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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 ㅣ 문학동네 동시집 50
송선미 지음, 설찌 그림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 송선미, 문학동네
송선미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과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공부하다 2011년에 『동시마중』으로 등단했다. 2015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시인의 첫 동시집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이 작년 11월에 나왔다.
제목이 참 감성적이다. 다 자란 내 키, 더 이상은 자랄 일 없고 오히려 줄 일이 남은 내 키가 더 자라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리고는 팔을 쫘악 펴도 닿지 않는 옷장 위를 향해 두 팔을 한껏 뻗어보게 하니 말이다. 이렇게 하는 데는 어쩌면 여기엔 설찌 그림이 한몫하는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팔다리를 한껏 벌린 캐릭터 하나가 표지에 떠억하니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바닥이 아닌 하늘을 나는 듯한 모습이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으면…….
총 5부, 47편으로 구성된 동시집의 시작은 “나의 아버지께”다.
이런 시편들이 나온 데는 시인의 아버지의 역할이 컸던 것 같다.
사과 아삭
사과 아삭
빨간 사과 아삭
차갑고 단단한 빨간 사과 아삭
군산 아재가 보내 주신
차갑고 단단한 빨간 사과 아삭
그리운 군산 아재가 보내 주신
아직도 차갑고 단단한 빨간
사과 아삭
달콤한 사과는 조금씩 작아지고
사과의 문장은 자꾸만 이어지네
동그란 사과
향긋하고 동그란
사과 아삭
-「사과 아삭」 전문
사과밭을 했던 나의 고향은 아직도 사과밭이 그대로 있지만 일손이 없어 임대를 했기 때문에 사과는 시장에서 사먹고 있다. 사과 아삭을 읽다 보니 예전에 먹고 없어진 사과들과 사과 향기와 바닥에 떨어진 사과, 사과꽃, 적과, 사과따기, 사과 포장하기, 사과밭 옆 아버지 무덤까지 기억에서 기억으로 연결된다. 「사과 아삭」 한 편으로
완두콩 콩깍지 우리
“너도 그랬던 거야?”
하는 목소리엔
외로움이 들어 있었다
나는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건네는 그 말을 들었다
너도, 라는 외로움은 조그마해서
동그란 완두콩 같았다
가지런히 두 손 모은 콩깍지 속
너와 너, 나와 우리, 나란한
따뜻한 완두콩 같았다
-「완두콩 콩깍지 우리」 전문
외로움은 현대인들 모두 느끼는 단어가 아닐까? 각자 제일 친한 친구는 스마트폰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스마트폰 마음을 읽지는 못하기에 누군가 ‘너도’라고 말해 준다면 그 말, ‘너도’라는 말에서 연대감을 느끼게 한다. 완두콩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외로움은 멀리 여행 보내 버리고 즐거움을 맞이해 좀 더 밝은 세상이 되었음 좋겠다.
표제작인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은 제일 마지막 시편이다.
여행을 떠났다고 한껏 자랑해놓고 어디어디 여행 갔었는지는 나중에 말해 준다고 한다.
더 높은 옷장 위 배낭이 있기 때문에, 또 여행을 떠날 것이기에.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는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든다. 표지의 캐릭터처럼 감성 충만한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이미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아, 여행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