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얼굴로 살아가는 나의 고통을 의사인 네가 알 수 없다. 그러니 위험하게 보이든 말든 성형해 달라는 말입니다. 이런 얼굴로 사람들 앞에 나설 바엔 죽어버리는 게 더 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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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지금의 사회를 꽤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 얼굴에 손을 대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성형은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저기 또 손을 대게 되고, 그러다 위험한 수술을 감수하는 사람도 생긴다. 법정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고 실제로 환자가 죽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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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의사가 어떤 일에 휘말려 유명 성형외과로 옮기면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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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나 가슴을 수술하는 장면이 꽤 여과 없이 나온다. 수술 전과 수술 후의 얼굴도 그대로 보여준다. 처음에는 이런 장면을 어떻게 촬영했을까 싶었다. 그런데 보다 보면 수술 자체보다 그 수술을 받기 전과 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배우들이 더 대단해 보인다. 실제 주인공인 마츠오카 마유나 나카 리아사보다 매회 등장하는 성형 환자 역할의 배우들에게 자꾸 눈이 간다. 이 시리즈는 수술 후 수술 전보다 훨씬 예뻐진 얼굴이 나오지만 교묘하게 수술한 얼굴이 대체로 전부 엇비슷하게 보인다. 할리우드 성형한 배우들이 비슷한 얼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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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한때 천재 응급 외과 의사였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을 겪고 유명 성형외과로 옮긴 뒤에는 그 천재적인 외과 의사라는 설정이 별로 쓸모가 없다. 환자는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상태인데 계속 성형을 해달라고 한다. 의사 입장에서는 무리하게 수술해서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환자가 느끼는 고통을 단순히 허영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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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수술로 고통받는 것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로 살아가는 고통이 더 큰 환자를 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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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에서 인기 인플루언서가 몸이 아파 쓰러져 응급환자로 실려 온다. 가슴의 실리콘 보형물을 빼야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수술을 앞두고 절대로 가슴 보형물을 빼지 말아 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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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보형물을 빼고 수술해서 목숨은 건진다. 그런데 몸이 회복된 뒤 환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 납작해진 가슴으로 팬들 앞에 설 수 없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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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보다 보면 성형이라는 게 단순히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본인이 보는 자기 얼굴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얼굴 사이에는 꽤 큰 간격이 있을 수도 있고, 그 간격 때문에 실제로 삶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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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8화인데 나는 5화까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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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성형외과 원장으로 나카 리이사가 나온다. 돈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람이고, 상상하기 어려운 수술을 요구하는 환자들이 계속 찾아온다. 그런데 이 원장은 환자에게 “할 수 없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병원에 있는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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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회장인 아버지와 조금씩 균열이 생기면서 원장의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마츠오카 마유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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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까지는 정말 휘몰아친다. 환자가 계속 나오고, 수술이 이어지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서 다음 화를 바로 누르게 된다. 그런데 5화부터는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수술 장면에서 오는 시각적인 재미는 조금 줄어든다. 지금까지는 성형외과라는 공간 자체가 굉장히 자극적이었는데, 이제는 인물들 사이의 이야기가 앞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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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시리즈에서도 주인공은 일본에 있는 한국 술집에서 술을 마신다. 파전이나 잡채 같은 걸 파는 곳이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국 술집이 나오는 걸 보면 괜히 눈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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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술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꽤 자주 나온다. 일본은 아직 이런 식으로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 있나 보다. 술 마시면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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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타쿠의 딸도 갑질하는 환자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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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적어도 이 시리즈는 성형이라는 소재 하나만 가지고도 꽤 세게 밀어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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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 보든 이야기는 처음부터 사람을 꽤 당황하게 만든다. 앞서 봤던 [괴물 에드 게인 이야기]처럼 잔인한데, 이번에는 그 잔인함이 조금 더 노골적이고 시원하다. 말 그대로 사람을 자르고, 도끼로 찍는다. 1화 시작부터 허걱 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오니 심장 단단히 붙잡고 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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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 보든을 다룬 이야기는 이 괴물 시리즈에서 [다머 이야기], [메넨데스 이야기]를 지나 에드 게인으로 이어지는 계보 안에 놓여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출연한 [리지]가 있다. 여기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리지 보든이 아니라 브리짓이라는 인물로 나온다. 리지의 곁에서 정신적으로 버팀목이 되어주고, 결국 리지가 도끼를 들 수 있게 만드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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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리즈 속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중심에는 당연히 리지 보든이 있고, 브리짓이 들려주는 마녀 이야기가 하나 끼어든다. 그리고 100년 뒤 리지 보든을 우상처럼 떠받드는 여성 살인마 에일린의 이야기가 또 하나 들어간다. 에일린을 연기한 사라 폴슨은 정말 신들린 것처럼 연기한다. 등장하는 순간부터 인물 자체가 좀 불안하다. 눈빛이며 표정이며, 저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느낌을 제대로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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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의 집안은 처음부터 정상적인 가족과는 거리가 멀다. 새엄마는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있고 삼촌 역시 마찬가지다. 새엄마는 리지를 두 살 때부터 키웠지만, 끊임없이 무시하고 업신여긴다. 아버지라고 다르지도 않다. 리지에게는 집 안에 자기 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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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리지가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은 마당 한쪽의 비둘기 사육장이다. 꽃과 자연을 좋아하는 리지에게 비둘기는 거의 유일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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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하녀들의 몸을 탐하기 바쁘고, 새엄마는 남편에게서 돈을 받아내 이혼하고 떠날 생각만 한다. 하녀가 만든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얼굴에 뜨거운 음식을 끼얹어버리는 장면에서는 이 집안 사람들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 단번에 드러난다. 그런 집에 새로운 가정부 브리짓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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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리지와 브리짓이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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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장면이 비둘기다. 