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둥지엔 왜 지붕이 없을까 브로콜리숲 동시집 40
권영욱 지음, 나다정 그림 / 브로콜리숲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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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둥지엔 왜 지붕이 없을까/ 권영욱/ 브로콜리숲/ 2023

 

바깥 외출이 줄어든 요즘 책 읽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내용이 많은 책이 읽기 힘들다면 동시를 읽는 것도 방법이다.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또는 자신만의 추리로 저자의 의도를 읽어내고 자신의 이야기와 연결해 새로운 동시를 구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재미있다.

권영욱 시에 나다정의 삽화를 입혀 출간된 새 둥지엔 왜 지붕이 없을까는 동시집이면서 천일야화처럼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오는 느낌이다. 그만큼 시인은 독자 몫으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겨두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따스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삽화도 동시집을 손에서 놓지 않게 한다.

권영욱 시인은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PEN문학 시인상,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을 수상하면서 활동을 시작해 대구문화재단,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동시집 웃음보 터진다(공저), 구름버스 타기(공저), 불씨를 얻다가 있다.

 

빌딩 굴뚝/ 공장 굴뚝/ 멀리 보이는 발전소 굴뚝// 굴뚝새/ 깃들지 못해도/ 높고 높아야 한단다// 굴뚝새보다/ 굴뚝 바로 아래 사는/ 사람들로부터// 나쁜 연기를/ / 다른 동네로 보낼 수 있어야// 보다/ / 좋은 굴뚝으로 우러러본단다// - 좋은 굴뚝전문

 

TV 퀴즈프로에서/ 마지막 도전 문제를 맞힌 학생이// 새벽에/ 우유배달을 하고/ 저녁에/ 피자배달했다고 했어// 진행자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했더니// 어려운 가정형편/ 덕분에/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키웠다며// 엄마 아빠 동생들 모두 사랑해!/ 하며/ 골든벨을 울리는 거야// - 덕분에전문

 

좋은 굴뚝에는 빈부의 차이, 지역 이기주의 같은 말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요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고 덕분에는 어려운 형편이지만 바르게 잘 자란 학생, 감사할 줄 알고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학생이 있다는 건 그래도 우리 사회가 밝고 건강하다는 뜻이다. 또한,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시가 될 소재를 잘 포착한 시의 밝은 눈도 눈에 띈다.

 

새들은/ 누가 낳은 알이든// 묻지 않고/ 품는다// 오목눈이는/ 제 알 밀어내고 낳은// 뻐꾸기알도/ 품어// 둥지를/ 떠날 때까지 키운다// ‘낳은 엄마’/ ‘기른 엄마라는 말// 새들에게 없다/ 새들은 둥그런 알을 낳는다// - 새들은 알을 낳는다전문

 

새끼들/ 눈 뜨자마자// 높고/ 넓은 하늘// 마음껏/ 꿈꾸라고// 하늘/ 활짝 열어두었다// / 바람// 막아주는/ 지붕 대신// 엄마 아빠/ 따뜻한 체온// 나누고 싶어/ 새 둥지엔 지붕이 없다// - 새 둥지엔 왜 지붕이 없을까전문

 

위의 두 편은 새를 소재로 쓴 동시다. 오목눈이를 통해 조건 없이 품는 게 잘 안 되는 사람이 낳은 자식기른 자식차별하는 것에 대해 에둘러 반성하게도 한다. 이럴 때는 새들의 세상이 단순하면서도 따듯해 보인다. 둥지에 지붕이 없는 이유를 체온을 나누고 싶어서라고 말하는데 비바람보다는 맞으면서 체온을 나누고 사는 게 훨씬 유대감이 생길 것도 같다. 어쩌면 제각각 자신의 방에 들어앉아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사람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살지 않아 까칠해지는 걸까?

 

권영욱 시인은 따듯한 마음을 지닌 시인이다. 세상을 보는 눈으로 시가 될 소재를 낚아채 와서 동시집에 펼쳐 보인 걸 보니 더욱 그 생각이 굳어진다. 어려운 이웃을 보는 눈, 작고 여린 꽃, , 동물, , 단풍, 파꽃 등에 일일이 눈길을 주며 시상을 펼쳤다. 대부분의 시가 장시가 많은데 짧은 시가 많은 요즘 이렇게 긴 시를 쓴다는 것도 누군가는 전통 동시를 이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든든한 생각도 든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이런 문장이 있다. “만약 내가 시인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이 무슨 대답을 할지 같이 생각해 주세요. 그들은 이야기 속에서 찾아봐하고 대답하겠지요. 이미 시인들은 보물 사이를 헤매는 많은 부자들보다 이야기 속에서 더 많은 빵을 찾았습니다. 시인들은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어요. 하지만 그와 반대로 더 많은 빵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던 곳에서는 그 노력이 수포가 되고 말았지요.”

