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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균의 소리를 듣다 -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이후 8년, 더 깊어진 성찰과 사색
와타나베 이타루.와타나베 마리코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21년 11월
평점 :
요즘 취업선호1순위가 공무원에서 대기업으로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나만의 일"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나 보다.(김수행 교수님이 강의 중에 한 말: "여러분이 회사가면 왜 불행해? 그게 남의 일이잖아?") 와타나베 이타루의 대기업에 관한 언급을 보자
"오늘날 교육은 아이들을 주어진 틀에 끼워 맞추려 한다.하지만 그것은 결국 대기업이 부리기 좋은 인간을 만드는 행위가 아닐까? 노동자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을 하면 기업 운영에 지장이 생기고, 그리되면 이익이 줄어 주주에게손실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실제로 대량 생산,대량 소비를 정답으로 보는 획일적인 사회에서는 노동자 개개인이 다른 노동자와 보조를 맞춰야 모든 것이 수월하게 돌아간다.그러니 틀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살기 편하다고 느끼기 쉽다. 게다가 노동자는 시간에 쫗기는 처지라 틀을 깨기 위해 천천히 자신을 마주할 시간이 없다"
출판사의 광고와는 달리 전작<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에 비해 내용이 산만해진 느낌이다.오히려 이 책은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사례연구로 읽음직하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생산성과 효율성에 저항하는 장인의 길을 택했다.아마도 그 길에서 "살아있다"라는 삶의 충일감과 충만감,의미와 목적의식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작의 성공 이후 저자는 오히려 직원들이 퇴사하는 등 위기를 겪었는데 '대안적인 삶'을 택하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자신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타협하지 않는 오류를 반복한 것 같다.(예를 들면 대안적인 삶으로 유명한 미국의 니어링부부도 이웃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위기앞에서 저자는 과감하게 가게문을 닫고 자신의 성과를 리셋하는 선택을 한다.리셋은 더는 뒷걸음치지 않겠다는 결의의 표현이었다. 엄청난 불안이 닥쳤지만 머리대신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돗토리현 지즈초에서 다시 재개업을 하게 되는데, 아마 이 곳이 대부분 산림으로 뒤덮인, 인구유출로 소멸해가는 산촌인 것 같다. 소멸해가는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 지즈초 공무원들이 저자의 빵집 "다루마리"를 유치한 것이다. 지역의 특성 때문인지 이 책에서 저자의 관점은 지역 전체로 확장되어 있고, 타인과의 연결과 인연을 강조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전작에서 천연효모를 채취하기 위해 전통가옥과의 연관성을 고려했다면, 이제는 지즈초라는 지역전체를, 더 나아가 코로나19같은 특수한 환경의 영향까지 고려하는 식이다. 저자의 경험에 의하면 효모채취에는 노동자의 감정이나 연휴기간 방문객의 배기가스 등 "단순한 인과관계"를 벗어난 "복잡한 인연"이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때문에 저자는 이 책에서 "민감한 몸의 감수성"을 유독 강조한다.(화학물질을 피하기 위해 샴푸나 비누를 쓰지 않고, 섬세한 미각을 유지하기 위해 치약도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치아건강은 더 좋아졌다니 관심있는 분은 한 번 참고하시길) 이 책은 저자의 실패담과 재기담으로 읽을 수 있는데 대기업보다는 "자신의 길"을 찾고 싶은 사람에게-아직 게임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저자는 일종의 롤모델일 것이다.하지만, 이 길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저자는 제빵장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10년이 넘도록 새벽 2~3시에 일어나 자신만의 전투를 해야했다.그런 면이 삶의 현실감을 안겨줄 수 도 있지만, 전작에서는 변곡점을 지나는 저자의 불안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이번에는 저자가 자신이 제빵장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고행과 수행에 가까운 수련이었다고 털어놓는다.(쉽게 말해 배우기 위해 엄청 노력했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레시피 기술을 배우는 것을 넘어서, 타인과 협력하는 법, 기계를 다루는 법 등 무던한 인내심과 관찰력까지 요구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제는 맥주장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저자가 전하는 경험에서 얻은 "살아남는 핵심 노하우"는 "자연이든,균이든,타인이든 또는 기계든 간에 모든 것과 마음이 통하게 하고 몸을 움직여 현실을 직시할 때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커지는 것 같다"이다.
ps 지금같은 상황에서 평범한 사람이 단순한 자본주의 논리로 돈 많이 벌겠다고 창업을 택한다는 것은 실패확률이 클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이 책을 보면 아이러니하게 자본주의 시스템에 저항하는 저자가 오히려 경영학교과서에 등장하는 비전과 미션이라는 개념을 더 실천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를 넘어서 "획일적인 시장을 조금이라도 흔드는 상품을 선보이겠다"며 경영학교과서 초반에 등장하는 삼각형 다이어그램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갈수록 공기가 부족해지는 상황이다.돈을 넘어서 정말로 가치있는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목적의식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사업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돈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야 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