시끄럽게 구구거린다는 이유로 새엄마가 비둘기의 목을 따버리는 장면을 리지가 보게 된다. 리지에게 비둘기는 그냥 새가 아니다. 아무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집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붙일 수 있었던 존재다. 그걸 눈앞에서 잃는 순간, 안에 눌러놓았던 무언가가 터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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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작품의 살인은 단순히 누군가를 죽이는 장면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계속 참고, 무시당하고, 짓밟히던 사람이 어느 순간 선을 넘어버리는 과정이 꽤 노골적으로 펼쳐진다. 물론 그렇다고 살인이 정당화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리지가 왜 그렇게까지 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은 상당히 직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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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 보든을 연기한 엘라 비티도 재미있다. 처음에는 어딘가 어수룩하고 못나 보이는 얼굴인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얼굴이 달라진다. 순진한 사람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섬뜩한 표정이 나오고,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로 돌아온다. 배우가 얼굴 하나로 리지의 변화를 꽤 잘 보여준다. 부모의 외모를 보면 도대체 외모 유전자가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인데, 리지 보든이라는 역할에는 그 얼굴이 오히려 딱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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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에드 게인 이야기]에서 에드 게인을 연기했던 찰리 해냄은 여기서는 리지의 아버지로 나온다. 이 인간도 만만치 않다. 딸에게는 아버지답지 않고, 하녀들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선을 넘나들며 행동한다. 그러다 결국 딸에게 도끼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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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으면 이 장면을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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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시리즈는 살인을 질질 끌지 않는다. 도끼가 나오면 찍고, 잘라야 하면 자른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직선적이다. 마지막에 법정에서 리지가 무죄를 받는 모습까지 보여주니, 실제 사건을 알고 보는 사람에게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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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유명한 리지 보든 사건을 가져와 세 편의 이야기를 엮어놓은 방식도 괜찮고, 배우들의 연기도 전체적으로 좋다. 특히 리지의 변화와 에일린의 광기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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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본 [괴물 에드 게인 이야기]가 기괴함 쪽에 가까웠다면, 이번 리지 보든 이야기는 억눌린 사람이 끝내 도끼를 드는 순간까지 끌고 가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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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1화 시작하자마자 한 방 나오니 심장 딱 부여잡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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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사랑’에서 조여정이 해고 노동자, 해직 부부를 인터뷰하려든다. 금수저가 가난한 부부를 인터뷰하려고 한다. 진정성을 가지고 가난한 자에게 공감하며, 그들의 곁에 바짝 붙어 인터뷰를 하고 싶다. 그건 그저 메소드 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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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차가 나는 사람은 이미 날 때부터 각자 그렇게 태어난다. 그 격차는 생각보다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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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희 평론가가 이 영화를 이창동 감독의 전작 ‘버닝’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나는 ‘버닝’을 정말 좋아해서 서른 번쯤 봤다. 머리가 나빠서 지금은 대사 하나하나가 떠오르지는 않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영화의 구석진 화면 하나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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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은 불평등에 관한 영화다. 유전자라는 건 대를 타고 내려온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있고, 종수는 그걸 온몸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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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사랑’에서 조여정 부부는 부자다. 조여정은 방송 일을 하지만 남편인 조인성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른다. 부자의 특징이라고 해야 하나. 늘 어디선가 전화가 오고 뭔가를 확인한다. 그런데 정작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돈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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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버닝’의 벤도 그렇다. 딱히 뭘 하는지는 모르는데 세계 여행을 다니고, 헬스장에 가고, 포르셰를 몰고 다닌다. 벤에게는 그런 유전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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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격차가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면서도 때로는 그들 곁에 간다. 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내가 얼마나 가진 사람인지, 얼마나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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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의 원작자 하루키의 소설도 그렇다. 하루키의 대부분 소설에도 유전자에 대해서 많이 나온다.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미 정해진 것은 어떤 노력을 한들 정해진 대로 흘러간다. 결과가 그렇다는 건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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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에 관한 영화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부자인 연예인이 가난한 사람을 연기하면 그게 정말 와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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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니까 배역의 옷을 입고 가난한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연구하지 않은 연기는 금방 표가 난다. 가난이라는 건 옷 한 벌 갈아입는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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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많은 연예인들도 일반인들과 섞이는 게 싫을지 모른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연예인들과 어울리고 싶을 것이다. 예능이나 뉴스, 기사에 보면 유난히 서로 친한 톱클래스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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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라는 걸 제대로 들여다보게 만드는 매개는 결국 소설이나 영화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감독들은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몇 년씩 준비한다. 칠순이 다 되어가는 이창동 감독도 이번 ‘가능한 사랑’을 위해 10년을 준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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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연예인보다 더 불편한 부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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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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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억, 몇백억씩 가진 사람들이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안다는 듯 정치를 한다. 그걸 보면 가끔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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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과 가장 섞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선거철만 되면 일반인들 틈으로 들어온다. 그러고는 자기 권력과 자산을 이야기한다. 