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생존 스릴러 재난 영화다.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가 스카이다이빙을 하려다가 비행기가 새 떼와 충돌하고, 낙하산을 펴고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서로 엉키면서 협곡 위에 매달린다. 이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영화도 길지 않아서 딱 필요한 만큼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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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떠올린 건 재난이 아니라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속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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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자키의 탐미적인 소설에 나오는 여자들은 위험할 만큼 아름답다. 남자들이 자기에게 시선을 보내는 걸 알고 있고, 그 시선 자체를 즐긴다. 남편이 있어도 다른 남자들에게 은근히 색기를 흘리고, 그렇다고 먼저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다. 가까이 오는 남자를 굳이 밀어내지도 않는다. 남편이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태연하다. 남편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다. 내 아내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나만 보고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데 정작 아내는 다른 남자들의 눈길을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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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다니자키의 소설에서 자주 느껴지는 건 발에 대한 집착이다. 평소에는 신발 속에 가려져 있는 신체 부위라서 더 묘하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 예쁜 발에 남자가 정신을 못 차리는 순간이 나온다. 감춰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탐미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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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도 묘하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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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협곡에 매달려 있고, 남편은 자기 발밑에 매달려 있다. 그런데 여자를 붙잡고 있는 남자는 하필이면 예전 남자친구다. 몸은 서로 붙어 있고, 숨소리는 바로 앞에서 들리고, 눈앞에는 한때 사랑했던 남자가 있다. 여자가 그 남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참 묘하다. 그냥 위험한 상황에 놓인 사람의 눈빛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게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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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도 그걸 모를 리 없다. 밑에 매달린 채 아내에게 말을 걸고 속마음을 드러내지만, 지금은 질투한다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다. 줄 하나에 의지해서 협곡에 매달려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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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편을 사랑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예전 남자친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렇다고 옛 남자친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들이 계속 떠오르고, 지금 눈앞에서 몸을 맞대고 있으니 그 기억이 쉽게 사라질 리도 없다. 재난 상황인데도 이 세 사람 사이에는 이상할 만큼 끈적한 감정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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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장면도 그렇다. 상사는 일을 제대로 하기보다 얼굴을 예쁘게 가꾸는 데만 신경 쓴다고 말한다. 영화가 굳이 그런 대사를 넣은 것도 여자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려는 것인지 꽤 노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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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대부분은 세 사람이 협곡에 매달려 있는 장면이다. 움직일 공간도 별로 없다. 그 와중에 회상 장면이 끼어들고, 여자가 옛 남자친구를 아직 완전히 잊지 못했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래서 생존 스릴러를 보고 있는데 자꾸 다른 영화가 겹쳐 보인다. 재난보다 삼각관계가 더 신경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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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역의 마크 아이델슈테인은 [아노라]에서 철없는 이반을 연기했던 배우다. 마지막에는 남편이 줄을 끊고 협곡 아래로 떨어진다. 비상 낙하산을 펴지만 기절하고, 그래도 살아남는다. 반대로 예전 남자친구는 여자를 살리기 위해 떨어져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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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버린 남자를 눈앞에서 잃었다. 남편은 살아남았지만, 이제 둘이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아내가 잊지 못했던 남자가 자기 아내를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사실을 남편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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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만 보면 생존 재난물이다. 그런데 보고 나면 이상하게 남는 건 협곡도, 낙하산도, 새 떼도 아니다. 서로 몸을 붙이고 매달린 채 여자가 예전 남자친구에게 보내던 그 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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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시리즈의 세 번째 편처럼 보이는 설정인데, 막상 까보면 재난영화라기보다 삼각관계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 삼각관계가 꽤나 짜증 난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눈빛을 쏘아대는지, 직접 보면 알게 된다. 굉장히 짜증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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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지리멸렬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느리게 흘러간다. 스릴러라고 하기에도, 액션이라고 하기에도 한참 모자란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재미있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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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를 딱히 설명하기도 어렵다. 진을 계속 보게 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처럼 보인다. 요리도 못해서 늘 타버린 토스트를 먹고,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런 진에게 어느 날 남편이 아기를 데려온다. 그리고 남편은 사건에 휘말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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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 남편이 보낸 친구 칼과 함께 아기를 안고 도망친다. 남편을 쫓던 나이트클럽 보스는 진까지 쫓아온다. 그때부터 계속 도망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별로 흥미진진하지 않다. 쫓고 쫓기는 영화인데도 속도가 붙지 않는다. 답답할 만큼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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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진을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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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아이도 아닌 아기에게 조금씩 마음을 주고, 남편이 킬러였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보호받는 화초 같던 여자가 조금씩 달라진다. 총을 쏘는 법을 배우고, 자신과 아기를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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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진이 갑자기 멋진 킬러로 변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그런 식으로 관객을 흥분시키지 않는다. 