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세니아 연설』
15B.1.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1.13,
[b18] .... 알키다마스는 이들을 대변해서 열변을 토해 가며(meletai) 말한다. "신은 모든 사람들을 자유롭도록(eleutheroi) 놓아주었다(aphēke). 자연은 그 누구도 노예로 만들지 않았다.“
※ 누구든 논거를 '자연'으로 삼는다. 약육강식을 옹호하는 자는 양을 잡아먹는 사자를 자기 주장의 논거로 삼고, 자유를 옹호하는 알키다마스 역시 자연을 자기 주장의 논거로 삼는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자연은 이미 인간에 의해 해석된 자연 아닐까? 과연 총체적인 100%의 자연을 인간이 인식할 수 있을까?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이 자연의 일부를 가져가다 자신의 주장의 논거로 삼고 그 일부로 전체 자연을 왜곡하는 것 아닐까?
15B.2.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1,13,
공통된 법이란 자연에 따른 (ho kata physin) 법이다. 설사 서로 간에 아무 공유 관계(koinonia)도 없고 계약(syntheke)도 없다 해도, 자연에 의해(physei) 공통되게 정의롭다거나 부정의하다고 모두가 촉으로 직감하는(manteuontai) 뭔가가 있는 것이다.... 엠페도클레스도 영혼이 들어 있는 것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에 관해서 말할 때 바로 이런 의미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사람들에겐 정의로운데 다른 사람들에겐 정의롭지 않은게 아니라
"오히려 모두에게 적법한 것(to ... panton nomimon)"은 널리 다스리는 에테르를 통해서도 한정 없는 햇빛을 통해서도 끝없이 펼쳐져 있다."
※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 정말로 모든 것은 상대적인가? 모든 상황에서 관철될 수 있는 정의는 없는가? 만약 없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 알키다마스는 우리가 직감하는 '촉'이 있다고 한다. 마치 생래적으로 우리가 '답'을 알고 있으며 마치 신의 사랑이 모든 세상에 임재해 있는 것처럼, '적법한 것'은 끝없이 펼쳐져 있다고 말한다. 왠지 사람을 안심시키는 말이다. 알키다마스 선생님,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헛웃음이 나오는 문장...
5B.9. 스토바이오스 『선집」 4.52.2228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땅 위에 사는 자들에겐 최선이지만, 일단 태어났다면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 빨리 하데스의 문들을 통과할 (perēsai) 것.
16B.6. 섹스투스 엠피리쿠스 '학자들에 대한 반박』 8,4-5" 141
크세니아데스는 모든 인상(phantasia)과 의견(doxa)은 거짓을 말한다고, 그리고 생성되는 모든 것은 있지 않은 것으로부터 생성된다고, 그리고 소멸하는 모든 것은 있지 않은 것으로 소멸한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 모든 감각들은 거짓이라는 크세니아데스의 주장. 플라톤의 절대주의적 뉘앙스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형태로 드러났다면, 칼리클레스의 상대주의적 뉘앙스는 반란을 이야기한다. 크세니아데스의 '진리허무주의'는 삶에 어떤 형태로 드러날까? 씨앗이 되는 생각들이 있다. 그 씨앗으로부터 자란 나무들이 우리들의 삶을 조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