자기 자랑을 하다가 나중에는 자식 자랑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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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이상한 일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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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한 마디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아는 사람이 자신을 욕하는 일반인들에 대해서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정말 잘못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남이 하면 잘못, 자신이 하면 올바른 것으로 말하고 있다. 정말 불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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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라는 게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다른 세상에 사는 것인지, 그런 모순을 제대로 들춰내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에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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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조연들의 열연이 끝없이 펼쳐지는데도 그 열연이 화면 밖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느낌의 영화다. 스릴러인지 드라마인지 분명하지 않아서 보는 동안 흥미는 계속 생긴다. 그런데 정작 재미라는 것은 자꾸 빠져나간다. 궁금하게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는데, 그 궁금증을 따라가고 나서 남는 것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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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광이라는 제목 때문인지 색감에도 신경을 쓴 것 같다. 지금 시대의 이야기인데 화면은 마치 80년대 필름으로 찍은 것처럼 보인다. 선명하지 않고 조금은 바랜 듯한 색감. 불완전한 화면이다. 그런 불완전함이 오히려 영화에 없어서는 안 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가 가진 분위기와는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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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무리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결국 영화가 재미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 지점에서 너무 멀리 가버린다. 정말 ‘와, 이 정도야?’ 싶을 만큼 재미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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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아쉬운 것은 이 영화가 2021년에 촬영을 끝냈다는 점이다. 코로나와 배급 문제를 거치면서 무려 5년 뒤에야 관객을 만나게 됐다. 어렵게 세상에 나온 영화이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관객 수가 10만에도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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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아 배우는 감독과 인연이 깊다.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었던 [미쓰백]에서 김시아를 보고 이번 영화에도 출연시켰다. 그래서인지 [비광]에서도 [미쓰백]에서 보았던 인물의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이 느껴진다. 아이를 둘러싼 상황과 그 안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방식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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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룡은 여기에서도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마초적인 남자. 상처받고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폭력을 휘두르다가도 옆에서 하지원이 한마디 하면 멈춘다. 배우가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문제다. 새로운 인물을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 류승룡이 연기했던 여러 캐릭터가 겹쳐 보인다. 국밥 먹는 장면, 돌쇠처럼 숟가락을 쥔 모습, 머리에 깍두기 국물을 붓는 장면 같은 모습의 류승룡은 어딘가 다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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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원의 캐릭터도 [스캔들]의 손예진을 닮았다. 하지원에게도 그런 것을 만들어내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딘가 맞지 않는다. 너무 맞지 않는다.예쁘긴 하나 눈빛 하나 만으로도 농염을 표현하고 가만히 있어도 남자들이 빠져들 것 같은 퇴폐미는 손예진에게서 빠졌다. 하지원도 손예진과 비슷하다. 이 역할이 너무 낯설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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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연기력으로 그 빈틈을 메우려고 하다 보니 하지원이 보여주려 했던 새로운 얼굴이 오히려 너무 멀리 가버린 느낌이다. 캐릭터가 배우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배우가 캐릭터를 붙잡고 끌고 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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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가 범인이라고 몰아붙이며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와 거칠게 데리고 가는 장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작 여중생 한 명인데 경찰들이 그렇게까지 몰려들어야 했을까. 장면이 만들어내려는 긴장감보다 연출된 장면이라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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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도 아쉽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끌고 왔는데 정작 중요한 사실은 너무 짧은 설명으로 정리해버린다. 지지고 볶고 했던 모든 과정이 뭐야? 이게?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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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황중구라는 사람이 왜 비광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불완전한 가족의 모습과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그것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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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는 서사대로 가고, 캐릭터는 캐릭터대로 움직이고, 음향은 음향대로 존재한다. 각각 따로 보면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이는데 그것들이 한 편의 영화 안에서 만나지 못한다. 영화라는 예술이 감독의 영역이라고 해도, 이 정도면 보는 사람이 어디에 마음을 두고 따라가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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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히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무명배우들이 출연하는 잘 만든 독립영화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름이 알려진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영화가 저절로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배우와 많은 제작비,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나온 영화보다 아무도 이름을 모르는 배우들이 나와도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독립영화가 훨씬 오래 마음에 남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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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광]은 어렵게 세상에 나온 영화라는 사실 때문에 더 아쉽다. 좋은 배우들이 많이 나오고, 분명 공들인 흔적도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한곳으로 모이지 않는다.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알겠는데, 그것이 관객에게 닿는 과정에서 자꾸 흩어진다.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보다 ‘왜 이렇게까지 재미가 없을까’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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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핵심은 어쩌면 이승윤이 아니다. 처음에는 분명 이승윤을 찍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끝까지 보고 나면 세 명의 감독이 자기 자신을 찍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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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은 영화 일을 하다 지쳐 한없이 밑으로 꺼져 있던 2018년, 우연히 만난 선배에게 “너 살아있었네?”라는 말을 듣는다. 그 한마디가 영화의 제목이 된다.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듣보라는 말이 우습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 아직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 하고 싶은 것은 분명한데 어디에도 자리가 없는 사람들. 잘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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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은 그때 무명 가수였던 이승윤의 노래를 듣는다. 자신의 처지와 묘하게 겹치는 노래였다. 지쳐 있던 자신에게 누군가 건네는 선물처럼 느껴졌고, 그렇게 팬이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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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내가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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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알 수 없는 자신감이다.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이승윤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그냥 해보기로 한다. 친구 두 명을 끌어들인다. 셋 다 이름을 알린 감독이 아니다. 말 그대로 듣보 감독들이다.