그냥 조금씩 변한다. 그래서 더 이상하다. 재미가 없는데 계속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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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긴 영화는 마지막 한 장면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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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궁지에 몰리고 보스가 그녀를 위협한다. 거창한 대사도 없고,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음악도 없다. 진은 그냥 총을 꺼낸다. 그리고 보스의 이마에 총알 한 발을 박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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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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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가까이 느릿느릿 따라왔던 이야기가 그 한 발로 끝난다.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영화가 마지막에 갑자기 대단한 액션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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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역의 레이첼 브로스나한은 최근 [슈퍼맨]에서 로이스 레인을 맡았던 배우다. 여기서는 훨씬 평범하고 무력한 여자로 나온다. 그런데 그 여자가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게 이 영화의 거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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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데 계속 누군가에게 쫓긴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어디로 가든 불안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수상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진은 그저 아내로, 엄마로 살아보고 싶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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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총을 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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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났을 때는 이상하게 진과 아기,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이제는 좀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영화였다고 말하기에는 망설여지는데, 끝까지 보고 나니 진을 마냥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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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하게 변해버린 니키의 모습보다 찐따 베어의 모습이 더 공포스럽다. 이런 찐따가 주변에 하나 있다면 결국 주위 사람들까지 병들어간다. 영화에서는 그 끝이 끔찍하다. 찐따 베어 때문에 친구들이 하나둘 죽고, 심지어 고양이까지 죽어서 샌드위치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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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적으로 보면 영화는 무섭게 변해버린 니키를 앞세워 공포를 만든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사랑에 빠진 찐따가 사랑을 원하는 방식이다. 자신만을 사랑하도록 만들어버리는 것. 니키가 친구들 앞에서 자기 머리를 깨버려도, 세라의 얼굴을 아작 내서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만들어도 찐따 베어 선생은 무서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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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찐따 베어는 니키의 삶도, 친구들의 삶도, 자신의 삶도 전부 끝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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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가 이렇게 무섭다. 정작 본인은 그걸 잘 모른다. 내가 찐따라서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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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사랑이 언제나 같은 크기,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런 상식은 별 소용이 없어진다. 내가 알고 있는 공식이나 법칙도 사랑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초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그냥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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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한 사람의 사랑이 식어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사랑이 식은 사람에게는 끝난 관계지만, 남은 사람에게는 이제부터가 시작일 수도 있다. 그게 집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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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동생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더니 남자가 집 앞에 차를 대놓고 3일씩 집에도 들어가지 않은 채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무섭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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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사랑할 때 한 번 같이 만난 적이 있었다. 남자친구는 잘생겼고 서글서글했다. 사람도 참 좋아 보였다. 그런데 헤어지자는 말이 트리거가 된 모양이다. 집착이 심해졌고 결국 경찰까지 오갔다. 그 뒤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할 수는 없지만. 다만 이런 일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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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자주 하는 생각이 있다.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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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간섭을 넘어 집착이 되는 순간, 당하는 사람만 힘든 게 아니다. 가족도 힘들고 주변 사람들도 같이 끌려 들어간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옥죄는 일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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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세션]을 보면서 영화 자체에 대한 생각도 조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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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정통적인 영화 연출을 고집하는 영화보다 사람들의 간지러운 곳을 정확하게 긁어주는 콘텐츠가 훨씬 빠르게 반응을 얻는다. 영화는 돈이 많이 든다. 아주 짤막한 독립영화 하나를 만드는 데도 몇천만 원에서 1억 원이 넘게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쓴 영화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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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세션]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가 그런 변화를 꽤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면 하나하나가 마치 쇼츠처럼 도파민을 건드린다. 특히 베어가 말을 한마디 던졌을 때 니키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과 행동이 그렇다. 보는 사람의 숨을 조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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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는 감정을 시시때때로 바꾼다. 두려워했다가 관능적으로 변하고, 천진난만해졌다가 사랑스러워진다. 그러다 광적으로 돌변하고 무서워지고, 다시 행복해졌다가 슬퍼진다. 짧은 시간 안에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의 낯선 얼굴을 거의 다 꺼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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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영화에서 진짜 무서운 건 괴물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걸 본인은 얼마나 늦게 알아차리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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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미지의 공포를 영화는 꽤 집요하게 건드린다. 