의 두 순찰 경관으로 마음을 달래보자. 뭐 엄청 재밌진 않다. 그래도 머리를 삭발하고 경찰 제복을 입고 총질하는 제이크 질렌할은 폼이 난다. 형사하고 순찰 경관하고 위계가 있나? 그러고 보니 <트레이닝 데이>의 에단 호크도 고속도로 순찰하다 마약반에 들어가고 싶어서 하루동안 트레이닝 데이를 받는다. 13X13 순찰차의 ‘짭새’느낌의 2인조 경찰과 LA 밤거리를 순찰해 보자. 그들의 뒤를 받치는 수천명의 ‘형제’들의 동료애와 함께. 거리의 ‘쓰레기’들과 한바탕 총격전을 벌인 후에 사격 자세를 취하며 서로에게 묻는다. “YOU GOOD?”,  “GOOD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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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명 > 인공의 생태계는 언제 끝장이 날까?

기후위기의 시대 가짜엘리트의 시대다 초등학생 자기 딸 검사 시킨다고-마치 지금 검사가 된 것 마냥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 아조씨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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