 

권영욱 시인의 동시집 새 둥지엔 왜 지붕이 없을까를 차근차근 읽어보면 동시집에 실린 동시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고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세한 이야기와 생각은 동시집에서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읽을 때마다 다른 이야기와 생각이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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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서 청색종이 동시선 6
조영수 지음 / 청색종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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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서/ 조영수/ 청색종이/ 2022

 

350편의 동시로 만난 조영수 선생님의 그래 그래서는 시인의 말에서 질문하고 답한 것을 모아 쓴 동시라고 밝히고 있지만, 차근차근 읽다 보면 꼭 이야기 할머니가 아이들을 앞에 앉혀 놓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줄 때 그 이야기에 쏘옥 빠져든 아이 모습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그만큼 흡입력이 있는 시라는 말이 아닐까. 더구나 세 명의 손주와 함께 작업한 동시집이니 그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조영수 선생님은 2000년 자유문학에서 시, 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행복하세요?와 동시집 나비의 지도, 마술이 있다. 오늘의 동시문학상과 자유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그래 그래서2022년 아르코창작지원금을 받아 출간했다.

 

할아버지 취미는/ 돌 모으기// 강에 가도/ 돌 모양 보느라 강 물결을 못 보고// 바다에 가도/ 돌 색깔 보느라 바다색을 못 본다// 돌만 줍는 할아버지 보고/ 돌 도둑 돌 도둑/ 손자가 놀린 후// 취미를 슬며시 바꾸었다/ 돌 제 집에 보내기.//

- 돌 도둑전문 (16)

 

어른 입장에서 아이들만큼 조심스럽고 무서운 건 없다. 아이에겐 어른이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대로 보고 따라하기도 하고 어떤 영향을 받고 자랐는지에 따라 그 아이의 장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석 모으기가 취미인 할아버지도 손주한테는 두 손 들었나 보다. 돌을 있던 자리로 돌려보내는 모습이 재밌다. 숨구멍(36)도 마찬가지다. 환경판에 다닥다닥 붙은 나비 그림을 보니 답답해 보여 아이는 환경판 밖으로 나비를 옮겨준다. 숨 쉴 구멍은 남겨둬야 한다는 걸 아이도 안다. 순수한 마음이 엿보이는 동시다.

 

애써 달았는데/ 학예회 플래카드가 삐딱했다// 선생님이/ 뒤로 물러나서 보라고 했다// 오른쪽 올려/ -이만큼?/ -아니 조금만 더/ 플래카드가 반듯해졌다// 가까이서 본 눈보다/ 좀 떨어져 본 눈이/ 더 밝았다// -멀리서 본 눈(52)

 

뭐든지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좀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보인다. 속담 중에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만큼 가까이에서는 잘 안 보인다는 말이기도 하다. 조금 물러나 보면 생각지 못한 것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덮어두었다가 며칠 지나 살펴보면 처음에 못 본 게 다시 보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독도에 절을 했다// 어떤 사람은/ 독도에 태극기를 꽂았다// 어떤 사람은/ 독도에 입을 맟췄다// 또 어떤 사람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노래했다// 어떤 사람은/ / 대한민국 사람들이다// -독도에 가서(68)

외국에 나가면 전부 애국자라는 말이 있다. 국내지만 독도는 일본과의 영토 분쟁 때문에 독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모두가 애국자가 되는 곳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독도에 도착해 떠나는 순간까지의 가슴 뭉클함을 태극기와 함께 표현하려고 할 것이다.