진짜 무서운 건 어제까지 사랑했던 사람이 돌변한 오늘의 사람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준 [옵세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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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나온 이 영화는 권선징악이 아주 정확하다. 아이들을 괴롭히는 나쁜 어른들이 인형들에게 무참히 공격당한다. 요즘 영화처럼 인형이 매끈하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 어색함이 오히려 묘하게 무섭다. 인형들이 움직이고 사람을 공격하는 장면도 꽤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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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지막에 가장 악독했던 어른이 서서히 인형으로 변하는 장면은 놀랍다. 어떤 의미냐면 요즘에 새로 나온 폴더폰보다 카세트 테이프나 카세트 플레이어를 보며 신기해 하는 느낌과 비슷하다. 아무튼 나쁜 놈은 이렇게 벌을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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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처럼 선과 악의 경계가 흐릿하지도 않다. 온갖 악행을 저지른 빌런이 마지막에 살아남거나 법망을 빠져나가면서 찝찝하게 끝나는 일도 없다. 80년대 공포영화는 이런 점이 분명했다. 나쁜 사람은 벌을 받고, 아이들은 살아남는다. 코믹한 공포영화라면 이불 뒤집어쓰고 보기에도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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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영화에는 아주 섹시하고 악독한 빌런으로 번티 베일리가 나온다. 어디에 나왔냐면 아하의 ‘Take On Me’에 나왔던 그 여자다. 카페에서 만화책을 보던 여자가 만화 속으로 들어가 모턴 하켓을 구해오는 그 유명한 뮤직비디오. 지금 다시 봐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대단한 영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용필의 맥콜 광고에도 비슷한 기법이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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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폭풍이 몰아치는 날,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노부부가 사는 저택에 들어간다. 그 집에는 노부부가 만든 인형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 인형들이 살아 있다. 사람들은 인형들을 무서워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린 주디만은 조금 무섭게 생긴 인형들을 순수하게 반긴다. 인형들도 주디를 좋아한다. 그래서 주디를 괴롭히는 새엄마와 아빠에게 아주 제대로 복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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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면 인형의 움직임이 조금 어색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만들어진 데 2년이 걸렸다는 걸 생각하면 그 움직임도 달리 보인다. 당시에는 인형을 조금씩 움직여 촬영하는 특수효과 자체가 상당한 작업이었을 테니까. 특히 인형들의 얼굴이 움직이는 장면은 80년대 영화라는 걸 생각하면 꽤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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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에서 가장 볼 만한 건 살아 움직이는 인형들이다. 한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도 마음에 든다. 짧고, 잔인하고, 웃기고, 마지막에는 나쁜 놈이 확실하게 벌을 받는다. 이런 공포영화도 가끔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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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7년 전에 나온 [크롤]처럼 재난에 재난이 겹치는 엄청난 불행 속에서 탈출하는 생존기다. [크롤]이 태풍과 악어였다면 이 영화는 비행기 사고와 상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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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영화이긴 한데 심각하게 볼 필요는 없다. 그냥 신나게 즐기는 가벼운 공포물에 가깝다. 비행기에 불이 나고 기내가 폭발하면서 구멍 난 곳으로 사람들이 빨려 나간다. 물건이 날아와 사람을 덮치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지고, 사람이 죽는다. 이 부분에서 도파민이 한 번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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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을 넘어서면 이번에는 태평양 한가운데다. 물에 빠진 사람들 주변으로 상어가 나타난다. 비행기 안에서는 사고가 사람을 죽이고, 바다에서는 상어가 사람을 물어뜯는다. 여기서 두 번째 도파민이 팡팡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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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비행기 안과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 공간은 정반대인데 둘 다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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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통계적으로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라고 하지만 불이 나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다도 마찬가지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낭만적인데 상어가 나타나는 순간 지옥으로 변해 그냥 살아남아야 하는 장소가 된다. 인간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이 얼마나 쉽게 뒤집히는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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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중국인 배우들이 꽤 많이 나오고 비행기 목적지도 상하이다. 중국 시장을 의식한 흔적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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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다이하드 2], [클리프행어], [딥 블루 씨]를 만든 레니 할린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재미는 확실하다. 사람들을 폐쇄된 공간에 몰아넣고 계속해서 위기를 만들어낸다. 레니 할린 영화에서 익숙하게 보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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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티네이션] 시리즈처럼 생각하면 편하다. 사고가 끝나면 또 다른 사고가 나오고, 한숨 돌릴 만하면 다시 일이 터진다. 긴장감의 깊이를 파고드는 영화라기보다는 놀이기구를 타듯 계속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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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으로는 조금 아쉬웠는지 애런 에크하트와 벤 킹슬리까지 데려왔다. 묵직한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배우들의 무게감을 기대하기보다는 그냥 이 난장판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보는 게 맞다. 감독의 전작에서 느껴지던 묵직함까지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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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설정은 꽤 재미있다. 사고로 바다에 떨어진 비행기에서 겨우 빠져나왔더니 상어가 달려든다. 그렇다고 밖으로만 나갈 수도 없다. 가라앉고 있는 비행기 안에도 아직 사람들이 남아 있다. 밖으로 나가도 죽고, 안에 있어도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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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영화에는 빌런이 꼭 한 놈씩 있다. [부산행]의 용석 같은 인간이다. 결국 비행기에 불이 난 것도 이 사람 때문인데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괴롭힌다. 그런데 영화가 영리하게도 마지막에 권선징악을 하나 집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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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끝까지 담배를 피우겠다고 불을 붙이다가 상어의 먹이가 되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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