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조연들의 열연이 끝없이 펼쳐지는데도 그 열연이 화면 밖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느낌의 영화다. 스릴러인지 드라마인지 분명하지 않아서 보는 동안 흥미는 계속 생긴다. 그런데 정작 재미라는 것은 자꾸 빠져나간다. 궁금하게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는데, 그 궁금증을 따라가고 나서 남는 것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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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광이라는 제목 때문인지 색감에도 신경을 쓴 것 같다. 지금 시대의 이야기인데 화면은 마치 80년대 필름으로 찍은 것처럼 보인다. 선명하지 않고 조금은 바랜 듯한 색감. 불완전한 화면이다. 그런 불완전함이 오히려 영화에 없어서는 안 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가 가진 분위기와는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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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무리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결국 영화가 재미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 지점에서 너무 멀리 가버린다. 정말 ‘와, 이 정도야?’ 싶을 만큼 재미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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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아쉬운 것은 이 영화가 2021년에 촬영을 끝냈다는 점이다. 코로나와 배급 문제를 거치면서 무려 5년 뒤에야 관객을 만나게 됐다. 어렵게 세상에 나온 영화이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관객 수가 10만에도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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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아 배우는 감독과 인연이 깊다.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었던 [미쓰백]에서 김시아를 보고 이번 영화에도 출연시켰다. 그래서인지 [비광]에서도 [미쓰백]에서 보았던 인물의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이 느껴진다. 아이를 둘러싼 상황과 그 안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방식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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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룡은 여기에서도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마초적인 남자. 상처받고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폭력을 휘두르다가도 옆에서 하지원이 한마디 하면 멈춘다. 배우가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문제다. 새로운 인물을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 류승룡이 연기했던 여러 캐릭터가 겹쳐 보인다. 국밥 먹는 장면, 돌쇠처럼 숟가락을 쥔 모습, 머리에 깍두기 국물을 붓는 장면 같은 모습의 류승룡은 어딘가 다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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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원의 캐릭터도 [스캔들]의 손예진을 닮았다. 하지원에게도 그런 것을 만들어내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딘가 맞지 않는다. 너무 맞지 않는다.예쁘긴 하나 눈빛 하나 만으로도 농염을 표현하고 가만히 있어도 남자들이 빠져들 것 같은 퇴폐미는 손예진에게서 빠졌다. 하지원도 손예진과 비슷하다. 이 역할이 너무 낯설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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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연기력으로 그 빈틈을 메우려고 하다 보니 하지원이 보여주려 했던 새로운 얼굴이 오히려 너무 멀리 가버린 느낌이다. 캐릭터가 배우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배우가 캐릭터를 붙잡고 끌고 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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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가 범인이라고 몰아붙이며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와 거칠게 데리고 가는 장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작 여중생 한 명인데 경찰들이 그렇게까지 몰려들어야 했을까. 장면이 만들어내려는 긴장감보다 연출된 장면이라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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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도 아쉽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끌고 왔는데 정작 중요한 사실은 너무 짧은 설명으로 정리해버린다. 지지고 볶고 했던 모든 과정이 뭐야? 이게?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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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황중구라는 사람이 왜 비광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불완전한 가족의 모습과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그것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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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는 서사대로 가고, 캐릭터는 캐릭터대로 움직이고, 음향은 음향대로 존재한다. 각각 따로 보면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이는데 그것들이 한 편의 영화 안에서 만나지 못한다. 영화라는 예술이 감독의 영역이라고 해도, 이 정도면 보는 사람이 어디에 마음을 두고 따라가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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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히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무명배우들이 출연하는 잘 만든 독립영화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름이 알려진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영화가 저절로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배우와 많은 제작비,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나온 영화보다 아무도 이름을 모르는 배우들이 나와도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독립영화가 훨씬 오래 마음에 남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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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광]은 어렵게 세상에 나온 영화라는 사실 때문에 더 아쉽다. 좋은 배우들이 많이 나오고, 분명 공들인 흔적도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한곳으로 모이지 않는다.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알겠는데, 그것이 관객에게 닿는 과정에서 자꾸 흩어진다.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보다 ‘왜 이렇게까지 재미가 없을까’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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