​

“이 가수와 한 번 작업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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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 하나로 일이 시작된다.

​

일단 이승윤에게 연락을 한다. 답장이 올 리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답장이 온다. 그리고 실제로 만난다. 그때부터 세 사람은 정말 맨땅에 헤딩한다.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위해 장소를 구하고, 사람을 만나고, 무대를 만들고, 의상까지 준비한다. 전통시장을 돌아다니고 여기저기 전화를 한다. 누군가는 안 된다고 하고, 누군가는 어렵다고 하고, 코로나라는 상황까지 앞을 막아선다.

​

그런데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건 그들이 안 된다는 말을 들을수록 더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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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어려움을 극복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는다. 계속 생긴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돈도, 인맥도, 유명세도 없는 사람들이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하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오히려 보는 입장에서는 그들의 행동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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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면 편하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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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승윤을 좋아해서 시작한 일인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달라진다. 이승윤의 뮤직비디오를 찍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빠져든다. 이게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

꿈이라는 게 원래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누군가를 보고 시작할 수 있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어서, 저 사람과 일하고 싶어서, 저 사람의 무언가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시작한다. 그런데 한참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사라지고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었는지가 남는다.

​

이승윤 역시 당시에는 지금처럼 유명한 가수가 아니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 같아서 2020년까지만 활동하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2021년 [싱어게인]에서 우승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

영화 속 이승윤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이승윤보다 훨씬 풋풋하다. 아직 이름을 알리기 전의 얼굴이 있고, 그때의 노래가 영화 곳곳에 흐른다. 훗날 유명해진 사람의 과거를 보는 것이면서 동시에,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사람들의 시간을 보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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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세 명의 감독이 뮤직비디오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마음이 움직인다.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다. 대단한 사람들이 대단한 일을 해낸 이야기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이,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번 해보겠다고 계속 움직이는 이야기다.

​

그래서 제목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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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보인간의 생존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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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고 말하는 데 꼭 유명해질 필요는 없다. 아직 아무도 몰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어쩌면 그것 자체가 생존신고일지도 모른다. 세 사람은 이승윤의 뮤직비디오를 만들면서 자신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나는 그 생존신고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조금 위로받는다.

​

나도 아직 살아 있나 보다, 하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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