자동차공장에/ 용접로봇과/ 조립로봇이 취직했다// 택배회사엔/ 분류로봇과/ 드론이 취직했다// 편의점엔/ 자동판매기와/ CCTV가 취직했다/ 실직한 삼촌이 그만/ 기계인간에게/ 밀려/ 방안에서 녹슬고 있다.// -취직(96)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은 이상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식당에 가면 서빙로봇이 음식이 배달해 주고 카페에 가면 로봇이 커피를 내려준다. 인건비와 구인난이라는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점점 기계화되어가는 세상에 사람이 자꾸만 밀려나는 것 같아 은근히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문학 작품에서 자주 다루는 인간성 상실이나 인간성 회복 같은 과제를 안고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조영수 선생님의 그래 그래서는 각박한 현실에서 쉼터같은 역할을 하는 동시집이다. 우산이 집을 사줬어(100)와 같은 작품도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편안한 작품이다. 작가는 좋은 작품으로 세상을 정화하고 독자는 좋은 작품을 많이 읽어 그에 보답하고. 지금 마음이 힘들고 지치는 사람이 있다면 동시집 그래 그래서를 추천하다. 읽다 보면 마음에 여유 한 자리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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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기도 - 2024 소년한국일보 우수도서 선정작 고래책빵 동시집 33
문성란 지음, 손정민 그림 / 고래책빵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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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기도/문성란/고래책빵/2022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동시집

 

기도라는 단어가 들어간 문장은 참 힘이 세다. 문성란 선생님의 세 번째 동시집 나비의 기도기도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그런지 차분하고 마음 편하게 해주는 동시로 채워진 동시집이다. 어쩌면 이 한 권에 선생님의 평소 생각과 마음이 다 담겨 있어서 그렇게 전달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문성란 선생님은 2010<오늘의 동시문학>으로 등단했다. 펴낸 책으로 동시집 둘이서 함께, 얼굴에 돋는 별이 있으며 나비의 기도는 세 번째 동시집으로 경기문화재단의 창작지원금을 받아 출간한 책이다. 열린아동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힘겨루기하더라도/ 찌르지는 말자고// 둥그렇게 구부린/ 사슴벌레의/ //

-둥근 말전문 (11)

 

-나비야,/ 꽃에 앉을 때/ 왜 날개를 가지런히 모으니?// 너도,/ 밥 먹기 전에/ 두 손을 꼬옥 모으잖아!// -나비의 기도전문 (17)

 

밤새/ 하늘 지키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힘없는 새벽달// 옆에서// 있는 힘 다해/ 반짝반짝/ 빛을 뿜어주는/ 샛별// -누구 같아?전문 (36)

 

위에 세 편에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가 보인다. 둥근 말에서는 곤충조차도 서로 찌르지는 말자고 뿔을 둥그렇게 구부렸고, 나비는 감사의 기도를 할 줄 알고 새벽달 옆에는 끝까지 힘내라고 응원해 주는 엄마 같은 샛별이 있다. 이렇게 세상은 선한 영향력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시골로 내려간다고 전화하면/ -싸목싸목 조심해 오너라잉// 가까이 사는 이웃을 배웅할 때도/ -싸목싸목 조심해 가시오잉// 할아버지와 마주 앉은 밥상 앞에서도/ -싸목싸목 많이 잡솨요잉// 할머니 무릎에 누워서 보면/ 구름도 싸목싸목 갑니다//

 

- 싸목싸목 할머니전문 (52) *싸목싸목: ‘천천히의 전라도 방언

 

할머니 손 꼭 붙들고/ 버스에 탄 할아버지// 안쪽 자리에 할머니 앉히고/ 바깥쪽에 앉는다//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할머니의 안전 문이다//

- 안전문전문 (88)

 

싸목싸목 할머니에서는 전통적인 할머니의 모습이 엿보인다. 걱정 많으신 할머니가 입에 달고 사는 싸목싸목은 할머니의 사랑이다. 그 품에서는 구름도 싸목싸목 흘러간다. 안전문에는 신사 같으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덕분에 시 한 편이 나왔으니 곳곳에 아름다운 모습이 많이 연출된다면 우리가 읽을 아름다운 시도 더 많아질 텐데 세상이 점점 빠르게 변하고 있어 그 변화에 적응하느라 자신과 이웃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사람이 많다. 내 가족만이라도 잘 돌볼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안전문을 자처한 할아버지처럼.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술가가 되는 것은 계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나무처럼 성숙하는 것이다. 나무는 수액을 재촉하지 않는다. 나무는 폭풍우 치는 봄날에도 평온을 느낀다. 여름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는다.”

