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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왜 진실인가 - 진화심리학으로 보는 불교의 명상과 깨달음
로버트 라이트 지음, 이재석.김철호 옮김 / 마음친구 / 2019년 1월
평점 :
마이클 셔머가 <천국의 발명>(아르테)에서 에크하르트 톨레를 농담거리로 삼는 걸 보면 그는 평생 명상 수련회 같은 곳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 같다. 불쌍하다. 같은 ‘스켑틱’이면서 진화심리학자인 저자는 명상 수련회에 참석해서 삶의 질과 방향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진화심리학의 전제는 이렇다. 자연선택은 유전자 전파를 위하여 인간이 ‘미망’을 가지도록 설계했다. 그 미망은 불교식 표현으로 ‘갈애’다. 인간은 쾌락을 과대평가하고 쳇바퀴 돌 듯 더 많은 쾌락을 요구한다. 고약한 것은 그 과정에서 고려 사항이 유전자 전파 성공 여부이지 개체인 인간의 행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진화심리학 서적에서 흔히 예시되는 정크푸드 사례나 긍정 오류처럼 맹목적 설계인 자연설계는 현대와 같이 변화된 환경에서 오작동하며 인간에게 고통을 주기 일쑤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을 통해 이런 통찰을 얻었지만 삶의 고통은 그대로였다고 한다. 저자가 명상 수련회에 참가한 이유다. 아마 위빠사나 계열의 명상수련회에 참석한 것 같은데 저자가 어떤 체험을 했는지는 직접 읽어보시길. 비슷한 스켑틱이 쓴 명상체험기 <가만히 앉아 있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팀 파크스, 백년 후)를 떠올리게 되는데 ‘신비 체험’ 이후 저자가 ‘개종’하지 않고 여전히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켑틱 특유의 지적이면서 삐딱한 유머를 구사한다는 것도 닮았다. 덕분에 이 책도 <가만히..>처럼 매트릭스의 네오를 언급하는 첫 페이지부터 일사천리로 책장이 넘어가는 ‘쾌락독서’가 가능하다. 작가인 팀 파크스와는 달리 진화심리학자인 저자는 불교의 무아나 공 같은 교리와 자신의 명상체험을 진화심리학, 심리학, 뇌과학 등의 언어로 맛깔나게 설명한다. 불교의 권위자가 아니라서 저자의 불교 해석이 100% 맞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저자의 불교 내공도 만만찮고, 명상가나 불교학자와 지속적인 의견 교환을 통해 가설의 객관성을 담보한다. 재미있는 것은 무아를 설명하는 과정이 니체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고정된 ‘나’란 존재하지 않으며 ‘나’는 ‘힘들의 투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책에 묘사된 ‘모듈 이론’은 특정한 반응 회로가 뇌 속에 서로 경합하고 있으며 투쟁에서 승리한 모듈이 의식으로 떠오르는 것이라는 이론이다. 우리가 다이어트를 할 것인가, 초콜렛을 먹을 것인가를 의지를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두 가지 모듈 중 힘이 센 것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고 우리는 사후에 의지를 발휘한 척하는 것이다. (“오전에 고생했잖아, 오후에 일 많이 하려면 지금 먹어야지.”) ‘의식적 동기’가 아니라 ‘동기를 의식하는 것’이다. ‘영화를 연출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라는 비유를 드는데 우파니샤드 세계관이라 약간 소름이다. 그리고 이런 모델은 니체의 주장과 싱크로 100%다. 니체 공부할 때 이해가 안 됐는데 이 모델을 적용하면 이해가 간다. 마이클 싱어(상처받지 않은 영혼,라이팅 하우스)나 고엔카(고엔카의 위빠사나 명상,김영사) 라면 ‘모듈 이론’을 삼스카라라고 불렀을 것이다. 뇌과학 책에 흔히 등장하는 가자니가의 분리뇌 실험은 무아를 설명하는 또 다른 근거다. 저자는 의식적 자아를 일종의 홍보대행사로 본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타인과 협력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가상의 일관된 자아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이 묘사하는 인간의 뇌는 생존이라는 목적 아래 ‘느낌’으로 부호화된 자동화된 반응 회로 묶음이다. 마음챙김 명상은 이러한 자동화된 반응 회로를 약화시켜 왜곡된 편향을 줄이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발휘할 가능성을 준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무아 체험을 내면적 무아체험과 외면적 무아 체험으로 나누는데 내면적 무아체험(나는 존재하지 않는다)이 외면적 무아체험(모든 것은 하나다. 혹은 아트만이다.)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갈애는 대상과 나와의 거리라는 점에서 외부의 대상과 나와의 거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범아일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내가 알기론 이게 힌두교와 불교의 오랜 대립(아트만이 있다 vs 없다)으로 알고 있는데 이걸 해석해 내는 저자가 왠지 대단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불교를 ‘세속적 불교’와 ‘형이상학적 불교’로 나눈다. 세속적 불교는 불교철학이나 불교 심리학같은 분야이고 형이상학적 불교는 카르마나 윤회, 환생을 다룬다. 저자는 당연히 세속적 불교 쪽인데 공 역시 매트릭스 세계 같은 극단적 관점보다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인 평가자이다. 인간은 어떤 사물을 ‘느낌’으로 평가하고 의미를 부여한 다음에야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이 특정한 의미는 다른 의미 데이터베이스의 집합에서 나온다.( 이건 어째 라캉의 ‘상징계’ 느낌이다. 불교의 공이란 ‘실재계’의 다른 표현인가?) 문제는 실상과는 다른 이러한 ‘본질주의’가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유대인은 원래 그래” 같은거.. 요즘엔 반대인가?) 저자가 마음의 평화만 찾자고 명상을 하는게 아니다. 진화심리학으로 볼 때 자연선택이 인간에게 심어놓은 이기심과 미망은 인간을 결국 지구 최상위 포식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 미망과 이기심은 역설적으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불교는 현대 심리학이 나오기 이천년 전에 이미 인간이 처한 곤경을 놀랍도록 직접적이고 포괄적으로 다루며, 문제를 명료하게 진단하고 그에 대한 처방을 내놓는다. 저자는 단세포생물에서 진화한 인류가 위기극복을 위해서 이제는 ‘상위인지혁명’로 공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치밀한 학술서는 아니고 진화심리학과 불교를 깔끔하게 링크한 스케치에 가깝지만 저자의 명상체험이 곁들여지며 설득력을 가진다. 우리나라 같은 상황이라면 제목에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는데 이 책에서 “형이상학적 불교”는 언급되지 않는다. (되려 불교 신자가 불쾌할 가능성이 있다.) 저자는 자신을 ‘불교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열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혹은 열반이 진짜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한걸음씩 더 나은 삶을 향해 명상과 수행을 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것을 보면 ‘재가신자’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마이클 싱어나 고엔카의 저서, 고엔카 센터 같은 위빠사나 코스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는 과학적 주석이다.
ps. 마이클 싱어 저서에 줄창 등장하는 ‘내 머릿속 목소리’의 과학적 근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