 

동시를 읽다 보면 마음이 편해져서 이런저런 것들을 따지지 않게 된다. 아이의 마음, 즉 동심 속으로 데려다주기 때문이다. 나비의 기도에서 그런 동심을 맘껏 누려보기를 바란다. 문성란 선생님의 따스한 마음에 싸목싸목 젖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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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글바글 식당 동시만세
박소명 지음, 이주희 그림 / 국민서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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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글바글 식당/ 박소명/국민서관/2022

 

전국적으로 날씨가 뚝 떨어져 바깥 활동이 주춤하는 계절이다. 아이와 어른 모두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데 그럴 때 읽기 좋은 책, 부모와 같이 읽으면 더 좋은 동시집을 소개한다. 국민서관에서 최근에 출간한 동시집 박소명 선생님의 와글바글 식당이다. 제목만 들어도 뭔가 이 식당에서는 굉장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듯하면서 티내지 않고 큰일을 하고 있는 와글바글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월간문학으로 동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동화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박소명 선생님은 황금펜아동문학상과 한국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동안 동시집으로 뽀뽀보다 센 것, 올레야 오름아 바다야, 꿀벌 우체부, 동화집 흑룡만리, 엄마에게 점수를 줄 거야!, 오현, 바람을 가르다와 지식 교양책으로 세계를 바꾸는 착한 마을, 70년대 이야기 속으로 풍덩등 다양한 책으로 독자와 만나고 있다.

 

낮이나 밤이나

열려 있는 식당

 

참새 손님들이

와글바글 와글바글

 

잠자고 일어나 먹고

놀다 와서 먹고

 

먹어도 먹어도 넉넉한

까아아만 열매 밥

거저 나누어 주는

 

쥐똥나무 울타리

와글바글 식당.

 

<와글바글 식당> 전문 22

 

 

풀숲에 버려진

빛바랜 운동화 한 짝

 

외롭고 억울해

울던 날들 다 사라졌어.

 

비 피해 가는

개미들 지켜 주는 동안

 

긴 밤 쉬었다 가는

들쥐 안아 주는 동안

 

쉼터로 태어났거든.

 

슬퍼했던 날들

이제 끝.

 

이제 끝전문

 

 

한 편의 동화를 읽은 느낌이다. 버려졌다는 느낌에 슬픔과 원망이 가득했던 운동화가 풀숲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 쉼터가 되어주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 운동화는 더이상 슬픔과는 안녕이다. 이렇게 운동화도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모습을 동시를 통해 읽을 수 있다.

 

 

날 선 칼도

도마의 등에서는 박자를 잘 맞추지.

 

송송송 파 썰기

또각또각 오이 썰기

착착착착 무채 썰기

 

믿고 내어 준

도마의 등에서는

순하게 일도 잘하지.

 

<도마의 등> 전문 32

 

도마는 칼을 믿고 칼은 도마 등에서 순해지고 각자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 아름다운 사회로 가는 지름길인데 시끄러운 사람이나 단체들을 보면 이 동시집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각자 자기주장만 하면 발전이 없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밥그릇만 보는 사람이 답답하다. 오히려 말이 없는 동물, 식물, 무생물에게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배워야 할 것 같다. 동시집만 읽어도 단순 명쾌하게 답이 나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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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 둔 말 창비청소년시선 42
김현서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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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둔 말/ 김현서 시집/창비/2022

 

 

사춘기를 비교적 무난하게 보낸 두 아들을 생각하면 가끔 고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때때로 좀 더 공부 열심히 좋은 대학에 가 주었더라면 자기들 장래도 더 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들 때도 있지만 크게 아픈 데 없이, 사고를 치거나 해서 학교에 불려 간 적 한번 없이 고등학교까지 마쳐주었다. 부모로서 크게 해준 게 없다 보니 뉴스로 전해 듣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내 아이가 그 시기를 견뎌준 것에 대해서 대견하기도 하다. 지금 자신들의 길을 누구보다 열심히 개척해 가고 있는 것도 참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청소년시집인 숨겨둔 말을 읽었다.

숨겨둔 말을 쓴 김현서 시인은 강원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아기 때의 아름다웠던 기억과 학창 시절 어느 날은 배가 고팠고 어느 날은 잠깐 웃었고 어느 날은 왈칵 눈물을 쏟기도 한 그때의 눈물과 웃음을 자양분 삼아 글을 써 1996년 시 전문지 현대시사상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한국일보에 동시가 당선되어 동시도 함께 쓰고 있으며 펴낸 책으로는 동시집 수탉 몬다의 여행, 청소년시집 탐정동아리 사건일지, 시집 나는 커서, 코르셋을 입은 거울, 동화 우주로 날아라, 누리호!(공저) 등이 있다.

 

책을 덮은 뒤의 느낌은 한참 동안 가슴이 찌릿찌릿하다는 것이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청소년, 한참 에너지를 발산해야 할 나이에 교실에 붙들려 공부와 씨름하는 모습은 짠하다. ‘저게 다는 아닌데하면서도 딱히 다른 대안도 없는. 그래서 더 답답하기도 하다.

 

선생님이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쉰다 선생님 문제구나라고 말하니 나는 또 문제아가 되는 것 같다 어항 밖으로 뛰쳐나와 물기가 점점 말라 가는 금붕어! 나는 정말 문제아일까? 나는 자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나는 정말 문제아일까일부 (17)

 

집에 먹을 게 떨어졌다 이제 나는 배가 고프면 안 된다 집이 망했으니 크게 웃어도 안 된다 내 진로는 결정됐는데 선생님은 나를 불러놓고 자꾸 묻는다 보충 수업을 묻고 대학을 무는다 엄마가 없는데 엄마에 대해 묻는다 빨간딱지는 묻지 않고 라이더 알바에 대해 묻는다 가만히 있으면 시건방져 보여서 뭐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말하기 싫다 말없이 내 어깨를 툭툭 쳐 주는 것도 싫다 -숨겨둔 말전문 (38)

 

찢어진 종이 같은 눈이 날린다 운동장을 백지로 만든다 이제 곧 겨울 방학이다 휴식 같지만 더 빡센 시간이 기다린다 아득바득 달려 봐야 5등급에서 간신히 4등급 찍고 다시 5등급 선생님들은 진짜 특기는 놔두고 가짜 특기에 죽자고 매달리라고 부추긴다 특별 관리는 1등급뿐이고 나같이 애매한 등급은 안중에도 없으면서눈물이 나는 건 찬공기에 코끝이 시리기 때문이겠지

-애매한 인생전문 (62)

 

창가에/ 오래 앉아 있으니/ 내 몸에서도/ 따뜻한 햇빛 냄새가 난다//

-불안전문 (63)

 

암막 커튼을 젖히며/눈부신 햇살을 쏟아 내는 그 말!//넌 혼자가 아니야/선생님의 말이 입 안에서 사탕처럼 굴러다녀/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사탕!/천 개쯤 있었으면 좋겠어//넌 혼자가 아니야/조랑말처럼 다가닥다가닥 소리도 경쾌해/몸집은 적당하고 꼬리는 탐스러워/철퍼덕철퍼덕 똥도 잘 쌀 거 같아//넌 혼자가 아니야/읊조릴 때마다 바닥에 떨어진/종이 쪼가리 같은 내 몸이/나풀나풀 날아올라//노랑나비 흰나비 이리 날아오너라/넌 혼자가 아니야/창문을 열고 높은 담장도 폴짝 뛰어넘어/창공으로 날아올라//넌 혼자가 아니야/사방이 확 트인 구름 해먹에 누워 흔들흔들//밑도 끝도 없는 배짱이 생겨나는 그 말/나는 혼자가 아니었어!//

 

-혼자가 아니야전문 (82~83)

 

숨겨둔 말 읽으면서 든 생각은 사춘기는 이미 지났지만?(가끔 대들 때도 있어 아닌 것도 같고) 아이들이 사춘기 이전에 내가 이 시집을 읽었다면 아이들을 좀 더 많이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쳤다. 무엇보다 아이들 말을 잘 들어주어야 겠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꾹꾹 가슴 밑바닥까지 참고 삼킨 말이 얼마나 많을지.

내 아이한테도 넌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해 주고 싶다. 아이가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을 숨겨두지 않도록 말에 날개를 달아주어 잘 들어도 주는 엄마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김현서 선생님이 본인을 다독인 말 같기도 하고 수많은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한테 하는 말 같기도 한, 이 시집. 아마 둘 다겠지. 그래도 확실한 건 이 시집을 읽은, 또는 앞으로 읽을 많은 독자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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